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있잖아요

있잖아요, 그 열아홉 번째

19. 청년의 때에

by 일요일은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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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요,


지난번에 이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선교를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

말씀을 통해서, 또 사람들을 통해서 마음을 주신 것에 대해서는 이미 나눴는데

그 결정에 가기까지 제 생각, 그 틀, 또 가치관을 많이 흔들어놓은 책이 있었어요.

바로 박관태 선교사님이 쓰신 “나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이에요.


제가 주일 외에 여러 설교 말씀을 유튜브에서 거의 매일 찾아보게 된 계기 중에 이용규 선교사님이 있었어요.

“내려놓음”을 쓰신 분인데, 저는 다른 우연한 기회로 그분의 설교를 듣게 된 후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선교사님의 말씀은 거의 다 들어본 거 같아요.

온라인상에 찾을 수 있는 그분의 거의 모든 설교를 다 들었을 즈음에 새로 쓰신 “기대”란 책을 읽게 되었고,

제가 기억하는 게 맞다면 그 책에서 박관태 선교사님과 또 그분의 책을 언급하셨던 거 같아요.

당시에는 그냥 넘어갔는데 몇 달 후에 다시 그 책이 생각나서 책을 찾았어요.


책에 대한 생각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오늘날 이 시대에,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한 것처럼 쫓고 있는 이 시대에 특히 젊은 청년들이 꼭 읽어야 하는 책인 거 같아요.

이제껏 읽었던 그 어떤 신앙도서보다 강력했고, 또 지금 젊은 청년의 때에 읽었기 때문에 더욱 강력했어요.

화려한 문장이나 말솜씨 때문이 아니라 그 내용이 너무 강력해서, 그 내용이 너무 신선해서,

그래서 자꾸만 약해져 가는 저를 포함한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책 같더라고요.

그 책은, 이제껏 제가 이십몇 년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쌓아왔던 패러다임이

마치 한차례 지진이 휩쓸고 간 것처럼 한번 크게 흔들리는 계기가 되었어요.


선교사님의 간증 자체가 워낙 힘이 있어요.

정말 제목 그대로 하나님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또 얼마나 구체적으로 이끄셨는지,

모든 걸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정확한 때에, 더도 덜도 말고 정확한 방법으로

한 번에 한 걸음씩 그 무엇도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이끌어나가신 이야기를 담은 책이에요.

그 순간에는 상황이 막막하고 앞길이 깜깜해 보여도

딱 오늘 하루만큼, 오늘 하루 어치의 양만큼 한 번에 한 걸음씩 걷는 삶이 나타나 있어요.

이게 요즘에 하나님이 저를 훈련하고 있으신 부분이거든요.

눈뜨는 순간부터 눈감는 순간까지 매분 매 초를 다 미리 계획해놓아야만 마음이 놓이는 성격이라,

고로 다음 달뿐만이 아니라 일 년 후, 삼 년 후, 오 년 후까지 그림이 보여야 마음이 놓이는 성격이라,

연말부터 계속 이 부분에 있어 내 생각과 뜻을 내려놓고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하나님의 때와 방식을 기다리는 훈련을 시키시는데

박관태 선교사님의 삶이 그 훈련의 가장 좋은 본보기더라고요. 그래서 이 책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중에서 몇 가지를 나누자면, 선교에 관한 책인 만큼

첫 번째로는 선교는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니라는 거였어요. 그건 우리의 잘못된 편견이라는 거죠.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정말 가슴 뛰는, 눈물로 동참할 수 있는,

더욱 충만한 은혜의 자리로 초청받는 것인데

우리는 선교란 개념에 있어 두렵고, 힘들고, 뭔가 많이 희생해야 하고 또 많이 포기해야 한다 생각하잖아요.

저 또한 선교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던 게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 생각에 정면 돌파하는 주장이자 제 논리를 하나하나 다 무효화시키는 경험이었어요.

그래서 책 전체에 걸쳐 본인의 삶을 통해 사실 선교란 어떤 것인지,

왜 본인은 의대 교수의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선교지로 달려나가는 것이 더욱 기쁘고 감사한지에 대해 나누실 때

그 간증을 읽으며 선교 자체에 대한 마음도 많이 열렸고

이 기회를 통해 얼마나 많이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실까에 대한 기대가 생긴 거죠.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어려운 도전이어도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순종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거였어요.

그렇게 하면 몸이 너무 힘들 거 같고, 손해 볼 거 같고, 지칠 거 같고, 후회할 거 같고,

나의 여러 생각과 염려가 방해하더라도, 즉 하나님의 부르심과 내 생각과 상반되더라도

그 부르심만큼 나를 위해 가장 적합한, 딱 맞는 맞춤형 계획은 없다는 말씀이었죠.


“4년 동안 아산병원에 있으면서 이미 적응도 하고 자리도 잡은 터라

고대로 옮기라는 부르심은 내게는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이식의 메이저센터에서 거의 이식을 하지 않는 곳으로 옮기라는 명령은 처음에 순종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년여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침묵 속에 사는 것보다는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일지라도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는 것이 낫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힘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언제나 적응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믿음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 주는 하나님의 선물이지 않았던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에게 정면으로 도전장이 던져진 것만 같았던 부분은 바로 시기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선교 및 하나님의 일은 항상 나중에, 훗날,

일단 지금 20대일 때는 삶의 갈피를 잡고 진로를 정하고 가정도 꾸리고

나중에 좀 더 안정적으로 접어든 후에 할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청년의 때”라는 도전장을 내미시더라고요.


“꿈을 일구며 사는 것만큼 행복한 삶도 없다.

부르심의 소망을 따라 사는 삶만큼 가치 있고 후회 없는 삶도 없다.

하나님께 쓰임 받으며 사는 삶만큼 고귀한 삶도 없다.

나는 이왕 드릴 거라면 젊었을 때, 가장 좋은 때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믿는다.

물론 60-70대의 나이 지긋한 선교사님들만이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실제로 그런 분들이 많이 필요하지만,

젊었을 때만 할 수 있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청년의 때, 가장 젊고 아름다운 이 청년의 때에 저는 저를 위한,

나를 만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시기라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이 이 시간을 나 외에 다른 것에 사용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그 관점을 흔드신 거예요.

청년의 때에 내 삶을 세우기에 급급하기보다는,

가장 귀한 청년의 때를 가장 귀한 분께 드릴 수 있겠냐는 도전.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고,

몽골의 온갖 오지를 말을 타고 헬리콥터로 산 넘고 물 건너 복음을 전하러 다닐 수 있었던 것은

30대였기에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

10대와 20대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청년의 때를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든 인생의 시간이 다 소중하지만

특별히 청년의 때를 하나님께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실 줄 믿는다.”


정말 어렵고, 어려운 만큼 신선한 도전이었어요.

이제껏 살아오면서 특히나 학부에서는 깨어있는 모든 순간을,

매시간 매분 매 초를 다 내 인생을 쌓는데 쏟아부었는데…

학기 중에는 공부를 하고 방학에는 인턴을 하고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해서

빈틈없이 차곡차곡 탄탄대로에 입성하고 그 후에는 누구보다 빨리, 열심히 달리는 것이

20대, 30대의 목적이라 생각했는데…

이제껏 살아온 삶의 목표, 내가 옳다고 생각한 방향, 방식, 그 방법에 대한 도전이었던 거예요.

사회가 가리키는 길, 이제껏 믿어왔던 판단과 예측을 내려놓고

가장 귀하다 생각하는 이 청년의 때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겠냐는.


정말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제 안에 자만함이 컸어요.

특히나 청년의 때에 하는 사역은, 그것이 교회에서든 선교지에서든 어떤 형식으로든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을 이루기가 힘들 때 대안으로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학생으로서 공부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학업에 충실하지 않았거나, 취직이 어려운 경우에 대안으로,

혹은 거의 도피 경로로 선택하는 게 젊은 날의 선교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세상에서 쓰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거 같아요.

혹은, 세상에서 쓰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매진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어요.

이렇게 쓰면서도 참 부끄럽지만 되게 자만했던 거죠. 그렇게 선을 가르며.


근데 박관태 선교사님의 책을 읽으며 더욱 그런 생각이 와르르 무너졌어요.

제 논리대로라면 그분은 제가 생각한 사회에서 성공한,

앞으로는 더욱 성공의 길이 뻗어있는 인정받는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걸 내려놓고 명예도, 지위도, 돈도, 한국 대학병원에서 의사이자 교수로 누릴 수 있는

그 무엇도 없는 몽골로 달려가신 모습. 그리고 그곳에서 섬기신 모습.

그즈음 들었던 설교 중에 똑같이 몽골에서 오래 사역하신 이용규 선교사님이 비슷한 말씀을 하셨는데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과분한 (overqualified) 사람은 없다는 거였어요.

이용규 선교사님 또한 그분의 스펙, 혹은 경력을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반응으로

하버드에서 박사까지 한 사람이 왜? 일 텐데,

세상이 가리키는 성공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땅으로 걸어가신 모습이,

그에 비하면 더더욱 아무것도 아닌 저이기 때문에 더 회개하게 되고, 더 도전되었던 거 같아요.


제가 나눴던 제 브살렐과 오홀리압인 친구들 또한

단순히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삶에서도 제가 존경하는 친구들이거든요.

중국에 선교사로 가 있는 친구는 학부 때도 공부를 정말 잘했고 로펌에서도 끝까지 잡았던 그런 인재예요.

결코 갈 곳이 없어서 도피 선교를 간 것이 아니라, 갈 곳이 많은데도 가장 우선으로 간 거죠.

그 친구를 만나고 서울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중보하고 있는데

한번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시더라고요, 그가 얼마나 하나님 마음에 흡족한 자녀인지.

중국에서 그 훈련의 과정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고,

나중에 더 넓고 더 큰 세상에서 사용하실 수 있는 거름이 될 거라는 걸.

그렇게 하나님이 쓰시기에 가장 적합한 그릇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걸.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을 사모하고,

그분의 음성을 구하고, 본인의 뜻과 달라도 순종하기 때문에.

영원하지 않은 것에 얽매이지 않고 영원한 것을 타협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동행을, 그분의 임재를 가장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단 한걸음이라도 하나님께 여쭤보고 행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 앞에 열 걸음, 백 걸음을 우리의 생각으로는 상상도 못 할 만큼 가장 선하게 인도하실 거라는 걸.

그래서 하나님이 쓰시기에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그릇이라는 걸.


지난번에 나눴던 출애굽기 말씀 있죠?

몇 장 더 넘어가면 또 한 번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나와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금과 은과 놋으로 제작하는 기술을 고안하게 하시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기는 여러 가지 정교한 일을 하게 하셨고

또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일과 세공하는 일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베 실로 수놓는 일과 짜는 일과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정교한 일을 고안하게 하셨느니라”

출애굽기 35:30-35


35장 뒷부분에 대한 설명에 그렇게 적혀있더라고요.

“모세는 [브살렐과 오홀리압]에 대하여 말할 때에 그들을 칭찬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렇게 모세는 일할 수 있는 일꾼들도 하나님이 세워 주신다는 사실을 믿었다.”

그 부분을 읽으며 그런 도전이 되었어요.

하나님이 세워주실 때, 이건 내가 생각한 길이 아니라며 물러서기보다는

더욱 겸손하고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하늘나라의 일에 동참하는 일꾼이 되고 싶다고.


하나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것 중 헌신과 섬김이 있다 생각합니다. 달리 말하면 재능기부죠.

물질로도 섬길 수 있지만 나의 지식, 경험, 달란트를 통해

교회 안에, 공동체 안에,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

그게 2017년 저에게는 제가 학창 시절을 보낸 땅으로 돌아가

그곳의 크리스천 리더들을 세우는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49%의 두려움, 염려, 방해하는 내 생각과 나의 계획이 남아있지만

51%의 용기로 나아가려 합니다.


박관태 선교사님의 책에 마지막 장이었던 거 같아요.

흰 백지 중앙에 딱 두 줄이 적혀있었는데,

그 장을 붙들고, 그 두 문장을 품고 한참 그 자리에서 울었어요.


“하나님, 나 같은 것을 부르셔서 고치시고 사용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청년의 때에,

내가 우로든지 좌로든지.


있잖아요, 그 열아홉 번째

19. 청년의 때에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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