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 [7]
- 혹
주말을 친가에서 보내고 월요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외가에 도착했다. 아침잠이 많은지라 도착한 후 학원 가기 전까지 조금만 더 자다 일어나야지 했다. 그렇게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안방에 들어가 이불을 덮고 잠시 잠에 들었을 때 갑자기 서러운 울음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꿈을 꾸는 건 줄 알았다. 꿈에서 누가 울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점점 커지는 서러움에 잠에서 깨어나 살짝 눈을 떠보니 꿈이 아니라 지금 이 방안에서 누군가 아주 큰 소리로 울고 있는 거였다. 눈물은 몰래 훔쳐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누군가 엉엉 소리 내 떠나가라 울고 있었다. 게다가 어린이의 울음소리도 아니었다. 어른의 울음소리였다. 바로 할아버지의 울음소리였다.
순식간에 정신이 들었다. 지하철에서 출근하는 사람들 틈에 그렇게 꾸벅꾸벅 졸았는데 상황 파악이 된 후 모든 졸음이 달아나버렸다. 나는 아까부터 방에 있었지만 괜히 내가 몰래 엿들은 것만 같아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할아버지는 컴퓨터 옆 햇빛이 들지 않는 가장 구석진 자리에 고개를 떨군 채 두 팔과 두 다리에 아무런 힘없이 그저 엉엉 울고 계셨다. 할아버지의 어깨가 파도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이불 속에서 나와서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온다 한들 보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작지 않은 키의 학생이 제일 끝에서 방을 가로질러 문을 열고 나가는데 티가 안 날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못 보신 것 같았다. 눈물이 앞을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듯 하셨다.
방에서 나오자마자 얼른 거실을 가로질러 부엌으로 달려갔다. 음식 냄새가 나는 거로 보아 할머니는 아침 준비를 하시는 것 같았다. 다급하게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분주하게 움직이시던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셨을 때 나는 숨을 크게 한번 들이마시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방안에서 서럽게, 아주 서럽게 울고 계신다고.
근데 할머니는 놀라지 않으셨다. 그리고 아니라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셨다.
설마 그럴 리가 하고서는 믿지 않으셨던 걸까. 그런 것 같진 않았다. 할아버지가 엉엉 울고 계신다는 말에 그럴 일은 없다며 넘기실 분이 아니셨다. 그러면 왜 놀라지 않으셨을까. 어쩌면 할머니는 이미 다 알고 계셨던 걸까.
“진짜예요. 진짜 울고 계시는데. 방에 불도 끄시고 구석에서 엉엉 울고 계신대.”
그 순간 할머니의 얼굴에 미묘한 변화가 스쳐 지나가는 걸 봤다. 그건 마음에 걸리시는 듯 마음이 쓰이시는 듯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그릇을 씻던 동작을 멈추시고는 잠깐 흐르는 물만 쳐다보시다가 이내 괜찮다며, 별일 아니라고 넘기셨지만 그때 그 복잡해 보이던 표정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고 할머니도 알고 계신다는 걸.
정밀검사. 그게 화근이 된 것이었다.
내가 도착하고 잠든 후 병원에서 전화가 왔고, 내용인즉슨 CT 결과가 나왔는데 그냥 넘길 상황이 아니라 와서 정밀검사를 해보셔야 할 것 같다는 연락이었다. 정밀검사 자체가 어떠한 진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근육통이라고 여기던 문제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으신 듯했다. 어쩌면 그 짧은 통화 속에 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 받는 정밀검사지만, 이미 더 무서운 병의 진단이 떨어진 듯한 두려움, 걱정, 그러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한 번도 우리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는 할아버지는, 그날 어린아이처럼 우셨다.
60을 넘기신 지 몇 해 안 됐던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나이. 한편으로는 그만큼 오랜 세월의 경험이 있어 두려움이 없을 나이. 또 한편으로는 아직 녹슬지 않은 청년인지라 두려움이 없을 나이. 근데 정밀검사가 무엇이길래 할아버지는 그렇게 서럽게 우셨던 걸까.
그날 아침이 그렇게 지나가고 난 후 나머지 하루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듯했지만, 시계추가 흔들린 듯 이전과 같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치 폭풍이 한차례 지나간 것처럼, 그래서 집의 지붕이 바람에 날아간 것처럼 일상의 큰 변화가 생긴듯했다. 그렇게 어딘가 무거운 마음이 집을 지키던 우리 모두의 마음 위에 가라앉았다.
일하시다 점심을 먹고 난 후 잠시 쉬실 때 컴퓨터에 저장해 두신 노래를 틀고는 잠깐 구석에 앉아 흥얼흥얼 따라 부르시고는 했다. 그중 손에 든 커피 한잔을 마이크 삼아 다른 곡보다 더 큰 목소리로 부르시던 곡이 있었는데, 바로 김도향의 “바보처럼 살았군요” 이었다. 나도 옆에서 같이 따라 부를 정도로 여러 번 들은 친숙한 곡이었다. 다만, 한 번도 슬프게 부르신 적은 없었는데, 오히려 신나신 듯 고개를 흔들며 따라 부르셨는데 그날은 스피커를 통해 멜로디가 흘러나올 때 슬프게 부르는 것보다 더 슬프게 그저 가만히 듣기만 하셨다.
“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그냥 덧없이 흘러버린
그런 세월을 느낀 거죠”
그날 처음으로 원곡의 가사가 단어 하나하나 귀에 박혔고, 옆에서 조용히 들으며 처음으로 가사가 참 슬픈 곡이라는 걸 깨달았다. 가사가 참 슬펐다. 가사를 가만히 듣고 계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참 슬펐다. 가사가 한 줄 한 줄 흘러나올 때마다 조용히 공감하시는 거 같아 할아버지의 침묵이 참 슬펐다.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
흘러버린 세월을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평생 가족을 챙기며 자식을 위해 살아오신 아버지의 삶이었다. 늘 든든하고 책임감 있게 무엇이든 좋은 것으로 주시려던 삶이었다. 그 삶을 너무 열심히 살아오신 걸까. 그래서 자신의 삶은 놓치셨던 걸까. 그래서 그동안 할아버지의 몸은 다 망가졌던 걸까.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너무 열심히 사시느라, 가정을 꾸리기 전에는 부모님과 형제들을 돌보고 가정을 꾸린 후에는 아내와 자식들을 돌보느라 조금씩 몸이 약해지는 걸 느끼지 못하셨던 걸까. 그래서 조용히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던 병을 잡지 못하셨던 걸까. 아니면 아파도 참으셨던 걸까. 별일 아니겠지 하고는 자식들 아픈 것만 걱정하셨던 걸까. 아버지니까. 한 가정의 아버지니까. 아버지는 강하니까. 아버지는 강해야 하니까. 그래서 당신은 자신의 몸이 서서히 약해지고 있던 걸 돌아볼 새도 없이 붙잡혀버리셨던 걸까.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아버지니까. 한 가정의 아버지니까.
아버지는 강하니까.
아버지는 강해야 하니까.
-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