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만으로 충분한 인생
예수만으로 충분한 인생
우리에게 닥쳐오는 많은 실망과 고민거리를 생각해보라.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그중 가장 괴로운 것은 각자의 '이삭'과 관계있다. 우리 삶 속에는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만족과 기쁨을 웬만큼 얻어 보려고 투자하는 대상이 늘 있게 마련이다. 삶이 가장 고통스러울 때는 자신의 우상이 위협받거나 제거될 때다. 그럴 때 우리는 둘 중 하나로 반응할 수 있다.
우선 원한과 절망을 택할 수 있다. 그러면 감정의 흙탕물 속에 뒹굴며 뻔뻔하게 이런 생각에 빠져든다. '평생 노력해서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이제 다 날아가 버렸어!' '딸을 위해 평생 뼈 빠지게 일했는데 감히 나를 이 따위로 대해!'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기 위해 제멋대로 거짓말하거나 속이거나 복수하거나 소신을 저버려도 될 것만 같다. 그러다 영영 낙심 속에 살아갈 수도 있다.
또는 당신도 아브라함처럼 그 산을 오르며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 '주님, 그것 없이는 못 살 것 같았는데 이제 주께서 저를 그것 없는 삶으로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님만 계시다면 제게 정말 필요한 부와 건강과 사랑과 명예와 안전은 다 있는 것이며 결코 잃을 수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배운 바를 가르쳐 주듯이, 예수님만으로 충분함을 알려면 우선 예수님밖에 남은 게 없어야 한다.
일단 내가 만든 가짜 신을 하나님 아래로 '강등시키고' 나면 그중 다수나 어쩌면 대부분이 우리 삶 속에 계속 남아 있어도 괜찮다. 이제 그것이 우리를 지배하거나 불안과 교만과 분노와 충동으로 괴롭히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이야기의 의미를 착각해 우상을 버릴 의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일 아브라함이 산을 오르면서 '이삭을 정말 내놓지는 않고 제단에 올려놓기만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면 그는 시험에서 낙방했을 것이다! 뭔가가 우리 삶 속에 남아 있어도 안전하려면 그것이 더는 우상이 아니어야만 한다. 그러려면 정말 그것 없이 살 마음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계시기에 나는 너 없이도 살 수 있다'라고 진심으로 고백해야 한다.
하나님이 사실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중인데 오히려 죽이시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하나님은 그를 위대한 사람으로 빚으시는 중이었지만 겉으로는 매정해 보이셨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따른다는 게 어떤 이들에게는 맹신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감사에 찬 강건한 믿음이다. 성경에 요셉과 모세와 다윗 같은 인물의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신 것 같지만 나중에 알고 보면 하나님은 삶 속의 해로운 우상을 다루고 계셨다. 이는 역경을 거쳐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아브라함처럼 예수님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처절하게 씨름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분은 아버지께 다른 길이 있느냐고 물으셨으나 결국은 순종해서 갈보리 산에 올라가 십자가를 지셨다. 아버지가 나쁜 일을 허용하시는 이유를 우리는 다 모르지만, 예수님처럼 우리도 힘들 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이 이미 해 주신 일을 즐거워하면, 가장 어둡고 힘들어 보일 때도 꼭 필요한 기쁨과 희망을 얻어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가짜 신으로부터 해방된다 (56-59).
팀켈러, “내가 만든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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