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의 세상에
새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 검진 [6]

by 일요일은 쉽니다


당신이 나의 세상에 새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 검진



업어가도 모를 거라 할 만큼 잠이 많은데도 그다음 날 아침만큼은 조용한 발걸음 소리에 바로 깼다. 점심 전 검사라 아침에 준비하시는 모습을 따라 나도 함께 세수하고 병원에 갈 준비를 했다. 아침을 먹고 가기에는 시간이 일렀고 배도 별로 고프지 않았기에 우리는 아침을 건너뛰었다. 그러다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양말 신는 내 모습을 보시더니 할아버지는 혼자 다녀오시면 된다고 집에 있으라 하셨다. 어제의 통화가 없었다면 그 순간 망설였겠지만 어제의 통화 이후 나의 대답은 확실했다. 내가 같이 가야 한다고, 너무 옛날에 보셔서 못 알아보실 수도 있으니 내가 같이 가야 고모부를 찾을 수 있다 했다. 그 말에 할아버지는 잠깐 망설이시더니 그러면 같이 가자 하셨다. 그렇게 나는 가방을 둘러매고 신발을 신고 할아버지와 집을 나섰다.


한 시간이 조금 덜 걸리는 거리였다. 우리는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꽤 멀던 거리를 차근차근 달려갔다. 한 시간 후 도착한 곳은 너무나 큰 건물이었고 차며 사람이며 환자며 입구며 엘리베이터며 카운터며 뭐가 너무 많아서 조금 위축되었다. 몇 년 전에 예방접종을 하러 온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엄마와 함께였고 오늘은 내가 보호자로 나선 것이었는데 건물 앞에 도착하자마자 크기와 높이에 압도되었다.


할아버지의 심정은 어떠셨을까. 막상 대학병원 앞에 서게 되니 어쩌면 몸 안에 무언가 문제가 생긴 걸지도 모르겠다는 실감이 나셨을까. 만약 검사 결과가 정말 그렇다 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치료는 어떡하고 치료하는 동안 집은 어떡해야 하는지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을까. 그래서 걱정되셨을까. 조금 무서우셨을까. 나는 할아버지 옆에 꼭 붙어 별다른 도움은 되지 못해도 적어도 지금 이 순간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가 전달되기를 바랐다.


“서윤이 배고프니? 도너츠 먹을래?”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나를 먼저 챙기셨다.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며 내가 아무것도 안 먹고 나온 게 마음에 걸리셨는지 일 층에 보이던 도너츠 가게를 가리키셨다. 단순한 근육통일지 혹은 독한 병일지를 판가름하러 온 이 순간에조차 당신은 환자이기 이전에 어른이었고 어른이기 이전에 아버지였다.


정작 내가 더 긴장한 터라 나는 배도 별로 안 고프고 입맛도 없었다. 대신 일찍 카운터에 접수를 하고 복도에 앉아 기다리니 천장에 달린 TV에서는 아침드라마가 나오고 있었고 옆에는 우리와 같이 기다리는 환자들이 앉아있었다. 시간대가 그랬는지 생각보다 그리 붐비거나 소란스럽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은 여느 때보다 복잡했다. 무서웠다. 걱정됐다. 혼자 오셨으면 어떠셨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고작 중학생이던 나라도 모시고 가라고 말한 엄마의 심정이 조금 이해가 갔다.


그렇게 내가 잔뜩 긴장한 채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신발만 바라보고 있을 때 할아버지는 갑자기 일어서시더니 누군가를 붙잡고 인사를 하셨다. 고개를 드니 우리 앞에는 반갑게 인사하시는 고모부가 계셨다. 조금 있다 간호사가 부를 테니 들어오시라는 말을 하시고서는 방에 들어가셨는데 나보다 먼저 고모부를 알아보신 할아버지가 어쩌면 정말 혼자 오기가 무서워 내가 따라나서는 것을 막지 않으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려던 중 간호사는 할아버지의 성함을 불렀고 우리는 고모부가 들어가신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가슴이 아프시다고요?”


할아버지는 내가 편지에 쓴 것보다 자세하게 본인의 증상을 설명하셨다. 그건 우리에게 말씀하시던 “물리치료 받고 와야겠다”와 매우 다른 설명이었다. 할아버지는 왜 그 아픔을 다 참으셨던 걸까. 그러고는 얼마나 더 아프셨을까,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우리를 보며. 고모부는 할아버지의 통증을 기록하시고는 잠시 보겠다며 할아버지의 가슴에 청진기를 갖다 대셨다. 그러고 할아버지가 아프다고 말씀하신 가슴 정중앙을 만져보시더니 일단 오늘 CT를 찍고 결과가 나와야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거라 하셨다.


방을 나오기 전 고모부는 나를 보고 기특하다 하셨다. 할아버지 아프신 걸 걱정해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와서 기특하다 하셨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하나도 기특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아프신 부위에 손을 얹으시며 보여주실 때, 그동안 우리에게 제대로 말하지도 못하고 그저 물리치료로 통증을 해결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나는 죄송스러운 마음만 그득했다. 의사에게 한 이야기를 가족에게 하지 못했으니 아무리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라지만 무엇이든 가족에게는 그보다 먼저 털어놓으실 수 있어야 했는데… 우리에게는 한 번도 어디가 얼마나 어떻게 아프신지 다 말씀하지 못하신 채 애써 삼키신 생각을 하니 알 수 없는 파도가 밀려왔다.


“할아버지 검사받고 올게.”


CT실 앞에서 우리는 갈라졌다. 30분 정도 걸릴 거라는 말과 함께 할아버지는 무거운 문 뒤로 들어가셨고, 나는 그 앞에 의자에 앉아 가만히 문을 쳐다보았다. 배가 고프지도 목이 마르지도 않았고 그저 나였으면 저 무거운 문 뒤에 혼자 들어가 검사를 받는 것이 얼마나 무서울까 생각하며 기도하는 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생각보다 길어진 검사시간 후 할아버지가 다시 나오셨을 때는 조금 지치신 얼굴이었다. 검사 전 주사를 먼저 맞았는데 그게 부작용이 난 탓이었다. 천 명 중의 한 명만 그럴 정도로 웬만해서는 탈이 없는 약인데 그게 하필 할아버지한테는 맞지 않아서 몇 번의 시행착오 후 결국 다른 약으로 바꿔 촬영하셨다 했다. 그러고는 아까 도너츠를 사 먹었으면 오늘 검사를 못 할뻔했다고, 네가 괜찮다 해서 덕분에 검사를 마치셨다 하셨다. 대신 이제 집에 가서 할머니랑 점심을 먹으면 되겠다는 말에 우리는 다시 병원을 빠져나왔다.


얼마나 긴장되고 걱정되셨을까. 또 얼마나 무서우셨을까.

이제 겨우 시작일뿐인데 벌써 얼마나 낯설고 불확실해 보이셨을까, 모든 것이.

결국 검사실 문 뒤로 들어갈 수 있는 건 할아버지뿐이었고,

설령 결과가 나쁘게 나온다면 병도, 고통도, 치료도 다 홀로 견뎌내셔야 하는 몫이었다.


병원을 나서는 발걸음이 들어설 때보다는 조금 가벼워지신 것 같았지만,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아무도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었다. 그저 집에 가서 할머니랑 점심을 먹자는 말씀에 그러자고 대답하는 것 외에는 내가 나눠 짊어질 수 있는 무게는 없었다. 입구를 나서며 그때 우리는 알았을까. 앞으로 이 길을 수십 번 수백 번 다시 걷게 될 것을.


버스를 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널 때 내 앞에서 신호를 보지 못한 차나 오토바이가 있지는 않을지 한걸음 앞서서 걸으시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키가 크고 세상에서 제일 힘세 보였던 모습은 언제 희끗희끗한 머리로 바뀌었던 걸까. 키는 언제 작아지신 걸까. 손은 언제부터 이렇게 주름지셨던 걸까.


그 모습을 보다가 안 그래도 무거운 어깨 위에 더 무겁게 놓일 짐의 무게가 보여서. 홀로 지셔야 할 무게가 보여서. 설령 나눠질 수 있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혼자 책임지실 분이라는 게 보여서. 그래서 갈비뼈 사이 내 가슴 정중앙에, 할아버지가 고모부에게 가리켜 보이시던 그 정중앙에 통증이 느껴졌다.


아버지니까. 한 가정의 아버지니까.


아버지라서.

한 가정의 아버지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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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의 세상에 새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