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준비 [9]
- 마음의 준비
엄마가 도착한 날 오후였을 것이다. 다 같이 아침을 먹고 오후에 병원에 갈 준비를 하셨다. 내가 갈 필요는 없었지만 엄마와 가겠다며 나도 교통카드를 챙기고 집을 나섰다. 선물용 주스 한 상자를 손에 든 채 병원에 도착해 고모부 진료실로 가니 간호사가 진료실에 안 계신다며, 옆 병동에 사무실로 가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알려준 대로 사무실로 걸어가고 있던 와중 두 건물을 잇는 연결통로 중간 즈음에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계시던 고모부와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고모부의 얼굴은 좋지 않아 보였다. 한편으로는 조금 난감해하시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기억하기로 따로 연락하고 간 건 아니었던 거 같은데, 어떡해야 하나 잠시 망설이시는 거 같았지만 이내 다시 방향을 틀어 사무실로 가자고 하셨다. 우리끼리 왔다면 층마다 수많은 방 사이에서 길을 잃었을 텐데 고모부를 뒤따라 사무실로 들어가니 얼마 전에 할아버지와 들어갔었던 진료실과는 달리 넓기도 넓고 책상과 소파, 한쪽에 옷걸이, 깔끔한 방이었다.
나와 엄마가 한쪽에 앉고, 고모부는 반대편 소파에 앉아 마실 걸 줄까 물으셨다. 괜찮다며 들고 온 주스 한 상자를 사이에 있던 상위에 전해드리니 뭐하러 이런 걸 준비해왔냐며 고맙다고 하셨다. 인사를 했으니 이제부터 대화가 시작되겠구나 하고 옆에 멀뚱멀뚱 앉아있는데 그때부터 침묵만 흘렀다.
참 이상했다. 묻고 싶은 게 있고 답할 말이 있으니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일 텐데, 옆에 앉은 엄마의 손은 조금씩 떨렸고 앞에 앉은 고모부는 시선을 벽으로 돌리셨다. 그 옆에 나는 멀뚱멀뚱 앉아있었는데 왜 두 분 다 아무 말도 안 하시지 의아한 채 방만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아버지는… 그럼…”
“그렇지,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그렇게 침묵을 깬 대화는 별다른 내용 없이 다시 침묵으로 이어졌다. 고로 여전히 나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그 여섯 마디를 주고받은 후 고모부는 눈을 못 마주치시고 땅만 쳐다보셨으며 엄마 또한 고개를 숙이신 채 눈물을 흘리셨다. 그 후 알겠다며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일어섰으니 두 번째 침묵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병원을 나와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저녁을 먹고 잠을 자러 누웠다.
“얼마나…”
“육 개월 정도 되지 않겠나… 길면 일 년이나…”
지금 돌아보면 무언가를 확인할 때 꼭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상대방의 시선, 눈빛, 앉아있는 혹은 서 있는 자세만으로 질문이 던져지고 그에 대한 답이 돌아오기도 한다. 아무런 내용도 알지 못한 채 옆에서 멀뚱멀뚱 왜 말을 안 하시나 보고 있던 나는 두 분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듣지 못했다. 그러나 어른들의 언어는 더 깊고 복잡해서 침묵 속에서 이미 두 분은 많은 것을 묻고 많은 것을 답하셨다. 암을 떠나 아버지가 정말 말기 암이냐는, 그래서 주어진 시간이 고작 육 개월에서 길면 일 년이라는 것이 사실이냐는, 그것 또한 약속해줄 수 없는 게 정말이냐는, 검사 결과가 잘못 나온 것은 아니냐는,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없냐는, 알고 보니 악성종양이 아니랴 양성이고 혹의 크기가 그리 크지도 않으며 수술로 떼어낼 수도 있지 않냐는… 엄마는 아마 그보다 더 많은 질문을 하고 싶으셨겠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어 말로 전하기 대신 애써 떨리는 손만 꼭 잡고 있을 때 고모부는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 못함으로써 그 모든 질문에 답을 하셨다.
“알겠습니다…”
“미안하다.”
그해 여름 남은 방학 동안 나의 기억은 그즈음에서 끝난다. 주 중에는 외갓집에서 지냈고 주말에는 친가에서 지냈는데, 주말이 되었을 때 엄마는 엄마가 할아버지랑 있을 동안 친가에서도 잘 지낼 수 있겠냐며 바래다주시는 모습에 걱정하지 말라고 하던 게 기억이 난다. 엄마가 서울에 온 이상 다른 무엇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에는 밥 한 숟갈만 들어도 부엌에 빈자리가 휑해 눈물을 흘리던 모습과 달리 씩씩한 걸음으로 주말을 보냈고, 주 중에는 다시 외갓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있는 모습에 행복해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난 잘 몰랐지만, 그저 다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기뻤다. 그걸로 충분했다.
9월 초. 이번에는 내가 떠날 차례였다. 그즈음에 나는 미국으로 가야 했다. 이른 오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짐가방을 싸고 친가에서 출발하는 거로 되어있었는데, 출발하기 전 엄마가 전화를 걸어왔다.
“서윤아, 공항 갈 준비 다 했어?”
걱정하지 말라고, 짐도 다 챙기고 할머니, 할아버지랑 점심도 먹고 떠날 채비를 다 마쳤다는 말에 엄마가 잘했다는 칭찬과 함께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오늘 할아버지가 큰 수술을 하시거든. 그래서 엄마가 공항에 못 갈 거 같아. 미안해.”
조직검사라는 것을 하신다 하셨다. 가슴에 구멍을 뚫어서 중앙에 발견된 혹을 조금 떼는 수술인데, 암을 제거하는 수술이 아닌데도 이 자체로 어렵고 힘든 수술이라 하였다. 나는 괜찮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이미 엄마가 서울에 돌아오게 되므로 며칠이라도 함께 보냄에 마음의 위로를 다 얻은 뒤였다. 정말 공항 가는 발걸음이 이전보다 훨씬 가벼웠다.
그때도 나는 그 수술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중대하고 어려운 수술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15살의 아이가 처음 집을 떠나 지구 반대편까지 가는 길을 혼자 가도 괜찮겠냐는 질문을 하실 때는, 병원에서 자리를 비울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수술일 거라 생각했다.
공항에 가기 전 아빠한테 잠깐 들릴 때가 있다 해서 가장 가까운 백화점에 도착했다. 암에 대한 지식은 없어도 뉴스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어 가기 전에 꼭 사드려야겠다 했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 식품코너로 직진하니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이거, 암 환자한테 좋은 거죠?”
고급스럽게 포장되어있는 상자 안에 다양한 종류의 버섯이 들어있었다. 각자의 효능은 물론 이름조차 몰랐지만, 잡채에 있을 때는 골라내서 안 먹던 버섯이 암에 좋다는 걸 본 게 기억나 하나하나 찬찬히 쳐다보았다. 비싸 보이는 포장만큼이나 버섯의 가격도 비쌌지만 모아둔 용돈으로 선물용으로 포장되어있는 제일 작은 상자는 살 수 있었다. 어떻게 요리해서 먹어야 하는지 설명을 듣고 엄마한테 다시 전화를 걸어 아빠 편에 버섯을 보내니 그렇게 드시면 좋을 거라고 했다. 왠지 이 버섯 한 상자를 다 드시면 TV에서 가끔 나오는 듯이 좋은 음식을 먹고 병이 멀끔히 나았다고 덩실덩실 춤을 추실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버섯 한 상자에 암이 다 나을 거로 생각한 모습에 웃음이 난다. 내 딴에는 열심히 모아둔 용돈을 마지막 날 몽땅 버섯에 투자했으니, 암이 낫지 않으면 억울해서 백화점에 쫓아갈 기세였다. 게다 포장된 버섯이 든 가방 안에 미리 준비해둔 예쁜 봉투에 지갑에 남아있던 내 기억으로는 이만 원 정도의 지폐를 넣어 할아버지 용돈 하시라고 드렸으니, 그걸 받고 얼마나 웃으셨을까 싶다.
‘할아버지, TV에서 봤는데 버섯이 암에 좋대요.
이거 아빠랑 고른 건데 좋은 버섯이라니까 맛없어도 꼭 드세요.
그리고 봉투 안에 돈은 할아버지 용돈이에요. 이걸로 먹고 싶은 거 꼭 사드세요!
근데 버섯 사는데 다 써서 조금밖에 없어요. 다음에 또 모아서 더 많이 드릴게요.
그리고 이거 책은 제가 그저께 서점에서 찾은 건데
이 박사님 말씀이 암을 친구처럼 대하면 싹 다 난대요!
제가 미리 읽어봤는데 이분도 그렇게 해서 다들 죽는다 했던 암이 다 나았다 쓰여 있어요.
친구라 생각하면 금방 없어질 거니까 걱정 마세요.
아, 버섯이 맛없는 건 알지만 몸에 좋다니까 꼭 드세요.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는 엄마한테 전화로 설명했으니까 엄마한테 물어보세요.
오늘 미국 가야 해서 수술하는데 병원 못 가서 죄송해요.
열심히 공부하다 겨울 방학하면 바로 올게요.
미국에서도 하나님한테 할아버지 암 다 없애달라고 기도할게요.
걱정 마시고 아프면 할머니랑 꼭 병원 가세요.
서윤 드림’
그러나 그 어리고 철없던 시절 중에서 한 가지 그리운 것은, 내가 가진 모든 걸 망설임 없이 쏟아서라도 좋아지시길 바라던 진심. 그 진심만큼은 버섯을 몇백 상자 갖다 놓아도 바꿀 수 없는 가치였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걸, 또 모든 걸 드려서 나으시기를 바라던 마음, 나이는 어려도 그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진실하고 귀했다.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 뭘까. 어른으로 크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아는 것은 많아지고 가진 것도 많아지는데,
어른의 나는 어렸을 때의 나보다 진정 얼마만큼 더 성장했을까.
과연 나는 제대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가끔 나는 오늘 나의 진심이
그 시절의 진심보다 가벼워진 것 같아
멀리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당신을,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기가 부끄러운 날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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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