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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은 쉽니다 Jul 24. 2021

나를 지키는 심리학, 조장원

그럼에도 내 마음이 가장 소중합니다


모임, 여섯 번째

210722, 삶의 폭풍을 통과하며 

※가공되지 않은 raw data 그대로입니다



[대화 시작]


S: 네, 시작하겠습니다. 


Y: 너의 한 줄 평. 


S: 어쩜... 또라이들이 이렇게 많이 있었구나 (웃음). 너무 내 상황 같은 얘기들이 많아서, 이게 되게 많은 사람들이 겪는 문제였구나, 그런 생각. 언니는요?


Y: 또라이들이 많긴 하지만 결국은... 안 괜찮아도 괜찮아?


S: ㅠㅠ안 괜찮아도 괜찮아... 언니는 심리학 책 처음이에요?


Y: 응, 처음이었고 굉장히 읽기가 쉬웠어. 읽을 때는 술술 읽혔어.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에피소드 안에서 그렇게 이질적인 부분은 없었어. 그냥 다 조금씩 나의 모습도 있는 것 같고, 내 주변 사람들의 모습도 있는 것 같고, 그래서인지 확실히 읽기가 쉬웠던 거 같아.


S: 전 여기서 나온 개념 중에 좋았던 게 지지체계란 말이 있더라고요. 자기를 믿고 응원해주는 그런 지지체계가 있는 게 되게 중요하다, 그래서 특히 힘들 때는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가족, 친구, 동료, 이웃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했는데, 언니한테는 어떤 지지체계가 있고 언제 그 사람들을 찾는지? 그리고 덕분에 다시 일어선 경험? 


Y: 음... 나의 지지체계... 사실 제일 처음 떠오르는 건 가까운 사람이다 보니 남자친구, 그리고 두 번째는 친구들. 친구들 중에서도 이제 내 마음, 정서,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찾는 거 같은데 그중에 한 명이 너이고, 그 외에 학교 친구들이나 교회에 친한 언니, 이 정도? 근데 찾아가서 나눌 때 나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편은 아닌 거 같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부연설명을 하면서 내 감정이 이랬고, 이렇게 얘기하기보다는 그들에게 내가 찾아갈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야. 그들도 아무 말 없이 알아줘. 내가 지지체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전의 너의 이야기처럼 그냥 꼭 껴안아주는 사람들인 거 같아. 말로 그러기도 하고, 행동으로 그러기도 하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위로가 되기도 하고... 그게 되게 감동적이고 나를 북돋아주는 거 같아. 넌?


S: 저도 친구들인 거 같은데, 근데 생각해보면 전 되게 친구가 없는 편인데도 시기 시기마다 특히 새로운 곳을 갈 때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적어도 한 명은 감사하게 있었던 거 같아요. 이제 언니랑 세은이는 오래된 지지체계고, 가장 근래는 회사에서 힘든 일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4명 있어요. 되게 많은 거거든요, 저한테는. 4명 중에 2명이 팀처럼 셋이 만나는데 - 


Y: 그, 그 말했던?


S: 맞아요, 한창 폭풍이 몰아칠 때 퇴근하는 나를 붙잡고 이렇게 두면 안 되겠다 해서 같이 신촌에 가서 저녁에 같이 있어준. 그게 되게 고마웠어요. 그렇게 나를 붙잡아줄 때 다시 일어서는 거 같아요. 한 주 한 주 버텨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고 있어요. 


[SKIP]


S: 책에서 주문 얘기가 나왔어요, 나를 망치는 주문. 나를 사로잡고 있고 나를 망치는 주문은 뭐가 있는 거 같아요? 언니가 언니에게 걸고 있는 잘못된... 


Y: '네가 책임져야 돼.'


S: 아...! 아... 


Y: 그게 되게 맞는 말이긴 한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지금 너의 감정처럼 숨이 턱 막히고 그 부담감은 이루어 말할 수 없고... 그만큼 책임감이 따르는 거에 대해 나 스스로한테도 가혹한 거 같아. 


S: 책에서 말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남한테 조언해준다고 생각하고 그 얘기를 나 자신한테 해주라는 말이 있었잖아요, 보통 사람들이 자기 자신한테 더 가혹하니까. 언니가 말한 주문을 외우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언니는 그 친구에게 뭐라고 조언해주겠어요?


Y: 네 책임이 아니야. 


S: ㅠㅠ...


Y: 네 책임이 아니야. 일개 인간인 내가 어떻게 세상의 허다한 일들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 책임지라고 해도 책임을 못 지니까 신원보증보험을 가입하라고 그러겠지 (웃음). 너는?


S: 전 되게 많은 거 같은데... 제일 힘든 것 중에 하나가 '다 네 잘못이야.' 뭐가 잘못만 되면 다 내 잘못이야. 또 다른 거는, '네가 너무 약한 거야.' 


Y: 네가 너 스스로 너에게 그런 이야길 해? 


S: 네, 어렸을 때는 안 그랬는데 나이 드니까 그런 거 같아요. 내가 너무 약한 거야... 내가 너무 약한 거야... 남한테 조언을 해준다? 그러면 그러겠죠, 그놈이 잘못한 거야. 아니면 상황이 너무 가혹하다. 운이 없네. 이건 운명의 장난이다. 근데 그 얘기를 나한테 해주긴 힘든 거 같아요. 한편으로는 남의 인생이니까 더 쉽게 얘기해줄 수 있는 것도 같아요. 어차피 그 짐을 내가 대신 져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네 잘못이 아니야' 말할 수 있죠. 근데 나는... 나는 내 짐을 내가 져야 하니까 그렇게 말하기가 힘든 거 같아요. 


근데 여기서 나온 또 다른 해결책은 자기 자신한테 선물을 해주는 것인데, 언니는 언니 자신한테 선물해주는 게 있어요?


Y: 나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 에어컨 틀어놓고 침대에 누워서 내가 보고 싶은 책, 내가 보고 싶은 영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그 시간. 퇴근하고 집에 가서 모든 할 일을 끝내고 잠들기 딱 그 전. 


S: 그게 몇 시예요?


Y: 나는 한... 그래도 12시까지는 뭔갈 하는 거 같아. 12시에서 1시 사이? 그냥 그 짧은 몇 시간, 몇 분을 바라보고 퇴근도 신나게 하는 거 같고, 그 시간 덕분에 또 출근을 하는 거 같아. 근데 그게 막, 내가 그 시간에 보는 게 나한테 감명을 주고 인사이트를 주고 꼭 그런 것도 아니야. 별 시답잖은 이야기일 수도 있고 남들의 일상일 수도 있는데, 나한테 집중했던 오늘에 환기가 되는 시간이랄까? 


S: 우와, 나는 항상 퇴근하고 나면 벌써 하루가 다 갔네, 밥 먹고 돌아서면 또 출근해야 하네 그랬는데... 근데 언니 얘기를 들어보니 그 시간이 또 내일을 살게 해주는 충전의 시간이네요. 


Y: 근데 나도 출근하는 건 싫어 (웃음).


S: (웃음) 저는... 지금 이 시간. 보통은 퇴근 후 저녁에 생산적인 걸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데, 목요일 이 시간만큼은 언니 만나서 가고 싶은 데 가고, 먹고 싶은 거 먹고, 나에게 선물을 하려고 해요.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게 자기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거라고 했는데, 언니는 언니 자신을 믿고 사랑하나요? 아니면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Y: 나는... 최근에 깨닫게 됐는데 아빠가 소천하신 기점으로 나 스스로에게 되게 관대해졌어. 예전에는 오히려 더 나를 나무라고, 무언갈 해야 하고, 내 감정에 대해서 충분히 살펴보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던 거 같아. 나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관점/이야기가 우선이었고 내가 손해보고 내가 뭔가를 타협하는 게 제일 깔끔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었던 거 같아.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나한테 솔직하지 못했었어. 


근데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모르겠어. 어떠한 이유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내가 나 스스로에게 좀, 나 스스로가 안쓰러웠나 봐. 나는 너무 슬픈데, 사실 슬프지, 슬프고 어려운데 그걸 내색하는 방법도 모르겠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흔히들 울면 된다고 하는데 사실 눈물도 안 나와. 근데 그게 내가 안 슬퍼서 눈물이 안 나오는 게 아니라 그걸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 그랬던 거거든. 사람들은 괜찮냐고 물어봐. 나는 그 괜찮다는 말을 예전 같았으면 했을 거야. 근데 이제는 그 말이 안 나오는 거야. 그냥 그 말을 안 하는 게 오히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표현인 거 같고, 나 스스로에게 너그럽게 해 준 위로였달까? 그래서 오히려 지금 내가 나 스스로에게 굉장히 관대해. 내 감정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


S: 되게 좋은 변화네요? 보통 그 반대로 될 거 같은데, 되게 긍정적인 변화네요. 음... 전 안 그래요. 자신을 믿지도 않고... 차라리 믿는 건 또 믿겠는데, 나 자신을 좋아하진 않아요.


Y: 왜? 지금까지 그 모든 시행착오들을 겪어내고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한 건데,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던지, 그런 감정이 없어? 


S: 시기에 따라서 다른 거 같은데, 그때 A에서 제일 바쁘게 일할 때는 친구들을 만나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었어요. 24시간을 누구보다 알차게 썼으니까, 그 알차다는 게 일만 했다는 거였고... 근데 그런 식으로 미쳐있는 시기가 아닌 이상은, 나는 여전히 태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면 안 태어났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내가 죽어야겠다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나가 죽어야겠다는 시기를 지나고 그게 가시밭처럼 무언가... 그냥 잘못했거나, 후회되거나, 그런 것들만 좀 얼룩으로 남은 거 같아요. 잘했던 것들은 잘 안 남더라고요. 


Y: 그래서 너의 곁에 내가 있나 봐. 


S: Aㅏ...! (웃음) 


Y: (웃음) 근데 여기서 말하는 것처럼 그것 또한 습관이자 훈련이 필요한 거 같아. 


S: 우리 엄마도 그랬어요. 이번 주 월요일날 울고 수요일날 또 울었을 때, 나는 정말 실패자다, 이건 퇴사해야 한다고 했는데, 엄마는 나를 위로하려고 한 말일 수도 있지만 '괜찮아지는데 시간이 걸려'라고 하시더라고요. 갑자기 화요일날 부서 이동을 했다고 수요일부터 괜찮아지는 게 아니야. 그나마 그 말이 위로가 됐던 거 같아요. 


[SKIP]


Y: 난 그 말도 되게 와닿았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고요와 정지가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에너지다. 지금 나의 에너지는? 


S: 와우... 지금 나의 에너지!? 언니는요? 


Y: (웃음) 응, 음... 나도 20대 후반/30대 초반으로 오면서 에너지의 원천이 많이 바뀐 거 같긴 해. 난 20대는 진짜 활발하고 일주일 약속이 풀이었어. 매일매일 누구를 만나는 게 그때 당시 에너지의 원천이었어. 그래서 사람들이 넌 어떻게 맨날 사람을 만나고 운동도 하냐고, 정말 쉬는 날이 없었어. 근데 그때는 정말 그게 에너지의 원천이었어, 그게 싫었으면 안 했겠지. 근데 지금은 고요함, 더 나아가서 고독함 조차도 나에게는 에너지를 비축하는 도구가 된 거 같아. 에너지의 원천이 막 180도 바뀐 건 아니지만, 그 고요함과 고독함의 발란스를 맞춰가는 중이랄까나? 이전에는 너무 붕 떠있는 애였다면 이제는 좌중 하면서 평균적인 경계선을 구축하는. 


S: 그것도 언니한텐 변화네요.


Y: 맞아, 근데 나 스스로도 그런 거겠지만 오빠를 만나면서 영향을 받은 것도 있는 거 같아. 


S: 오빠를 닮아가는 거네요.


Y: 응, 그래서 곁에 있는 사람이 정말 중요한 거 같아.


S: 이제 오빠는 막 하이텐션 (웃음).


Y: (웃음) 근데 오빠도 정말 많이 바뀌었어. 오빠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업되는걸 한 번씩 볼 때마다 놀랍기도 해. 이 사람이 이런 면도 있었네? 하는. 그 발란스가 잘 맞아서 지금까지 만나는 거 같기도 하고. 


S: 저는 요즘에는 나의 에너지가 사람인 거 같아요. 나의 지지체계. 요즘에는 싫어하는 사람들만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많이 깨달은 시간이었고,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위로와 응원, 에너지가 엄청 힘이 됐어요. 내가 막 YES!!! 이제 다 할 수 있어!!! 이런 건 아니지만 (웃음) -


Y: (웃음)


S: 그게 없었으면 이만큼의 꾸역꾸역도 못했을 거예요. 나의 에너지가 되게 뜨뜻미지근해 보이지만, 그래도 이게 없었으면 이만큼도 못 이겨내고 있었을 거 같아요. 근데 이 에너지는 그런 지지체계로부터 많이 왔어요. 저한테는 그게 큰 변화예요. 원래는 사람들을 요즘만큼 좋아하진 않았어요. 요즘에 조금 더 사람들하고 어울려서 지내는 게 자연스럽게 많아졌어요. 


저는 앞부분 읽으면서 공감 가는 게 많았거든요. 와, 이것도 우리 팀장님, 이것도 우리 팀장님 -


Y: (웃음)


S: 그러다가 나온 부분 중에, 사람들은 다 가시를 가지고 있고 내가 가진 가시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상처 받고 아파할 수 있다. 언니는 어떤 가시를 갖고 있어요? 그리고 언니의 가시로 누구를 아프게 했던 거 같아요?


Y: 나는, 나는 있어. 내 가시는 냉정함이야. 내가 그 냉정함을 제일 많이 표현? 드러내게 되는 건 제일 가까운 사람들, 남자친구, 가족... 그래서 되게 미안해. 그 냉정함이 그냥 하루아침의 냉정함이라기보다 내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나오는 표현이라고 해야 되나.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사장님한테는 '네 알겠습니다'라고 한다면 가족들한테는 '알아서 해봐'라고 하게 되는.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쌓인 감정의 찌꺼기들을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푸는 거 같아,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그게 되게 미안하고 그때의 내 모습이 냉정한 거 같아. 


그리고 나의 냉정함의 또 다른 형태는 침묵이거든. 내가 남자친구랑 싸우면 나오는 게 침묵이야. 근데 나는 뭐가 잘못됐는지 심각하게 고민을 해보진 못했는데, 이 책에서 침묵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라고. 침묵은 상대방을 강하게 통제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침묵을 통해 무언의 메시지를 전함으로서 자신이 상대방보다 우위에 있다는 표시를 하고 확고히 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상대방을 존중하거나 정상적 의사소통을 중시한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이 구절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 아... 나는 그 감정이 격한 상황에서 쉽게 내뱉는 말이 오히려 상처가 될 수 있겠다 생각해서 선택한 건 침묵이었는데, 그 침묵이 오류일 수도 있겠구나.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것처럼 정상적인 소통을 강제로 내가 막아버린 거니까, 이 부분도 나한텐 되게 새롭게 와닿았어.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구나 생각도 들었어.


S: 그래도 언니는 건강한 사람이에요. 그걸 보고 내가 잘못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건. 보통 사람들은 이걸 보고 이런 경우도 있어? 하고 넘겼을 텐데. 난 그 부분을 보면서 우리 팀장님을 떠올렸거든요, 지금 일에서 배제시키고 투명인간처럼 대하는 걸 보면서...


제 가시는... 저는 되게 뿌리 깊은 우울함이 있는 것 같고, 그게 가족한테 제일 많이 상처가 되는 거 같아요. 우울함의 기운을 뿜어내는... 만약에 내 삶이 애니메이션이라면 걸어 다닐 때 시커먼 연기가 뿜어 나오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집에서는 그 상태로 있어도 되니까 그대로 있고 제가 아파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족한테는 상처가 되겠죠. 내가 꼭 소리 지르고 화내고 이런 게 아니라 그런 우울한 기운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우울함이 되게 뿌리 깊게 있다는 걸 많이 느껴요. 


그런 얘기도 있었거든요. 관계에 있어서 누군가를 만족시켜주기 위한 관계는 건강하지 않은 거다. 연인 얘기를 하다 나왔는데, 그러면 어떤 연인 관계가 건강한 거 같아요?


Y: 뭔가... 그 사람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것? 물론 닮아갈 수도 있겠지. 근데 본성은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 그 본성 자체의 그 사람을 인정하는 게 건강한 게 아닐까. 그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도 맞다 틀렸다 얘기하기보다 이 사람의 감정은 이렇구나를 인정해줄 때, 인정하게 될 때 이해가 되는 거 같고 납득할 수 있는 거 같아. 근데 인정을 못하면 납득할 수 없을 거고, 그게 상대방 입장에서는 잘못됐다고 판단을 하고, 그럼 갈등이 생기고, 그러면 좋지 않은 관계로 발전을 하게 되겠지. 


그리고 나 스스로도 이 사람에게 내 모습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는 상태인 것? 이 사람이 내가 이런 사람이기를 기대한다고 해서 그대로 살아간다면 그것도 너무 불행한 거고... 나의 그대로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


S: 그거 참 어렵네요. 처음에는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줬을 수 있는데 시간이 가면서 넌 왜 그래? 싶은 순간들이 생기고. 친구였다면 또 그냥 이해했을 수도 있는데 연인이니까 너는 왜 그래? 하는 순간들도 있는 것 같고. 상대방한테만 맞춰주는 것도 건강하지 않은데 나한테 다 맞추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좋지 않은 것 같고. 그 적당한 발란스를 찾는 게 어렵겠죠? 혹은 머리로 아는 걸 삶으로 살아내기가 어렵겠죠. 


Y: 그래서 내가 그걸 보여주기로 약속했잖아. 네가 우리 신혼집에 놀러 오면 (웃음).


S: (웃음) 나도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SKIP] 


"저희 영업 마감하겠습니다." 

BGM: Frankie Valli's "I Love You Baby"


[카페를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


S: 책에 또 미워하는 대상을 따라 하는 현상에 대한 부분이 나왔는데, 언니는 그런 적 있어요? 언니가 싫어하는 사람의 싫어하는 특징을 따라 하고 있는 걸 발견한 적?


Y: 음... 있지. 꼰대가 되지 말아야지 하는데 꼰대가 되어있는 것. 


S: 아... 맞아. 


Y: 그리고 다 아는 척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어쩔 땐 엄청 어른인 것처럼 행동하고 말할 때가 있다. 그게 되게 나 스스로도 꼴불견인데 불현듯 나오면 놀랍기도 해. 


S: 저도 이유는 모르겠는데, 지난 번에 엄마랑 얘기하다가 엄마가 무슨 얘기를 했는데 그걸 저는 알고 있었고 예전에 엄마한테 한 번 얘기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말투가 "그것도 몰랐어?" 이런 식으로 나왔단 말이에요. 근데 그게 우리 팀장님 말투야... 순간적으로 내가 너무 놀라서, 와, 나는 우리 팀장님이 나한테 딱 이렇게 말할 때 항상 상처를 받으면서도 나도 방금 그렇게 말을 했구나, 했어요. 


여기서 왼쪽으로 가나요 오른쪽으로 가나요?


Y: 왼쪽으로 갑니다.


S: 좋습니다. 저는 또 도움이 됐던 말 중에 하나는 앞부분에 나왔는데 그의 감정을 풀어주는 건 내 업무가 아니다, 그의 감정은 그가 풀어야 할 과제라는 거였어요. 선생님이 항상 하시는 말이거든요, '몫'이라는. 너의 몫, 그 사람의 몫. 항상 저한테 너는 자꾸 세상 모든 사람의 몫을 다 네 몫으로 끌어안으니까 우울하고 힘든 거라고, 그런 말을 되게 많이 하세요. 여전히 저에게도 참 어려운 부분인데 딱 이 문장을 보면서, 지금 우리 팀장님도 자기 입장에서 힘든 부분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근데 나는 또 그걸 내가 해결하려고 하고 있었거든요. 좀 더 빨리 우리가 다시 편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냥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래, 그 사람의 감정은 그 사람의 몫이다, 그것까지 내가 좋게 만들어보려고 어떻게 회복해보려고 할 수 없다. 그 사람이 기분 나쁘면 그냥 그 사람이 알아서 풀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렇게 끊어내기 시작하는 게 우울함을 떨치는 훈련인 거 같아요. 어렵죠. 어려워요.


Y: 나 같은 경우에는 가족들의 몫을 내가 많이 끌어안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어. 동생이 아프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이 내가 희생하는 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때 당시 그 부분에 대해서 제3자 입장에서 조언을 받았던 부분들이 내가 그걸 끌어안는다고 해서 효과가 있을지도 미지수고 그걸 꼭 내가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들이었거든. 그때는 그 사람이 내 입장이 아니니까 쉽게 얘기하지 하기도 했는데, 그런 조언들을 기반으로 나 스스로도 좀 끊어내려고 했어. 그 몫이 가족들 각자 개개인의 몫이라는 걸 인정하고 나니까 되게 - 


S: 편안해졌어요?


Y: 편안해진 것도 있어. 때로는 미안한 마음, 때로는 편안한 마음이 공존하는 거 같긴 해. 


S: 맞아, 가족 개개인의 몫이 있죠. 엄마의 몫, 아빠의 몫, 동생의 몫, 나의 몫. 그게 있는데 우리는 그걸 자주 모두 다 나의 몫으로 끌어안는 그런 -


Y: 경향이 있지. 근데 이건 착한 아이 콤플렉스도 아닌 거 같고 이건 -


S: K-장녀? (웃음)


Y: (웃음) 맞아. 너무 K-장녀 하드캐리인 거 같아. 너무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어. 


S: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스스로 그 일에 대해 기대를 가져야 한다고 마이클 조던이 얘기했다는데, 언니는 어때요? 


Y: 그게 내가 하는 주문인 거 같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대라기보다는 그렇게 주문을 걸어. 내가 새로운 시즌을 맞이할 때 기대하는 마음으로 해보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의 좌우명, 모토같이? 그래서 나도 그 말에 되게 동의를 했거든.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상담을 받을 정도는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나는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끊어내려고 하는 편이야. 오히려 기대나 긍정으로 전환하려고 어떻게든 노력을 하는 편인 거 같고, 부정적인 말 이런 걸 진짜로 극혐해. 나는 날씨가 좋으면 기분이 진짜 좋아. 그걸로 난 오늘 하루에 만족해. 그래서 상담까지 받아볼 상태는 아니구나, 다행이구나 했어. 


S: 맞는 거 같아요, 언니가 의지적으로 끊어낼 수 있고 긍정적으로 생각의 회로를 돌릴 수 있으면 받을 필요가 없는 거 같아요. 그런 게 가능하도록 상담을 받으니까. 


저는 반대인 거 같아요. 평소에도 좀 부정적인데, 지금같이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는 무언가 새로운 일에 있어서 전혀 기대하는 마음이 없고 되려 최악을 생각하는... 지금도 현재 회사에 남는다, 미국으로 돌아간다, A로 돌아간다 옵션을 두고 엄마랑 이야기를 하는데, 각 옵션들의 좋은 점은 상관없고 옵션마다 여기로 가면 이게 걱정되고 여기로 가면 이게 걱정되고 이렇게 사고방식이 세팅되어 있어요. 


그래서 정말 주위에 누가 있는가가 더 중요한 거 같아요. 주위에 건강한 사람이 있으면 긍정 에너지를 흡수하게 되고, 주위에 부정적인 사람이 있으면 부정 에너지를 흡수하게 되고...


Y: 근데 이런 성향의 내가 가장 힘든 것도 그런 거야. 부정적인 사람을 만났어. 그 사람이 나와 함께 있음을 통해 무언가 긍정적인 효과를 창출했어. 그건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함이고 성취감을 줘. 근데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 해결이 되는 게 아닐 수도 있잖아. 그럴 때 드는 허탈감, 자괴감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큰 거 같아.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되게 괴로운 경우들이 있었어. 도움을 주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건 없고, 가만히 있는 건 너무 방관하는 느낌? 그 조바심과 알 수 없는 미묘한 불편함, 불쾌함... 


S: 그래도 그 사람들이 언니한테 바라는 건 딱 그 마음 아니에요? 나를 위해 마음 써주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Y: 그렇지. 근데 그걸 나중에야 깨달은 거 같아. 그 전에는 몰랐어. 그래서 스스로 너무 괴롭고 그랬었어. 


S: 이제 거의 마지막 질문. 감사 일기와 걱정 일기를 쓰는 게 도움이 된다고 그랬는데 하나씩 말해봅시다, 감사한 거 하나, 걱정되는 거 하나. 


Y: 우선 걱정 보류, 생각을 좀 해보고...


S: 오, 되게 좋은 거네요? 걱정을 생각해야지만 찾을 수 있다는 건.


Y: 아! 내 걱정, 2022년도 사업보고회를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S: 잠깐만 반년 남았잖아 (웃음).


Y: (웃음) 내 감사는... 오늘 하루 살아냈다는 것에 대해 감사. 


S: 우와... *.* 근데 오늘은 정말 얘기하면 얘기할수록 언니 내면이 건강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 아버지의 힘든 일을 겪은 후에도, 그게 상처로도 남았지만 또 좋은 변화들도 이끌어낸 거 아니에요, 예를 들면 언니한테 관대해졌다는. 그래서 또 지금 힘든 거랑 내면이 건강하지 않은 건 별개인 거 같아요. 


Y: 맞아, 좋은 영향도 있긴 했어. 


S: 그리고 그게 1년이 지나서야 느껴지는 게 있고, 또 2년 3년이 지나면 느껴지는 게 있고 그렇겠죠. 


Y: 또 1년 후 2년 후가 다를 수도 있겠지. 근데 그 모습도 나는 이제 좀 관대할 거 같아, 그 관대함을 배워서. 


S: 저는... 걱정은 엄청 많아요. 지금 이 난리를 결국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가? 나는 회사에서 울지 않을 것인가? 이게 대인기피증으로 번지지 않을 것인가? 이다음 부서에서는 잘 지낼 수 있을 것인가?


Y: 하나, 둘, 셋, 넷 (웃음).


S: (웃음) 예전에는 다른 부서로 가는 게 이렇게까지 걱정되진 않았는데, 이제는 적응 못할까 걱정, 해낼 수 있을까 걱정, 또 힘들까 걱정... 감사? 감사한 것도 많아요. 어쨌든 이 난리를 통해 회사에서는 친구들이 많이 생겼고... 저한테 4명은 되게 큰 숫자거든요. 4명의 친구가 생긴 게 되게 감사하고, 그 친구들이 회사 동료인데도 그렇게 수요일 저녁 시간을 통째로 내어줄 정도로 진심인게 진짜 정말 고마웠고. 또 지난주에, 아니 어제 아침만 해도 하루하루를 못 버틸 거 같았는데 어쨌든 또 주말을 앞두고 있는 지금... 이번 한주도 지난 게 감사. 


마지막 질문은, 인생의 버킷 리스트를 적어 보는 것도 좋대요. 언니의 버킷 리스트는?


Y: 음... 아! 내 버킷 리스트... 나는 장르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에세이가 되겠지? 나의 삶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보고 싶어. 


S: 우와~


Y: 그리고 너를 위해서라도 나는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고 싶어. 너에게 증명해주고 싶어. 


S: 아름다운 가정이 존재할 수 있다? 


Y: 그렇죠. 


S: (웃음) 꽤나 어려운 숙제 인대요? 


Y: 그렇죠. 어렵지만 쉬울 수도 있어요. 


S: 맞아요, 생각보다 쉬울 수도... 너무 감동적이다. 진짜 감동적이다... 우와.


Y: 너는?


S: 저는... 모르겠네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기도 있고, 책을 내보기도 있고, 뭐가 많이 있을 거 같은데... 뭔가 왠지 또 버킷리스트라 하면 어렵네요.


Y: 우리 나중에 기회를 만들어서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보자.


S: 오 좋아요! 어느 목요일에 기회를 잡아서 한번 적어봅시다. 


[마무리 시작]


S: 우리의 마지막 마무리, 한 문장! 


Y: 저는, 

"누구도 내 감정을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감정은 과거와 현재의 주어진 상황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내 감정을 이해했을 때라야 비로소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S: 저는, 음... 저는 

나는 원래 우울해 --> 이렇게 생각하는 건 잘못된 거고
나는 지금 우울해, 하지만 나아질 수 있어 --> 이렇게 생각하는 게 올바르다

이게 응원이 됐고...


이게 아마 맨 마지막 장에 있었던 거 같은데

"그럼에도 내 마음이 가장 소중합니다." 


이번 주도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Y: 수고하셨습니다. 


[EXTRA]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주변에서는 힘든게 당연한 거라고 말한다. 그만 힘들고 싶은 마음에 누군가에게 토로를 하면, 꼭 혼자만 징징대는 사회적 낙오자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다 잘 견디는데 왜 나만 이토록 힘든 걸까? 정말 내가 의지가 약하고 참을성이 부족해서일까?

그런데 내가 힘들어지는 진짜 이유는, 나 스스로에게 던진 한마디 때문이다.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한걸까?'

문제는 이렇게 시작된 자기비난이 자신을 더더욱 심리적 절벽 끝으로 내몰게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힘든 이유가 결코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향한 자책과 자기비난은 결국 '이 모든 게 다 내 잘못'이라는 절망의 심연 속으로 뛰어들게 만든다." 


"'까짓것 그만두면 되는데, 왜 그만두지 못하면서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지?'... 물론 그만두는 것 또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해결 방법 가운데 하나다. 가장 행동하기 어려운 옵션을 주고 행동하지 못하는 자신을 비난하기보다는, '다른 방법들을 시도해보고 안 되면 그만두는 방법도 있다'라고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 내 멘탈이 약하기 때문이 아니다. 행동이나 결과의 모든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환경이나 상황이 좋아지면 행동이나 결과도 달라질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자신감을 되찾는 게 필요하다."


"지금 김대리에게 필요한 건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고 냉철하게 판단해줄 판사가 아니라, 내 편이 되어주고 나를 변호해줄 수 있는 변호사다." 


"...탁해진 내 마음을 주변에 털어놓으며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주변 동료 중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이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이 감정을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 


"행복은 표현하는 사람에게 더 많이 찾아온다." 


"감정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제대로 알아주고 다스리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내 감정을 더 잘 이해해주고 친해지는 것, 이것이 바로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방법이다."



커버 사진

"Summertime sadness" https://unsplash.com/photos/FLigbWjCZz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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