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멋졌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어느새 옷깃을 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차다.
쌀쌀해진 공기에 달력을 보니 10월도 반이 지나버렸다.
근래 조금 바빴는데, 바쁜 일을 한층 지나 보내고 숨을 돌리니
가장 먼저 그녀가 떠올랐다. 파리의 전지결.
생각해보면 참 감사한 것은, 되게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즉,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많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락하며, 장난을 치며, 고민을 나누며,
어렸을 적의 모습 그대로와 20대 중반의 모습을 다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
나는 사람을 처음 만난 날, 처음 그 사람과 마주친 날을 보통 기억하는데
그녀와의 첫 만남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둘 다 동남아에서 쑥쑥 자라던 당시, 그 시절 다녔던 교회 1층 예배당에서
주일마다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를 양쪽으로 펼쳐놓고 초등부 예배를 드렸었는데
어느 한 주일 선생님은 그녀를 새 친구라며 인사시켰고, 목사님 딸이라 하여 신기해했던 첫 만남이었다.
오히려 그 어리던 시절에는 그다지 친하게 지낸 기억이 없는데,
중등부로 올라가면서 그녀가 자주 (아니, 매주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 같다) 우리 반으로 놀러 와
같이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피자인에 칠리치즈 그라탱을 먹으러 가던 기억이 가장 생생하다)
놀러 다니며 그때 친해지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 고등부로 올라가며 그녀는 아버지를 따라 개척하신 교회로 가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동네에 갈 일이 있으면 만나서 주스와 빵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만큼
내게는 편하고, 또 오래된 친구이다.
시간이 또 흘러 그녀는 유럽으로, 나는 미국으로 대학을 멀리 가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오랜만에 연락이 닿으면 어색해지고 불편해진 지인이 아니라 늘 반가운 친구였다.
그래서 작년 여름, 그녀가 서울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당시 이래저래 지쳐있던 터라 웬만해서는 약속을 다 기약 없는 미래로 미루고는 했지만
그녀만큼은 꼭 시간을 내 다시 돌아가기 전 밥 한 끼라도 꼭 하고 가라고 했다.
그게 일 년 만의 만남이었을까. 아니면 그보다는 더 된 것 같으니 한 2, 3년 만의 만남이었을까.
고맙게 점심시간을 맞춰 회사 앞으로 오기로 한 그녀는
멀리서 봐도 딱 그녀라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변함없이 앳된 얼굴 그대로였다.
친구들이 나는 어느새 칙칙해져 버려 낯설다 하고는 했는데
멀리서 우리 회사 앞으로 걸어오던 그녀는 정말 마지막으로 본 모습에서 하나 변함없었다.
덥던 6월의 어느 날이었으니 한창 인생의 갈림길에 선 채 복잡한 고민들로 골치 아프던 상황이었는데,
이 길이 아닌 것 같은데, 또 선배들의 모습 속에서도 내가 살고 싶은 삶이 보이지 않는 거 같은데,
근데 모두가 지금 나가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건 정말 미련한 선택이라고,
여기까지 와서 나가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결정이라고 해서
그래서 내 생각과 사람들의 생각, 내 마음과 사람들의 시선,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사람들이 하라고 말하는 것의 격차 때문에
마음이 너무나 혼란스럽고 무겁던 터였는데,
나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듣더니 헤어지기 전, 다시 회사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내게
그녀가 그런 말을 해주었다.
너같이 멋진 사람이 있기에는 그곳이 너무 작은 세상일 수도 있다고.
지금은 그곳 안에 있어 그게 다인 것 같지만,
결코 세상이 그렇게 작은 곳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라고.
다들 나에게 이 길이 어떻고, 저 길은 어떻고,
옵션을 놓고 현실적으로, 확률적으로 설명하고 있을 때
그녀만 초점을 나에게로 맞추었다.
나의 직장도 아닌, 나의 미래도 아닌,
나의 진로도 아닌, 나의 일도 아닌,
나에게로.
그날 그녀를 만난 건 오래전부터 예비되어있던 만남이라는 걸 증명하듯
그녀가 나에게 남긴 말은 그 후로 오랫동안 나침반이 되어주고
내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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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후 나는 그때 용기를 낸 덕분에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었고,
일 년 후 그녀는 잠시 프랑스를 떠나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대전에서 머무르게 되었다는 그녀의 말에, 서울 올라오면 꼭 한번 보자 했는데
그러다 얼마 후 그녀가 새로운 제안을 하였다.
“대전으로 올래?”
본성이 원래 어디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서울 내에서 강남은 멀게만 느껴져 꼭 가야 하는 모임이 있지 않은 한 가지를 않는데 대전으로 오라니!
평소라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서울 오면 보자고 넘길 제안이었다.
그러나 그녀이기 때문에 이야기는 달랐다. 그녀이기 때문에. 그녀니까.
그래서 마지막으로 연락한 9월 말 무렵, 그래, 10월에 일이 끝나면 갈게 했는데
정말 10월에 일이 끝나자마자 하루 쉬고 그녀에게 연락하였다.
“수요일이 좋다 했었나?”
“말 나온 김에 아예 이번 주 수요일 어때?”
그렇게 처음 기차표를 예매해 보고, 멀진 않지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대전여행을 준비하며,
'대전에서 구경할 곳'을 검색해 나오는 곳 몇 군데를 그녀에게 보내주니
척척박사처럼 그녀는 일정을 짜 대전에서의 하루를 계획했다.
그리고 수요일.
서울역에서 다른 볼 일이 있어 아침부터 설쳤더니 대전 가는 기차를 타자마자 눈이 감긴다.
20분 일찍 자리에 앉았는데, 텅 비어있던 객실이 어느새 하나둘 꽉 차 버렸다.
가는 길에는 좀 자야지 하고 잠시 눈을 붙인 거 같은데
어느새 곧 대전역에 도착한다는 안내에 다시 짐을 챙기고 겉옷을 입는다.
기차에서 내리니 쌀쌀했던 바람이 더 쌀쌀하다.
곧 도착한다는 그녀의 연락을 받고 유명하다는 성심당 빵집을 구경한다.
유명하다니 맛이 있겠지 하며 구경하고 있는데
사람이 가득 찬 역임에도 불구하고 멀리서부터 내 뒤로 걸어오는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본다.
뒷모습만을 보고도 나인 줄 알고 찾아온 그녀. 세상에, 그새 살이 너무 많이 빠져있다.
공부가 힘든 것일까. 아니면 집이 그리운 것일까.
아니란다, 다이어트를 하며 살을 뺐단다.
어찌 됐든, 그녀는 한층 성숙해진 미모를 뽐내며 누구보다 싱그러운 매력으로
마치 풋풋한 새내기답게 청재킷을 소화해낸다.
대전역 근처에 점심으로 뭘 먹으러 갈까 하는데 그녀가 제안한 메뉴는 칼국수!
세상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칼국수인데, 어찌 내 마음을 이리도 잘 아는지
우리는 그녀가 찾아놓은 식당으로 가기로 한다.
다만, 그곳으로 걸어가며 발견하게 된 한 가지 허점은 우리 둘의 모자란 길 찾기 능력인데
길치 둘이 길을 찾으려 헤매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다.
둘 중 그 누구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 재밌다. 편하다.
길치랑 길치가 만나 칼국수를 먹으러 가는 길, 덕분에 시장 구경을 한 바퀴하고 서야 칼국숫집을 발견한다.
방석을 깔고 바닥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며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나누니
한국에 온 지도 벌써 두 달. 또 남은 것도 이제 두 달.
당연히 일 년 교환학생으로 온 것으로 판단한 나의 짐작이 틀렸다는 걸 깨닫고는
문득 12월이 절반도 끝나기 전에 다시 떠난다는 그녀의 일정을 생각해보니
시간이 너무 빠르게 느껴진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
오래 함께 한 시간에 대한 증명이듯 밥을 먹으며 나눌 이야깃거리가 끊이질 않는다.
동생이 입대한 이야기부터,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교정기와의 길고 긴 여정,
한국에서의 수업은 어떤지, 기숙사는 어떤지, 친구들은 많이 사귀었는지, 그사이 괜찮은 청년은 없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한 대접이던 칼제비도 동이 나기 시작한다.
역에서 만난 지 한 두 시간이 흘렀을까.
잠시 대화를 보류하기로 하고 일정을 실행하기 위해 대전 탐방을 나선다.
아침에 출발하기 전 일기예보에 나온 온도에 맞춰 따뜻하게 옷을 입고 왔더니
이런, 대전의 해가 너무 쨍쨍하다.
둘 다 겹겹이 입은 옷을 가방에 넣고 벽화 마을을 찾아 길치 둘이서 열심히 지도를 검색한다.
시원한 커피를 한 잔씩 들고서는 커피를 내려준 분의 쭉 올라가다 꺾으면 될 거 같다는 조언대로
우리는 그리 가팔라 보이지 않는 경사를 올라가기 시작한다.
쭉 직진으로 올라가다가 경사가 조금씩 점점 더 과한 각도로 꺾이기 시작할 때쯤
친구의 감을 믿고 골목을 꺾으니 평범한 언덕 위 마을 같던 동네가 알록달록 색을 입은 모습으로 변한다.
여기 서봐라, 저기 서봐라, 더 가까이 가봐라, 포즈를 바꿔 보라 하며
백 장 찍어 한 장 건지면 된다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으면서도 쫑알쫑알,
여기가 예쁘다, 저기가 예쁘다 하고 보니 혼자 왔으면 큰 감흥이 없었을 벽화 마을이 요로콤 너무 아름답다.
그곳을 떠나 성심당 본점에서 빵도 먹고, 다이어트한다는 친구를 겨우 꼬셔 아이스케키도 먹고,
시내를 구경하다 그녀의 학교 앞에서 열린다는 제7회 국화 축제로 걸음을 옮긴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느끼지만, 대전에는 초록, 나무, 물, 그런 자연이 여기저기 묻어있다.
내 옆에 앉은 그녀가 대전에는 이런 자연이 많다고, 살기 좋고 평화로운 곳 같다 한다.
그렇게 도착한 국화축제에서 우리는 또 꽃을 보며 감탄하고, 초록과 자연에 감탄하고,
청계천다운 곳을 천천히 거닐다 곧이어 가장 기대하고 가보고 싶었던
그녀의 학교, 캠퍼스 정문으로 걷기 시작한다.
이렇게 그녀를 다시 한국에서 만나게 되다니, 사람 인연이 참 신기하고 신기해서
만나야 할 사람은 어디서든, 언제든, 또 어떻게든 만나게 되나 보다 생각하다
지나간 나의 인연들을 돌아보고, 또 다가올 인연들을 기대하며 캠퍼스로 향하는 걸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카이스트의 기운이 느껴진다.
“우와, 벌써 아우라가…”
새로 생긴 취미라면 취미가 짧았던 학부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대학 캠퍼스에서 하루 시간을 보내는 것인데,
대전까지 갈 생각은 못 했을 텐데 친구 덕분에 카이스트 구경을 가게 되다니
이미 기차표를 예매한 며칠 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기다린 날이었다.
그렇게 정문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걸음.
고립되어있는 하나의 섬 같다고 했는데, 무언가 정문부터 벌써 웅장한 느낌이 풍겨온다.
관광객마냥 정문을 배경으로 열심히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고 보니
뒤늦게 정문 양쪽으로 신호대기를 기다리며 우리를 구경하는 차 안의 사람들이 보인다.
꿋꿋이 사진을 남기고는 그녀의 안내를 따라 이제 진짜 캠퍼스 안으로 입장한다.
국립대라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할 만큼 땅이 넓다.
서울에 있는 대학 캠퍼스들을 방문하며 느낀 것과는 달리 건물들이 따닥따닥 붙어있지 않고
오히려 널찍하게 띄엄띄엄 세워져 있는 걸 보니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온 군데 잔디로 깔려있고, 나무도 많고, 연못도 있고 그곳에는 마스코트라는 오리들도 있다.
내게 대학과 회사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점이었는데,
높은 건물, 가득 채운 책상, 계속 울리는 전화기, 줄줄이 켜진 모니터,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압박감과 달리
외형적으로만 그런 것이더라도 이렇게 탁 트이고 마음이 뚫리는 공간이 그리웠다.
그래서 자꾸 이렇게 캠퍼스로 돌아오는 걸지도 모르겠다.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될 만큼.
학교 구경을 하며 되게 카이스트답다 느낀 이런저런 이유 중 가장 첫 번째는
건물마다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으로 된 E4, E11 같은 명칭이 있다.
물론, 각 건물마다 이름이 있고 이름으로 외우지 숫자로 외우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신기하다.
또 우리 학교에서는 공대 쪽으로 넘어가야 볼 수 있는 특유의 느낌의 건물들이
이곳에서는 정문부터 캠퍼스를 수놓으니 카이스트만의 분위기에 벌써 압도당한다. 정말 매력적이다.
중앙도서관을 지나, 또 여러 건물을 지나 캠퍼스 안으로 점점 들어가니
드넓은 축구장을 포함한 몇몇 코트 위에서 저마다 여럿 모여 즐겁게 공을 차는 모습이 보인다.
남학생도 보이고, 여학생도 보이고, 무엇보다 다들 정말 즐거워 보인다.
학부 시절의 낭만 아닐까. 학업에 충실히 하는 것이 학생의 덕목이지만
또 좋은 인연들을 만나 즐겁게 지내는 것 또한 그만큼 중요하기에,
쌀쌀해진 날씨에도 다들 밝게 웃으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나를 또 한 번 학생으로 돌아가고 싶게끔 한다.
그렇게 운동장들을 지나 가벼운 언덕을 올라가는데
세상에, 언덕을 오른 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때부터 밥을 먹으러 가기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20분가량의 시간 동안
“우와 세상에, 웬일이야, 맙소사, 우와 정말, 와…” 하며 제대로 된 문장을 하나도 완성하지 못한 채
눈물을 안 흘렸다뿐이지 감동에 흠뻑 젖어 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건 정말, 다른 말로 어찌 설명할 수가 없다. 그저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고, 정말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그저 아름답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서울에 있는 캠퍼스들이 더 예쁘다에 한 표를 던진 상황이었는데,
절반쯤 지나와 그 언덕을 올라 새롭게 펼쳐진 풍경에 상황이 순식간에 뒤집힌다.
이곳이 가장 아름답다. 여기가 단연, 가장 아름답다.
“진짜 너무 예쁘다. 우와… 뭐라고 말을 못 하겠어. 정말 너무 멋지다. 너무 예쁘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들을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그녀에게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감동의 깊이를.
왜 축구장을 지나 언덕을 오른 후 그 순간부터 이곳에 마음이 뺏겼냐 묻는다면
가장 쉬운 대답은 떠나온 그곳이 떠올라서 그랬던 것 같다.
앞에서 보았던 회색빛의 세련된 건물들과는 다르게 더 깊숙이 들어와 발견하게 된 이곳은
낮은 건물들과 붉은색 벽돌, 좁은 차선과 그 옆으로 지나다니던 자전거,
군데군데 놓인 벤치며, 잔디며, 나무며, 걸어 다니는 학생들이며
그 무엇 하나 바꿀 거 없이 완벽한 캠퍼스의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거 같아. 딱 이 분위기인데. 딱 이 풍경인데.
정말 너무 예쁘다. 정말 너무, 예쁘다…”
나의 반응이 신선하고 놀라웠는지
친구가 설명을 곁들여주기를 인문사회과학과 건물들이라 좀 다른 분위기가 날 수도 있겠다 한다.
아직 떠나지도 않았는데 이미 이곳에 마음을 홀랑 뺏겨버려
날이 너무 추워지기 전에 꼭 돌아와야겠다고 다짐한다.
꼭 돌아와 오후에는 글을 쓰다 저녁에 여유롭게 다시 이곳을 거닐고 싶다. 꼭 그래야겠다.
카이스트의 밥은 맛이 없기로 유명하다 하여 잠시 망설였지만
그래도 진정한 캠퍼스 탐험의 마지막 코스로 떠나기 전 학교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다.
순두부찌개를 시키고 앉아 식당을 둘러보니 확실히 남학생 비율이 압도적이다.
늘 7:3, 8:2로 여자가 더 많은 공동체에 있었기에 이 광경이 낯설고 또 신기하다.
그래도 무엇보다 주문하러 줄을 서고, 친구들끼리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학생들을 보며
기숙사에서 지내던 1, 2학년 시절 학교 식당에서 친구들과 모여 밥을 먹던 게 생각이 나
감회가 새롭다. 또한 그 시절이 그립다.
진동벨이 울리면 순두부찌개를 받아와 밥을 먹으며 그녀와 마지막으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하루종일 같이 있었음에도 아직도 할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그만큼 편하고 신뢰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생각에 문득 참 감사하다.
인간관계가 팍팍해지고 텁텁해져 가는 현실에서
15년 함께해온 친구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이렇게 함께하는 것만으로 즐겁다 생각하니
문득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식사를 마치고 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기 전 주어진 15분 동안 마지막으로 캠퍼스를 나란히 걷는다.
나의 유일한 이과계열 친구이자 또한 유일하게 바로 대학원으로 진학한 친구이기에
학생으로 성실히 살아온 그녀의 삶이 이곳에서 또 어떻게 물들었는지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이 너무 행복해. 이곳이 너무 좋아, 계속 남고 싶을 만큼.
거기 있을 때는 다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고, 언제 시간이 가나 그러곤 했는데
여기선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나 싶으니까.
정말 행복한 하루하루지.”
여기에 한 학기 더 남으면 안 되냐고, 아예 여기서 일 년을 보내면 안 되냐고 묻지만
그녀도 나도 그렇게 단순한 결정은 아니라는 걸 안다.
학부가 아닌 석사에, 또 돌아가면 마지막 학기만을 남겨두고 있기에
학생으로서의 마지막 몇 개월일 뿐만이 아니라 그다음 과정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
마음 가는 대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조금 더 복잡한 실타래이다.
알지 않는가. 더는 짜장면과 짬뽕처럼 선택이 단순하질 않다는 걸.
(물론, 짜장면과 짬뽕도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근데 다들 취업 걱정하고, 미래 걱정하고 그러거든. 당연한 거고.
근데 나는 그냥,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내려고 해. 그래서 오늘이 감사해.
남들은 편하게 산다 그러는데, 걱정한다고 바뀌지 않을 미래라면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것도 의미 있는 거 같아서.”
어느새 해가 지고 조금씩 밤이 가라앉기 시작한 이곳에서
헤어지기 전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무들로 채워진 그늘 아래 걸으며 20대에 누구나 느낄법한 고민들,
그리고 그 고민들에 대한 우리의 완성하지 못한 결론을 나누며.
“맞아. 네 말이 맞아.
오늘에 행복하고, 오늘에 감사하는 것.
사실 그게 가장 어렵고, 또 가장 어려운 일 일지도 몰라.”
필요한 생각들과 필요한 계획들은 세워야 하지만
사실 인생이 꼭 생각한 대로,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만은 않기 때문에.
“그래서 그게 정말 멋진 거야.
우리는 늘, 행복이 지나간 다음에야 행복이었다는 걸 알잖아. 나를 포함해서.
근데 너는 오늘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
아니 어쩌면, 오늘 안에서 오늘의 행복을 찾아낼 줄 안다는 것이
그게 진짜 대단한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더 어렵고, 더 지혜로운 것은
흘러오는 대로, 또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가는 길.
조금 더 유연하고, 조금 더 노긋노긋하게
주어지는 삶에 걸어가는 길, 펼쳐지는 삶에 그려가는 길.
“나는 그냥,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내려고 해.
그래서 이곳에서 보낼 수 있는 오늘이 감사해.”
다음 일감을 찾아 나서기 전, 어느새 2016년의 하반기도 끝나가는 무렵에
고민, 걱정, 그리움, 이런저런 것들로 가득 찬 마음을 다시 본질적인 방향으로 맞춰주며.
그리운 친구를 만나러 떠난 먼 걸음이 하나도 고단하지 않을 만큼
무사히 시간에 맞춰 다시 기차에 올라타는 내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는
기차가 떠날 때까지 플랫폼 중앙에 앉아 마지막을 배웅하던.
“지금이 좋아.
오늘이 참 감사해.”
나는 그런 그녀가 멋진 것 같다.
현재를 살 줄 아는 사람.
지금의 행복을 깨닫고 누리는 사람.
그렇기에 나는 그런 그녀가 2016년 들어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멋지고,
또 그렇기에 나는 그런 오늘이 2016년 들어 내가 보낸 하루 중 가장 행복하다.
오늘에 행복해할 줄 알고
오늘에 감사해 할 줄 아는 삶.
“She is someone who knows how to make the best out of what is given – today.”
“Elle est la personne qui sait tirer le meilleur de ce qui a été donné d'aujourd'hui.”
오늘에 행복해할 줄 알아서,
오늘에 감사해 할 줄 알기에.
나는 그런 그녀가 멋지다.
서울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15. 그녀는 멋졌다.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