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이 생기다
예상보다 집이 빨리 나갔다. 양주에 살았던 7년을 다 합쳐도 집을 내놓은 한 달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간 거 같다. 그 덕분인지 집은 순식간에 나갔고 우리는 한 켠의 작은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여유가 생겼다고 할 일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부랴부랴 다음 일들을 진행시켜야 했다. 새로 이사 갈 아파트는 15년 정도 된 아파트였다. 전에 살던 집주인 가족 중 몸이 불편한 분이 있어 집을 이리저리 손 봤다고 했다. 그 부분들이 우리가 생활하기에는 불편했고, 벽지와 마루 또한 세월의 흔적이 짙게 묻어있었다. 고민 끝에 우리는 전체 리모델링을 하기로 하고 업체를 추리기 시작했다.
맨발
이사할 집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밑에 사람이 살지 않는 저층이라는 점이었다. 아가 다다가 맘껏 뛸 수 있다는 이유가 이 집을 선택한 전부였다. 고층에 살았던 우리는 부쩍 많이 뛰기 시작하는 다다 덕분에 아래층 부부를 만날 때마다 혹시 시끄러우면 바로 말씀 부탁드린다는 인사와 다다에게는 계속해서 뛰지 말라는 잔소리를 반복해야했다. 고작 21개월 된 아기가 대한민국의 아파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층간소음에 대해 알리가 없었다. 매트를 깔아도 딱딱한 마루만 찾아 뛰는 다다. 언젠가 대학교 선생님 중 한 분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맨발로 땅을 밟아야 한다. 특히 이제 세상을 딛게 된 아이들은 푹신한 매트보다 흙이라든지 우리가 살아가야 할 딱딱한 바닥을 밝아야 한다고 했다. 양말도 신기지 않고 무게가 온 바닥을 향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했다. 쿵쿵 거리는 적절한 마찰은 운동신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그 신경들은 생존과 직결되는 기억과 관련이 있다고 그러니 너무 많은 절제는 운동 신경을 저하시킨다는 말이었다. 아기가 태어나기 훨씬 오래 전인 20대 초중반에 들었던 내용인데 나는 이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가 다다가 본인의 안전과 아랫집 사람의 안정을 위해 깔아 둔 매트 대신 딱딱한 바닥을 찾는다는 건 생존 연습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저층 중에서도 밑에 사람이 살지 않는 1층 또는 필로티 2층으로 가야 했다. 사생활 노출과 벌레, 소음보다 더 중요했다. 우리뿐 아니라 많은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찾는다. 그래서 로열층만큼 귀한 매물이다. 그렇게 만난 지금의 집.
흔들림
양주에서 속초까지는 데이터상으로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새벽 5시에 출발할 때 빼고는 대부분 3~4시간 가량 소요됐다. 처음 한 두 번은 아가 다다와 함께 속초를 오가는 일정을 시도해봤지만 너무 어린 다다에게는 힘든 시간이었다. 누가 맡아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고심 끝에 힘들더라도 부엉이가 일주일에 한 번, 출근 전 새벽에 속초를 갔다 오는 것으로 일정을 정리했다.
견적은 타 지역 인테리어 업체를 포함해 4군데에 넣었다. 한 군데 빼고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비슷한 금액을 받을 수 있었다. 타 지역은 하자보수 때 조금 피곤한 상황이 우려되어 속초에 있는 업체들로 추렸다. 또 간판을 달고 있는 사무실이 있는 인테리어 업체여야 했다.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도시다 보니 우리가 매달릴 수 있는 건 브랜드 이름뿐이었다. 우리는 미팅 끝에 국내에서 유명한 대기업 하우시스 대리점과 계약을 하기로 했다. 계약을 하러 가던 날은 온 식구가 다 같이 움직였다. 3층으로 된 건물에 1층은 가전제품을 3층은 서비스센터를 운영하고 있었다. 2층에 우리와 계약할 대리점이 들어가 있었다. 상담하는 날에도 계약 날에도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은 다다를 대리점 실장님, 제품 상담원 모두가 돌봐주는 상황 속에서 진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순탄하게 이사가 진행될 줄 알았다. 중간중간 불안함과 불쾌한 일들이 있었지만 터전을 바꾸는 과정이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이사를 결정하고 진행하면서 작은 사건들이 있었다. 집을 보러 온 사람의 무례함에 아기 다다의 귀를 막아야 했고, 계약을 한 속초 집주인의 갑작스러운 변덕도 있었고, 계약을 한 인테리어 업체는 약속 시간을 자주 어겼다. 피곤한 일들 투성이었지만 나름 의연하게 대처했다. 무례한 사람에게는 돈을 더 준다고 해도 집을 팔지 않았고, 집주인의 변덕은 이 사람의 상황을 적당히 받아주고 적당히 넘겼다. 하지만 약속을 조금씩 어기는 인테리어 업체는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믿고 안일하게 넘긴 게 화근이었다. 그렇게 불행은 우리의 믿음과는 상관없이 깊숙이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