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누군가를 전도한다는 것은
있잖아요,
전 전도를 잘 못 해요. 어색해하고 불편해하죠. 미안해하고 눈치 보고.
잘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카페에서 만나든 길거리에서 지나치든
누군가에게 하나님 이야기를 한다는 건, 교회를 소개한다는 건 늘 어려웠어요.
바쁜데 방해하는 거 같아서 미안하다가, 불편해할까 봐 걱정하다가,
그러다 자기 좋으라고 전도하는 건데 그 마음 몰라준다고 괜히 화가 나기도 하고.
특히나 애정을 갖고 여러 번 이야기를 꺼내게 되는 경우에는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는 상대에게
섭섭해하기도 하고, 제풀에 지치기도 하고.
저는 전도를 잘 못 해요. 어려워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건데 항상 부담스러운 소식을 전하는 마냥 늘 어려웠어요, 부끄럽게도.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19-20
근데 몇 달 전에 문득 전도에 대해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할 게 아니라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선교단체에 있을 때 깊숙이 마음에 와 닿았던 적이 없던 구절이 뒤늦게 마음에 들어왔어요.
나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얼마나 힘을 썼는가, 얼마나 노력했는가.
열매를 맺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열매를 맺는가를 따지기 전에 얼마나 땀 흘리고 수고하였는가.
이 삶을 다하고 하늘에 올라갈 때 나도 하나님한테 무언갈 자랑하고 싶은데
내가 무어라 자랑할 수 있을까, 내가 무슨 말을 드릴 수 있을까…
그래서 뒤늦게나마 한 가지 다짐을 했어요, 항상 마음속에 아직 믿지 않는 한 영혼을 품겠다고.
주님을 전하고 싶은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그렇게 그 사람이 믿게 되면 그다음에는 또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고 그 새로운 사람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거창하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지만 작은 것부터 시작하겠다 다짐을 하고
첫 번째로 떠오른 건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오던 동네 친구였어요.
초등학교 2학년, 3학년 즈음에 만났으니까 가장 오래 안 친구이기도 하고 또 가장 편한 친구이기도 하죠.
알고 지내온 시간 중 떨어져 있었던 시간이 더 길지만, 그래도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빼먹지 않고 만난 친구.
그만큼 오랜만에 만나도 한결같이 변함없는, 그 친구 앞에서는 예전 모습 그대로일 수 있는 아끼는 친구.
그래서 그만큼 더 전하고 싶고, 또 그만큼 더 전도하기 어려운 그런 친구였어요.
“그때 갔잖아.”
사실 이전에 전도하려 한 적이 있었거든요.
고등학교 때 그 친구가 한국에서 다시 돌아오게 되면서 저희 반으로 전학을 왔는데
얼마 후 중고등부 수련회를 앞두고 맛있는 밥도 주고 게임도 하고 재미있을 거라며 겨우 데려갔었어요.
가서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말씀도 듣고 재밌는 시간을 보냈는데
다만 마지막 날 저녁 기도시간에 학생들이 엎드리고 구르고 울고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모습에 놀란 거죠.
그 기억이 한 번 더 가고 싶다로 자리 잡았는지 다시는 안 가고 싶다로 자리 잡았는지 직접 묻지는 않았지만
친구는 이상하고 무서웠다는 뉘앙스를 풍겼고,
적극적으로 교회를 데려가려고 했던 제 노력은 그 후 학기가 바빠지고 입시를 준비하면서
그즈음에서 멈췄더라고요. 수련회를 데려간 게 무색할 만큼.
몇 년 후 유명한 분들이라며 어노인팅 찬양집회에 한 번 더 데려간 게 전부였어요.
“근데 우리 교회는 한 번도 안 왔잖아! 내가 서울에서 다니는 교회!”
그때 우리는 좀 더 어리고, 순수하고, 마음도 더 열려있던 때라 그런지 두 번이나 따라왔었는데
지금은 학교 다니느라 바쁘고, 사람들 만나느라 바쁘고, 연애하느라 바쁘고,
새로운 걸 굳이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궁금증도 없는 그런 나이가 되어버려서 안 내켜 하더라고요.
웬만한 이유로 더는 설득할 수 없는. ‘교회? 가봤어. 다 똑같아. 굳이 뭐하러’가 되어버린.
마음이 되게 무거웠어요. 더 좋은 본보기가 되지 못한 거 같아서요.
내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네가 믿는 하나님 나도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텐데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 거 같아서요.
유명한 사람이 온다고 하면 바쁜 일 제쳐놓고 가고 대단한 사람이 온다 하면 약속을 취소하고라도 가는데,
나조차 매주 하나님 만나러 가는 자리를 쉽게 생각하고 하나의 형식처럼 느낄 때가 있으니
미안하고, 부끄럽고, 어렵고, 무겁고, 그러더라고요.
“나중에. 나중에 한 번은 갈게.”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순 없잖아요.
믿지 않는 영혼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겠다 했는데, 한 번에 승낙하지 않는다 해서 관둘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자주 연락을 하면서 특히나 무슨 특별예배나 행사가 있을 때는 오지 않겠냐 연락을 했어요.
‘너 그때 한번 오겠다 했잖아. 이번 주에 올래? 아니면 다음 주?’
‘그래 알겠어, 다음에 다시 연락할게.’
근데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기다리다 계절이 바뀌면서
결국 왜 한 번 오겠다 하고선 안 오는 거냐고 짜증을 내버렸어요.
훈련 들어가기 전에 오겠다고 한 친구가 결국 그대로 훈련에 들어가게 돼버렸을 때
왜 약속을 안 지키냐고. 훈련 끝나고 나오면 개강일 텐데 그럼 언제 올 거냐고.
좋은 걸 주고 싶은 마음에, 특히나 입대하면 한동안 못 볼 테니 그전에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그런 거지만
너무 조급했던 거죠. 너무 성급했던 거예요.
내 계획에 내가 생각한 시간에 맞춰서 일을 진행하고 싶은데 자꾸 보류하고 미뤄지니까 실수를 한 거죠.
마음이 열리지 않는 거 같으면 기도에 더욱 힘써야 했는데
내 손으로 어떻게 해보겠다고 자꾸 보채기만 한 거예요. 왜 안 오냐고.
그러다 친구도 불편한 마음에 조금씩 연락이 늦어지기 시작했어요.
그제야 내가 잘못 접근했구나 싶더라고요.
믿지 못하고 맡기지 못해서 자꾸 내 생각대로 내 힘으로 일하려고 하는 오래된 나의 모습을 놓지 못해서.
기다리고 인내하고 더 기도해야 했는데 말로만 계속 전도를 해서.
내 삶에서 당신의 향기가 나질 않는데 왜 이렇게 좋은 걸 모르냐고 답답해만 해서.
하나님, 제 방법을 내려놓습니다. 제 계획을 내려놓습니다. 제 욕심을 내려놓습니다.
무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얼 어쩌면 좋을까요…
그렇게 기도하다 한 달 훈련 들어가 있는 시간을 그저 흘려보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친구를 만난 적 없는 우리 셀원들에게 편지를 써달라 하고 저도 편지를 써서 우체국을 들락날락했죠.
너무 덥지는 않은지. 훈련이 고되지는 않은지. 예전에 고마웠던 일을 적고 추억을 적고.
부담 줘서 미안하다는. 그저 좋은 걸 나누고 싶은 마음에 그랬다는.
다치지 않고 건강히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고, 또 보내고.
간절한 마음이 통한 걸까요. 진심이 통한 걸까요.
한 달 훈련받으면서 나와 우리 교회 셀 친구들이 보내준 편지가 가장 많아 고마웠다며
한번 오겠다던 약속을 훈련이 끝나고 정말 지켰어요. 너무 예쁜 거 있죠?
예배당 앞 계단을 올라오는 게 너무 예쁘더라고요 그 모습이.
처음에는 찬양도 완벽하고 말씀도 완벽하고 모든 게 척척 들어맞아야 할 텐데 하고 걱정을 했는데
본질이 아닌, 그리고 나의 영역도 아닌 염려를 내려놓으란 음성대로 그저 옆에서 기도하며 예배를 드리니
지금 이 순간 예배에 나아온 친구가 너무 예쁘더라고요.
중간에 핸드폰을 만지든, 꾸벅꾸벅 졸든, 그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예쁜 거 있잖아요.
그렇게 처음 느꼈어요. 하나님이 이런 마음이시겠구나.
그저 이 자리에 나아온 것만으로도 너무 소중하고 기쁜, 이런 마음이시겠구나. 이렇게 기쁘시겠구나.
예배의 모든 요소가 완벽하길 바라 온도도 적당하고 조명도 운치 있고 반주도 어울리고
본질도 아니고 그저 인간적인 면들로 승부를 보려던 나와 달리
예배시간 내내 이제 믿고 맡기라던, 친구의 마음을 만지시는 건 하나님이 하신다는 음성에
이제 나의 역할은 지금도 일하고 계시고 앞으로 역사하실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거구나 정리되더라고요.
그분을 신뢰하고 잠잠히 그분이 하시는 일을 보는. 그분이 하나님 되심을 찬양하는.
시간이 더 걸릴 겁니다.
다음번 교회에 나오는 게 언제가 될지, 한 달이 걸릴지 일 년이 걸릴지 십 년이 걸릴지 저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이제 나의 역할은 마음에 품고 매일 기도해주는 것이죠.
말밖에 없는 전도보다는 기도가 가득한 전도. 그게 가장 중요한 역할이자 고마움의 답례겠죠.
고마운 친구니까.
그 긴 시간 동안 한결같이 머물러준. 늘 즐겁고 편한.
나를 기준에 맞추려 하지도 않고 재고 따지려 하지도 않고,
짐을 얹어주지 않고 앞에서는 위하는 척 뒤에서는 고개를 돌리는 친구가 아닌,
항상 믿어주고 응원해주고 진심뿐인 친구이기에.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준 친구이기에.
가장 좋은 선물을 주고 싶어서. 내가 믿는 예수님을 소개해주고 싶어서.
매일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당신도 나의 하나님을 깊이, 친밀하게 만나길 바란다는 걸.
있잖아요, 그 열네 번째
14. 누군가를 전도한다는 것은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