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의 세상에
새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 내가 없는 동안 이곳에서는 [13]

by 일요일은 쉽니다


당신이 나의 세상에 새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 내가 없는 동안 이곳에서는



“어떻게 된 거야?”


도착한 후에 엄마는 병실을 한 번도 떠나지 않으셨다. 나는 친가에서 잠을 자며 왔다 갔다 했지만, 엄마는 낮과 밤을 모두 병실에서 보내셨다. 손가락 하나 힘 있게 움직이지 못하셨지만 그래도 여전히 소통은 하셨으니, 그 언제까지 될지는 몰라도 마지막으로 주어진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서.


“아침에 일어나셔서 오랜만에 밥도 반 공기나 드시고 TV도 보셔서 오늘은 밥도 드시고 기분이 좋으시네 했거든. 그러다 피곤하신지 눈을 감으시길래 낮잠 주무시나 보다 하고 할머니랑 옆에 있었는데, 조금 있다가 갑자기 간호사가 들어왔어. 뭐가 이상하다고.”


그러고 전개는 순식간에 펼쳐졌다. 오랜만에 편안하게 잘 주무시나 보다 했던 것과는 달리 모니터에 전달되던 수치는 점점 의식을 잃어가던 상태였고, 수치가 떨어져 이상하다 뛰어온 간호사를 뒤따라 병실에 의사들이 여럿 들이닥쳐 더 많은 기기를 몸에 연결하며 희미해져 가는 의식을 살리기 위해 순식간에 방은 혼란에 빠졌다. 병마와 기계의 싸움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꺼져가는 불빛을 다시 살리기 위해.


당신을 잡기 위해. 당신을 붙잡기 위해. 아직은 너무 이르기에 당신을 놓아줄 수 없어서.


원래는 중환자실로 가셔야 했지만, 큰삼촌이 비행기를 타고 오고 있던 길이라 좀 더 편안히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일반병실에 남기로 하였단다. 내가 도착한 시점은 이즈음에서 폭풍이 한차례 지나간 뒤였고, 고로 할아버지의 숨을 여러 군데 꼽혀있던 주삿바늘과 호흡기로 붙잡을 수는 있었지만 점차 희미해져 가는 것을 막을 길은 없었다.


정말 그날이 마지막 만남이 될 줄 아셨던 걸까. 이미 당신은 우리를 떠날 준비를 마치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항공사에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니 가장 먼저 내려 짐을 찾을 수 있게 조처를 하겠다고 하였다. 이제 모두와는 한 차례씩 인사를 하고 큰아들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삼십 분이라도 비행기가 일찍 도착하길 바랐지만 더는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할아버지가 버텨주시길 기도하고 삼촌이 빨리 도착하길 기도하는 것뿐.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연락이 닿아 짐을 찾자마자 단숨에 달려오신 삼촌이 병실에 큰 여행 가방을 끌고 들고 오시자 방 안에 있던 가족들은 홍해의 기적처럼 갈라졌다. 입구에 가방을 뒤로하고 침대 옆에 의자에 앉아 힘없이 올려져 있던 손을 꼭 잡고 삼촌이 제일 먼저 외치신 인사는 “아버지, 사랑해요”였다.


“아버지,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눈을 한 번 더 뜨실 힘조차 없던 할아버지가 겨우 인사를 받으셨을 때… 너무 늦게 온 것은 아닌지, 아니 너무 늦어서 죄송한 마음에 아들은 그저 손을 꼭 붙잡고 아직 들을 수 있을 만큼 의식이 남아있기를 바라며 계속해서 되뇌었다.


“아버지, 늦어서 죄송해요.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고 다시 들어온 의사는 MRI를 한 번 더 찍어 상태를 확인해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워낙 불안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기계들에서 몸을 분리한 채 MRI실로 침대를 올리는 것도 하나의 고비였고, 역시나 몸에서 연결장치들을 떼자마자 신호가 울리며 편안한 과정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욕심으로 인해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이미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을 암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해달라고, MRI를 찍어달라고, 아니 뭐든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뭐라도 하면 숨을 조금 더 잡고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미 의식을 많이 잃으신, 이미 뇌가 손상을 많이 입어 별 소용없는 상태에서도 검사해달라고 그랬다. 그 아무런 소용이 없을 줄 알면서도, 혹시나 무슨 희망이 생길까 하여.


병실이 또 한 번의 눈물바다가 된 후 우리는 애써 다시 침착함을 찾았지만, MRI를 찍고 다시 돌아오셨을 때는 그 결과를 보는 것조차 의미가 없을 정도로 할아버지는 완전히 의식이 없는 상태로 들어가셨다. 호흡기에 연결된 채 숨만 붙어있는 상황에서 할아버지와 더는 소통을 할 수도, 눈을 마주칠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병실 안에 침대와 의자에 둘러앉아 오랜만에 대가족이 다 모였으니 우리는 밝게 웃으며 그간의 소식을 전하려 노력했다.


“탄산물이라고?”


잠시 바닥에 내려놓았던 가방에서 탄산물 두 병을 꺼내 컵에 따라 다들 조금씩 맛을 봤는데, 탄산물이야 그 맛을 모르면 탄산음료의 달달함 없이 쓰기만 하기에 삼촌이 맛없다 하며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으니 잠깐이나마 모두가 웃었다. 그 옆에 오렌지 맛을 시음하시고는 그래도 이게 낫다며 고개를 끄덕이시니 할머니가 숟가락에다 오렌지 맛 탄산물을 조금 부어 할아버지의 목을 축이셨다. 의식이 없으신 할아버지는 삼촌처럼 쓰다거나 맛이 없다고 반응하실 수 없으셨지만, 당신의 목을 타고 넘어가는 물이 이미 먼 길을 떠나신 여정에 조금이나마 시원함으로 다가가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의식이 돌아오지 않으셨다. 여러 기계와 주삿바늘과 호흡기에 몸이 연결돼 침대와 벽이 한 몸이 된 듯 그렇게 계속 누워계셨다.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었다만 다시 잠잠해진 병실 안에서 할아버지를 지켜보고 있자면, 호흡을 이어 가시는 모습이 마치 파도에 휩쓸려 모래사장에 던져진 물고기가 파닥파닥 모래에서 몸을 튕기며 겨우 숨을 쉬는 모습과 같았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올라가던 턱과 방안의 모든 산소를 빨아들이려는 듯하고는 다시 내려가던 고개. 모래사장 위에서 헐떡이는 한 마리의 물고기 같았다, 나의 태산이.


당신은 나의 태산이었다. 우리의 태산이었다. 두 다리로 굳건히 서 있을 때나 몸을 누여 침대에 기대 있을 때나, 당신은 변함없는 우리의 태산이었다. 여전히 크고 높은 나의 태산이었다.


그러나 당신의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못한 채 수건으로 이마를 닦고, 팔과 손을 닦고, 숟가락으로 조금씩 당신의 목을 축이던 또 하나의 당신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던 건 왜일까. 둘이 만나 하나가 되었는데 더는 하나로 남을 수 없다면 다시 둘인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찢긴 채 반으로 남겨질 운명이라 그랬던 걸까. 그래서 당신도 의식을 잃은 상황에서마저 끝까지 손을 잡은 채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걸까.


“이렇게라도 계셨으면 좋겠다. 눈을 안 뜨셔도 좋고 말을 못 하셔도 좋으니, 이렇게라도 계속 계셨으면 좋겠다. 이렇게 만이라도.”


태산이 사라지는 것도 너무나 큰 아픔이지만, 세상이 사라지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로 미처 다 비교할 수가 있을까. 당신의 손을 닦으며 할머니는 계속 그 말만 되풀이하셨다. 이렇게라도 있어 달라고. 이렇게 만이라도 있어 달라고. 주어질 줄 알았던 수많은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고 고로 함께 그렸던 노년의 삶은 이제 이루어질 수 없게 됐지만, 이렇게라도 있어 달라고. 이렇게 만이라도 있어 달라고.


‘제발 조금만 더, 하루만 더 우리와 함께 있게 해주세요.’


그날 밤 병실은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큰삼촌이 지키기로 하셨다. 나는 작은삼촌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서 가장 가깝던 삼촌네 집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 다시 돌아오기로 하였다. 대충 손발과 얼굴만 씻은 채 방에 들어가 이불을 깔고 잠을 청하는데 평소에는 자다가 보쌈해 가도 모를 만큼 푹 잠이 드는 성향과 달리 그날 밤은 한참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알았던 거 같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생과 사의 사이에서 알았던 거 같다. 당신의 몸에 연결한 여러 가지 장치들로 당신을 우리의 곁에 더 오래 머무르게 하려 해도, 당신은 이미 생에서 사로 이어지는 다리를 넘어가고 있었다는 걸. 그렇게 우리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우리의 태산이.

나의 태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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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의 세상에 새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