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의 세상에
새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 차가운 두 뺨 [15]

by 일요일은 쉽니다


당신이 나의 세상에 새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 차가운 두 뺨



보라매에서 세브란스로 이송하기 위하여 구급차를 탔는데 보호자가 한 명 탑승할 수 있다 해서 할머니가 같이 타셨다. 침대를 고정하고 이동하는 그 삼십 분, 사십 분의 시간 동안 덜컹거리는 구급차 안에서 아무런 힘없이 흔들리는 당신의 모습이 마음이 아파 할머니는 당신의 얼굴을 품에 꼭 끌어안고 있으셨다 했다. 아직도 따뜻한데, 이렇게 따뜻한데. 당신의 얼굴도, 목도, 손도 여전히 이렇게 따뜻한데 아직 그 온기가 다 식지도 않았는데 당신이 이미 저 높은 곳으로 떠났다 하여 믿기지 않으셨다 했다.


당신의 체온은 조금씩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으니 그 온기는 유지될 온기가 아니었다. 장례식장으로 이동한 후 당신은 우리가 다시 볼 수 있는 그 날까지 차가운 실내 안에서 몇 날 며칠의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당신은 홀로 추웠을까. 또 홀로 외로웠을까. 바로 곁에 우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결국 혼자 건너야 했던 다리였으니 걸음을 옮기며 당신은 조금 쓸쓸했을까. 또 조금 씁쓸했을까.


당신을 다시 만나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당신을 보는 날이었다. 우리의 재회를 입관식이라 불렀다. 우리는 예정된 시간에 방을 나와 다른 방으로 들어갔는데 유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건너편에 당신은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대로 누워있었다. 다만 그 어느 때보다 당신은 손가락 하나의 미동도 없이 잠잠했다. 그렇게 입관식이 시작되었다.


당신에게 새로운 옷을 입히고 새로운 신을 신겼다. 옷을 한 벌 맞춘 듯이 모든 게 당신에게 딱 맞았다. 당신의 머리를 정리하고 가르마를 타 빗으로 넘겼다. 당신의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그렇게 당신은 새 단장을 하였다. 그 모든 일을 하는 동안 당신은 여전히 손가락 하나의 미동도 없이 잠잠했다. 그렇게 입관식이 계속되었다.


당신이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모든 준비를 마쳤을 때 유리 하나를 사이에 둔 채 갈라져 있던 우리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그 문턱을 넘어 당신이 있던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가 제일 앞에 계셨는데 할머니는 들어가시자마자 애써 눈물을 닦으시며 할아버지는 가르마를 오른쪽으로 안 타신다고, 왼쪽으로 타신다며 빗으로 다시 직접 머리를 빗겨주셨다. 나도 뒤따라 들어갔는데 멀리서는 새로운 옷을 입어 기분이 좋아 보이던 당신을 가까이서 보니 무언가 여러 가지 감정들이 밀려들어 왔다. 그렇게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당신의 얼굴을 볼 기회가 주어졌다. 마지막이었다.


한 명씩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가 작별인사를 나눴다. 짧은 인사에도 깊은 말들이 오갔다. 감사하다, 죄송하다, 사랑한다, 더는 아프지 마셔야 한다… 엄마의 차례가 되었을 때 엄마는 당신 앞에 다가가 오열을 하셨다. 결국 아빠에게 기댄 채 나오셔야 했을 만큼 대답 없는 당신 앞에서 울음을 쏟아내고도 더 삼키셨다. 그렇게 우리는 마치 미리 정해 놓은 듯 전한 마지막 인사는 같았지만 그 속에 담은 개인의 기억들은 달랐다. 누군가에게는 아버지였으며 누군가에게는 아들이었고, 누군가에게는 할아버지였으며 누군가에게는 손주였고, 누군가에게는 스승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제자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남편이었으며 친구였고 또 동반자였다. 당신은 산이자 바다였고 하늘이었으며 땅이었고 햇빛과 동시에 그늘이며 삶이고 사랑이었다. 결국 우리 모두에게 사랑이었던 당신은 그렇게 한 사람이지만 각기 다른 의미와 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왔고 또 우리를 떠나갔다.


나의 차례가 되어 당신 옆에 서게 되었다. 여전히 손가락 하나의 미동 없이 잠잠한 당신 곁에 서니 당신의 감긴 눈과 멈춘 호흡이 전해졌다. 마음이 아팠다. 당신은 늘 나를 보고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아주었는데, 당신은 왜 오랜만에 나를 다시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잠잠히 있었을까. 왜 그렇게도 가만히, 왜 그렇게도 조용히 그곳에 누워있기만 하였을까. 그래서 나는 떨리는 나의 손을 뻗어 당신의 손을 지나 평온해 보이던 당신의 얼굴에 가져가 조심스레 당신의 뺨에 올려놓았다.


당신은 어렸을 적 내가 울 때 괜찮다며 내 어깨를 토닥여주고 내 눈물을 닦아주었지만 나는 처음 만져보는 당신의 뺨이었다. 처음 만져보는 당신의 얼굴이었다. 근데 차가웠다. 너무 차가웠다. 그 촉감을 무어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갑고 또 딱딱했다. 이제 겨우 내가 처음으로 당신에게 손을 내밀었는데, 그로부터 며칠 전까지만 해도 따뜻하던 당신은 너무 차갑고 또 딱딱했다.


“할아버지…할아… 버지… 할… 아버지…”


나는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는데. 나는 당신에게 죄송하다는 말도 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못했는데. 그 순간마저 나는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도, 죄송하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당신의 이름 넉 자밖에 입 밖으로 밀어낼 수가 없어서 이미 삶이 멈추어버린 당신을 부르고 다시 불렀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당신과 나에게 주어졌던 시간 동안 한평생 불렀던 그 넉 자. 그 넉 자밖에 부를 수 없어 다시 부르고, 또 부르고.


“할… 아버지…”


당신 앞에서만큼은 강하고 싶었던 내가 결국에 당신의 뺨을 어루만지고 그대로 주저앉아버렸을 때, 그리고 갓 태어난 아기처럼 울음을 쏟아내던 내가 결국은 다시 물러서야 했을 때, 나에게 주어진 잠깐의 시간 동안 내 입을 타고 전해진 소리는 넉 자였던 당신의 이름이 전부였지만 당신은 알았으리라. 그 안에 내가 전하고 싶었던 그 모든 말과 그 모든 마음을.


나에게 그 넉 자란

태산이었고 또 기둥이었으며,

하늘이었으며 또 땅이었고,

고마움이었고 또 죄송함이었으며,

존경이었으며 또 따스함이었고,

그늘이었고 또 위로였으며,

나에게는 그렇게 삶이었고

모두 사랑이었다.


할아버지.


그 넉 자에 모든 걸 담으려 해도 미처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나의 시간이었고, 나의 추억이었고, 또 나의 인생이었다.


당신은 나의

할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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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의 세상에 새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