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요일은 쉽니다 May 04. 2024

너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

십 년이 지나 강산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십 년이 지나 강산이 변해도 변하지 않음이

너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

너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동안 흐른 시간을 생각해 보면 이제는 어쩌면 아마도 더는 없는 것 같기도 했다.


헤어진 지 십 년. 십 년이면 많은 것들이 변한다 했다.

가장 예뻤던 스무 살의 우리가 만나고, 또 헤어지고,

그렇게 서른이 넘고 강산이 변할 동안 나는 네가 아닌 다른 세상을 마음에 들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너를 품고 살았다 생각하지는 않았다.

네가 나를 더 이상 관통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지난 주말 저녁, 참 오랜만에 대학 친구를 만났다.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하다, 예전에 우리 같이 학교 다닐 땐 어떻게 지냈었는지 또 이야기하다,

그러다 그렇게 문득 네 생각이 났다.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잘 지내고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 정도가 궁금했다.

너와 헤어진 지 십 년, 십 년이면 많은 것들이 변한다 했다.

강산과 함께 내 마음도 변했으려니

그래서 어쩌면 너의 소식을 찾아볼 용기를 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너의 이름을 검색할 땐 여유로운 주말의 일상 사진 정도를 생각하며 들어갔는데

정작 내가 마주한 것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너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다.

스쳐가듯 친구들을 통해 네가 잘 되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친구들을 통해서가 아닌, 인터넷에 검색해도 수많은 기사로 나올 만큼 성공해서

한 때는 나의 세상이던 사람이 이제는 수많은 사람의 세상이 되어있었다.

너는 나와 헤어진 후에 네 안의 세계가 깊어지고, 또 네 밖의 세계로 뻗어 나와

너무나도 아름답고 광활해져 있었다.

그렇게 네가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러다 우연히 접한 인터뷰 영상에서

이번엔 정말 십 년 만에 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을 땐 순간 나의 마음이 무너져내려 버렸다.

강산이 변할 만큼의 그 긴 시간도 참 무색하게

십 년 전 헤어졌던 새벽으로 돌아간 듯 마음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이제는 모질게 헤어졌다고 원망할 시절도 지났는데

십 년이 지나도 어떤 감정들은 쉽게 잊혀 지질 않는다는 걸 그 새벽에 마음이 무너져 내려가며 깨달았다.

십 년 전 그때 어떻게 어떤 정신을 붙잡고 출근을 해서,

어떻게 어떤 정신으로 하루 종일 눈물을 참다가,

저녁이 되고 서야 회사 정문을 나오면 길에 나무를 하나하나 지날 때마다 하염없이 울며 걷던 날들.

십 년이 지나 강산이 변했는데

왜 그날들의 온도와 습도와 바람은 나의 옷깃을 붙잡고 여전히 나에게 묻어있었을까.

왜 차마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나의 옷자락 사이사이에 붙어있었을까.

너의 성공 소식을 접하는 나의 마음이 차라리 부러움이거나 원망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왜 십 년 전 혼자 외롭게 남겨졌던 그때의 감정이었을까.

이 순간이 지나도 네가 없고, 그다음 순간에도 네가 없고

이 호흡이 끝나도 그다음 호흡이 끝나가도 네가 없어서

어찌할 줄 모르고 무서움에 떨던 스물몇 살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난 -


강산이 변할 만큼 길다는 십 년 중 3년을 앓고 그래도 나머지 7년은 괜찮았다 생각했거늘

강산보다도 더디게 변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는 새벽이었다.

드라마에서는 늘 남겨진 사람이 훗날 성공해서 다시 만나는 설정만 접했었는데

현실에서는 차갑게 이별을 고하고 떠나갔던 사람이 더 멋지게 성공을 해버린 설정일 때

헤어진 연인의 이름을 읽고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너를 어떻게 대해야 했을까.

강산이 변하는 십 년 동안 꺼져있던 내 마음은 사실 그 기억속에 살고 있었구나.

아직도 그 사랑의 타고 남은 재 속에서 살고 있었구나.

서로에게 진한 색을 물들이고 품다 우리는 결국 지나쳤는데

강산이 변하는 십 년 동안 나는,

그동안 나는.


시간이 지나서야,

시간이 지나서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그것 중 하나는 어쩌면, 때로는 어떤 마음의 경우에는

십 년이 지나 강산이 변해도 변하지 않음이었나 보다.


헤어진 연인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것

더 구체적으로는, 차갑게 이별을 고하고 떠난 옛 연인의 성공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십 년 동안 여전히 그 이별의 재 속에 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랬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