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별 [11]
-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내일 하나 남았어. 그러고 끝나니까 바로 짐 싸고 다음 날 오전 비행기로 가면 돼.’
‘그래,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고.’
‘응, 끝나고 다시 연락할게.’
‘그래, 그리고 - ’
일요일 저녁 꽤 늦은 시각. 기숙사 옆 컴퓨터실에서 공부하다가 밤이 늦어 마무리하던 중 보낸 연락에 돌아온 답장이었다.
‘할아버지가 안 좋으셔. 도착해서 다음 날이나 바로 뵈러 가.’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했기에 얼마나 안 좋으신지 알지 못했다. 학기가 마무리되어가던 시점에 중요한 시험들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지라 방해되지 않게 그때까지 아무도 내게 미리 말을 하지 않았다. 알게 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도, 혹은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더욱 마음만 쓸 테니까. 그래서 이미 몇 주 전부터 점점 악화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좀 더 안 좋아지셨다는 정도의 애매한 소식만 전해왔다.
덕분에 흐트러짐 없이 마지막 시험을 잘 마무리했다. 시간이 빠듯했던지라 그다음 날 정신없이 온종일 짐을 싸고 친구들 편에 가방을 여기저기 맡긴 후 23킬로짜리 짐가방 두 개만 든 채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 순간에도 그저 돌아간다는 기쁨에 취해있었지 아직 심각하던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할아버지!”
반년 만에 돌아온 한국에는 할아버지가 집 대신 병원에 잠깐 입원해 계신다고 했다. 고로 도착한 날 친가에 짐을 푸르고 인사를 드린 후 다음날 해맑은 미소를 띠고 반가움을 한가득 안고서는 힘차게 병실 문을 밀었다. 그때까지 나는 폐에 물이 차는 게 어떤 고통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큰소리로 신나게 할아버지를 불렀고, 안에 계시던 이모할아버지는 바로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셨고, 뒤늦게야 안정을 취해야 하므로 큰소리를 내지 말아 달라는 안내를 보았다.
“저 왔어요.”
한 톤 낮아진 목소리로 할아버지 침대 옆에 다가가 인사를 드리고 병실에 계시던 할머니와 이모할아버지, 이모할머니에게도 인사를 드렸다. 할아버지가 입원하신 걸 직접 본건 처음이었지만, 그래도 날 보고는 흐뭇하게 웃으시던 미소에 그 순간에도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할아버지는 여전하셨다. 여전히 나의 할아버지셨다.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댄 채 앉아계시긴 했지만, 그래도 나를 보며 지으시던 미소는 반년 전 내가 기억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2인실이었는데 옆 침대가 비어있었다. 그래서 식구들도 더 자유롭게 드나들고 할아버지도 조금 더 편안하게 방을 쓰실 수 있었다. 인사를 마치고 그 옆에 소파에 앉아 냉장고에서 귤과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으며 지난 학기는 어땠는지, 지난 한 해는 어땠는지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계셨고 별다른 장치를 몸에 달고 있지는 않으셨다. 장기 입원하신 건 아니고 최근에 계속 잠깐 입원하셨다 또 퇴원하셨다 반복하셨다기에 그때까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 모든 게 어떤 의미였는지.
동생이 아직 학기가 끝나지 않아 가족은 베트남에 있었고 나는 베트남에 가기 전 한 2주 정도의 시간을 서울에서 짐을 풀고 잠시 쉬며 보내기로 하였다. 그중 첫째 주는 친가에서 보내고 둘째 주를 외가에서 보냈는데, 병원에서 인사드린 후 다시 뵌 할아버지의 모습은 다행히도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였다.
왜였을까. 병원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오히려 집에 돌아왔을 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건강은 생각보다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할아버지! 할머니!”
파란 대문 앞에서 늘 누르던 초인종을 누르고 조금 후 문이 열렸을 때 한 주간 필요한 물건들을 챙긴 짐가방을 끌고 신나게 마당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할아버지는 마당 왼편 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계셨다. 할머니는 그 옆 둥그런 테이블에 앉아계셨고 테이블 위에는 전화기와 대야, 그리고 젖은 수건이 있었다.
“뭐 하세요?”
할아버지는 물이 가득한 대야에 발을 담그고 계셨고 그때 나는 처음 보았다. 조금 이상할 정도로 퉁퉁 부어있던 할아버지의 두 발을.
물이 가득 찬 대야 안에 퉁퉁 부어있던 두 발. 그건 단순히 좀 피곤하면 다리가 붓는 느낌의 부은 게 아니라 누가 봐도 보통 사람의 발 크기보다 배로 크다 느낄 만큼 많이 부어있는 모양이었다. 이상했다. 누가 봐도 이상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조금씩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별로 안 좋으시다는 게 어떤 의미였는지.
원래 사람은 떠나기 전에 손이 붓고 발이 붓는다.
뒤로 살짝 기댄 채 편안히 앉아계신 거 같았던 모습은 다시 보니 몸에 아무런 기운도 남지 않아 온전히 의자에 몸을 지탱한 채 앉아계신 모습이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옆으로 가 테이블 위에 있던 수건으로 발을 닦아드리며 부은 발을 마사지하듯 주무르셨다. 그리고 조금씩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한 내 눈에는 발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힘들어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의 무지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자면, 시험 준비를 하던 내게 ‘폐에 물이 차서 조금 불편하시다’라는 말을 정말 평소보다 조금 불편하신 정도로 받아들였다. 몸이 안 좋으셨던 것도 어언 5년.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더 아픈 것의 차이였지 병은 그 시간 동안 내내 할아버지를 따라다녔기에 ‘좀 더 안 좋아지셨다’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한 것은 이상할 만큼 부어버린 할아버지의 발을 본 후였다. 그리고 그날, 다시 안으로 들어가자는 말과 함께 혼자서 걸음조차 떼지 못하시며 온전히 할머니에게 기대 걸어 들어가시는 모습에 나는 뒤늦게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에 대한 어떠함을.
일주일.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이었다. 5월 셋째 주를 외가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셋이서 보내고 그 후 가족과 시간을 보내러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주일은 기존에 보냈던 수많은 일주일과는 많은 면에서 달랐다. 원래는 나와 할머니가 같은 방에서 자고 미닫이문을 하나 사이에 둔 채 그 옆방에서 할아버지가 주무셨는데 처음으로 우리는 셋이서 나란히 이불을 펴고 누웠다. 원래는 할아버지가 음식 가득한 상을 부엌에서 방까지 들고 오셨는데 지금은 숟가락으로 거의 한 입도 떠서 제대로 드시지 못하셨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가슴을 철렁하게 할 만큼 할머니의 이름을 부르시거나 혹은 그조차도 말할 힘이 없어 내가 뛰어가 모셔오면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등을 쓸어내리시며 말 못 할 괴로움 가득한 속을 진정시켜 주셨다.
“선희야, 선희야…”
“네?”
“할머니…”
그래도 조금 나아지시는 거 같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가시면 입원을 해야 할지 아니면 집에 돌아가셔도 좋은지 결과에 따라 결정됐는데, 내가 있던 그 주 수요일에 할머니와 함께 병원에 가신 할아버지는 다행히 입원은 안 해도 된다 했다며 할머니와 함께 다시 돌아오셨다. 다만 대문에서 현관까지 걸음을 한 번에 옮기시기가 어려워 중간에 마당 왼편에 있던 의자에 앉아 한참을 쉬셔야 했다. 이전에는 한걸음에 달려나가시던 그 거리가, 이제는 그 어떤 거리보다도 멀게만 느껴지게 되었다.
나는 그 옆 테이블에 할머니가 내려놓으신 짐을 집 안으로 옮기고 부엌에서 물을 들고나오시는 할머니를 따라 다시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숨이 차고 힘이 없어 멈춘 게 아니라 나무 아래 앉아 흙냄새를 맡으러 나와 있는 것처럼 앉아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하늘을 바라보다가 해가 지려 할 때 즈음 양쪽에서 할아버지를 부추기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일주일이 언제 그리 빨리 갔을까. 오랜만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나, 우리 셋이서 집을 지킨 한 주였다. 이전과는 매우 달랐지만 우리는 그저 그 한주만큼은 온전히 셋이서 집에서 보낼 수 있었기에 감사했다. 만약 그마저도 시간을 쪼개 반은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면 그 마지막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할아버지는 마지막이라 알고 계셨던 그 마지막이.
“서윤아.”
생각해보면 평소에 할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방학에 외갓집에 갈 때면 함께 밥을 먹고 같이 시장에 다니고는 했지만, 그 시간들을 필요한 소통 외에 말로 채운 적은 별로 없었다. 쑥스러움이었을까. 할아버지가 안방에서 컴퓨터를 켜고 일을 하시면 그 옆에서 나도 숙제를 했고 TV를 보시면 그 옆에서 나도 TV를 보았지만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는데 떠나기 전날 할머니가 부엌으로 가시고 우리 둘만 방에 남아있던 순간 할아버지가 나를 부르셨다.
“네.”
“보러 와 줘서 고맙다.”
보러 와 줘서 고맙다.
보러 와 줘서 고맙다…
그 순간 그 말이 마음에 꽂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갔다 금방 다시 다 같이 오지 않냐 아무렇지 않은 듯 답을 했지만, 나와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건네시던 할아버지의 얼굴은 진지해 보였다. 십몇 년을 떨어져 지내면서 방학 때 왔다 가도 한 번도 그런 의미심장한 인사를 건네신 적이 없었는데 할아버지는 그 날 왜 그렇게도 아리게 말씀하셨을까. 언제부터 고맙다는 말이 그렇게 마음 아픈 말이 되었던가. 당신은 아셨던 걸까. 그것이 마지막이 될 것을.
“할아버지 보러 와 줘서 고마워.”
그러면 뭐하나.
나는 몰랐는데.
나는 인사를 못 했는데.
떠났다 돌아와도 그 자리에 계실 것만 같아 당연히 기다리실 것만 같아 지금 나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 정말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만 같아 이대로 영영 안녕이 되어버릴 거 같아 꺼내지 않았는데. 그래서 나는 말하지 않았는데.
나도 감사하다는.
이제껏 나를 지켜주셔서.
나의 인생에 한 조각이 되어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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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