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지금, 여기, 예수 믿는 청년
있잖아요,
참 길고 긴 지난 몇 달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의견이 있다는 걸 알고 모두가 동의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압니다.
이전에는 나라가 둘로 갈라졌었다면, 지금은 그 내에서도 점점 갈라지고 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얘기를 하는데 앞서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어쩌면 정치는 그 어떤 주제보다도 예민할 수 있다는 걸 알고,
또 음악이나 옷이나 다른 것들은 취향이 달라도 서로를 존중하며 넘길 수 있지만
정치만큼은 그 어느 주제보다도 서로 의견이 다르면 마음이 상한다는 것 또한 압니다.
더군다나 이렇게 국가적으로 크고 중요한 사안에 있어서는
각자 마음이 어느 한쪽으로 강하게 기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마냥 편한 마음으로 적어 내려가고 있지는 않습니다.
반대편에 선다는 게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지 느꼈기에,
그래서 단순히 나라가 갈린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과도 돌아서게 되는 걸 느꼈기에,
그래서 적어 내려가는 이 순간도 마음이 매우 무겁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결과가 나온 후인 지금만큼은
교회인 우리가 가야 하는 방향이 같다 생각하기 때문에 주신 마음을 나누려 합니다.
대한민국은 어려운 시기 가운데 있습니다.
기회인지 위기인지, 승리인지 패배인지에 대한 의견은 갈릴지라도
어렵고 또 위험한 시기인 건 어느 편에 서든지 맞는 것 같습니다.
경제까지 갈 것도 없이 북한의 위협이나 동북아 내에서도 살얼음판 같은 관계만을 놓고 보더라도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고, 또 그 어느 때보다 역사에 중요하게 남을 대선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둔감한 상태로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면 안 되고,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한 분별력을 구하며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위기라고 생각하게 되는 점은
그 어느 때보다 사탄의 역사가 깊숙이 파고들었다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사탄의 역사가 나라 전체를 뒤덮을 만큼 강력했던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공동체를 분열시키기를 좋아하는 사탄은
나라를 둘로 갈라놓았고 이제는 그 내에서도 계속해서 더 잘게 찢어놓고 있습니다.
서로를 적 삼고 미워하고 혹은 증오하고 정죄하고 반대편을 끌어내리는 자신의 일을
여러 가지 명분으로 덮으며 우리가 함께 참여하도록 동요하고 있습니다.
이편에 계신 분들도 저편에 계신 분들도 신념을 갖고 정의와 공의를 세우기 위해 일어나셨다는 걸 압니다.
저 또한 한쪽의 입장을 택했기 때문에, 그 마음이, 그 진심이 무엇인지는 너무나도 잘 압니다.
다만, 무의식중에 우리가 끌려가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어느 편에 서 있든, 현 시국은 절대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라디아서 5:16-21
마음이 무거웠던 주말이 지나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앞으로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나 길을 잃은 것만 같을 때
제 마음이 조금 더 잠잠해지길 기다리신 후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겁니다.
언론에서는 의인과 악인을 구분 지어 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적어도 교회인 우리 마음 안에서는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모두 용서하고 사랑하며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너무 어렵죠. 어느 편에 섰든지 그편에서 정의한 의인과 악인이 있고,
어느 편에 섰든지 그 의인은 사랑했지만 그 악인은 미워했으니까요.
어느 한 편도 그러한 지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저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러니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겠다는 명분으로
사탄이 얼마나 이 상황을 교묘하게 조종했고 여전히 하고 있는지 마음이 어렵고 두려울 뿐입니다.
우리는 선한 뜻으로 들었던 촛불과 태극기가 사탄에게는 교묘하게 악용할 수 있는 무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싸워야 하는 사탄은 굉장히 똑똑하고 치밀한 적입니다.
하나님 없이, 내 안의 성령의 역사 없이 절대 불리한 싸움입니다.
현 시국은 절대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의 적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적은 사탄입니다.
근데 사탄이 우리를 서로의 적이 되게 만들었으니 얼마나 애통한 상황입니까.
촛불은 태극기를 미워하고 태극기는 촛불을 미워하는데
같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한나라의 가족으로서 얼마나 비통한 상황입니까. 또 얼마나 위험한 상황입니까.
설령 의도는 그러지 않았을지라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면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게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정치인들은 국민통합을 외치고 있지만 허공에 메아리처럼 분열은 국가적인 차원을 떠나
개인적인 수준에서도 느껴질 만큼 가정, 친구, 속한 회사나 교회 내에서마저 서로 갈라서고 돌아서고 있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마음 아파하고 계실까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라디아서 5:22-26
앞에 나눈 갈라디아서 말씀을 뒤따라오는 부분입니다. 육체의 일과는 상반되는 성령의 열매죠.
바로 이 부분에 하나님이 원하신, 계획하신, 또 꿈꾸신 나라가 나온다 생각합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 그러한 성령의 열매가 가득한 나라.
그와 반대되게 어쩌면 우리는 지금, 각자의 헛된 영광을 구하며 서로 노엽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이라 말로만 고백하고
정작 그러는 데에는 힘쓰지 않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도려내야 할 부분은 단순히 지도자들한테만 있는 게 아니라, 또 정계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똑같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걸어온 시간을 되돌아볼 때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이 있었다면
우리 또한 교회의 몸으로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지도자들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우리 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다면
진정한 교회가, 진정한 제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또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에베소서 5:8-11
여전히 미움, 원망, 괘씸함, 또 금요일 이후에도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는 걸 잘 압니다.
다만, 그러한 상황 가운데에서 적어도 예수 믿는 청년은 달라야 한다 생각합니다.
우리는 달라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르므로 예수 믿는 청년이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예수 믿는 청년은, 정의와 공의 및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데 힘써야 한다 생각합니다.
위기라서, 너무 위험한 상황이라 우리는 더욱 깨어있어 제자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휘두르고 있는 검은, 우리 손에 꽉 쥔 채 놓지 않고 있는 검은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우리는 골방으로 들어가 검이 아닌 눈물로 기도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나라가 분열되고 양쪽 다 서로의 진영에서 지정한 특정인을 미워하는 이 상황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사탄의 영향력이 더는 퍼져나가지 않도록
우리부터 끊어낼 수 있도록 이전보다 더욱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자기들의 사익과 너무나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에
그러한 욕심을 내려놓고 온전히 나라만을 위해 기도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적어도 우리는 그러한 욕심으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우므로
우리가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언인가 이해하라”
에베소서 5:15-17
하나님께서 너무 악해져 버린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시겠다고 하실 때 아브라함이 여쭙습니다.
혹시 오십 인의 의인이 있다면 그곳을 멸하시겠습니까. 혹은 사십오 인의 의인이 있다면 멸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사십 인은, 삼십 인은, 이십 인은, 그리고 결국
단 열 명의 이인만 있더라도 함께 멸하시겠냐고 여쭙습니다.
그러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의인 열 명만 있어도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겠다 약속하십니다.
하지만 줄이고 줄인 그 의인 열 명을 찾지 못해 소돔과 고모라는 결국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오늘 이 시대에, 지금 이 순간 우리 대한민국에서 그 의인 열 명을 찾으실 때
소돔과 고모라의 때처럼 찾지 못하신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의인 열 명을 찾지 못하신다면 얼마나 마음이 무너지시겠습니까.
저부터 이 의인 열 명에 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부터 육체의 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정의와 공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기도한다 하면서
사실은 제가 생각하기에 옳은 것 같은, 제 생각에 맞는 것 같은 길이 열리기를 구하고,
그래서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낙심하고 절망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두렵고 더욱 간절해집니다.
시대가 악하고 교회가 약해진 지금, 단 열 명만의 의인이 있더라도
온 지경을 용서하겠다 약속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가, 우리부터, 우리라도 눈물로 회개하고 기도로 나아와야 합니다.
이 땅 구석구석 가장 높은 곳부터 가장 깊은 곳까지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지 않기를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광야에서 금송아지 사건이 일어난 후 레위 지파가 회개했던 것처럼,
우리가 나아와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휩쓸리지 않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제이슨 미첼의 “쉬운 예수는 없다”라는 책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만큼은 하나님의 회복 사역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 현시대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느헤미야 1:6-7
김양재 목사님의 “100프로 응답받는 기도”에 자복하며 드리는 회개 기도에 대한 부분이 있습니다.
거기서 느헤미야 본문을 다루시죠. 그리고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한 느헤미야는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심히 악을 행하였다’고 자기 죄부터 고백했다.
수산 궁에서 잘 먹고 잘살고 있던 느헤미야가 무엇이 아쉬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했다’고 회개했을까?
돌이켜보면 느헤미야에게는 1, 2차 포로 귀환 때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않은 데 대한
영적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훼파된 예루살렘에서 고생하는 동족과 달리
왕궁에 거하고 있는 자신과 자기 집안을 생각하니 회개와 자복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지도자들, 또 정계의 인사들에게만 회개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부터 우리가 아는 죄 및 깨닫지 못하는 죄들까지
먼저 나아와서 회개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인 우리가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나아가 대통령이든 의사든 교수든 사업가든 아무리 대단한 지위에 있다 하더라도
결국 구원받지 않으면 한낱 가루같이 아무런 소용없는 것처럼
우리는 이 나라 지도자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의 잣대로 죄를 묻는 심판보다,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할 수 있도록,
제자의 책임으로서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맡기신 또 하나의 사명입니다.
힘들어도 용서하고 원수라 생각했던 사람을 위해서조차 기도할 때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진다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믿습니다.
이 나라의 위기 가운데, 어쩌면 지난 몇십 년의 역사 가운데,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위험한 또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이 상황 가운데
대한민국 교회에, 또 앞으로 이 나라를 이끌어갈 우리 청년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국정은 정치인들의 일이라고만 생각하던 때를 넘어서서
예수 믿는 청년으로서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우리는 골방에 들어가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탄의 일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이제는 십자가 하나만을 들고 나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힘쓰는 것이
제자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악하고 약해 져가는 이 시대에
그런 예수 믿는 청년들이 되기를,
또 그런 제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있잖아요, 그 스물한 번째
21. 지금, 여기, 예수 믿는 청년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Reference.
-"100프로 응답받는 기도," 김양재, #김양재 #100프로_응답받는_기도 #두란노
-"쉬운 예수는 없다," 제이슨 미첼, #제이슨미첼 #쉬운_예수는_없다 #두란노
“환난 날에 드리는 감사”라는 제목의 유기성 목사님 설교를 듣고 있었습니다. 어떤 세무사분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손기정 선수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어떤 단체에서 상금을 받았는데 이에 대한 세금을 내고 싶다고 오셨답니다. 그래서 세무사분이 상황상 신고하지 않으셔도 된다 했는데, 나는 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혜택을 받았는데 나도 나라를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싶다며, 책정해준 금액도 너무 적다 생각해 그보다 더 많이 계산해서 세금을 내고 가셨답니다. 그러고 그 세무사분이 이렇게 쓰셨답니다. “나라가 없을 때를 살아본 분들은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한 번도 대한민국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손기정 [선수는] 우리가 다 알다시피 나라 없는 설움을 톡톡히 당한 분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분에게 있어서 나라는 너무나 특별한 거예요, 나라는. 나라가 있다... 그래서 그분은 어떻게 해서든지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하고 싶어 하고, 세금이라도 내고 싶어 하고. 나라를 잃어버렸었기 때문에 나라를 되찾은 그 감사, 그분에게 있어서는 특별한 거죠. 요즘과 같은 시국의 때에 그 글이 참 생소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지금 우리나라의 여러 형편을 생각하면 우리나라는 왜 이렇지, 이런 생각만 드는... 여러분들의 심정도 아마 다르지 않을 거 같아요... [근데] 그런 마음의 심정으로 나라를 보면서 정말 마음이 속상하고 무너질 때 생각해봐야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있으므로 인해서 너무나 감사하는 사람도 있다는 점. 그 속에 감사의 사건이 다르기 때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