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별은 그렇게 옷깃이 스치듯이 [14]
- 이별은 그렇게 옷깃이 스치듯이
“서윤아, 지금 전화 왔는데 할아버지 방금 떠나셨대.”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아직 눈 부시기 전, 희미하게 보이던 시계에서 희미하게 보이던 5시 50 몇 분. 바닥에 이불을 깔고 동생을 데리고 자고 있던 방에 삼촌이 문을 살짝 열고는 목이 멘 목소리로 몇 마디 말을 전하셨다.
“지금 바로 준비할게요.”
잠이 들지 못하여 나무 잎사귀 떨어지는 소리에도 깨던 아침, 나를 깨운 소리는 그날만큼은 듣고 싶지 않았던 작별인사였다. 삼촌 역시 한숨도 못 주무신 듯 눈이 빨갛게 충혈된 얼굴이었고, 옆에서 자고 있던 동생을 깨우고 화장실로 들어가 대충 얼굴에 물만 끼얹고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집을 나섰다.
“이렇게 가실 거였으면 옆에 있을 때 가시지.”
운전하시며 혼잣말하시듯 작게 들려온 삼촌의 말에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오늘은 괜찮을 거 같다며 집에 가서 쉬라고 우리를 보내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무엇이 그리 급하셨던 걸까. 당신은 무엇이 그리 급하셔서 그렇게 빨리 우리를 떠나려고 하셨던 걸까.
인생의 흐름을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당신은 우리가 모두 한국에 모일 때까지 기다리시고는 더는 짐이 되지 않겠다는 마냥 그다음 날 이른 아침에 곁을 떠나셨다. 무엇이 그리 급하셨던 것일까, 당신은.
병원을 옮겼다. 장례식은 집에서 더 가까운 신촌 세브란스에서 치르기로 하였다. 고로 엄마와 큰삼촌이 세브란스에서 수속을 밟는 동안 들고 온 짐을 외가에 내려놓은 후 병원으로 출발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도착한 서교동 집에는 할머니가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계셨다.
이제 더는 손으로 기록하는 문화가 없어졌지만, 할머니는 당신의 책상 근처 어디선가에서 전화번호부를 꺼내셔서 전화기 옆에 앉아 수첩을 펼치셨다. 그러고 어디론가 전화를 거셨다. 당신의 친구분 같았다.
“돌아가셨어요.”
인사도, 설명도 필요 없었다. 그저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떠나셨다는 그 한마디뿐. 근데 그 한마디를 하시고는 가슴이 찢어지시는 듯 통곡하셨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상대방의 목소리는 “돌아가셨어요?!”라는 충격과 함께 헐레벌떡 다른 친구분들에게 연락을 돌리겠다는 말만 남기고서는 전화가 종료되었다.
그다음 통화도 마찬가지였다. 전화가 연결되면 “돌아가셨어요”라는 한마디와 함께 말을 하실 때마다 마음이 미어지시는 듯 다시 통곡하셨다. 나보다 키도 크고 강한 할머니라 생각해 이것저것 챙기러 바쁘게 돌아다니시는 동안 그 안에 조금만 찔러도 바로 터질지 모르는 눈물을 한가득 숨기고 계셨다는 걸 몰랐다. 풍선 같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그런.
빵을 사 오라는 심부름을 받고선 집에서 나와 대문을 나서는데 하늘을 보니 눈물이 흘렀다. 빵이 담긴 봉지를 들고 돌아오는 길에 대문을 다시 지나오는데 하늘을 보니 또 눈물이 흘렀다. 당신은 왜 그리 서둘러 저 높은 곳으로 가버리셨던 걸까. 당신이 교회를 멀리하던 시절에도 일하다가 잠시 쉴 때면 믹스커피 한잔을 태우고는 벽에 기대 부르던 찬송가처럼, 당신은 날마다 나아가다 결국 그렇게 저 높은 곳으로 가셨던 걸까.
로비에 들어서니 이미 절차를 마친 후라 화면에는 몇 층 몇 호실이란 안내와 함께 당신의 이름과 우리의 이름이 적혀있었고, 그 왼편에는 카메라를 똑바로 주시하며 바른 자세로 찍은 사진이 아니라 당신이 마당에서 환하게 웃으며 찍었던 얼굴이 담겨있었다. 햇빛이 화사했으며 당신의 옷도 화사했고 무엇보다 당신의 웃음이 화사했다. 당신의 생을 기억하는 이곳에서만큼은 당신이 조금 덜 아프고 더 행복하기를 바란 우리의 마음이 전해졌던 걸까.
내 인생에서 처음 가보는 장례식장은 하필이면 당신의 공간이었고 그렇게 당신의 사진이 놓이고 그 앞과 옆에는 꽃들이 놓였다. 우리는 모두 흑과 백으로 갈아입고서는 남자들은 팔에 선이 그어진 띠를 찼으며 여자들은 머리에 핀을 꼽았다. 곱다, 당신이 그리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아무 색 없이 빛바랜 얼굴도 당신은 곱디 곱다 우리 손녀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여전히 당신이 이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집에 가자고 이곳에 당신을 찾으러 온 것만 같았다.
그렇게 당신을 만나러 사람들이 다녀갔다. 하나둘씩 들어와 당신 앞에 꽃을 놓고서는 몇 마디 인사를 전하고 나면 그 옆에 서 있던 우리는 찾아와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내가 맡은 일은 당신의 사진 앞에 놓인 한 송이의 꽃들이 어느새 가득해지면 다시 문 앞에 꽂아놓는 것, 벗어놓은 신발을 나란히 일렬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대단한 일은 아니더라도 정성을 다해 국화와 신발을 정리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친구들은 아침에 와서 종일 있다가 밤이 돼서야 간다고 했는데, 정말 당신의 친구들은 그날 바로 와서 당신에게 인사를 하고는 가장 가까운 상에 모여 벌건 국물과 벌건 마음을 안은 채 종일 자리를 지켰다. 그래도 당신의 친구들만큼은 과거의 추억들과 함께했던 기억들을 회상하며 웃으려 하였다. 당신도 오랜만이라며 그들과 함께 앉아있는 것만 같았다. 여전하다며, 보고 싶었다며.
하나둘씩 도착하기 시작한 화환은 어느새 방을 꽉 채우고도 복도로 뻗어 나갔다. 이미 저 높은 곳으로 떠났을 당신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소용도 없었겠지만, 그래도 당신의 마지막을 외롭지 않게 환히 밝혀주는 것 같아 보내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다 고마웠다. 아마 그들도 당신을 향해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당신이란 사람을 만나고 알게 된 고마움. 그날 그 공간을 채운 수많은 감정들 중 하나만 고를 수 있다면 고마움이 아니었을까.
고마워서. 또 고마워서.
고맙다는 말로는 모자라지만 당신의 존재가 고마워서. 당신의 인생이 고마워서.
당신이 우리의 가족이었다는 것이
당신이 나의 할아버지였다는 것이.
-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