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 그것은 [8]
- 암, 그것은
“서윤아, 엄마다. 전화 받아봐라.”
“여보세요.”
세수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문을 두드리고는 전화기를 건네주셨다. 물 묻은 손을 수건에 닦고 전화기에 대답하니 엄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응, 서윤아.”
물이 자꾸 떨어져서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날따라 엄마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는 것이 들렸다.
“서윤아, 할아버지 암이래.”
내 나이 열하고 다섯.
아직 세상에 대해 한창 모를 때였다.
“엄마 오늘 밤 비행기로 서울에 들어가. 내일 아침에 도착할 거야. 공항버스 타고 갈게.”
알겠다 하고 전화는 간단히 마무리되었다. 화장실에서 나와 로션을 바르고 다시 전화기를 충전기에 꽂아놓고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나 그렇게 우리 세 식구는 식탁에 둘러앉아 아침을 먹었다. 암이라는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엄마가 왜 우는지, 왜 내년 여름에나 되어야 다시 돌아올 일정이 갑자기 열흘 만에 그것도 당장 오늘 밤에 비행기를 타고 온다는 건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이유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두 계절을 더 기다려서야 엄마를 보게 될 줄 알았는데 하룻밤만 더 자면 볼 수 있을 거란 말도 안 되는 기적이었다.
점심을 먹고 마당에 나와 앉아있었다. 핸드폰이 있었던 때도 아니라 쉼 없이 무언갈 하는 대신에 그저 몸만 이끈 채 나와 마당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조금 후 대문이 열리더니 작은 외숙모가 들어오시고 마당에 있는 나에게 걸어오셨다. 오늘 오신다는 말씀이 없었는데 무슨 일로 오셨을까 생각하며 인사를 하는데, 내 앞에 앉아 내 손을 잡으시더니 애써 눈물을 참으시는 모습을 보이셨다.
“서윤아… 정말… 암이라니… 진작에 병원에 모시고 갔을걸…
근육통이라 해도 모시고 갔어야 했는데… 모시고 갔어야 했는데…”
충격을 받으신 얼굴이었다. 눈물이 나오기 직전이었다. 그러고 계속 할아버지가 암이라는 걸 믿을 수 없다 반복하셨다. 이제 어떡하냐는 말씀도 반복하셨다. 그렇게 통증이 지속되었으면 모시고 가야 했는데, 검사받으러 더 큰 병원에 모시고 갔어야 했는데 하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이렇게 충격 받으신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인가 이해하지를 못했다. 오늘 병원에서 나온 결과의 의미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나에게 할아버지는 어제의 할아버지와 오늘의 할아버지가 똑같은 할아버지인데 왜 다들 목소리가 떨리고 눈물을 참지 못하셨을까.
할아버지가 종종 아프다고 말씀하시던 가슴의 통증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넘길 만큼 자주 언급하시던 통증이었다. 집 앞에 병원에서 근육통이라고, 골프를 치셔서 그렇다고 한 진단만 믿고 조금씩 통증이 심해지실 때면 가서 물리치료를 받고 오시고는 했다. 그러면 또 괜찮아지셔서 며칠을 보내고, 다시 통증이 오면 또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시고 하던 일상이었다.
그런데 다들 울고 있었다. 다들 떨고 있었다. 다들 외갓집으로 모였다.
오후에 과외선생님이 오셔서 2층으로 올라가 수업을 하고 있는데 한 삼십 분쯤 흘렀을까. 할머니가 전화를 받아보라며 2층으로 올라오셨다. 잠깐 방에서 나와 전화를 받으니 이번에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이미 한차례 울고도 아직 눈물이 멈추지 않은듯한 작은 삼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삼촌이 공부하는데 미안하다며, 혹시 작은 고모부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줄 수 있냐고 물으셨다. 다급한 목소리에 얼른 번호를 알려드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과외를 마저 했다. 어른들이 모두 평소와는 너무 달랐다.
과외를 마치고, 해가 지고 저녁을 준비할 즈음 퇴근하자마자 달려오신 듯 대문을 열고 작은삼촌이 도착하셨다. 할아버지를 찾아 방에 들어오시더니, 나는 한쪽에서 TV를 보고 있는 동안 열려있는 미닫이문 너머의 삼촌과 할아버지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대화를 나누셨다. 할아버지 또한 어제와 달리 하루 종일 움직이지도 않으시고 힘이 없는 채로 축 늘어져 계셨는데, 삼촌을 앞에 앉히시더니 조그만 상자를 꺼내 그 안의 도장이며 통장이며 내용물을 차례대로 설명하셨다. 왜 이러시냐고 무언갈 부인하려는 듯 듣지 않으려는 삼촌과, 생기가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 꺼내 보여주시는 할아버지가 마주 앉아있는 모습을 보며 어른들이 갑자기 왜 그러실까 이해가 안 갔다. 나의 하루는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마당에 나가 하늘도 좀 보고, 오후에 선생님이랑 수학 공부도 하고, 시간에 맞춰 밥도 먹고, 지금은 평소와 같이 저녁에 TV를 보고 있었는데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여느 날과 다른 하루를 보내고 있는 듯해 보였다.
왜였을까.
암이 도대체 뭐길래 다들 눈이 빨개진 채로 한달음에 달려온 걸까.
도대체 얼마나 무서운 거길래 다 큰 어른들의 등이 순식간에 굽어져 버린 것이었을까.
“엄마!”
그러나 내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다. 다음날 정말 예정대로 아침 일찍 엄마가 대문 옆에 초인종을 눌렀을 때, 문이 열리고 짐가방 하나를 끈 채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마당에 들어왔을 때 나는 펄쩍펄쩍 뛰며 한걸음에 대문으로 달려갔다. 내 나이 열하고 다섯,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지게 된 후 예상과 달리 허전하고 외로워하던 중이었다. 엄마 없이 혼자 떨어져 있는 게 생각보다 낯설고 적응이 안 되던 때였다. 밥을 먹어도 별로 밥맛이 없고 자려 누워도 잠이 오지 않던 그런 때였다. 내 나이 열하고 다섯, 암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무슨 이유에서든, 그것이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그저 엄마가 서울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기쁘던 때였다.
“아버지, 저 왔어요.”
엄마를 보고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는 모습을 마당 안락의자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보고 웃으셨다. 엄마도 웃어 보이셨지만 많이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고 모두 다 같이 방 안으로 들어가 엄마는 가방을 내려놓고 아침을 먹었던 거 같은데,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15살의 나는 그저 엄마가 서울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그게 가장 중요했다. 내년 여름에야 돌아왔어야 할 일정이 베트남에 돌아간 지 열흘 만에 변경되었다는 게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의미했지만, 그런 걸 깨닫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암이 도대체 뭐길래 다들 눈이 빨개진 채로 한달음에 달려온 걸까.
도대체 얼마나 무서운 거길래 다 큰 어른들의 등이 순식간에 굽어져 버린 것이었을까.
그렇게 서서히 알게 되었다.
이제까지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당신을 갉아먹고 있던 병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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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