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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있잖아요

이영표, “생각이 내가 된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리더는 항상 사람을 최우선에 둔다

by 일요일은 쉽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자


축구에서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나는 축구를 시작해서 은퇴하기 전까지 약 200여 명의 국내외 지도자들과 함께 축구를 했다. 그중 약 70명은 한국인 지도자들이었고, 나머지 130여 명은 영국,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 벨기에, 아르헨티나 등 외국인 지도자들이었다.


많은 지도자를 만나서 축구를 해 보니, 새로운 감독이 부임하고 일주일 정도 함께 생활을 하다 보면 감독이 말하는 방법이나 표정, 제스처를 통해 감독의 성향은 물론 감독의 능력까지 가늠할 수 있었다. 어떤 감독은 무뚝뚝하면서도 책임감이 강한 반면, 또 어떤 감독은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이기적으로 돌변하기도 했다.


결론적 말해서, 누군가 나에게 '축구감독 곧 리더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 하나를 뽑아 달라'고 한다면 나는 축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나 능수능란한 전술 운영과 용병술, 혹은 기가 막힌 훈련 프로그램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에게 리더십의 정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다.


언젠가 국가대표 팀 평가전을 위해 선수들이 파주에 소집되었다. 다음 날 평가전을 앞두고 한 외국인 감독이 미팅을 했는데, 말 그대로 전술이 정말 좋았다. 미팅이 진행되는 동안 속으로 '내일 저렇게 하면 무조건 이기겠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실제 평가전에서 우리는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경기가 끝나고 감독은 이렇게 인터뷰를 했다.


'내 전술은 완벽했지만 선수들이 따라오지 못했다.'


사실이었다. 정말 감독의 전술은 완벽했고 선수들은 따라가지 못했다. 그는 훌륭한 전략가였고 많은 축구 지식이 있는 감독이었지만 결코 좋은 감독은 아니었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몰랐다.


축구는 똑같은 선수들이 똑같은 상대 팀과 똑같은 경기장에서 똑같은 시간에 경기를 한다 할지라도 벤치에 어떤 감독이 앉아 있느냐에 따라서 경기의 승패가 결정된다.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화려한 전술이나 기교 넘치는 용병술보다 선수들의 마음가짐이고, 그 마음가짐을 지배하는 사람이 바로 감독이다. 또한 축구는 선수와 선수 사이에 주인 없이 떨어지는 공을 누가 가져가느냐에 따라 경기를 누가 지배할지 결정되는데, 주인 없는 공을 가져오게 만드는 사람 역시 감독이다.


나는 14년 동안의 프로선수 생활 중에서 히딩크 감독과 5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특히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에서 축구할 때를 잊을 수가 없다.


히딩크 감독은 중요한 경기거나 특별히 약한 팀을 만났을 때, 그리고 특히나 우리보다 강팀을 만났을 때는 항상 경기 직전 5분 스피치를 했다. 5분 스피치가 끝나고 나면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교만했던 마음이 겸손으로 바뀌었고, 두려웠던 마음이 안정을 되찾았으며, 심지어 마음 깊은 곳에서 '내가 오늘 감독을 위해 죽도록 뛰어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나왔다. 어떻게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에게 그러한 마음을 심어 줄 수 있었을까?


히딩크 감독은 언제나 일상에서 선수들 각 사람을 배려했고, 언제나 목표가 뚜렷했다. 그리고 목표는 언제나 사람이었다. 히딩크 감독의 생각은 이러했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이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팀이 이기기 위해서는 선수가 잘해야 하며, 선수가 잘하기 위해서는 감독인 내가 선수가 잘하도록 도와야 한다.'


히딩크 감독은 팀을 이기게 하기 위해 선수를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을 잘하게 만들어서 팀을 이기게 하는 리더였다.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하던 때의 일이다. 훈련 중에 선수들은 같은 실수를 종종 범하기도 한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이 어떤 선수가 실수를 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넘어가고, 또 어떤 선수가 실수를 하면 고함을 치며 엄청나게 화를 냈다. 나는 속으로 '이건 차별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는데 누구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넘어가고, 또 누구에게는 화를 낸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그 누구도 이중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그 상황에 대해 히딩크 감독에게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어떤 행사에서 히딩크 감독을 만난 내가 그 이유를 캐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고함을 치거나 화를 내면 주눅이 들어서 못하는 선수가 있고, 크게 자극을 줘야 잘하는 선수가 있다.'


결국 히딩크 감독은 차별을 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성향과 성격에 맞춰 각 선수가 최고의 경기력을 유지하고 발휘하도록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그는 개인적인 감정이나 욕심을 위해 선수를 대하는 리더가 아니었다. 히딩크 감독의 이러한 진심은 선수들의 마음 깊은 곳까지 전달되었고, 그 진심이 결국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었다.


히딩크 감독을 비롯한 많은 지도자에게서 또 한 가지 느낀 점이 있다. 리더가 결정적이고 중요한 순간에 적절하게 던지는 최고의 한마디는 팔로워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의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하지만 리더에게 더 중요한 것은

해야 하는 말을 하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10명의 팔로워들에게 최고의 한마디를 했을 때 10명 중 7-8명 정도가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그러나 리더가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팔로워들에게 했을 때 10명 중 10명 모두가 아주 적극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말아야 하는 한마디의 말 때문에 팀이 어떻게 깨져 나가는지를 너무나 많이 본 나는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감독이 불필요한 말을 하는 감독보다 훨씬 더 좋은 감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리더는 항상 사람을 최우선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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