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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곳을 떠나왔냐면

오늘 지금 이 순간, 나는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by 일요일은 쉽니다


되게 오랜만에 그 질문을 받았어요

왜 회사를 그만뒀냐고

어느덧 그만둔 지도 몇 번의 계절이 지난 지라

이미 물어볼 사람들은 한 차례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나갔기에

이제 더는 답할 필요가 없어져 버린 질문이었는데

오랜만에 들으니까 느낌이 새롭더라고요

그래서 왜 그곳을 떠나왔냐고


제일 먼저 나온 대답은

“너무 빡빡해서요”였는데

물론 한국에서 직장생활 하면서

(혹은 사실 그 어디에서나)

쉬운 직장생활은 없지만

광고회사가 힘들긴 한 거 같아요

다른 계열사들에 비해서도 그랬던 거 같고요

동기들 중에 정말 바쁜 동기들은

진짜 철인이다 느낄정도로 대단하거든요

그래서 정말 많이 존경해요

이 세상에 (특히 대한민국의) 모든 광고인들을



근데 어쩌면

그 뒤에 따라온 답이 조금 더 정확했을까요

“내 삶이 회사가 되어버려서요”

모든 걸 제치고 회사를 우선순위로 두어야 한다는 게

저한테는 힘들었던 거 같아요

내 삶에 아주 중요한 다른 것들도 있는데

어느 순간 다 놓쳐버리고 있는 거 같았거든요


일도, 가족도

친구도, 회사도

직장도, 교회도

건강도, 생활도


무엇 하나 제대로 잡지 못한 채

다 손가락을 빠져나가고 있는 것만 같았어요

그게 참 마음이 아팠어요


“이렇게 살다가

후회할 거 같아서”


근데 어쩌면

그다음에 나온 대답이 가장

진심이었을까요

그렇게 무엇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며

휩쓸려 가듯 끌려가며 살다가는

다 놓쳐버릴 거 같아서

이렇게 살다가

후회할 거 같아서



그래서 그랬던 거 같아요

모두 그 길이 옳다고 해서

그래서 그 길을 놓지 못한 채 걷다가는

3년 후, 5년 후, 10년 후 그곳에서의 삶이

어떨지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떠났어요

이렇게 설레는, 눈물 나는 오늘을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는 않아서

나에게 예비해 놓으신 꿈이, 길이, 비전이

다른 곳에 있다는 마음을 받고서는


그래서 그 시절 누리던 것들을

이제 더는 누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오늘에 감사함을

오늘에 행복함을


“잘했네

그러면 잘 떠났네”


그렇죠?

저도 그런 거 같아요

오늘 지금 이 순간 나는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기에


“잘 떠났네”


고맙습니다

잊고 있었는데 덕분에 오늘이 더욱

감사합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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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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