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에 대하여 [2]
- 우리에 대하여
내가 다섯 살 때쯤 있었던 일이라 한다.
“너희 외할아버지는 손주라고 하면 끔찍하셨어.”
친할아버지가 폐결핵에 걸리셨다. 예쁘다고 데리고 다니셨으니 혹시 옮았을까 걱정이 돼 병원에 가 검사를 했는데 일단 검사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예방약을 먹기로 했는데, 약이 삼 개월 치나 되었고 또 독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어리고 약한 애니 약을 먹는 기간 동안 영양보충을 할 수 있게 뭐가 제일 좋을까 알아보다 개고기가 좋다는 말씀을 들으셨단다. 근데 어른이 돼서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더욱 입이 짧았던지라 고기를 잘 먹지 않았다. 그러니 처음 보는 개고기라 하면 얼마나 더 먹지 않으려 떼를 썼을까. 그래서 그 대안으로 찾은 것이 개고기를 푹 삶은 국물이었다. 고기는 잘 먹지 않아도 국물은 좀 더 쉽게 먹지 않겠냐는 결론이었다.
그래서 그날로 그 길로 나를 먹일 그 국물을 구하기 위해 할아버지는 온 군데를 돌아다니셨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물어물어 찾으신 보신탕집에서 혹시 국물 한 대접을 살 수 없겠냐 물어보셨단다. 고기를 찾는 것도 아니고 국물을 사겠다는 말에 어르신 무슨 일이시냐고 식당 주인이 물어보니 할아버지는 아이가 독한 약을 오래 먹어야 해서 국물이 좋다는 말에 그동안 같이 먹이려 한다 하셨고, 사정을 들은 식당 주인은 할아버지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마음에 걸리셨는지 아이가 약을 먹는 동안 얼마든지 국물을 받아가시라고 해주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석 달 약 먹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할아버지는 새벽이 물러갈 즈음 제일 먼저 일어나 식당에 가서 국물을 한 대접 받아오셨다. 그러고는 밥도 잘 안 먹고 약도 잘 먹지 않으려 고생을 시키던 내게 몸이 튼튼해지고 쑥쑥 크는 국이라며 정성으로 먹이셨다.
“너희 할아버지는, 손주라고 하면 끔찍하셨어.”
세 명의 자식 중 유일한 딸인 엄마가 안겨드린 첫 손주였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더 애틋하고 깊으셨을까. 또 딸이 낳은 딸이니 감회가 얼마나 남다르셨을까. 아직 아기 같기만 한 딸이 어느새 훌쩍 커버려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또 한 남자의 아내가 된 것이 여전히 어색하기도, 또 자랑스럽기도 할 때 한 아가의 엄마가 되어 자기를 닮은 딸을 낳았으니 하물며 그 마음이 얼마나 더 소중하셨을까.
“너희 할아버지는,
손주라고 하면 끔찍하셨어.”
오랜 세월이 지나 어느새 그 손녀마저 대학에 가고, 취직하고, 당신의 딸이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가 된 나이로 접어들었다. 그 손녀는 서툴게나마 또 때로는 방황하면서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지 못한 채 당신은 먼저 떠나야 했지만, 이곳에서 우리는 여전히 당신을 그리워하고 기억한다. 당신이 걸었던 길, 앉았던 자리, 보았던 나무와 꽃을 대신 바라보며 이제 내가 당신을 기록하려 한다.
당신이 나의 세상에 새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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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