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의 세상에
새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 땅속으로 묻으며 [16]

by 일요일은 쉽니다


당신이 나의 세상에 새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 땅속으로 묻으며



흙으로 지어져 흙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당신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쳤다.


순식간에 절차가 마무리되어갔다. 마지막 날밤은 함께 계시고 싶다며 장례식장을 할머니와 엄마, 삼촌들이 지키기로 하였고 그다음 날 오전에 다시 모인 우리는 관을 차에 싣고 당신의 새로운 집으로 이동할 일만이 남아있었다.


당신은 한평생 그렇게 꼼꼼하신 분이 또 없다 할 만큼 매사에 준비가 철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장지를 봐 두시지 않으셨다. 혹여나 조용히 예정하신 곳이 있으려나 해서 찾아봤지만, 따로 찾아낸 것이 없어 우리는 용인에 산이 있고 나무로 둘러싸인 곳으로 보금자리를 찾게 되었다.


그곳으로 떠나기 전 당신의 사진을 들고 당신을 누인 관 앞에 걸어갈 사람이 필요했다. 손주 중에서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지만 관습상 남자가 들어야 한다기에 나는 넘어갔고, 사촌 동생은 초등학생이라 너무 어려서 그 큰 사진을 들기에는 힘들 거라 하였다. 그래서 사진은 사위인 아빠가 들기로 하셨고 친척의 친구들이 도와주기로 하여 관을 들 사람들도 다 찾고 그렇게 또 한 번 마지막으로 당신을 새로운 곳에 모시기 위해 길을 떠났다.


장례식장에서 차가 기다리고 있던 입구까지 그렇게 짧았던 길이 또 있을까. 이미 당신과 어제 인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길의 끝에선 정말 당신과 영영 안녕인 거 같아 천 리 같고 만 리 같기를 바랐던 길은 몇 걸음 걷지 않은 것 같았는데 벌써 끝이 나버렸다. 한평생 우리를 어깨에 짊어지셨던 당신을 처음으로 우리가 어깨에 메고서는 당신이 감당해내야 했던 무게에 비해 터무니없이 가벼운 길을 걷고 그 길의 끝에서 당신을 먼저 차에 태워드렸다. 우리는 그 뒤에 있던 버스에 올라타 뒤 따라 출발했는데,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더니 당신을 태우고서는 마지막으로 당신이 지으시고 몇십 년의 세월을 보내신 서교동 집을 지나쳤다. 이제 당신이 그 집에 다시 발을 들일 일은 없었으니 이로써 이 집이 당신에게, 또 당신이 이 집에게 영원한 추억의 일부로 남게 되는 것이었다. 병원에 검사를 갔다 오시고는 힘겨운 발걸음으로라도 다시 그 파란 대문을 열고 들어오실 것만 같았는데, 당신을 뒤따라 집을 지나치면서 무언가 속에서 울컥하고 올라와 목에 걸린 듯 한동안 눈물이 쏟아졌다. 여기서 내려서 대문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당신은 왜 당신의 집을 두고서 멀리 떠나버리셨던 걸까.


한 시간이 좀 넘는 시간을 달려 처음 와보는 곳에 도착해 모두 다 버스에서 내리고 천천히 당신을 들고 걸음을 옮겼다. 산이 많고 나무도 많은, 자연으로 둘러싸인 공기 좋고 바람 좋은 곳이었다. 당신을 그곳에 편히 누이고 마지막으로 예배를 드린 후 삽으로 흙을 조금 퍼 당신 위에 고이 펴 드렸고 전날 미처 당신의 목에 걸지 못했던 당신의 십자가 목걸이를 같이 넣어달라며 부탁했다. 그러고 우리는 이별을 말하기가 아쉬워 한참을 발걸음을 떼지 못하다 결국 금방 또 오겠다는 인사와 함께 당신 없는 세상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사람 하나의 차이였을 뿐인데, 당신 한 사람이 너무나도 큰 사람이라 당신을 그곳에 두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휘청거렸다. 함께 돌아가야 하는데,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초인종을 누르고 파란대문이 열리면 당신의 이름 넉 자를 부르며 신나게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가던 그 시절처럼 함께 해야 하는데. 지금 이렇게 돌아서면 안 될 거 같은데, 당신을 이곳에 남겨둔 채 우리만 떠나면 안 될 거 같은데, 근데.


빨리 집에 가서 할머니가 차려주시는 밥을 먹자고 말하고 싶지만

복숭아가 먹고 싶으니 시장에 가서 같이 고르자고 말하고 싶지만

돌아서서 당신께 내 이름을 한 번만 더 불러달라고 또 말하고 싶지만


왜 당신은 끝끝내 우리만 보낸 채 그곳에 남겠다고 하였는가.


왜 이별은

단 한 번도 늦은 적이 없는가.


왜 이별은

항상 한걸음 너무 일찍 다가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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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의 세상에 새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