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의 세상에
새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 호흡이 다할 때까지 [12]

by 일요일은 쉽니다


당신이 나의 세상에 새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 호흡이 다할 때까지



“삼촌이 티켓을 구했대.”


집에 도착했다. 미국에서의 비행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였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쪽은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였던 걸까. 도착한 지 사흘 만에 계획이 변동된 것은.


“정말?”

“응, 원래 티켓이 없어서 이주 후에 들어오려 했는데 갑자기 자리가 나서 이번 주에 들어온대.”

“그렇구나.”

“우리도 일정을 당겨야 할 거 같아.”

“언제로?”


방에서 물을 마시러 나오자 거실에서 달력을 보시던 엄마가 다가오셨다.


“아무래도 할아버지가 이번 주에 떠나실 거 같아. 갑자기 티켓이 구해진 것도 그렇고… 엄마랑 먼저 서울에 들어갈래?”


그러하자 했다. 어차피 내게는 가족과 함께 있는 곳이 집이었기에 몇 주 있으려던 일정이 불과 삼 일로 줄어들었다 해도 가족과 함께라면 그 어디든 집이었다.


호찌민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비행 편을 바꾸는 것은 미국에서 표를 구하는 것만큼 어렵지 않았다. 고로 우리는 바로 그다음 날 한국에 들고 갈 선물을 준비하고 짐을 싼 후 저녁에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짧았던 일정이 아쉽기보다는 한편으로 홀가분했다. 할아버지의 의미심장했던 인사가 별다른 의미를 띄지 않을 수 있게 금방 다시 돌아가는 거 같아, 또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아 기뻤다.


하지만 기쁨은 거기까지였다.


5월 셋째 주 나와 할머니와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낸 건 일상이 아니라 예외였다는 걸 보여주는 듯 할아버지는 내가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다시 입원하셨다.


그래도 괜찮으신 거 같았다. 아니, 그래도 괜찮으시길 바랐다. 그저 집에 있는 것보다 혹시나 통증이 심해지실 때 병원에 왔다 갔다 할 필요 없이 편리해진 것이 다 이길 바랐다. 그뿐이길 바랐다.


그런데 왜였을까. 일주일도 안 돼 돌아온 이곳은 전혀 다른 상황 속에 돌아가고 있었다. 입원은 입원을 넘어선 어떠한 의미를 띄고 있는 것 같았고 5월은 가정의 달이라는 따뜻함과는 달리 가을보다 이별하기 힘든 계절이 되어가는 거 같았다. 그렇기에 당신은 알고 있었던 걸까. 나와 함께한 한 주가 당신의 온전한 마지막 한 주가 될 것이었다는 걸.


“아버지, 저 왔어요.”


엄마를 따라 지난번과는 다른 병실로 들어가 안에 있던 가족들과 인사했다. 내가 처음 도착했을 때와는 달리 침대에 누워계신 모습이었고, 여전히 눈을 맞추고 말도 하실 수 있었지만 전에는 못 봤던 많은 장치가 몸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도 나는 몇 주 전에 도착해 할아버지의 모습을 봤는데, 겨울보다 급격히 나빠지신 할아버지를 엄마가 직접 뵈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한동안 할아버지의 손을 잡은 채 아무런 말씀을 못 하셨다.


딸이 왔다. 아끼고 사랑하는 딸이 왔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왔다. 제일 먼저 떠나보내고 제일 오래 떠나보내었던 딸이 왔다. 그래, 라고 말씀하시고 잡은 두 손을 계속 잡고 계시기밖에 더는 못하셨지만, 그 방에 있던 사람들은 다 느낄 수 있었다. 그 그리움과 그 반가움에 대한 어떠함을. 엄마는 결국 눈물을 글썽이셨다. 한없이 강하기만 하셨던, 온 집안을 업고 책임지셨던 아버지가 주삿바늘과 침대에 기대 호흡을 이어가고 계신 모습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여러 책과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태산 같던 부모님의 약해진 모습이라 하더라도, 정작 때가 되면 개인이 겪어내야 하는 그 무게를 감히 저울로 달 수 있을까. 한없이 크기만 하던 분이 어느 순간 나보다 작아져 버림으로써 철없던 마음이 무거워져 버리게 되는 그런 시간이 왔음을.


그래도 할아버지는 기분이 좋아지신 듯했다. 그래서 말씀도 좀 하시고 뭐가 먹고 싶다며 찾기도 하셨다. 그랬던 것 중에 맥주가 있으셨는데 생전 안 드시던 맥주를 갑자기 찾으셨다. 맥주는 안 된다 하니 그러면 콜라라도 달라고 탄산음료를 찾으셨다. 드시고 싶다는 마음과 몸에 좋지 않아 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교차하여 대화가 오가고, 그럼 탄산수는 어떠냐는 질문에 탄산수는 안 좋아하실 거 같은데 하다가, 그러다 저녁이 늦어 엄마는 병실을 지키고 나는 친가로 가기로 했는데 도착해 짐을 풀고 잘 준비를 마치니 갑자기 고모가 부르셨다.


“이거 새로 산 기계인데 맛있어. 먹어봐.”


때로는 인생을 누가 다 계획하고 준비해놓은 것처럼 흘러가는 것이 더욱 피부에 와 닿을 때가 있다. 대단한 일들이 들어맞을 때도 느껴지지만, 놓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작은 일들이 들어맞을 때도 느껴진다. 그날 나는 서로 완벽하게 물리며 완성된 퍼즐 조각들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할아버지가 느끼시던 갈증에 대한 해소를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탄산물 두 병을 만들고 냉장고에 넣고서는 잠이 들었다.


“엄마, 거기가 무슨 지하철역이지?”

“응, 그게…”


다만, 한 손에 쥔 가방에 든든한 탄산물 두 병을 넣고 집에서 나가려던 중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엄마의 목소리는 어제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지금 많이 아프셔. 택시 타고 올래?”


지갑에 지폐 몇 장을 구겨 넣었다. 언덕 밑까지 걸어 내려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거 같아 급히 고모에게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에 내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지하철역에 다다랐을 때 혹시 몰라 던져 넣은 옷 몇 가지가 들은 가방과 탄산수 두 병이 든 가방을 양손에 쥔 채 앞에 신호등 앞에 멈춰 선 택시를 향해 달렸다. 황토색 문을 열고 몸을 던지듯 실은 채 제대로 된 문장도 구성하지 못하고 내뱉은 단어는 셋.


“아저씨, 보라매병원. 빨리요.”


나의 다급함이 전해졌는지 자유로운 차선변경과 감속 카메라가 있다는 알람에도 줄지 않던 속도. 그 후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그저 창밖만 보며 너무 늦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뿐.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는 걸 되새기는 것뿐. 간절히 마지막 인사가 아니기를 바랐고 간절히 마지막 만남이 아니기를 바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그저 최대한 빨리 가달라고 부탁하는 것뿐.


“택시 탔나?”

“네.”

“그래, 걱정하지 말아라.”

“네…”


정신없이 뛰어나가던 모습이 마음에 걸리셨던 할머니는 십여 분쯤 후 전화를 걸어오셨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만 조용히 뒷좌석에 울고 있던 걸 들키고 말았다. 네라는 한 글자의 대답을 하면서도 목소리가 떨려 숨소리만 한가득 전하니 아저씨는 액셀러레이터에 조금 더 힘을 실어 밟으시는 거 같았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가는 상황을 굳이 현실에서 직접 재연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그 순간 뒷좌석에 앉아 내가 할 수 있던 것은 그저 ‘너무 늦지 않게, 제발 늦지 않게’라고 중얼거리는 것밖에 없었다.


할아버지와 몇 번 같이 온 적이 있는 건물이 보일 때쯤 지갑을 꺼내 지폐를 준비하고 아저씨 옆좌석에 내려놓았다. 입구까지 가기에는 차가 너무 밀려있어서 양손에 가방을 쥔 채 문에서 뛰어내리다시피 달려나가 앞뒤로 심하게 흔들리던 가방을 끌어안고 뛰어갔다. 입구를 통과하고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기에는 너무 오래 걸릴 거 같아 엘리베이터로 뛰어들어갔는데, 나의 마음을 알 리가 없는 사람들은 십 층에 가기까지 매 층에서 천천히 내렸다. 겨우 십 층에 도착해 병실까지 숨도 안 쉬고 달려가니 이미 열려 있던 문 안으로 들어갔을 때 사태는 한층 진정되어있는 것 같았지만, 아직 두 명의 간호사가 양쪽에 붙어 기계를 확인하며 이것저것 조절하고 있었다.


“아버님, 서윤이 왔어요!”


내 발걸음이 다급했던 만큼 그 순간 내 존재를 알리는 목소리도 다급했다. 바로 앞에 있는데도 마치 옆방에 있어 소리 지르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듯 외숙모가 큰 소리로 누워계신 할아버지께 외치니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남은 힘을 다하여 눈을 떠 바라보셨다. 왔구나, 그래, 잘 왔다. 주어졌던 시간은 단지 몇 초. 그렇게 찰나의 순간 눈을 마주쳤음에도 그마저도 너무 힘들어 보이셨다.


“할아버지… 탄산물… 이거… 만들어왔는데…

할아버지… 물… 여기 물… 할아버지… 할아버지…”


그렇게 찰나의 순간 눈을 마주친 후 힘이 다한 듯 할아버지는 다시 눈을 감으셨다.


“할아버지… 여기… 이거…

할아버지… 제발… 제발…”


탄산물 두 병을 번쩍 들고 다시 눈을 감으신 할아버지께 보여드리며 아무리 탄산물을 만들어왔다고 흐느껴도, 눈을 뜨는 것조차 너무 버거워져 버린 당신은.


“여기 하나는… 그냥 탄산물… 하나는… 오렌지 맛… 또 만들어 올 수 있는데… 더 만들어 올 수 있는데…

이거 빨리 드시고… 내가 또 만들어 와야 하는데…

내가 만들어온 건데… 이거 내가… 만들어온 건데…”


실연당한 사람처럼 문장 하나 구성하지 못한 채 주절주절 마음을 쏟고 또 쏟고, 쏟아내다 또 쏟아내고. 그 침대 위에, 그 바닥 위에 모든 것을 토해버렸다.


“제발…

할아버지…

제발…”


그러다 두 병의 물의 무게가 다시 덮쳐 올 때, 어쩔 수 없이 내려가는 팔과 함께 시선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을 다시 감아버리신 할아버지를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불러도 대답 없는 할아버지를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보러 와 줘서 고맙다.’


그 인사가 정말 마지막이었던 거 같아서. 그 인사가 정말 끝이었던 거 같아서.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던 애써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던 그 인사가, 그 인사가 정말 우리의 결론인 거 같아서.


‘할아버지 보러 와 줘서 고마워.’


그렇게 서서 한참을 울었다. 서울에 있던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눈이 빠져라 펑펑 울었다. 다만, 그 순간에도 여전히 다 듣고 계실 할아버지가 모르시게 입을 틀어막은 채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이 감정들이 새어나가지 않게, 내 마음이 새어나가지 않게, 이 아픔이, 이 괴로움이 새어나가지 않게 울었다.


당신이 나의 작별인사라 생각할까 봐.

당신이 나의 안녕이라 생각할까 봐.

그래서 당신이 떠날까 봐.

이대로 떠날까 봐.


떠났다 돌아와도 그 자리에 계실 것만 같아 당연히 기다리실 것만 같아 지금 나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 정말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만 같아 이대로 영영 안녕이 되어버릴 거 같아 꺼내지 않았는데. 그래서 나는 말하지 않았는데.


파도같이 흔들리는 어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이렇게는 안 된다고

제발 이렇게는 안 된다고.


제발.


제발.



-

당신이 나의 세상에 새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하여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