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있잖아요

있잖아요, 그 스물두 번째

22. 생각지 못한 더 좋은 선물

by 일요일은 쉽니다




있잖아요,


대학 시절 마지막 해에 자취했었는데, 그때 같이 살던 언니로부터 오랜만에 반가운 연락이 왔어요.

그동안 잘 지냈냐며, 추석 때 미국에 여행 다녀올 항공권을 끊었다고.

그리웠던 곳으로 돌아간다 생각하니 설레고, 또 이전에 같이 살던 기억이 떠올랐다고.

그래서 반갑게 대화를 나누다가 보니 저도 그때 살던 집과 관련한 기억이 하나 떠올라서요.

오늘은 생각지 못했던 더 좋은 선물에 대해 나누려 해요.


가을학기가 지나가고 봄학기도 어느새 마무리되어가던 시점이었어요.

5월에 졸업하고 언니는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고,

저는 여름에 남아서 계절학기를 듣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죠.

집 계약은 5월 말이면 끝나는 상황이었고, 저는 그 후 두 달을 더 지낼 곳을 찾아야 했어요.

또한 다 들고 갈 수 없으니 일 년 동안 살면서 장만한 가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도 고민이었죠.

그래서 저희가 내렸던 결론은 일단 가구 처분이 급하니

가구를 있는 그대로 유지하고 집 계약을 할 사람이 있는지 우리가 먼저 한번 찾아보자 였어요.


여기저기 홍보를 하니 감사하게 조건이 마음에 든다며 6월부터 들어오겠다는 친구들을 찾았어요.

기숙사에서 나오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시기도 맞았고 또 가구도 다 필요했던 거죠.

언니는 가구를 둔 채 한국으로 돌아가면 되는 거였고,

저는 방학 동안 집을 비울 계획이던 친구네로 이사해서 지내면 되는 거였어요.

그래서 집주인한테 다음에 들어올 사람들을 찾았다고 얘기하고 저희는 저희대로 준비하고 있는데

계약이 만료되어가던 시점에 가서 문제가 생긴 거예요.


저희는 둘이 그 집에 살았고, 들어오는 친구들은 셋이 그 집에 살 계획이었는데

그 친구들이 계약하러 가니 정원이 둘이라 세 명은 안 된다 했다 하더라고요.

저희가 둘이었기 때문에 저희는 그러한 제한이 있는지 몰랐고

짐을 빼야 할 시기는 다가왔는데 갑자기 그렇게 계약이 무산된 거죠.


막막하더라고요.

시간의 여유가 있었으면 또 찾아보면 되지 했을 텐데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잃은 후였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번거롭더라도 가구를 각각 처분했을 텐데 상황이 너무 애매해진 거죠.

어쩔 수 없으니 그럼 다시 한 번 들어올 사람을 찾아보자고 수소문하기 시작했는데

일단 시간이 너무 촉박했고 몇 명이 집을 보러 오기는 했지만 들어오겠다고 하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어요.


하루하루가 가고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데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결국 가구를 다 버려야겠다 할 즈음

정말 막판에 다가가서 두 친구가 집을 보러 왔어요.

집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고 또 기숙사에서 바로 나오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구를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 자기네도 편하다고 해서 계약을 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얘기를 나눠 보니까 마침 여름에 둘 다 집에 돌아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집을 비워둬야 하는 상황이더라고요.

그러면 보통 재대여를 하지만, 사실 대다수 학생이 방학 동안 재대여를 하므로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고 고로 집을 비워두게 되는 일이 있는데

그 순간 가을학기까지 둘 다 집을 비우는 상황이면 차라리 내가 굳이 이사하지 않고

이 집에 지내면서 월세를 나눠내면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들한테 원래는 다음 달에 친구네 집으로 이사 들어가기로 했는데

서로 합의가 되면 너희도 집을 비워두는 것보다 내가 가을학기까지 이 집에서 계속 지내면서

월세를 나눠 내는 건 어떻겠냐 제안을 했어요.

자기들도 재대여하는 것이 번거롭고 저도 이사하는 것이 번거로우니 서로 좋은 제안 같다,

한번 생각해보겠다며 돌아갔는데

마침 우연히도 그 직후에 한 팀이 더 집을 보러 오기로 했던 상황이었던지라

그 친구들이 나가면서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다른 팀이랑 먼저 계약을 할 수 있겠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사실 그다음 팀은 확실한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고맙다 하고 돌아갔는데

그전에 집을 보고 간 친구들은 불안했는지 그날 밤에 바로 계약을 하겠다는 연락이 왔어요.

그 덕분에 조건도 그전에 성사될뻔했던 계약보다 훨씬 편하게 됐죠.

가구를 그대로 사겠다는 것은 물론, 가을학기까지 집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도 번거롭게 이사할 필요 없이 그대로 그 공간에서 제가 쓰던 가구를 쓰며 계절학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집 자체도 친구네 집보다 더 넓고 방도 하나 더 있었고

위치도 더 안전하고 학교에서도 더 가깝고 또 그늘에 가려서 여름에는 시원한 집이었기 때문에

같은 집세를 내고 지낸 걸 고려하면 훨씬 좋은 조건이자 가장 좋은 조건이었죠.

애초에 저와 언니가 생각지도 못한, 그래서 저희의 생각으로 가장 좋겠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길이 열린 것이죠.


미래를 대비해 우리 차원에서 계획하려 했고, 그에 맞춰 준비했고,

처음 그 계획이 무산되었을 때 시간만 잃은 것은 아닌지 걱정했어요.

급박해진 상황에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당장 짐을 빼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걱정만 늘어갔죠.


근데 하나님은 시간을 딱 맞춰서 계약이 끝나기 전에 좋은 만남으로 이끌어주셨고,

애초에 조건보다, 또 제가 생각했던 상황보다 더 좋은 것으로 선물해주셨어요.

저는 제 나름의 가장 좋은 계약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기 때문에 그 첫 계약이 무산될 때 불안했지만,

사실 하나님은 더 좋은 걸 주고 싶으셔서, 또 가장 좋은 걸 주고 싶으셔서 돌아가게 하셨더라고요.

그리고 설령 돌아갔다 하더라도 늦지 않게, 딱 맞게, 모든 걸 가장 선하신 길로 인도하셨어요.


그 당시 그 상황 속에 있을 때는 불안하죠, 조급하기만 하고.

그래서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대로 해주시면 된다고 오히려 선을 긋지만

그분은 인간의 생각과 계획의 한계를 뛰어넘어 가장 좋은 걸 주시는 분이더라고요.


저는 지금 그러한 시간 속을 걷고 있어요.

내가 생각한 최선의 계획, 이 시기 안에 이렇게 되면 좋겠다 하고 애초에 세웠던 계획이

wait 혹은 no 또는 침묵으로 응답되고 있는 상황.

하루하루 시간은 가는데, 이제 나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문이 닫힌 것만 같고 길이 닫힌 것만 같은.

광야를 이미 거쳤다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그것은 출애굽에 불과했고

진정한 광야에서 자꾸 모래 속에 발이 푹 빠지는 것만 같은, 잠기는 것만 같은 그런 시간.

대안을 생각하려던 노력조차 의미 없는 것 같고 갈피를 잃은 것만 같아

일 년 후, 삼 년 후, 오 년 후가 아니라 당장 다음 달도, 아니 다음 주도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모르겠는

오늘 하루를 사는 삶.


그래서 늘 제 마음은 하루하루가 49%와 51%의 싸움이에요.

믿음과 불신, 평안과 염려, 기쁨과 슬픔, 극과 극이

49%와 51%의 자리를 바꿔가며 줄다리기하듯 팽팽하게 맞서죠.

한순간은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불안하고 깜깜하게 느껴지다가,

또 돌아서서 그 같은 폭풍 가운데 마음이 잠잠해지고 평안할 때가 와요.

그 차이는, 그 순간 내가 무엇을 보고 어디에 시선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순간, 내가 밟고 있는 이 땅 위에서

자꾸만 발이 잠기는 사막을 바라보면 나는 51%의 두려움 속에 떠밀려가다가도

조금만 고개를 들어 나를 놓치지 않으시는, 나로 하여금 물 위를 걷게 하시는 손을 보면

다시 51%의 신뢰를 되찾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도 로마서 8장 28절이 간절하고 또 진심이자 감사한 고백으로 나오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대한민국 또한 어려운 위기 속에 처해있습니다.

여러 의견이 있다는 걸 알고, 어느 것 하나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압니다.

특히나 청년들 가운데에서는 제가 소수의 편에 서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고 또 힘들었습니다.

앞길이 너무 깜깜해 보여서 하나님 도대체 어디로 이끌어가고 계신 거냐며

깊은 어둠 속에서 헤어 나오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제 삶 속에서, 또 이 나라 가운데에 길이 보이지 않는 광야를 걷고 있는 것만 같은 지금 이 시기도

하나님의 주권 하에 움직이고 진행되고 있고

나의 근시안적인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한 지혜로 통치하고 계심을

다시 한번 마음에 깊이 새기는 기회인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선하게 빚어져 가고 있음을 온전히 믿기를 도전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자주 찾아 듣는 설교 중에 온누리교회 청년부를 담당하시는 김승수 목사님이 계신데요,

그분이 작년 여름 청년부 예배 때 “폭풍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나누신 말씀이 있어요.

여느 때보다 필요한 말씀인 거 같아 나누며 마무리하려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비록 실수할지라도, 비록 실패할지라도

그것도 가장 선하게 바꾸어주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28절에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고 나와 있죠.

모든 것이 합해지는 거예요.
좋은 것만, 성공만 합해지는 게 아니라 나의 실수도 합해지고, 실패도 합해지고,
심지어는 나의 죄악까지도 합해집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으로 들어가면 다 좋은 것으로 바뀌는 줄 믿습니다.


인간은 실수해요. 하지만 하나님은 더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내가 실수할까 봐, 실패할까 봐 두려워하지 않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내 실수에 대한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더 커지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셨나요? 그럼 믿음으로 선택하고 오늘 전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겁니다.

인간의 실수를 가장 선하게 바꾸어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금도 내 삶 가운데, 이 나라 가운데 역사하고 계시는 주님.

그래서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깊고 넓고 높은 당신의 뜻을 펼치시는 주님.

내 실수 가운데, 내 실패 가운데, 심지어 내 죄악 가운데에서도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꺾을 수 없는 당신의 완전한 계획을 더욱 신뢰하기 원합니다.

그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내가 되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God is good, all the time.

All the time, God is good.


있잖아요, 그 스물두 번째

22. 생각지 못한 더 좋은 선물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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