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또 한 번 숨이 트이게

낙엽이 한 겹 따뜻하게 지듯, 눈이 한 겹 푹신하게 내리듯, 그렇게

by 일요일은 쉽니다


근데 유민아, 11화를 보면서 좀 놀랐어. 마지막에 준영이가 송아한테 힘든 얘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장면이 나오는데, 지난달에 그 친구를 만났을 때 그렇게 하고 싶었거든. 작년 여름에 너한테 무지개 분수 앞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그 친구한테 내 안에 내가 병들어있는 걸 말하고, 다 말하고. 그런데 그 병든 마음에서 지난 시간 네가 참 유일하게도 예쁘게도 자라길래 20대가 덕분에 푸르러서 고맙다고 이 마음도 말하고.

그렇게 다 말하고 접어야겠다 생각이 들더라고.



라디오에서 사연을 자꾸 읽어주길래 가끔은 고백을 할까 생각도 하다,

그때마다 내가 너무 건강하지 않아서 안 되겠다 접고는 -



그러다, 그럼에도 말할까 고민했던 이유는,

하나는 20대에 몇 없는 유일한 예쁜 기억인데 나만 알기가 아쉬워서,

둘은 참 예쁜 친구인데 본인은 모르는 거 같길래 알려주고 싶어서.


너 정말 예쁜 사람이라고.

너,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마지막이 될 거 같은 이 시간을 두고 한편으로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만남이 너무 가기가 싫었고, 한편으로는 이제는 정말 말하고 정리할 때가 되었구나 싶었고.


그렇게 이 도시에서 그를 만나, 긴 팔이 따뜻하던 선선해진 날씨에 물길을 따라 걸으며 얘기를 시작했는데, 근데 시간이 없어서 다 못 한 거야. 그래서 그 시간을 앞두고 몇 주간 오늘 보고 이제 말아야지 했던 다짐이 꽃을 피우고 잎으로 지지는 못한 채 헤어져 버렸어.



그날 저녁에, 우리가 만났던 그 잠깐의 시간 사이에, 이 친구가 너무 예뻤어. 너무 예뻐서 내 안에 불안하고 흔들리던 그 모든 것을 다 덮어버렸어. 조곤조곤 얘기하고 들어주는 그 아이의 모습이, 병든 마음에


풀이 한 겹 푸르게 자라듯,

꽃이 한 겹 화사하게 피듯,

낙엽이 한 겹 따뜻하게 지듯,

눈이 한 겹 푹신하게 내리듯 그렇게.


그렇게, 못난 내가 또 한 번 숨이 트이게.







어떤 사람들은 좋아하는데 마음을 고백하지 않는 건 그만큼 좋아하지 않아서라는데


모든 사람이 마음의 쓴 뿌리를 안고 살아가겠지만,

모두가 말 못할 이야기, 말 못할 사연 하나 즈음은 덮어가며 살아가겠지만,



그 친구는 투명한 유리구슬 같아서 너무 예쁜 마음 밭을 갖고 있고,

나는 상대적으로기도 하고 절대적으로기도 하고 온통 어둡고 전부 엉망이니까


이 친구를 나로부터 지키는 일

그 아이를 지키는 일

그 아이의 따뜻함을, 건강함을

그 아름다움을 지키는 일


그래서 말 못하는 속마음도 여기 한 명 있어.






오늘은 준영이의 어둠 속에서 나의 어둠이 보였고, 그러다 여기에 적게 되었네. 이렇게 세상 사람 다 알고 그 친구만 영영 모를. 혹은 한동안은 계속 모르다 한꺼번에 알게 될. 그 친구가 얼른 연애하고 결혼해야 이 마음도 정리가 더 잘 될 텐데.



자기 전에 조용히 읊는 것처럼.

저 욕심 안 낼게요. 괜찮아요. 이 마음만 비워지게 도와주세요. 괜찮아요.



새벽 창밖 서울이 고요하다. 너도 이 어딘가 즈음에서 잘 자고 있겠지. 잘 자고 있기를.

출근해야 하는데 깨지 말고.



출근해야 하는데

마음의 걱정 고민

나한테 대신 얹어두고

나한테 모두 내려놓고


푹 쉬길, 푹

예쁜 너에게



출근해야 하는데, 새벽에 깨지 말고 #5

20201005


#브람스를좋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