그는 멋졌다
“오, 안녕하세요! 아직 계셨네요.”
근무시간이 바뀌는지라 시간을 잘 맞춰가야 지나가며 뵐 수 있는데
못 뵌 지 2주 좀 넘었을까, 집으로 가던 길 늦은 시각이었음에도 아저씨가 여전히 나와 계신다.
반가운 마음에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다가가 인사하자
오늘따라 아저씨의 표정이 쌀쌀해진 바람에도 불구하고 가장 환해 보인다.
“드디어 결실을 보네요.”
오늘 나온 신간 표지를 구경하고 다시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신가 궁금할 때 즈음
퇴근 전 잡지 한 권을 더 팔았다는 기쁨보다 입이 근질근질하게 전하고 싶으신 기쁜 소식을 꺼내신다.
“일 년 만에, 드디어 결실을 보게 되었네요.”
이분을 처음 마주친 것은 일 년이 좀 덜 되었다, 작년 11월에 뵈었으니.
사실이 분 말고 이 분 전에 계셨던 분과 친해진 것이 이렇게 그다음 인연으로까지 연결되었다.
그전 선생님을 처음 뵌 건, 즉 이 잡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한 일 년 반 전쯤…
처음에는 사실 서 계신 지조차 모를 정도로 피곤함에 지쳐 보지 못한 채 지나쳤고
그다음에는 그저 또 한 명의 상인이겠거니 하고 지나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팍팍하게 살았을까 싶지만
지나가는 길,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만큼 마음이 여유롭지 못했다, 그때는.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SNS를 통해 그저 그런 가십거리를 실은 잡지가 아니라
홈리스의 자활을 돕는 잡지라는 걸 알게 되고는 그때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렇게 처음 만나게 된 빅이슈 판매원분은 되게 씩씩하시고 정말 성실하셨다.
우렁찬 목소리가 역을 수놓던 분이었는데,
몇 시가 되었든 자정을 넘기지만 않으면 합정역 출구를 지키고 계셨다.
우리 집 앞 출구가 그늘이 전혀 없어서 그렇게 무더운 여름날이 지속되는데도
땀을 뻘뻘 흘리시며 겨우 모자 하나로 얼굴을 가리시는 게 다였다.
젊은 사람이 잠깐만 서 있어도 지칠 정도의 열이었기 때문에
하루는 신간을 사면서 시원한 음료 한 병을 드렸는데,
처음에는 사양하시다가 나중에는 가방 안에 들어있던 빵 두 개를 다 꺼내 주시면서
본인은 빵 안 좋아하신다고, 먹으라고 꼭 쥐여 주시던 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끼니로 들고 오신 거일 텐데, 나에게 다 주시면 본인은 어떡하시려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다 주신 걸까.
가진 게 많아도 나누길 힘들어하는 나의 모습과 달리
가진 게 없어도 전부 다 나누려 하는 그분의 모습이 내게 도전이 되었다.
그 후로 시원한 음료 한 병을 드리면 선생님은 빵이든, 두유든, 뭐든 꼭 하나씩 쥐여주셨고
그렇게 지나칠 때마다 서로 인사하면 되레 내가 많은 힘을 얻게 되었다.
그 더위에 아침 일찍 나오셔서 다들 퇴근한 후 늦은 시각까지 지키셨으니
성실하게, 또 성의 있게 지나가는 한 분 한 분 인사드리며 힘든 내색 하나 안 하시는 모습이
마음에 참 오래 남았다.
이것 또한 하나의 직장이고, 근무시간도 길뿐더러
사람을 상대하는 (대다수가 자기를 반기지 않는) 일이니 그 무엇보다 힘들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정말 씩씩하셨고 정말 밝으셨다.
퇴사하고 아침에 좀 더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된 후에 창문을 열고 늦잠을 자면
바람을 통해 선생님의 우렁찬 신간 소식이 들려올 정도였으니,
정말 그 어떤 단어보다도 그저 철인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당시내 모습과 너무 달라 많이 반성하게 되었고, 또 많이 도전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이 사라지셨다.
한 달 잠시 한국을 비운 사이, 마지막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돌아오고 보니
그분의 자리는 빈자리로 남겨져 있었다.
그저 존재만으로도 나에게 참 많은 위로와 용기가 됐었는데
그런 분이 한결같이 지키시던 자리에 빈 공간만이 존재하니
늘 지나치는 역이 너무 쓸쓸해 보였다.
어디로 가신 것인지, 몸이 아프신 것인지,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건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채로 지하철역 출구는 텅 빈 채 몇 주 남겨지게 되었다.
그러다 얼마 후 그 자리에 새로운 분이 오셨다.
젊으신 분 같다며, 추운 날씨와 어색한 환경에 어려워하시는 거 같다는 얘기를 듣고
한국에 돌아가면 이분께 지나갈 때마다 인사라도 밝게 해야겠다 했는데
돌아와 보니 정말 너무 추워진 날씨 속에 걸음걸이가 더욱 빨라진 사람들 틈에서
바람을 막기에는 너무 얇아 보이는 재킷을 입고 어색하게 서 계신 분이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신간이 나오면 신간을 구매하고, 눈이 마주치면 인사하고.
지나가다 따뜻한 음료를 한 병 드리고, 역으로 내려가며 다시 인사를 하고.
연말이라 곳곳에는 조금씩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데
가족은 어디 계실까, 많이 그리우실까, 그런 생각들이 마음에 스몄다.
무언가 조금이라도 따뜻함이 되어드릴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는데,
제일 유용하게 쓰이겠다 싶어서 두껍고 따뜻하다는 내복 두 벌을 준비했고
계획대로 지나가는 길에 신간을 한 권 구매하고는 아저씨에게 연말 잘 보내시라며
포장한 선물과 편지 한 통을 건네 드렸다.
“아. 아니에요. 안 주셔도 되는데…”
아저씨를 위해 우리 가족이 준비한 거라고, 괜찮다고 받아주셨으면 좋겠다고 하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날을 계기로 벽이 조금 허물어진 거 같다.
지나갈 때마다 인사를 하면 아저씨는 더욱 반갑게 인사해주셨고,
슈퍼에 들러 음료수를 사거나 아니면 햄버거 같은 간단한 야식을 살 때는
시간을 확인해 보고 아저씨 퇴근 시간 전이면 두 개를 사서 하나를 드리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아저씨는 괜찮다며 사양하셨지만,
아저씨가 받으시면 마치 내가 두 개를 먹은 듯이 두 배로 배부르고, 따뜻했다.
투명인간 보듯 빠르게 지나치는 사람들 속에서 조금이나마 이곳에 정을 붙이실 수 있기를 바라며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이자 또한 가장 큰일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보냈다.
날이 조금 풀리기 시작한 후, 봄은 아니었지만 겨울은 한층 물러간 듯한 날이었다.
빅이슈에서 가끔 이벤트를 진행하는데, 그 달에는 신간을 사면 예쁜 물병을 하나씩 나눠주고 있었다.
그날도 인사하고 신간을 한 권 구매했는데 아저씨는 잠시 기다리라 하시더니
잡지 위에 물병을 하나가 아니라, 둘도 아니라, 세 개나 올리시고는 건네주셨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 이렇게 많이 필요 없어요. 하나만 주세요.”
“선생님은 더 드려도 돼요. 친구분들께 나눠주세요.”
다른 분들께 드려도 되는데, 죄송한 마음으로 물병이 포장된 박스를 세 개나 받아 들고서는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네니 아저씨 표정이 밝아 보이셨다.
독자에게 무언가를 선물로 주셨다는 기쁨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너무 많이 받아서 죄송하기만 하던 선물도 한결 가볍게 느껴졌다.
덕분에 그날부터 예쁜 투명 물병을 들고 다니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연락드립니다.
혹시 합정역 빅판분 시간이 바뀌셨나요? 요즘에 안 보이셔서요…’
그러다 아저씨가 몇 주 안 보이셨다.
시간이 바뀐 것인지, 장소가 바뀐 것인지, 더는 보이지 않으셨다.
이분도 취업이 되셔서 다른 곳으로 가신 걸까, 아니면 무슨 일이 있으신 걸까.
며칠 지나면 다시 오시겠지 하고 기다리다 결국 본사에 연락했을 즈음에는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근무시간을 줄이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몸이 안 좋으시다면서요? 많이 불편하신가요?”
한참 후 오랜만에 뵙게 된 아저씨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니 어떻게 알았냐며 놀라신 눈치였다.
몇 주 안 보이셔서 혹시 다른 곳으로 가신 건가 궁금해 본사에 연락했다가 아프시단 소식을 들었다고 하니
사실 폐가 안 좋으시다고, 최근에 급격히 안 좋아져서 근무시간도 줄이고
심한 날에는 며칠 빠지셨다고 하셨다.
혹시 무언가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시라고 하니 괜찮다며 고맙다고 하시는 모습에
물론, 그 상황에서 어찌 무엇을 부탁하고 무엇을 받았겠느냐만
그 후로 지나갈 때마다 출구에 기대고 계시거나 앉아 계시면 힘들어 보이셔서 마음이 더 무겁고는 했다.
“오늘 신간 나왔죠? 요즘에는 좀 어떠세요?”
“건강은 비슷해요… 근데 잠시만요 – ”
잡지를 한 권 건네주시고는 무얼 꺼내러 가방이 있던 구석으로 가시더니
투명한 케이스 안에 샴푸랑 트리트먼트가 든 통을 하나 건네주셨다.
산 게 아니라 본인도 받으셨다며, 다음에 만나면 주시려고 가방에 들고 다니셨다는데
생각지 못한 마음에 미소가 한가득 지어졌다.
그러다 밤 9시 즈음, 늦은 시각.
한한 달째 시간이 안 맞아 계속 못 뵀었는데, 마침 엄마랑 나온 날 아직 출구에 계신 모습을 보고 다가가니
그 어느 때보다 아저씨 표정이 정말 밝아 보이신다.
“저 어제 이사했어요, 임대주택이 돼서.
어제 밤새 이사하고 바로 출근을 해서 정신이 없네요.”
하룻밤을 꼬박 이사하고, 짐을 정리하고, 바로 출근하시느라 피곤해 보이시는데도
그 속에 미소만큼은 감추실 수가 없다.
남부터미널역 근처에 임대주택으로 들어가게 되셨다며
좋다는 말씀을 하시지 않아도 얼마나 기쁘신지 그대로 전해진다.
“몸은요? 건강은 좀 괜찮으세요?”
“아니요, 사실 몸은 계속 안 좋아요.
안 그래도 그래서 판매는 아마 이번 달까지만 할 거 같아요.”
겨울에 너무 고생하셔서, 그리고 아마 그 전에도 너무 고생하셔서 그런지
아저씨는 건강이 쉽게 좋아지지 않는다고 하신다.
한편으로는 이제 보금자리가 생겼으니 조금 더 편히 쉬실 수 있겠구나 다행인 마음,
또 한편으로는
“이번 달까지만 하신다고요?
그럼 이제 합정역으로는 안 오시는 건가요?”
또 한 분의 선생님을 보내드리려니
그래도 2015년 겨울이 시작될 즈음부터 2016년 겨울이 성큼 다가온 지금까지
거의일 년이란 시간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항상 뵙던 분이
이곳을 떠나신다는 얘기를 들으니
“아쉬워서 어떡해요…”
나에게 서울은, 졸업 이후 회사에 다니며 겪은 사회가 거의 전부인지라
조금 팍팍하던 일상 속 낯선 동네를 집이라 부르며 정을 붙일 수 있게 도와준 내 서울의 한 조각이었는데,
또 한 분의 선생님이 떠나신다 생각하니
“그래도 정말 축하드려요! 너무 좋으시겠어요.”
“정말 좋아요. 밤새 이사해서 피곤한데, 너무 좋아요.
드디어 결실을 보네요.
일 년 만에, 드디어 결실을 보게 되었네요.”
아저씨는 마치 우리를 만나 소식을 전하기만을 기다리셨다는 듯
엄마와 나에게 몇 번이고 그 말을 되풀이하신다.
드디어 결실을 본다는, 일 년 만에 결실을 본다는,
그래서 너무 행복하다는, 너무 뿌듯하다는.
옆에서 지켜보며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알기에, 지금의 결과가 얼마나 더 값질지 알기에,
그리고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라 정말 성실함으로 보낸 시간의 결과라는 걸 알기에,
그렇게 얻은 보금자리, 나만의 공간,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라는 걸 알기에.
선생님, 반가웠습니다.
추운 겨울에 오셔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올해는 너무 추워지기 전에 좋은 소식을 들려주시니 정말 축하드려요.
성실함의 열매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저 또한 선생님처럼 계속해서 한결같이 제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저도 많이 흔들리고, 많이 걱정되고, 또 많이 두려워지는 시간이었는데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많이요.
합정역은 많이 허전할 거예요.
그래도 더 좋은 곳에서, 더 따뜻한 날들만 보내시기를 바라며.
또 새로운 분이 오시면, 선생님께 다 나눠드리지 못한 마음, 그분에게 나눠드릴게요.
언제든 돌아오세요,
이곳 합정역으로.
저희는 늘 기다리겠습니다,
이곳 합정역에서.
이곳
합정역에서.
서울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14. 그는 멋졌다.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