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한결같음, 그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요

by 일요일은 쉽니다


얼마 전까지 광고회사에 다녔는데

출퇴근할 때마다 제가 지나가는

지하철역 입구에 계셨어요


관심이 없었죠

나의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기에도

너무 바빴으니까


무슨 잡지인지, 어떤 일을 하시는지,

덥지는 않으신지, 또 춥지는 않으신지,

마음속에 어떠한 이야기를 품고 사시는지,

때론 외롭지 않으신지, 가끔 쓸쓸하시진 않으신지,

궁금해할 여유가 없었어요

제 마음이 되게 퍽퍽하고 팍팍했거든요


근데 그분께 관심을 두게 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는데

그분은 해가 내리쬐나, 비가 오나

아무도 출근하기 전 아침 일찍 나오셔서

모두가 다 퇴근한 뒤에야 밤늦게 들어가시고

주말에도 나오셔서 그 자리를 지키시더라고요


근데 그 출구가 그늘이 전혀 없단 말이에요

그래서 항상 되게 죄송했는데

한 번은 지나가면서 신간 잡지 한 권 사고

시원한 물 한 병을 드렸어요

처음에는 사양하시다가, 기다리라 하시더니

가방을 열어 안에 들어있던 빵 두 개를 다 주시는 거예요

자기는 빵 안 좋아하신다며,

전부를 주시는 거예요...


그때 마음은

마치 머리 한 대 맞은 것처럼

아, 나는 내가 가진 것에 아주 조금을 드렸는데

그분은 그분이 가지신 것에 아주 많은걸 주신 거잖아요

아, 나는 많은 걸 가지고도 조금을 나누기 힘들어하는데

저분은 무엇을 가졌다한들

더 많이 나누고 사실 줄 아는 분이구나 싶더라고요


그때 한창 일과 사람 때문에 마음이 복잡하던 터인데

그분이 진정 보람차게, 의미 있게

베풀며 나누고 사시는 분이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생각해보면 그분은

늘 그 자리를 한결 같이 지키셨을 뿐인데

매일 대화를 나누지는 못해도

그 자리를 지키시는 그분을 보며

매일 배우고, 깨닫고

저를 돌아보고, 또 제 인생을 돌아보고

늘 그 자리를 한결 같이 지키셨으니

한결같음, 그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요


그 후 저희는

신간을 살 때마다 물 한 병 드리면

아저씨는 기다리시다가 두유를 하나씩 쥐여주시고

미국으로 떠나기 좀 전에 안 보이셔서 걱정했는데

다녀오고 나니 그 자리에 새로운 분이 서 계시더라고요

그전 분은 취직되셔서 다른 곳으로 가셨다면서


아, 선생님

가기 전에 인사드렸어야 하는데

더 좋은 곳으로 가셨다 하니

그나마 마음이 덜 무겁습니다

합정역 7번 출구

그 자리를 항상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저는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또 나의 목적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네요

힘들 때마다 선생님 생각하면서 한 자 한 자 적은 것처럼

그렇게 한 자 한자 적은 게 이제 책 한 권이 되었어요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제가 오래된 꿈을 찾아 회사를 나왔을 때

제 마음에 한 가지 소원이 있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알아보는 사람이 되면

표지 모델로 쓰임 받고 싶거든요


그때 선생님이 한 권 사주세요

우리 합정역 독자였다고 말씀하시면서


언제든 그리우실 때는 돌아오세요

이곳, 합정역으로


감사했습니다

또 감사합니다


13238_10152906971096264_4680820774900353860_n.jpg




글. 문작가

@moonjakga on Instagram

사진. 홍작가

@d.yjhong on Instagram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름의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