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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와 꼰대의 차이

나는 따뜻한, 그런 따뜻한 멘토가 되고 싶다

by 일요일은 쉽니다


Ep. 2


올여름, 회사에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사실 좀 많이 힘든 시간이었다.

당시에는 그 시간을 무어라고 규정해야 할지... 그저 마음이 불안하고 또 불안하기만 한 시간들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건 직장 내 괴롭힘이었다. 팀을 이동하면서 새로운 팀장님과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 팀장님은 내가 겪은 어른 중 참 별로였다. 회사에 출근하는 이유가 그분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기 위해서일까, 라는 생각이 들만큼 아랫사람을 괴롭게 했다. 어느 순간부터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나 숨소리만 들어도, 메신저로 "희원" 또는 "최희원씨"라고 이름만 불러도 숨이 턱 하고 막혔다. 그래서 그 시기를 겪으며 읽었던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 중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에 대한 언급이 한편으로는 참신하고 (그전까지는 항상 회사에서 일 잘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게 목표였지,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속에 깊이 와닿고 새겨졌다. 책에 나오는 대로 그 팀장님의 "공격성과 똑똑함은 즉각적인 업무 처리에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그 밑에서 일하던 후배들이 줄줄이 떨어져 나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녀는 젊은 (혹은 신종) 꼰대였다.


근데 이번에 확실하게 배운 건, 어쩌면 직장에 있어서 최고의 목표 중 하나는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 그게 내가 성과를 내고 어쩌면 실력을 인정받는 것보다 '저 친구랑 같이 일하고 싶다', 물론 실력이 있기 때문에 같이 일하고 싶은 것도 있겠지만 그게 다는 아닐 거잖아요. 그 사람이랑 일할 때 그 사람이 뿜어내는 기운일 수도 있고 태도일 수도 있고... 저는 그게 요번에 명확해진 거 같아요. 전에는 같이 일하고 싶은가 아닌가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 사람을 겪으면서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게 인생 최대의 목표가 된 기분이에요.
_210715 독서 모임, 김은주의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에게>


그리고 어쩌면 나는 참 이곳의 문화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잠시 이곳을 떠나 있으면서 어쩌면 나는 7~8년 전의 나와 많이 바뀌었을 테니 이제는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사이에 인생에 이것저것 여기저기 많은 일을 겪었고, 그래서 참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지금의 나는 어쩌면 이제는 이곳과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또 한 번 내가 잘못 예상하고 판단한 거라는 결론이 났다. 나는 어쩌면 이곳의 사람이 되기에는 여전히 내 안에 낯선 색깔의 물감이 너무 많이 칠해져 버린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이곳에 돌아오기 전 나는 석사 과정을 밟았고 그 당시에는 특별한 즐거움은 느끼지 못하면서 그냥저냥 주어진 학생의 본분에 충실하게 살았는데, 새로운 조직에 들어와 그러한 폭풍을 겪은 후 일 년이 넘어가는 시점에 문득 그때가 참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곳에서도 이방인이지만 그곳에서도 이방인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설마 그곳이 그리운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왜 나는 그리움을 느끼고 있을까? 왜 나는 그 환경, 그 조직, 그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고 있는 걸까? 단순히 이곳이 싫어서 그곳을 그리워한다기엔 값진 시간이었을지언정 그곳에 더 있고 싶다거나 다시 돌아가고 싶다거나 한 곳은 아니었기 때문에 한동안 나도 내 마음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이 선배를 만나기 전까진.


나보다 몇 달 늦게 입사한, 친해지고 싶은 선배였다. 새로운 회사에서 아쉬웠던 점 중 하나가 팀장과 사원 사이에 허리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대리급 선배의 부재였고, 나는 아직 일이 낯선 상태에서 팀장들과 다이렉트로 일을 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이 사람은 그즈음 입사하게 된 7~8년의 경력이 있는 선배였고, 빡세기로 유명한 곳에서 오랜 시간을 버틴 이력이 있었기에 내공이 대단할 거라 생각했다. 거기에 잠깐씩 스치며 대화를 나눈 선배의 모습에서는 "흔들림 없는 편안함"을 내건 모 침대 브랜드의 카피처럼 흔들림 없는 차분함과 그 차분함에서 나오는 친절한 모습에 꼭 같이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선배가 회사에 적응하는 처음 몇 달 동안은 팀이 달리 배정되어서 아주 가끔 복도에서 마주치는 사이였다가, 그 선배도 적응을 했을 즈음 팀을 이동하게 되면서 우리는 드디어 함께 일하게 되었다.


실제로 함께 일을 해보니 그 선배는 내가 생각한 모습에 매우 가까웠다. 주어진 바를 해냈으며 맡은 일은 마쳤고, 윗분들과 대화할 때는 늘 차분하게 설명을 하며 틈틈이 SOS를 신청하는 내게도 친절하게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이 조직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이 선배를 제일 우선으로 꼽을 만큼 나에게는 참 좋은 선배이자, 누군가에게는 좋은 후배이자, 회사에는 좋은 조직원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 선배에게 다른 그 어떤 마음보다 고마운 마음이 가장 크다. 하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의 모습에서 나는 "왜 과거의 C가 그리울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게 되었다. 그건 바로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분류에 따른) 멘토와 꼰대의 차이었다.


꼰대라는 개념이 새롭지도 않고 꼰대를 정의하거나 묘사하는 기사만 해도 수없이 많이 접해서 특별히 생각하고 있던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선배는 본인을 꼰대라고 칭했지만 어쨌든 자기 일을 해내고 또 후배의 요청에 도움을 주는 이상적인 선배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끔씩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고, 그게 그 선배가 내 삶에 intrude 하는 느낌이 들 때라는 걸 나중에 돌아보며 깨달았다. 그의 조언은 모두 맞는 말이자 버릴 것 없었지만, 그 친절함 속에서도 가끔 그가 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선을 넘은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 선배와 함께 하던 프로젝트가 끝났을 즈음, 독서 모임을 준비하며 읽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서 관련된 답을 찾았다.


"인간에 대한 가장 나쁜 예의는 '너는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바로잡아야만 한다.'는 자세이다. 각자의 내면에 훌륭한 교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일이다. 자신이 가진 유일한 연장이 망치일 때는 모든 대상을 튀어나온 못으로 보게 된다. 자신이 옳은 길을 걷고 있다고 해서 그 길만이 옳은 것은 아니다. 그 길은 많은 옳은 길 중의 하나일 뿐이다. 행복한 관계는 비평이나 조언이 아니라 상대방의 '순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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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C에서 만난 선배들은, 후배가 먼저 와서 조언을 구하기 전까지는 그 후배의 삶의 방향에 대해 말을 아꼈다. 내가 먼저 다가가서 당신들의 경험에 빗대어 삶의 이런 부분들에 있어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지 부탁을 해야 그들은 본인들의 라떼나 그 라떼를 기반으로 나의 삶에 이런저런 방향들을 제시해 주었다. 그 내용이 결코 부드럽거나 아름다운 것만은 절대 아니었다. 내용을 분석해보자면 토닥여주며 위로해주는 내용은 별로 없었고, 되려 냉철한 현실에 대한 분석과 본인의 지난 경험에 빗대어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 (간혹 가다가는 헤쳐 나갈 수 없을 거라는) 내용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말이 불편했던 적은 없었는데, 돌아보면 순서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지혜를 구했고 그들은 지혜를 나눴다. 나의 삶으로 그들을 초대할 때 그들은 기꺼이 들어와 삶을 나눠주었다.


내가 C에서 만난, 멘토로 여기는 선배들과의 대화를 되돌아보면 나는 그들의 라떼를 물었고 그들은 그들의 라떼를 답하며 나의 방향을 함께 고민해 주었다. 내가 여기에서 만난, 꼰대로 느껴지는 선배들과의 대화를 떠올려보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그들의 라떼를 쏟아냈고 나는 여전히 요청하지 않았는데 그들의 라떼에 기반해 나를 평가하고 그 평가를 내 앞에 들이밀었다. 이 순서의 차이는 컸다.


그리고 그 순서의 차이에 이어, 혹은 그 순서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말들의 기반이 달랐다. C에서 만난 멘토들은 사랑의 자격으로 이야기했지만, 여기에서 만난 꼰대들은 권위(주로 나이와 경력)의 자격으로 이야기했다. 이 마음, 혹은 사랑의 차이는 정말 컸다.


C에서 만난 내가 가장 아끼는 동료 중 하나는 일본에서 대학원을 진학한 후 휴학하고 C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매주 목요일마다 열리던 워크숍을 굉장히 좋아하고 거의 매주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지금도 시차를 극복하고 새벽에 일본에서 화상으로 접속한다). 그리고 그녀는 그 명문인 도쿄대학과의 차이점으로 이곳에서는 교수님들이 학생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해 주는 것이 참 좋다고 했다. 그 당시에 나는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해 준다는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곳으로 돌아오고 나서 다시 한번 이곳 특유의 보수적인 조직에 발을 담근 후에야 그녀의 말이 온전히 이해가 갔다.


그렇게 (내가 여전히 참 좋아하는) 선배랑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즈음 아, 내가 C에서 만났던 선배들은 멘토의 느낌이었다면 내가 이곳에서 만난 선배들은 꼰대의 느낌이 있어 내가 C에 대한 그리움을 느꼈구나, 했다. 나의 C에 대한 그리움은 그곳의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구나, 했다. 나는 그 선배를 "꼰대"라고 분류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C에서 만났던 멘토들이 더욱 그리워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노트북 앞에 앉아 나도 나에게 먼저 묻지 않은 사람의 인생에 불쑥 노크 없이 들어간 순간들이 생각나 반성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한 주를 마무리하며 어떤 어른으로 커가고 싶은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본다. 순서를 지키고, 사랑을 기반으로 행하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다 (혹은 사랑이 없다면 감히 관여하지 않는). 상대방의 순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


따뜻한, 그런 따뜻한 멘토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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