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첫 번째 숙소
안녕, 양주 집
리모델링 완공 하루 전, 그러니까 이사 3일 전에 대리점에서 연락이 왔다. 본사와의 마찰로 인테리어 공사가 약 일주일 연장될 거 같다는 소식이었다. 청천벽력 그것도 마지막 중도금을 넘긴 다다음날 우리에게 이 사실을 통보해왔다. 양주에서 속초,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부엉이가 새벽에 속초 집으로 가서 공사현장을 확인했었다. 진행이 조금 더딘 부분도 있었지만 붉게 빛나는 대기업이라는 간판은 우리가 소나기를 피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막상 소식을 들었던 당시에는 당황과 혼란스러움에 모든 회로가 정지된 것만 같았다. 다다의 울음소리에 정신 차리고 가장 급한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장 급한 건 역시 일주일 머무를 숙소를 찾는 것이었다. 21개월 된 아기와 고양이까지 최소 방 1~2개는 있어야 했으며, 유아식을 먹이고 있는 상황이기에 부엌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갖춰진 곳으로 반려동물 입실까지 가능해야 했다.
더군다나 우리가 이사하는 날은 여름 성수기가 시작되는 시기와 맞물렸다. 불평들을 쏟아내는 것조차 시간이 아까웠다. 우리가 가장 원했던 장소는 당연히 이사할 집이 있는 속초였지만 속초에는 우리가 찾는 숙소가 없었다. 결국 꽤 멀리 떨어진 평창에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펜션이나 호텔은 대부분 방이 없거나 가격이 너무 비쌌고, 반려동물 입실도 까다로웠다. 방을 구했다는 안도감에 취해있을 때 호스트에게 연락이 왔다. 에어비앤비 수수료가 비싸다며 그냥 계좌이체로 거래를 하자는 제안 했다. 우리 성격상 수수료가 비싸더라도 절차를 걸치는 안전한 방법을 선호하지만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현금으로 결제한 첫 번째 숙소 가격 80만 원.
그리고 이삿짐센터에 연락해 이사를 보관이사로 변경하고 입주 청소는 취소시켰다. 같은 날 작업실도 이사를 함께 하기로 했기 때문에 작업실도 보관 이사로 변경했다. 그렇게 집과 작업실 이삿짐 보관료와 일자별 컨테이너 사용료를 다 합치니 약 180만 원 정도가 추가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은 이틀은 잠도 거의 못 자면서 이사 준비를 해야 했다. (나는 잠을 줄이면 면역력이 그대로 떨어지는 약체이다) 보관 이사로 변경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일주일 치 식량을 빼고는 냉장고를 텅텅 비워야 하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보내주신 고추장, 된장이며 온갖 조미료들을 다 버려야 했다. 멀쩡한 음식들을 쓰레기봉투에 담을 때마다 ‘아까워’만 반복했다.
그렇게 며칠 고생을 하고 나니 곧 이삿날이 되었다. 이삿날 당일에도 3시간도 못 잤던 거 같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직 남아있는 냉장고 음식들을 정리하고 아가 다다가 먹을 아침, 점심 유아식을 준비했다. 숨 고를 틈도 없이 이삿짐센터가 들이닥쳤다. 아기용품에 고양이 용품까지 당장 우리가 입을 옷은 딱 두벌씩밖에 챙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쫓겨나듯 양주 집에서 나왔다. 따뜻했던 양주 집과 제대로 된 작별 인사 조차 나누지 못했던 게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부동산 계약과 이삿짐 상황을 확인 후 다다의 낮잠 시간에 맞춰 우리는 일단 강원도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지만 내가 울상을 짓기에는 내 뒤로 이제 겨우 21개월 된 다다와 9년 동안 외부 출입이 극도로 적었던 예민한 고양이 장군이가 있었다. 부디 무탈하게 집에만 가자라고 아이들을, 나를, 그리고 부엉이를 다독였다.
작은 위로
불안해하는 장군이를 위해 최소한의 생리현상만 해결하며 달려왔다. 그렇게 도착한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걸어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곳도 있었다. 넓은 집에 감탄도 잠시 방에 발을 딛자마자 느껴지는 지저분함. 서둘러 짐을 대강 정리하고 근처 편의점에서 청소용품을 사 와 청소를 시작했다.
아, 여기 생각보다 더럽다.
둘만 있음 그냥저냥 살아보겠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청소를 해야 했다. 다다방에 깔려고 꺼낸 이불에서는 언젠가 할머니 집에서 맡았던 습기를 잔뜩 먹은 쾌쾌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급한 대로 부엉이가 건조대와 이불을 들고나가 일광소독을 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무더위가 시작된 7월 중순인데도 이 집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에어비앤비로 봤을 때는 에어컨이 있다고 했는데 뭔가 착오가 있지 않나 싶어 호스트에게 연락을 했다. 호스트는 갑작스러운 폭염에 에어컨 설치가 밀려 다음 주나 가능하다며 죄송하다고 했다. 한껏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잘못했다가는 참아왔던 모든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혹시 우리가 다른 숙소를 찾으면 환불이 가능하냐고 물었고 호스트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고 찾아도 숙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 찬밥, 더운밥이 아닌 생쌀이라도 씹어야 했다. 결국 그냥 선풍기로 버텨 보겠다고 했다. 호스트는 미안하다며 그래도 저녁은 생각보다 시원하다는 말로 우리를 토닥거렸다. 안 좋은 말들과 불평을 뱉으면 그대로 돌아올까 무서워 ‘뭐 양주보다 시원하겠지’하며 아무 생각 없이 선풍기를 틀었다. 순간 미지근한 바람과 함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나오는 팝콘 비의 한 장면처럼 먼지들이 날아올랐다. 나는 내가 가진 최대한의 순발력을 발휘해 선풍기 전원 버튼을 손가락이 꺾일 만큼 강하고 빠르게 눌렀다. 그제야 보이는 몇 년 동안 닦은 흔적이 없는 선풍기. 우리는 그 골동품 같은 선풍기를 그대로 들어 올려 화장실로 데리고 가 도대체 얼마 동안 안 씻었냐는 구박과 함께 묵은 때를 박박 닦아줬다. 그쯤 되니 이 모든 상황이 어이없어 웃음만 나왔다.
다행히 호스트 말처럼 해가 지기 시작하니 전국은 열대야니 무더위니 난리인데 평창은 정말 시원했다. 심지어 밤에는 추웠다. 핸드폰으로 현재 기온을 확인하니 22도였다.
이 아수라 같은 상황을 정리하고 베란다를 바라보니 그제야 바깥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순간,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공간이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꿈처럼 둥실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벌어졌던 상황은 마치 꿈만 같았고, 우리는 그저 즐거운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었다. 아마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바람 덕분이었는지 모르겠다.
주방에서 다다의 반찬을 만들고 있던 나는 뜨거운 가스레인지의 열기 때문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그때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바람이 뺨에 도착했을 때는 시원한 맥주를 들이켠 것만큼 시원하고 상쾌했다. 그리고 널어둔 빨래들이 바람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는 모습도 위로가 되었다. 다행이다. 이 집에서의 힐링 포인트를 찾아서-
계획된 일정도 없이 그냥 떠밀려 온 평창. 특별히 가고 싶은 곳도 가야 할 곳도 없었다. 하지만 한낮에는 너무 더워 집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우리는 매일 출퇴근하는 사람들처럼 11시에 숙소에서 나와 오후 3시쯤 다시 돌아왔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부엉이와 나는 ‘그냥 여행 왔다고 생각해’를 정확한 대상도 없이 허공에 반복적으로 말했던 거 같다.
생각하기 나름이야.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여행인 거지.
우리는 대기업에 전화를 걸어 현재 상황을 알렸다. 상담원은 자세히 알아보고 다시 연락을 준다고 했고 답은 이틀 뒤 돌아왔다. 대리점이 채무가 많아 계약을 파기했다며 우리가 대리점으로부터 들었던 내용과는 다른 내용을 들려줬다. 그러면서 본인들은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나 그 사람의 인적 사항을 모두 가지고 있으니 지켜보자는 식으로 말했다. 당황스러움이 밀려왔지만 아직 공사 중이고 공사가 일주일 정도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일단은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니. 우리는 그 믿음직한 간판을 보고 계약을 한 건데...
그렇게 우리가 자기 최면을 반복하고 있는 사이 대리점에서 또 연락이 왔다.
기술자들을 못 구해 일주일을 더 연장해야겠다고..
왜 항상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분노와 불안이 뒤엉켜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중도금 90프로, 3천만 원이 넘게 넘어간 상황이었다. 우리는 상황이 이러하니 중도금의 일부라도 다시 돌려달라고 했다. 알았다는 대답과 반복되는 불일치한 행동들-
화도 내고 어르고 달래고 으름장을 놓아도 반응은 일관됐다. 죄송하다. 빨리 진행하겠다. 이렇게 또 일주일 머무를 숙소를 알아봐야 했다. 숙소는 일주일 전보다 더 없었고 더 비싸졌다. 숙소가 속초에 가까워야 우리가 자주 현장을 방문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더 초조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속초에는 숙소가 없었다. 이런 상황을 주절주절 친구에게 얘기했더니 지역 카페에 올리면 세컨드 하우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끔 방을 내어준다는 글을 봤다고 했다. 알겠다며 바로 지역 카페에 집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다행히 한 사람에게 쪽지가 왔다. 집도 복층으로 분리가 되어 있고 주방도 있는 우리에게 딱 좋은 조건의 집이었다.
7월 30일부터 8월 6일까지 총 80만 원을 요구했고 선입금으로 내가 10만 원을 보내준다고 하니 20만 원을 요구했다. 순간 멈칫했지만 내 시야는 바늘구멍보다도 좁았다. 알겠다며 바로 입금을 했고 주소를 받았을 수 있었다. 호스트에게 받은 주소를 검색해 위치를 확인하는데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이곳은 복층으로 된 주택들이 있을 수가 없는 장소였다. 우리가 주소를 확인하는 사이 그 사람은 문자를 잘못 보냈다며 다시 주소를 보내준다고 했다. 뭔가 잘못됐음을 그제야 눈치챈 나는 호스트의 계좌 번호를 검색창에 입력했다.
유명한 중고 사기꾼.
하. 정말.
부엉이는 바로 전화 걸어 숙소를 취소할 테니 다시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 (우리 부엉이 화나면 무섭다) 그 유명 사기꾼은 우리한테 무슨 개인 정보를 흘린 건지 아니면 부엉이 목소리에 놀란 건지 알았다며 도로 20만 원을 뱉어냈다.다행이지만 내 자신감은 지하를 뚫고 내려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실수라니.. 조금 더 꼼꼼하고, 조금 더 천천히라는 생각과 함께 눈물이 쏟아졌다. 내 얘기를 전해 들은 친구는 자기가 괜히 말한 거 같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아니다. 사기를 치려는 사람이 나쁘지 어떻게 도와주려는 사람은 나쁘냐며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다시 아가 다다가 잠들면 몇 시간이고 숙소를 찾았다. 혹시 취소건이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방금 확인한 숙소를 또 들어가 확인하고는 했다. 뒤지고 뒤져 아파트 하나를 에어비앤비로 구할 수 있었다. 거리는 30분 정도 더 멀어지지만 아파트에 놀이터가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머무르고 있는 숙소 근처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 일주일 내내 다다랑 계단을 오르고 내리기만 했던 거 같다.
다음날, 이 지저분한 숙소에서 떠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펑하는 소리 (여기 머무는 동안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가끔 펑 소리가 났다)와 함께 가스 새는 냄새가 났다. 놀란 마음에 방에서 뛰쳐나오는데 부엉이도 나와 똑같이 냄새를 맡았는지 가스 냄새가 난다며 방에서 뛰어나오고 있었다.
두피까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잠시도 이곳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 옮기기로 예약해 놓은 에어비앤비 호스트에 연락했다. 하루 먼저, 그러니깐 지금 당장 입실이 가능한지 물어봤다. 괜찮다는 답을 듣자마자 미친 사람처럼 짐을 싸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곳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에너지가 없는 우리는 누군가와 싸울 힘도 없었다. 그냥 개선을 바란다는 메시지만 보냈다. 가스 새는 냄새가 나서 불안해서 못 있겠다고 그리고 청소도 신경 쓰셔야 추후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 같다는 말도 전했다.
제발 다음 숙소는 괜찮길 바라며 서둘러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