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의 세상에
새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 어른이 된 후에도 [5]

by 일요일은 쉽니다


당신이 나의 세상에 새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 어른이 된 후에도



‘고모부 안녕하세요. 저 서윤이예요.

여쭤볼 게 있어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저희 외할아버지가 자꾸 가슴 정중앙이 아프다 하시는데 어디가 안 좋으신 걸까요?

동네병원에서는 그냥 근육통이라 하는데, 아프신지가 좀 돼서 여쭤봅니다.

감사합니다.’


거실을 돌아다니다 신문 위에 있던 종이 한 장을 집고 빳빳하게 손으로 핀 후 또박또박 글씨를 써 내려 갔다. 내가 아는 전부, 나의 관찰의 전부였다. 할아버지는 이미 가슴 통증을 언급하신 지 꽤 되셨다. 골프를 워낙 좋아하셨던지라 운동을 너무 많이 하셔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추측했고 동네병원에서도 근육통이라 하고는 물리치료를 권했다. 근데 일주일에 한두 번, 그러다 점점 일주일에 두세 번 그 횟수가 잦아지고 또 그 기간이 계속되면서 앞에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오겠다 하실 때마다 어딘가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골프채를 잡는 시간은 줄어들었는데 왜 가슴 통증은 잦아졌을까.


원래 아파도 아프다고 하시지 않는 분이라 괜찮다, 그저 조금 뻐근할 뿐이라 하실 때 식구들이 별로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게다 동네병원의 근육통이니 물리치료를 받고 가시면 된다는 말에 더욱 그 누구도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정말 그냥 근육통이겠지 정도로 넘겨버리고 혹여나 아프다 하시면 병원 가서 물리치료를 받고 오시라고 답했다. 그렇게 잠깐이나마 치료를 하면 일시적으로 완화되는 통증에 또 하루를 넘겼다. 그러면 통증도 다시 잠에 드는 것 같았으니.


동생 개학 날짜가 먼저 다가와서 엄마랑 동생이 다시 집으로 출국하던 날, 가까운 친척들 몇이 모여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다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러고 보러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배웅을 할 때 나는 미리 접어두었던 편지를 살며시 고모에게 내밀었다.


“고모, 이거 고모부한테 좀 전해주세요.”

“이게 뭐야?”

“아, 아니에요… 그냥, 편지…”

“고모부한테?”


일 년에 한두 번 뵙는 게 전부인 사이라 무슨 일로 또 무슨 이유로 편지를 썼을까 궁금해하시는 모양이었다. 반듯하게 접힌 종이를 펼쳐 몇 줄 안 됐던 편지를 읽기 시작하시니 가방을 챙기던 친척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그러고 그 낭독의 끝에는 생각하지 못한 반응이 뒤따랐다.


“심각할 수도 있는데. 폐암일 수도 있고.”


내가 쓴 편지였지만 큰 걱정을 하며 쓴 편지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동네병원에서 근육통이라 했으니 그냥 근육통이겠지 하고 모두 넘겼기에 그래, 그러면 별일 아닐 거다 정도의 확인이 받고 싶은 것이었다. 대학병원 의사마저 괜찮다 도장을 찍어주면 혹시나, 혹시나 조금 더 무서운 병은 아닐까 싹트던 모든 의심이 다 사그라들 것 같았다. 동네병원에서 근육통은 대학병원에서도 근육통이길 바랐다. 그것뿐이었다.


“일단 고모부한테 전해드릴게.”


다시 편지를 반듯이 접어서 가방에 넣으셨다. 그러고 그 편지에 대한 답신으로 며칠 후 주말, 외갓집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서윤아, 고모부야. 할아버지 계시면 좀 전화 바꿔줄래?”


방에 계시던 할아버지에게 얼른 전화기를 건네드리니 간단한 대화가 오갔다. 확실하게 해두면 좋으니 한번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그다음 주에 병원으로 가기로 하고 주말은 평화롭게 마무리가 되었다. 그 전화를 받고 속으로는 어떠셨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두려움, 걱정 및 별다른 감정을 표출하지 않으셨다.


“서윤아, 내일 할아버지랑 같이 병원 가.”

“할아버지가 혼자 가신다 했는데.”

“아니야. 혼자 가시면 안 좋아.”

“왜?”

“무서우니까. 할아버지도 무서우니까.”


전날 밤 엄마는 나를 바꿔 달라 하고는 자기 대신 꼭 병원에 모시고 가라며 부탁을 하셨다. 그리고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어른들에게도 두려움이 존재한다는 걸. 무언가가 무서워 우는 건, 아니 그 무서움 자체는 어린이들한테만 해당하는 거라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자연스레 두려움은 사라지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더군다나 할아버지같이 멋지고 힘이 가장 센 분에게는 무서울 것이 하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때 난 그랬다.


하지만 겉으로 내색을 안 할 뿐, 두려움은 어른이 돼서도 존재했다. 내색하지 않기 위해 그만큼 더욱 노력하는 것. 어쩌면 그래서 더 두려운 것. 두려움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어린이는 표출하는 그 과정에 감정이 많이 삭기도 하고 또 걱정하지 말라며 응원을 받기도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그런 배출구 없이 그저 속으로 알아서 혼자 다 해결해야 했다. 그렇게 홀로 이겨내야 했다. 한 가정의 가장은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란 이름을 지고.


아버지니까. 한 가정의 아버지니까.


아버지이기에 약한 모습, 걱정하는 모습, 두려워하는 모습 그 무엇 하나도 보일 수 없었다. 어린 마음에 내색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색할 수 없기에 내색하지 못하는 것뿐이었지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아버지이기 때문에, 한 가정의 가장이기 때문에 약한 모습을 보이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면 가족에게 돌아갈 짐의 무게가 걱정되어 세상에서 가장 강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계신 거였다.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아버지니까.

한 가정의 아버지니까.


자식이란 이름을 핑계로 당신이 어깨에 짊어진 채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던 세상의 무게를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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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의 세상에 새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