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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요일은 쉽니다 Jan 08. 2022

아무것도 괜찮지 않지만, 우리는 버틸 수 있다고

그래, 그때부터였다



그날은 우리가 함께 밥을 먹었어야 하는 날이었다.


이 건물에 발을 들인 지 일 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전에 면접을 보러 온 것이 더 정확한 처음이긴 했지만, 수습 기간부터 계산을 하자면 그날이 이 건물에 발을 들인 지 딱 일 년이 되는 날이었다. 고로 그날은 내가 당신을 본지 딱 일 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내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지내다, 오늘 밥을 먹자고 물어본 것의 의미는 이 건물에 발을 들인 지 일 년이 되서가 아니라, 당신을 만난 지 일 년이 되어서에 기울어져 있었다.


그날 밥을 먹지는 못했다. 다른 일정이 겹치면서 날을 조금 미루자고 한지라, 특별했어야 하는 날을 달리 기념하지는 못한 채 회사에서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회사에서 생각보다 당신을 별로 마주칠 일이 없었기에 그날도 당신과 마주치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무엇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당신을 만난 지 일 년 되는 날의 시간은 언제나와 같이 정직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멈췄다.


어김없이 그날의 오후도 시간이 정직하게 흐르고 있었는데, 우리 방에 잠시 들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계시던 옆 부서 팀장님이 나가기 전 갑자기 당신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같이 들려온 소식은 부친상이었다. 차장님이 오늘 아침에도 당신과 마주쳤다고 하며 놀라시니까 인사팀에서 곧 메일을 보낼 거라고, 당신의 아버지가 떠나셨고 당신은 병원에 있다고 했다.


순간 정직하게 흐르던 시간이 그대로 멈췄다.


마스크 뒤로 놀란 표정을 숨긴 채 메일을 켜보니 당신의 소식이 방금 도착해있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인생에 정해진 타임라인은 없지만, 그래도 너무 일렀다. 당신을 마주한 지 정확히 일 년이 되는 날이었다.


퇴근까지 얼마 남지는 않았었지만, 퇴근까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심장이 계속 쿵쾅쿵쾅 뛰었다. 당신이 지금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 생각해보면 마음이 쿵하고 무너져오기 시작해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퇴근 시간이 되어 그럼 나는 오늘 빈소를 가보겠다며 예전에 한 번 가본 적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퇴근하는 사람들 한가득이던 지하철도 병원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한가해지고, 이젠 그마저 조용해진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지도에서 가르쳐준 정류장에 내려 장례식장까지 걸어가는 길이 참 추웠다. 우리는 겨울의 한가운데 있었다. 낯선 곳이었다. 이 시간에도 어둡게 차려입고 장례식장 입구를 들어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있었다. 안내판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 복도 끝으로 걸어가니 인사팀 메일에서 본 숫자가 보였고, 그 옆 스크린을 확인하니 당신의 이름이 있었다. 이름을 적고 그 옆 방으로 들어가 이미 인사하고 계신 분들이 있어 잠깐 가방을 내려두고 방 안을 보니 당신이 있었다. 당신의 이름 석자가 쓰인 걸 보고도 믿기지 않던 현실이 당신이 어두운 상복을 입고 서있는 모습을 보고서야 믿겼다.



앞에 분들이 인사하고 나오신 후, 신발을 벗고 들어가 잠깐 사진을 보며 당신과 닮은 모습을 찾았다. 그러고 그 앞에 국화 한 송이를 둔 후 당신과 서로 고개를 숙이고 다시 고개를 들어 당신의 얼굴을 살필 때 나는 오랜만에 당신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는데 당신은 아주 살짝만 툭 쳐도, 조금만 쿡 찔러도 금방 눈물이 흐를 것만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당신이 나를 본 순간 눈물이 차오른 거 같기도 했다. 당신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가득히 고여있었는데, 그럼에도 당신은 나에게 예전에 딱 한 번 들려주었던 다정한 목소리로 어떻게 왔냐며 입은 웃어 보이려 노력했다. 그 미소가 너무 따뜻해서, 아마 당신의 눈을 깊이 쳐다보지 않았더라면 눈물이 가득했던 눈동자를 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한편으로 어렵기만 했던 당신은 그날 내 앞에서 아버지를 잃은 어린 소년으로 변해 있었다. 당신 혼자 꿋꿋이 자리에 서서 인사를 하는 모습이 10년 전, 학교에 갔다 중간에 조퇴하고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상복을 입은 채 눈물을 뚝뚝 흘리며 들어오던 초등학생 사촌동생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회사에서 무서운 선배인 당신도 아버지의 죽음 앞에선 그저 어린 소년일 뿐이었다. 당신은 그 순간 내 앞에서 여린 소년이 되었다.



"어떻게 왔어요."

"와야죠. 와야죠..."


그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아주 잠깐이었다. 당신을 꼭 안아줘야겠다던 생각은 당신의 두 눈을 보는 순간 놀라 잊혀지고 말았다. 당신을 품에 안으면 그 눈물이 그대로 쏟아질 것만 같았다. 당신은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 고여도 애써 따뜻하게 웃어 보였기에, 어떻게 왔냐며 다정하게 웃어 보였기에,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써 눈을 깜빡이지 않던 과거 나의 모습들이 떠오르며 당신을 차마 꼭 안아줄 수가 없었다. 퇴근하고 바로 오느라고 알록달록하다고 어두운 코트 속 삐죽 튀어나온 체크무늬 셔츠를 가리키며 당신을 웃게 하려고 했지만, 사진이 올려져 있던 방과 신발장 사이 잠깐 문턱의 그늘 아래 우리 둘의 모습이 감춰졌을 때 우리에게 주어졌던 시간은 너무 찰나여서 당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그 모든 말들은 공기 중에 흩어져버리고 우리는 그저 말없이 잠깐 서있었다.



밥 먹고 가라던 당신의 따뜻함에, 당신이 안내해준 자리로 가 회사에서 오고 가며 마주친 적 있는 선배와 마주 앉았다. 그리고 자리를 지키러 돌아가기 전 함께 식사하고 가라며 우리를 인사시켜주는 당신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당신은 또 한 번 웃어 보였지만 그 미소의 무게가 가늠 되질 않아 나는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같이 앉은 선배에게 인사하고 밥을 먹으려 마스크를 벗으니 문득 선배가 마스크 벗은 모습을 처음 본다고 해 깜짝 놀랐다. 생각해보니 일 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제대로 얼굴도 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동안 나는 당신의 얼굴을 몇 번이나 마주 보았을까. 몇 번이나 당신의 표정 속 당신의 마음을 읽어보았을까. 그리고 오늘 나는 마스크에 가려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 뒤에 표정을 읽어낼 수 있었을까.



돌아오는 지하철 안, 당신을 봤다는 안도감 반, 당신이 견뎌야 할 시간에 대한 걱정 반. 집에 도착해 가방을 정리하고, 씻고, 자려고 눕는 순간까지 가느다란 실로 당신과 내가 연결되어있듯 마음속에서 당신이 떠나질 않았다. 새벽의 공기가 내려앉던 시간, 당신은 자려고 누웠을까, 잠이 오기는 할까 하는 마음에 카톡 창을 켜 한 글자 두 글자 적어 내려갔다. 그날 적은 나의 편지는, 잘 버티고 있냐는 질문으로 시작해 아무것도 괜찮지 않지만 우리는 버틸 수 있다는 약속으로 끝났다.



아무것도 괜찮지 않지만 우리는 버틸 수 있다고.

기도하고 있다고.


그래, 그때부터였다.


#2. 아무것도 괜찮지 않지만, 우리는 버틸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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