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베드로
있잖아요,
이번 주는 우리 교회 청년부 특별 새벽기도회 기간이에요. 물론 한주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한 주간 아침 일찍 나아와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귀한 기회죠.
사실 작년에는 별로 갈급함이 없었어요. 그래서 한 주간의 특새 기간이 설렘보다는 부담으로 다가왔었죠.
근데 올해는 그 의미가 좀 남달랐어요. 일단 기도의 중요성을 정말 피부에 와 닿게 깨달은 지난 몇 달이었고
매일 기도로 하루를 보낼 때와 그렇지 않은 날들의 차이를 느꼈거든요.
상황이 좋아서, 혹은 상황이 나빠서 심경의 변화가 있기보다는 문제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하루를 또 무사히, 감사히, 건강히 보낼 수 있는 건 그 날 쌓은 기도의 차이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는 2월에 접어들 때부터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을 기다렸어요.
올해 들어 기도할 것들이 아주 많거든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백성”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백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 주간 말씀을 듣고 있는데,
첫날 우성환 목사님의 말씀을 나누려 해요.
“오라!”라는 제목으로 마태복음 14장 22절에서 32절을 읽었는데 유명한 말씀이죠.
오병이어의 기적 직후에 나오는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부분.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시고 그 현장에 심취해있기보다
제자들을 먼저 배를 타고 떠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밤 사경, 제일 어두운 시간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는데
그때 제자들이 모두 놀라 두려워하죠.
그중 베드로만 예수님께 물 위로 걷게 해달라 청하는데, 결국 몇 걸음 걷다 바다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고 주님께 살려달라 외칠 때 주님이 손을 내밀어 붙잡아주셔서 함께 배에 오르죠.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마태복음 14:25
밤 사경,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 즈음 제일 어두운 시간.
제자들을 먼저 보내고 홀로 남아 기도하시던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다가가십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제자들은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 소리 지르는데,
그건 물론 물 위를 걸어서 오는 것 자체도 놀랄만한 일이지만
더욱이 당시 바다는 통제가 불가능한 구역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다만큼은 예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거죠.
마치 우리가 흔히 신앙생활 외에 영역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생각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거예요.
단기선교의 하나님, 새벽기도의 하나님, 부흥회의 하나님, 주일예배의 하나님이시라 고백하고
그래서 그런 공간 속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기대하고 사모하지만,
그 외에 삶의 영역에서는 하나님을 기대하지 않을 때가 많잖아요.
학교, 직장, 관계, 미래 등 신앙생활 외에 영역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죠.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마태복음 14:27
근데 그렇지 않아요. “두려워하지 말라, 나다”라고 말씀하실 때 예수님은 그 인식을 바로 세워주시는 거예요.
모든 걸 예수님이 끌고 가신다 말씀하시는 겁니다.
제자들은 바로 전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다는 통제할 수 없는 구역이라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라 말씀해 주시는 겁니다.
즉, 단기선교, 새벽기도, 부흥회, 주일예배 및 교회 안에서,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학교, 직장, 관계, 미래 등 주일을 포함한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기쁜 날에나 어둡고 외로운 날에나 늘 언제나 함께하시는 주님이시라는 걸 말씀해주시는 거죠.
마치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있을 때 주인이 종의 형통함을, 요셉의 형통함을 본 것과 같이요.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마태복음 14:28
예수님께서 “나니 안심하라”라고 말씀하실 때 제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베드로가 다르게 반응합니다.
모두 두려워하고 있을 때 베드로는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대답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바다는 통제가 불가능한 구역이라 믿고 있지만
정말 이곳의 주관자도 주님이시라면 나는 물 위를 걸을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겁니다.
그러고 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마태복음 14:28
베드로의 고백은 이런 거지요.
이곳의 주관자도 주님이시라면, 나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사는 인생에 너무 많은 장애물과 어려움이 있지만,
하지만 주님이시라면 나는 그걸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물 위를 걷듯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이기에 더 대단한 고백이에요. 베드로는 어부잖아요. 누구보다 바다를 잘 아는 사람이죠.
우리는 보통 익숙함, 또 우리의 지식과 경험이 상당 부분 믿음의 걸림돌이 되잖아요.
이거 해봤는데 안돼, 소용없어, 그렇게 해봤자야, 알잖아. 차라리 모르면 해볼 용기라도 있는데
지식이 있고 경험이 있으면 우리의 생각이 먼저 튀어나가기 때문에 믿음이 앞서기가 쉽지 않죠.
마치 예수님이 어디서 떡을 사서 이 많은 사람을 먹이겠냐고 질문하실 때
빌립이 얼른 계산하고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다고 대답하는 것과 같아요.
근데 베드로는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것을
주님은 가능케 하신다고 고백하는 겁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순간에 우리의 합리성을 내세우지만,
이 순간 베드로에게는 예수님의 합리성이 자신의 합리성을 뛰어넘은 거죠.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마태복음 14:29-30
근데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걷다 바람을 보는 순간 두려움에 휩싸여 빠집니다.
물 위를 걷던 순간과 바다에 빠지는 순간의 차이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였죠.
예수님을 바라볼 때는 물 위를 걸었지만, 바람을 바라본 순간 물에 빠진 것입니다.
어부는 바람을 보는 것을 훈련하기 때문에 신앙과 익숙함 사이에서 익숙함에 다시 사로잡히는 순간
순식간에 상황에 휩쓸려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잖아요.
믿음으로 한 걸음 내디뎠는데 순간 처해있는 상황이 다시 눈에 들어올 때,
눈앞에 닥친 장애물에 겁을 먹어 다시 바다로 빠져버리죠. 나의 시선이 예수님에서 바다로 옮겨갈 때.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마태복음 14:30
근데 여기서 베드로의 대단함이 한 번 더 나타납니다.
믿음으로 외치고 물 위로 몇 걸음 떼자마자 다시 빠졌지만, 그는 예수님께 다시 한번 부르짖습니다.
바다를 잘 아는 어부인만큼 예수님께 외칠 필요도 없이 본인이 수영해서 올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예수님께 다시 한번 손을 내밉니다.
실패했다고 한들, 실패를 자주 한다고 한들 쉽게 포기하지를 않아요.
실패해도 자신의 경험에 의존하지 않는 것, 또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게 베드로의 대단함인 것이죠.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마태복음 14:31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가장 잘 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손을 내밀어 붙잡아주시며 말씀하시죠. 너는 물 위를 걷지 못할 만큼 믿음이 작은 자가 아니라고.
몇 걸음 걷다가 바다에 빠진 결과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그 마음을 보신 게 아닐까요.
부족한 점, 또 모자란 점이 너무 많지만 그 마음의 중심에 초점을 두신 거죠.
주님이시라면 나는 모든 걸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물 위를 걷듯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내 생각과 내 경험이 앞서기 전에 주님을 바라보는 것. 또 주님께 모든 걸 믿고 맡겨드리는 것.
내 뜻대로 내 힘으로 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엎드려 그분의 계획을 구하는 것.
일 년 전 2016년 특별 새벽기도회 마지막 날, 이정익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밤새 헛수고를 한 것처럼 깊은 데로 가도 물고기가 안 잡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대로 깊은 곳으로 가 그물을 내린 것, 그것이 베드로의 위대함이라고.
일 년을 보내고 또 한 번 보여주시는 베드로의 모습 속에 올해도 기억하기를 바라시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죠?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뛰어넘어 나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꽃이 피는 들판이나 험한 골짜기라도
주가 인도하는 대로 주와 같이 가겠네
한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 걸어가리”
있잖아요, 그 열여섯 번째
16. 베드로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