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할 수 있는 상처
말은 형태가 없다.
날카롭고 상처를 내기 좋은 칼이 되기도 하고.
부드럽고 폭신하게 안아주는 침대가 되기도 한다.
말은 마법이다.
또 다른 말로는 저주이기도 하다.
나를 엄마라는 단어로 부르면
엄마라는 마법에 걸려 아이들을 돌보게 되고
엄마라는 저주에 걸려도 아이들을 돌보게 된다.
나는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나이였다.
마법과 저주의 한 끗 차이를 이해하기 힘든,
벌레라는 단어를 곧이곧대로 이해한 어린 나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나에게 밥반 축내는 “식충이”라는 저주를 퍼부었다.
나는 그날 밤.
공황이 왔다.
온몸이 축축이 젖고, 귓가에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식충이..
식충이.
식충이!!
때론 낮고, 날카롭기도
때로는 윙윙 울리기도,
식충이란 말이 밤새 나를 괴롭혔다.
더운 여름밤이었던 것 같았다.
창문 밖에선 귀뚜라미, 풀벌레들이 울어댔다.
너희들도, 나랑 같은 벌레구나.
나는 아빠가 나에게 식충이라고 했어.
나도 벌레야.
벌레는.. 가치가 없는 걸까?
나는 태어나서 소름 돋고 불편한 존재인가?
손으로 휘휘 저어서… 멀리 쫓아내고 혐오스러울 만큼
벌레라는 단어는 나에게 붙어 저주처럼 엉켰다.
급히 숨을 때가 필요했다.
나는 장롱 안에 숨었다. 그 말들이 자꾸 나를 쫓아오는 듯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도, 나는 그 안에서 조용히 숨 죽여 울었다.
장롱 안에 식충이 한 마리는 어두컴컴하고 햇빛에 말린 이불과 옷 냄새를 맡으면서 잠이 들었다.
이 아픔은 넌지시 어루만져 보았다.
왜 아픈 길로 가야만 했는지
그냥 나도 화내고 짜증 내고
그런 말 하면 안 돼라고 어른들한테 톡톡 툭툭 거리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볼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나도 이제- 덜 상처받고 아프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