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있잖아요

있잖아요, 그 스무 번째

20. 원수 갚는 일

by 일요일은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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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요,


저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처음부터 관계가 어려웠던 건 아닌데 대학 들어갈 즈음부터, 그리고 특히 한국에 들어온 후에는

마음을 계속 어렵게 하더라고요.

아예 서로 안 보고 살 수 있는 사이도 아닌데 그때마다 너무 힘든 거예요, 그 사람을 마주하기가.

그래서 만날 날짜가 정해지면 한 달도 전부터 마음이 어렵고, 그 날이 가까워질수록 안 가고 싶고,

만나서 함께 있는 시간은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 못한 채 말 한마디 동작 하나에 힘이 실리고

돌아오고 나면 일주일은 그날 마음을 어렵게 했던 것들이 생각나 속이 상하더라고요.


처음부터 이런 사이가 아니었는데. 분명히 만나면 반가운 사이였는데.

근데 그 사람은 왜 언젠가부터 태도가 이렇게 달라졌을까. 왜 자꾸 나를 경계의 대상으로만 삼을까.

내가 더 어려서, 나는 여자라서, 그리고 나의 퇴사 및 이별을 약점 삼아

강자에게는 약하게 약자에게는 강하게 나가는 그 사람이 마음을 어렵게 할 때,

그게 한두 번이 아니라 해가 지나면서 쌓이고 또 쌓이고 오히려 심해지기만 하니까

밉더라고요, 그 사람이. 안 보고 싶을 만큼.


근데 그러던 중 몇 달 전에 그 사람이 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 일이 생겼어요.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한테 작지 않은 어려움이 생길 상황이었고

친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려울 부탁이었기 때문에 지난 몇 년 동안의 속상함을 생각하면

더욱 도와줄 필요가 없어 보이더라고요.

‘그러게, 왜 그렇게 못됐게 굴어서’ 하고 복수라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미안하다, 그건 너무 어려운 부탁이고 옳다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고 넘겨도

그쪽에서 아무런 할 말이 없는 그런 상황.


근데 어떻게 찾아온 절호의 기회인데, 미안하다 거절할 수도 있는 기회인데

마음이 그렇지 않은 거예요.

그러한 감정을 떠나서라도 들어주기에 어려운 부탁이었기 때문에 거절해도 괜찮은 상황이었는데

근데 마음이 그렇지 않은 거예요.

자꾸 도와주라는 마음을 주시더라고요.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

잠언 25:21-22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없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을 무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어요.

어쩌면, 그 사람을 도와주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말씀대로, 또 주신 마음대로 순종하는지 안 하는지에 대해 시험해보실 기회가 아닐까 싶더라고요.

단순히 그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 서러움을 갚느냐 마느냐의 문제보다

어쩌면 이건 하나님이 내가 마음의 원한을 푸는 일에서도, 원수 갚는 영역에서도

하나님을 의뢰하느냐, 하나님께 순종하느냐에 대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


그래서, 그 사람과의 관계와 상관없이 거절했어도 될 만큼 곤란한 부탁이었음에도,

그동안 말이 안 되는 것부터 자기와 아무런 상관없는 것까지 제 마음의 짐을 이용해 힘들게 한 사람임에도

들어줬어요. 그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주신 마음에 순종하는 거라고 생각하며

내 안에 나의 감정, 마음, 생각, 의지 그 모든 걸 내려놓고

하나님, 제가 왜 그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베풀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라고 하시니 하겠습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히브리서 10:30


부탁을 들어준 후에도 고마워하지 않더라고요.

고맙다는 말을 들으려고 한 게 아니니 말씀에 순종했다는 사실로 만족하자고 넘어갔는데,

잠깐 잠잠한가 싶더니 한 한 달쯤 후부터 오히려 이전보다 더 강하게 나오는 거예요.

도와줄 필요가 없는 일을 도와줬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다는 듯,

오히려 그보다 더 큰 요구를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도와주니까 내가 바보로 보이나? 싶을 만큼, 더 강하게 더 많은 걸 요구했어요.


근데 상황이 황당하고 속상하던 즈음, 몇 주가 더 흐른 시점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겼는데

애초에 저한테 부탁할 때 수습하려 했던 상황보다 열 배나 더 큰 문제가 닥치더라고요.

원수 갚는 일을 직접 하지 말라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도와주고 싶지 않아도 순종하자 했던 건데

처음 일이 시작되었던 시점으로부터 한 두 달 정도가 흘렀을까, 열 배나 어려운 문제가 닥치더라고요.


그때 딱 그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저를 덮었던 마음은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는 자유함이었어요.

나는 억울하지만,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하는 게 좋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라는 말씀에 순종했을 때

그사이에 일어났던 억울함이나 서러움을 하나님이 다 갚아주신다는 걸.

오히려 내가 내 손으로 직접 갚으려 할 때보다 몇 배로, 더 무섭게 응징하신다는 걸.

그래서 속상함도 풀리면서 조금이라도 마음을 괴롭힐 수 있었던 모든 요소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신다는 걸.


만약에 처음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내가 내 손으로 직접 그 모든 억울함을 갚으려 했다면

나는 내 선에서 내가 생각한 만큼만 처리했을 것이고, 오히려 괜히 마음에는 어려움이 생겼을 수도 있어요.

근데 그걸 하나님께 맡겼을 때, 그래서 내 계산과 내 본능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일에 순종했을 때,

그때 하나님이 직접 나서시더라고요. 직접 일하시더라고요.


사람과의 어려운 관계, 혹은 억울한 상황이나 화가 나는 일을 맞닥뜨릴 때,

그래서 손가락질하고 싶고 잘잘못을 캐고 싶고 정죄하고 싶을 때,

하나님은 항상 두 가지 마음 중 하나를 주셨어요.

그 첫째는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마음이고,

그 둘째는 원수 갚는 일을 네가 하지 말라는 마음이에요.


남이 잘못을 한 건 분명하지만 저도 사람으로서 비슷한 잘못을 한 적이 있을 때는

본능적으로 손가락을 가리키려 할 때 항상 한 번 깊숙이 제 마음을 쿡 찌르시더라고요.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누가복음 6장 42절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면 손가락이 올라가다가도 다시 내려갔어요.

위선, 혹은 이중잣대 같은 거죠. 아주 싫어하지만 저 또한 그로부터 절대 자유롭지 않은.

지난 몇 개월 나라에 소용돌이를 친 상황을 놓고 10월, 11월 한창 언론에 퍼지기 시작할 때

그때 저한테 주셨던 마음이 바로 이 부분이었어요,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규모는 더 작을지라도, 그래서 그 영향이나 피해는 더 적었을지라도,

과연 내가 서둘러 손가락질할 만큼 떳떳할까?

하나님 앞에서는 죄의 크고 작음 없이 모두 다 똑같은 죄인일 뿐인데,

과연 나는 서둘러 손가락질할 만큼 떳떳한가.

과연 이 상황에서 정의와 공의를 논하는 야당, 여당, 국회, 언론 및 우리는 모두 떳떳한가.

과연 비리가 됐든 뇌물이 됐든 직권남용이 됐든 자식 특혜가 됐든 같은 잘못을 저지른 적이 단 한 번 없고

지금 이 상황에서 정의와 공의를 외칠 때 본인의 사심과 욕심, 그러한 계산이 조금이라도 없을까.


그러고 만약 그보다 조금 더 양심이 자유로울 때는,

나는 정말 저 사람한테 잘못한 게 없는데 억울하게 당하기만 한 거 같을 때는,

그래서 내가 드디어 조금이나마 그 한을 풀어보고자 인간적인 감정이 앞설 때 주시는 마음은

원수 갚는 일을 네 손으로 네가 스스로 직접 하려 하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이번 일처럼 아무리 억울하고 아무리 속상해도, 그래도 너는 나의 자녀인 만큼 주리거든 먹이라는 거였어요.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몇 달에 걸쳐 하나님이 일을 진행하시는 걸 보게 되니

무엇보다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자유함을 주시고 싶으셔서 그런 거 같아요.

직접 칼을 잡고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그 칼을 주님께 맡기길 바라는.

그리고 자유하기를.


미운 마음이 앞설 때, 또 정죄하는 마음이 앞설 때

그 두 가지 중 하나의 메시지를 조용히 속삭이듯 마음에 심어주세요.

같은 레퍼토리라 할지라도 그 둘만큼 강력한 메시지는 없는 거 같아요.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또 원수 갚는 일을 직접 하지 말라.


그리고 순종했을 때 그로부터 오는 자유함이 있어요.

내 생각으로는 도저히 순응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했다는 자유함.

또 어쩌면 이 시험은 그 사람에 대한 시험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이 진정한 내 마음을 보기 위해서 나에게 주시는 시험일지도 모르겠다는.


그리고 여러 시험을 통해 우리를 단련하신 후에는

우리가 순금같이 되어 나아갈 것을.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욥기 23:9-14


있잖아요, 그 스무 번째

20. 원수 갚는 일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라고 하면 마치 조건부로 용서를 구하는 것 같지만, 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다. 내가 무조건으로 하나님께 용서받은 대로 이제는 남을 용서해야 한다는 의미다. 죄 많은 우리는 무슨 조건이 좋아서 용서를 받았는가. 주님은 우리를 아무런 조건 없이 용서하셨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내 감정이 어떠하든지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이 용서다. 나를 해친 사람에게 원수 갚을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용서다.


김양재, 100프로 응답받는 기도

#100프로_응답받는_기도 #김양재 #두란노

https://goo.gl/kNE6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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