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의 세상에
새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 유년시절 [3]

by 일요일은 쉽니다


당신이 나의 세상에 새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 유년시절



외갓집에서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나열하라고 하면 감사하게도 너무 많다. 토끼, 차, 우동, 중국집, TGIF, 이메일, 카드, 곰돌이 모형…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할 때까지 외국에서 떨어져 지내 함께 보낼 시간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참 감사한 일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서울에 도착하는 날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일찍부터 공항에 나와 우리를 기다리셨다. 짐을 찾고 입국장으로 걸어나가면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제일 앞에서 언제 나올까 미소로 기다리고 계시던 모습이 여전히 선명하다. 공항에서 친가로 가기 전 잠깐 인사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래도 할아버지는 늘 그 먼 거리를 할머니와 함께 운전해서 아침 일찍부터 우리를 기다리셨다.


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할아버지의 차를 빼놓을 수 없다. 까만 그랜저였는데 어찌나 근사해 보이던지 입버릇처럼 이 차를 파실 때 꼭 얘기해달라고, 꼭 나한테 팔라고 초등학생이던 내가 그랬었단다. 뒷좌석에는 보드라운 분홍빛 쿠션이 놓여있었고 그 위에 앉아 출발하길 기다릴 때면 정성껏 차를 관리해오신 할아버지의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그런 공간이었다. 우리는 이 차를 타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친가에도 가고, 공항에도 가고 그랬다. 가고 싶은 곳에, 또 가야 하는 곳에 데려다주는 아주 좋은 친구였다.


또 할아버지의 이메일. 이메일을 빼놓을 수가 없다. 내가 어렸을 때는 해외에서, 혹은 해외로 연락할 방법은 비싼 국제전화밖에 없었다. 요즘처럼 어디에 있든 와이파이 혹은 데이터만 있으면 자유롭게 문자를 주고받고 또 전화도 할 수 있는 그런 시절이 아니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종종 이메일을 보내시고는 했는데, 당시 인기가 많았던 브랜드가 바른손카드였다. 컴퓨터로도 예쁜 카드를 골라 내용을 적고 이메일로 보낼 수 있었는데, 링크를 열어보면 노래도 나오고 캐릭터들이 움직이기도 하는 예쁜 카드들이었다. 생일이나 연말이나 특별한 날마다 꼭 잊지 않고 하나씩 보내셨는데, 그러면 컴퓨터를 켤 때마다 며칠 동안 보고 또 보고,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 후 유효기간이 지났다며 더는 링크가 열리지 않을 때도 할아버지가 보내셨던 이메일들을 지우지 않았다. 십 년, 십오 년, 거의 이십 년이 다되어가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그대로 내 메일함에 있다.


그래도 기술의 발전은 놀라워서 얼마 후 당시 카카오톡 같은 존재이던 MSN 메신저로 화상통화가 가능해졌다. 한국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날, 울적한 마음을 안고 혹시나 될까 싶어 사 왔던 카메라와 마이크를 연결하고 테스트해보니 정말 화상통화가 연결됐다. 그날 모니터로나마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또 뭐가 있을까. 난 외갓집 길 건너편에 있던 중국집을 좋아했는데 거기서 먹는 짜장면과 짬뽕이 그렇게 맛있었다. 배달을 안 해줬기 때문에 가서 먹고는 했는데 할아버지는 주인과 반갑게 인사하시고는 늘 제일 구석 창가 자리에 앉으셨다. 거기에 앉아야 집이 보인다며 늘 창가 쪽을 바라보셨고 내가 탕수육을 좋아하지 않았던 관계로 짜장면 혹은 짬뽕을 한 그릇씩 먹고 집에 돌아가고는 했다.


자주 가던 식당 하면 또 망원시장 가는 길에 일식집이 하나 있는데 여름에 시원한 국수가 생각날 때면 그곳에 들러 메밀국수를 먹었다. 나는 원래도 워낙 국수를 좋아하지만 시원하고 깔끔한 메밀의 맛을 여름철이면 특히 참 좋아했다. 할아버지도 시원한 게 드시고 싶으신 날이면 이 집 메밀이 맛있다며 좋아하셨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입맛이 참 비슷했다.


아, 부대찌개. 또는 마법의 찌게. 할아버지는 엄마가 끓이신 부대찌개를 참 좋아하셨다. 한솥을 끓이고 나면 늘 양이 남았는데, 물을 붓고 다시 끓이면 또 한솥이 되어서 우리끼리 마법의 찌개라 불렀다. 저녁으로 부대찌개를 먹고 난 다음 날이면 아침에 뭘 차릴까 하는 말에 할아버지는 늘 물 부어서 또 먹자 하셨다. 그만큼 엄마가 끓인 부대찌개를 좋아하셨다. 그래서 나도 참 좋아했다.


그리고 TGIF.TGIF를 빼놓을 수가 없다. 베트남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TGIF는 한국에 와야만 갈 수 있는 신나는 곳이었다. 그곳에 붉은빛의 어두운 조명과 인테리어, 멜빵에 알록달록 배지를 잔뜩 달고 반가운 목소리로 주문을 받는 언니 오빠들, 또 특별한 날이라 하면 꼬깔콘 모자를 씌워주고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불러주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도 찍어줬기 때문에 TGIF에 가는 날은 가장 기대하는 날 중 하나였다. 그곳의 모든 게 너무 신기하고 좋았다. 그래서 TGIF에 가는 날만을 그렇게 기다리고는 했다.


아, 개를 키운 적이 있다. 마당에 큰 진돗개를 키웠는데 이름이 진돌이였다. 겨울에 진돌이가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네 마리는 얼룩덜룩 엄마를 똑 닮았었고 막내는 눈같이 하얬는데 너무 예뻐서 특히나 막내에게 마음이 갔었다. 그해 겨울에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외투를 뒤집어쓴 채 마당에 나가서 강아지를 예쁘다 쓰다듬어 주는 게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그중 네 마리를 이웃들에게 나눠주게 됐을 때 어찌나 울었는지. 그나마 마지막까지 두셨던 흰둥이마저 떠났을 때는 바다를 채울 만큼 눈물을 펑펑 쏟았다. 새로운 집에서 행여나 잡아먹힐까 엄청 걱정했다. 그렇게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나에게 할아버지가 잘 키워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 나눠주었으니 잘 클 거라 안심시켜주셨다.


그래도 그나마 진돌이가 우리 곁에 남아있으니 진돌이와 놀며 마음을 달래고는 했는데, 몇 달 후 다시 임신해 배가 불룩해진 진돌이마저도 대문을 잠깐 열어놓은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그날 동네를 한참 찾아다녔지만 결국 진돌이는 찾지 못했다. 배속 가득 새끼를 품고 있는데 집에 오지 못하고 어딘가에 떠돌고 있을 녀석의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하루 종일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지나치는 사람마다 혹시 우리 진돌이 보셨냐고, 임신해서 배가 불룩 나온 진돗개라고 설명하며 동네를 몇 바퀴 돌았지만, 누가 데려갔냐며 다시 돌려달라고 울며 걸어 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어디로 갔는지 여전히 미스터리이자 마음 아픈 사건이다.


그 후로 한 마리의 개를 더 키웠지만 털도 까맣고 눈도 부리부리한 게 사냥개다운 분위기를 풍겼던지라 진돌이처럼 예쁘다 하고 같이 뛰어놀 수 있는 개는 아니었다. 이름처럼 천둥 같았다. 그러다 천둥이가 너무 커버려서 아는 농장으로 보낸 후 개를 또 키우시지는 않았는데, 방학을 맞아 외갓집에 가 있을 때면 내가 가끔 새로운 애완동물을 데리고 오고는 했다. 병아리를 제일 많이 사 왔는데 눈 깜짝할 새에 고양이에게 잡혀먹힌 적도 있었고 또 닭이 될 때까지 잘 키우겠다는 포부가 무색할 만큼 너무 금방 죽어서 더는 병아리를 사지 않았다.


대신 몇 년 후 토끼를 두 마리 사온 적이 있는데, 하얀 놈은 이름을 연아라 지었고 얼룩덜룩한 놈은 이름을 순돌이라 지었다. 마당에 풀어주니 맨날 꽃을 뜯어 먹고 풀을 뜯어 먹고 심어놓은 상추를 뜯어 먹고 아주 할머니의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 집에 온 친구이니 방학이 끝나고 우리가 떠난 후에도 할머니는 정성껏 키워주셨다. 주먹만 할 때 데려왔던 아이들이 한참 후 팔뚝만큼 커져 버렸을 때 결국 삼촌과 함께 집 근처 공원에 놓아주었지만 가끔 다시 가서 혹시 뛰어놀고 있지는 않은지 찾아보고는 하셨다. 그래서 얼마 후 인터넷에 그 공원에서 토끼들이 뛰어놀고 있다는 걸 봤다는 반가운 제보가 올라왔을 때 우리는 사진 속에 담긴 연아와 순돌이를 미소로 한참 쳐다보았다.


소소한 것들이 소중한 날들이 있었다. 그런 것들이 가장 신나고, 귀하고, 또 기대하게 되고 기다리게 되는 날들이 있었다. 그 날들은 추운 겨울 연탄으로 따뜻하게 방을 데우는 것처럼 내 유년시절을 따뜻하게 데웠고, 또 어른이 된 지금까지 따뜻하게 데우는 연탄 같은 기억들이 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돌아보면 당신의 한 부분이었기에, 당신과 함께했기에 그날들이 참 소중했고 참 소중하다.


지금보다 덜 똑똑하고 덜 능숙했을진 몰라도 그렇기에 모든 것이 더 소중하고 더 감사하던 그런 날들이었다. 외갓집에 가는 날이면 대문이 열리자마자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가며 현관문에서 환히 웃고 계시던 할아버지 품에 그대로 안기던 날들. 두 팔 벌려 반겨주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해가 지나도 변함없이 여전했는데, 조금씩 커가던 나는 어느 해부터인가 그대로 뛰어가 품에 안기지 못하고 괜히 어색한 인사를 건네드렸다. 의젓해야 한다는, 무언가 어른을 흉내 내려던 아이의 계산으로 도리어 있는 그대로의 반가움을 표시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필요가 뭐가 있었나 싶지만,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나는 괜히 어색한 어른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 돌아보면 우리에게 얼마 남지 않았던 시간 중 한 부분을 그렇게 흘려보낸 것이 너무 아쉽다.


하지만 아쉬움이 배어 있기에 또 어쩌면 더 깊게 새겨지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세월이 지나도 더욱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주어졌던 모든 순간을 충분히 흡수하지는 못했지만, 그러하였던 것 중 추억을 한 겹 더 깊게 새긴 시간들. 당신이 없는 지금, 그 시절의 그 날들 덕분에 아쉬움이 조금 덜하다.


아쉬움이 옅어지는 곳,

그곳에 당신은 더욱 짙다. 여전히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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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의 세상에 새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