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의 차이 [4]
- 시선의 차이
차. 할아버지의 차 이야기를 조금 더 하려 한다.
“서윤이가 맨날 ‘할아버지, 이 차 팔 때 꼭 나한테 파세요’ 그랬었는데.”
여러 해가 지나도 할아버지는 차를 탈 때마다 시동을 거시면서 꼭 그 말씀을 하셨다. 나는 더는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 대사를 읊고 또 읊고, 그러고는 웃으셨다. 그 말을 했던 내가 귀여웠는지 혹은 간절했는지 할아버지는 내가 그 차를 꼭 나에게 팔라고, 딴 사람한테 팔면 안 되고 꼭 나한테 팔아야 한다고 말했던 게 마음에 오래 남으셨나 보다.
하지만 할아버지에게는 얼마 되지 않은 것만 같은 그 시간이 나에게는 너무 희미해져 버린 과거였다. 그래서 그 말을 했던 내 모습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같은 의미로 기억되지 않았다. 내 마음에는 더는 출처를 밝힐 수 없는 대사로 잊혀 가고 있었다. 그저 나에게는 한 해가 지날수록 낡아져 가고 있는 차, 몇 년 더 타다가 결국 폐차해야 할 차, 그것밖에 남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마음에는 왜 그 말이 그렇게 소중하게 자리를 잡았던 걸까.
그래서 내가 고등학교 2학년 혹은 3학년 즈음에 더는 운전할 일이 없던 차를 결국 폐차하시기로 하셨을 때, 십 년이 넘게 어디든 든든하게 데려다주었던 차를 보내게 되었을 때, 잘하셨다고 그랬다. 타지도 않는데 두면 괜히 세금만 나오고 어차피 대중교통이 워낙 잘되어있으니 이제 폐차하실 때도 되었다 그랬다. 농담으로라도 나한테 차를 파시라고 건넸으면 좋았을걸. 절대 남한테 팔면 안 되고 꼭 나한테 미리 전화해서 알려주시라 했던 시절이 그렇게 나에게는 너무 희미해져 버린 기억으로 도태했다.
마음에 새기는 추억의 깊이. 그게 부모와 자식의 차이였다.
부모와 자식 간 시선의 차이. 그건 세월이 지나도 쉽게 좁혀지질 않는다. 부모는 한없는 사랑을 부어주고 자식은 필요한 만큼만의 사랑을 되돌려주니 등식이 성립되기 어렵다. 그래서 모든 자식은 불효자다.
아침에 바쁘게 준비하고 나가는 길에 식빵을 한 조각 구워달라고 부탁했다. 그게 내가 원래 먹는 양이다, 한 조각. 집에서 먹을 시간은 없으니 버스 타고 가면서 먹으면 되겠다 했다. 근데 외투를 입고 나가기 전 할머니가 건네주신 플라스틱 통 안에는 식빵이 두 조각 담겨있었다. 한 조각이면 되는데 하니 그래도 들고 가라 하셨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가는 길, 역시나 나는 한 조각밖에 먹지 않았다. 두 조각이 들어있다 해서 더 먹지 않았다. 그게 나에게 정해진 양이었다. 그러니 괜히 오가는 길 남아있는 한 조각이 거슬렸다. 다 먹었으면 버리면 되는데 버리지도 못하고, 남겨서 가져간다 한들 눅눅해져서 나중에 먹으면 맛이 없을 텐데 싶었다. 늘 먹는 양이 한 조각인데 왜 더 주셔서 이런 번거로움을 만드신 걸까. 그렇게 남은 한 조각은 내내 가방에서 자리만 차지하다 그대로 집에 돌아와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였다.
근데 또 부모 마음은 그렇지 않다. 집을 나서는 길에 간식이 넉넉했으면 좋겠고, 혹시나 모자라서 배가 고프진 않을까 걱정되고, 다 먹고 나서 아쉽지 않았으면 한다. 조금 더 주고 싶고, 더 많이 주고 싶고, 더 풍성하게 주고 싶고, 그런 게 부모 마음이다. 행여 남겨온다 한들, 그래도 가는 길이 든든했으면 하는 게 부모 마음이다.
부모와 자식 간 시선의 차이. 거기서 발생하는 게 자식의 불효다. 나는 그걸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맞이하는 여름방학을 얼마 안 남겼을 때였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무언가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는데 그즈음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신 선물을 풀어보니 엄지손가락만 한 길이의 두 팔을 벌리고 환하게 웃고 있는 곰돌이 모형이었다. 너무 귀여워서 내가 갖고 싶었지만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예쁘게 포장을 해서는 깨지지 않게 가방에 넣고 외갓집에 도착한 날 신난 마음으로 가장 먼저 선물을 꺼내 드렸다.
초등학생이던 나에게나 곰돌이 모형이 의미가 있었지 어른들에게는 그 자체로 무슨 쓸모가 있었을까. 그때 나는 나에게 귀하면 남에게도 귀하다 생각해 상대적인 물건의 가치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다. 근데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내밀었을 때 할아버지는 더 기쁜 마음으로 풀어보시고는 아주 귀여운 곰돌이라며 좋아하셨다. 우리 선생님이 주셨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드리려고 내가 꼭꼭 싸서 들고 왔다 하니 할아버지는 제일 잘 보이는데 둬야겠다며 TV 앞에 올려두셨다. 그리고 그날부터 곰돌이는 이사하던 날까지 십 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만약 내가 갖고 있었더라면 아마 이리 옮겨지고 저리 옮겨지다 몇 번의 이사 후 결국은 없어졌을 텐데. 아무리 귀히 여긴다 한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곰돌이 모형은 결국 그저 굴러다니는 장식품 정도로 하락했을 텐데. 그러고는 어딘가로 사라지거나 없어졌을 텐데. 결국 그렇게 잃어버렸을 텐데.
어쩌면 그 곰돌이 모형의 가치를 가장 잘 아셨던 건 할아버지가 아니셨을까. 그래서 그저 아무런 짝에도 쓸모없는 혹은 장식품 정도의 가치가 아니라, 손녀딸이 무언가를 드리고 싶어 소중히 가져온 선물이기에 그 무엇보다 귀한 가치를 띄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 곰돌이 모형은 할아버지가 갖고 계셨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도 구석에서 잊혀지지 않고 가장 잘 보이는 그 자리를 한결같이 지킨 것일 것이다. 어쩌면 그 곰돌이 모형은 단순히 곰돌이 모형이 아니라 손녀의 마음이었기 때문에, 손녀의 한 조각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진가를 누구보다 가장 높게 쳐주신 게 아닐까.
우리는 이미 많은 걸 알고 있다 생각하지만 그렇게 부모가 되어야만 깨닫는 것들이 있다.
그렇게 부모가 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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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