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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던 건 모래알처럼 빠져나가고

남은 건 그거 딱 하나, 함께 웃었던 기억

by 일요일은 쉽니다


Ep. 1


벌써 7년 즈음 전인 첫 직장에서였다.


삶이 그 방향으로 접어들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어쩌다 보니 나는 첫 직장으로 광고회사를 다녔다. 다닐 때는, 특히 시간이 갈수록 참 쉽지 않은 환경이었고 게다 철까지 없던 나이에 더욱 도전이 되는 공간이었는데, 그 당시에 내가 한 주 간의 시간 중 가장 좋아했던 건 금요일 오전 사내방송에서 일주일 동안 회사에서 제작한 광고 영상이 나올 때였다. 앞단의 총괄하는 AE도 아니고 뒷단의 결과물을 내는 제작도 아니라 눈앞에 스쳐 지나가는 영상에 우리 부서가 냈던 아웃풋의 흔적이 생각보다 희미하게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우리 회사 광고라는 사실에 애착이 많이 갔다. 정말 각자가 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얼마나 설레는 마음으로 봤는지, 버거킹 CF를 봐도 그렇게 마음이 콩닥거렸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을 만큼 너무 아련했던 광고를 꼽으라고 한다면, 그건 단연 2014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즈음 나왔던 맥심 모카골드 김우빈 감성 편. 영상의 아름다움에 말을 잃어 끝날 때까지 입을 벌리고 봤던 것 같다. 그냥, 그 순간의 모든 것이 너무 그 CF 한편과 어울렸다. 사무실의 공기, 창밖의 날씨, 영상의 색감, 권진아의 목소리, 모든 것이, 정말 그 순간의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 짧았던 몇십 초의 시간 때문에 그해 가을과 겨울이 설레는 기억으로 남았다고 하더라도 될 만큼 그랬다. 그날의 공기와 유독 어울렸던 선곡이었는지, 그날 사내방송이 나간 후 평소 무뚝뚝하던 대리님이 방금 나온 CF의 곡이 포함되었다며 토이 앨범에 수록된 곡을 전부 공유해 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한때 광고인으로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2014년 가을, 금요일 오전 사내방송에서 (내 프로젝트도 아니었는데) 맥심 CF가 흘러나오던 이 날을 꼽는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는 이직을 하고, 또 한 번 이직을 했다. 세 번째로 다니게 된 직장은 장점으로 워라밸이 보장된다는 곳이었는데, 희한하게 나는 일을 몰고 다니는 운명인지 첫날 교육 이후 입사 둘째 날부터 멀쩡한 퇴근을 못했다. 그게 피크를 찍은 것이 두 번째 프로젝트에 투입되면서부터였다. 연간 행사로 워낙 주목을 많이 받는 프로젝트이다 보니 매주 리뷰를 받다시피 했고, 데드라인은 정해져 있는데 스타트가 좀 늦고 방향이 계속 바뀌다 보니 매일이 야근의 연속이었다. 저녁을 먹으러 지하에 내려가는 길에 가방을 들고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퇴근하는 광경이 어느 날부터는 아예 신기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 집을 간다는 말인가? 잠깐, 그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엘리베이터를 타면 분명 우리는 아직 일이 안 끝나 저녁을 먹으러 내려가는데 남들은 가방을 메고 타서 정말 그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52시간을 넘어가는 것이 일상이 되다 보니 주중에는 회사 외에 삶이 없었다.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이메일도 메신저도 확인해볼 여유 없이 하루를 살다가, 야경마저 하나둘 희미해져 갈 때 회사를 나와 기절하듯 택시를 타고 겨우 씻고 침대에 쓰러져 누워 자던 날들. 그나마 금요일 밤에는 드라마라도 한두 편 봤는데, 막판에는 주말도 투입된 터라 정말 24/7 회사였다.


그게 물론 좋거나 적성에 맞지는 않았다. 퇴근하고 집에서 가족들과 저녁 먹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일이 바빠서, 혹은 일이 늘어져서 그렇게 매일 밤 회사에서 불이 다 꺼진 후 나오는 그 일상이 결코 즐겁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런 일상을 보내면서도 퇴사하고 싶다, 혹은 퇴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화가 나고 짜증이 났던 적은 종종 있었지만, 에라이 될 대로 돼라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을 버릴지언정 퇴사를 하고 싶을 만큼 괴로웠던 적은 그 당시에도 없었다. 되려 계절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힘들었던 순간들은 손바닥에서 모래알 빠져나가듯 다 사라졌고, 그 힘들었던 와중에도 재밌었던 기억만 남아버렸다. 마치 딱히 돌아가고 싶지 않은 광고인의 삶을 돌아봐도 사내방송에서 흘러나오던 저 맥심 CF를 기억하는 것처럼, 딱히 다시 하고 싶진 않은 프로젝트를 돌아보면 이 코로나 시국에 조그마한 방에 두 팀이 밀도 높게 북적북적 옹기종기 모여 앉아 모두 해탈한 경지에 이르러 서로의 팀 대화를 들으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웃음이 터져 나오던 기억밖에 없다. 당 떨어진다며 조각 케이크를 여러 개 사와 6명이 조그마한 커피 테이블 하나를 두고 디저트를 나눠 먹던 기억, 다른 팀의 막내 둘의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티키타카를 들으며 킥킥 웃던 기억, 입사하자마자 퇴사하는 거 아니냐며 던지던 농담이나 휴게실에서 공책을 펼쳐놓고 그 위로 굉장히 진지하게 게임하던 동기를 찾고 배꼽 잡고 웃던 기억이나 저녁 보고를 가신 사이에 막내들이 모두 미친 척 용감하게 가방을 들고 튄 기억이나 -


정말 어쩌면 그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99의 힘들었던 건 모래알처럼 모두 빠져나가고, 1의 즐거웠던 기억 하나, 그거 딱 하나 마음에 남아 분명 당시에는 끙끙거리며 했던 프로젝트를 지금은 이 회사에서 꼭 싸매고 나갈 추억 보따리 가장 안쪽에 깊숙이 모셔두었다. 그 당시 방을 나눠 썼던 다른 사람들은 이 코로나 시국에 그 좁은 방에 6명이나 꾸깃꾸깃 들어가 있었던 건 신고할 감이라고 농담을 하지만, 그리고 나도 이제야, 시간이 지나서야, 과거가 되어서야 그때 나름 그 방에서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는 거겠지만, 그 기억이 내겐 굉장히 소중하게 마음에 물들어 버렸다.


분명 퇴근하지 못하는 게 힘들었다. 그런데 매일 같은 동료들과 지친 마음을 잔뜩 안고 저녁을 먹으면서도 대화가 끊기진 않았다. 서로에 대한 이야기든, 실없는 이야기든, 분명 그 가난한 삶 가운데 식탁 교제만큼은 우리의 대화로 인해 풍요로웠다.

분명 뺀질거리는 동료를 보며 속으로 마음이 부글부글 끓기도 했다. 분명 다시는 이 사람과 마주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금 복도에서 그를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도 잘하고 한두 마디 대화도 나눈다.

분명 나름 그 당시 더 위의 상사들이 가이드를 해주는 대로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는 팀장을 보며 속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그렇게 하지는 않되 그렇다고 그 대신 확실한 가이드를 주지도 않는 그를 보며 속으로 답답함을 어찌하지 못했다. 그런데 프로젝트 종료 후, 다음에 이 팀장과 다시 일을 하게 된다면 차곡차곡 신뢰를 쌓아서 조금 더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야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분명 그 좁은 방 안에 6명이 바글바글 모여서 서로의 타자 소리, 한숨 소리 그 무엇 하나 숨길 수 없는 그 공간이 좋지는 않았다. 분명, 분명 그랬는데 -


그런데 돌아보니 99의 힘들었던 건 모래알처럼 모두 빠져나가고

1의 즐거웠던 기억 하나,

그거 하나 마음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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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마음에 찡하고 아련한 드라마로 남아있을 <미생>. 첫 퇴사 후 이미 방영이 끝난 미생을 다시 챙겨볼 때, 또 두 번째 퇴사 후 이미 본 미생을 다시 또 챙겨볼 때, 그때는 각각의 고민과 힘듦이 안타깝고 공감이 갔지만 막상 내가 그들이 겪었던 문제와 상황 속에 다시 직접 빠져버리니 이건 너무 쓰라리고 괴롭다. 그 쓰라리고 괴로운 기억을 정리하다 보면 99의 힘들었던 건 모래알처럼 모두 빠져나가고, 남은 건 1의 즐거운 기억 하나로 정제될까 싶어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다짐을 하고 몇 주 전 한자 두자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이제 겨우 <미생> 1화를 적어 내려가고 있는데 이미 삶 속에선 22화까지 진행되었다.

진행 중인 이 이야기를 하나둘 적어보려고 한다.


"야구할 날이 많이 남았어.
힘들잖아? 그러면 좀, 쉬었다 가도 돼."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지금, 가장 안쓰럽게 공감이 가는 <스토브리그>의 유민호에게 그를 스카우트한 양원섭 팀장이 해주는 말.


"힘들잖아? 그러면 좀, 쉬었다 가도 돼."


쉬었다 가도 된다.

내일 또다시 걸어야 하는데,

여기서 같이 쉬었다 가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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