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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jiin Nov 25. 2021

고양이 보은




 속초로 이사를 결정하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역시 집을 내놓는 일이었다. 갈 집은 정해졌고, 현재 살고 있는 이 집이 문제였다. 보통은 살고 있는 집을 내놓고 집을 구하는데 우리의 급발진 추진력 덕분에 거꾸로 일을 진행시켜야 했다.


가장 큰 과제는 '과연 날짜에 맞춰 집이 팔릴까?'였다. 




이사 날짜는 7월 초로 얘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남은 기간은 네 달. 주어진 시간 안에 집이 나갈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금전적인 부분 때문에 집값도 저렴하게 내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덜컥 속초 집을 계약하고 온 날 부엉이와 그날 저녁, 맥주 한 잔씩을 했다.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며 서로를 그리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하지만 대화는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았고 불안한 침묵이 간간이 자리 잡았다. 잠시 생각에 잠겨 말이 없어진 나에게 부엉이는 별거 없다며 일단 내일 출근길에 부동산에 들려 집을 내놓고 그다음에 생각하자고 했다. 그러고는 마치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인 것처럼 맥주를 마시는 부엉이를 보고 있으니 불안함 감정보다 안도감이 더 밀려왔다.


   








고양이 보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부동산은 우리와 조금 특별한 인연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6~7년 전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계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동산 사장님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조금 다급한 목소리로 새끼 고양이들을 구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집에 있는 장군 냥이를 보았던 게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부엉이와 근처 펫 샵에 들려 주사기와 고양이 분유를 사서 부동산으로 향했다. 부동산에 도착하니 아직 눈도 못 뜬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박스 안에 들어있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사장님이 부동산 옆 아파트 담장에 서 있었는데 돌 틈 사이로 아기 고양이들이 툭툭툭하고 떨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라며 쳐다봤는데 몸을 숙여서 자세히 보니 너무나도 작은 새끼 고양이들이었다고 한다. 일단 아기 고양이들을 떨어진 지점에 올려주려고 하니 어미 고양이가 또 다른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입에 물고 달아나고 있었다고 한다. 한참이 지나도 어미 고양이가 오지 않자 민망함을 무릅쓰고 우리에게 연락을 했다고 했다.


고양이마다 다르겠지만 일단 매분 매초 생사를 오가는 길고양이 라면 이해가 갔다. 특히 출산을 한지 얼마 되지 어미 고양이라면 더더욱 예민했을 것이다. 사장님이 만지는 순간 사람 냄새가 묻었을 거고 어미는 더 이상 아이들을 데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는 한 마리를 위해 나머지 세 마리를 버렸을 것이다. 어미가 입장에서는 그게 한 마리라도 살릴 방법이었을 테니깐-  



 사장님 손을 거쳐 그다음으로 우리가 이 녀석들 생사에 개입하게 되었다. 한번 살려보겠다며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왔다. 우리도 사정은 좋지 않았다. 장군이 또한 예민한 고양이라 특히 다른 동물에 대해서는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한다. 장군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일단 살리고 봐야 했다. 장군이와 새끼 고양이들을 분리시킨 후 부엉이와 2시간씩 돌아가며 수유를 했다. 처음 올 때부터 셋 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태어난 지 며칠 안된 아기 고양이들은 2시간마다 수유를 해야 하는데 부동산 사장님에서 우리에게 넘어오는 그 사이에 수유 텀이 길어진 게 문제였던 거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약했던 한 녀석이 새벽 4시경 움직임이 적어지기 시작했다. 페트병에 따뜻한 물을 넣어 온도를 맞춰주며 계속해서 수유를 시도했다. 먹어야 산다. 먹어야. 제발 먹어라. 제발. 결국 한 녀석은 그날 하루를 못 넘기고 보내야 했다. 나머지 두 마리도 잘 못될까 봐 불안해하며 두 달 가까이를 아기 고양이에게 매달렸던 거 같다. 그 시기에 집은 정말 초토화였다. 다행히 나머지 두 녀석은 살았고 각자 좋은 곳으로 입양을 보냈다. 사실 두 달 동안 키우면서 이름도 짓지 말고 정도 붙이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결국 이름도 지어버렸다. 두찌로 들이고 싶었지만 장군이가 힘들어했다. 두 달 동안 스트레스가 극심해져서 사료 거부와 구토 증상까지 보였다. 우리는 무리하지 말자며 좋은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좋은 분들에게 갔으며, 그중 우리가 쵸비라고 이름을 지었던 치즈 아깽이 집사님과는 간간히 안부를 물으며 지금까지도 잘 지내고 있다. 부동산 사장님은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고양이 안부를 물으며 우리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셨다. 그 계기로 오가며 인사에 한두 마디를 더 보태는 사이가 되었다. 그 한두 마디가 쌓이다 보니 사장님과 나눈 대화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집을 내놓는다는 얘기를 듣자마다 사장님 내외분들은 아파트 매도보다 우리가 떠나는 거에 대해 아쉬워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셨다. 연신 아쉽다는 말을 혼잣말처럼 반복하셨다. 그러고는 걱정 말라며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하셨다. 그날 우리 집은 아파트 매물로 등록이 됐고 누가 봐도 좋은 내용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해 잘 들고, 밝은 정남형

익던션, 식세기 등

귀한 입주 가능 매물

로열층

상태 최상

추천 매물




쵸비와 치타












 집을 내놓은 그날 저녁, 아쉬움과 기대감이 뒤섞인 감정들이 마구 쏟아졌다. 이 순간을 기록해야겠다며 일기장을 찾는데 전날 쓰다만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메모지에는 '해야 할 일'이라며 큼직하게 써놓은 글자들이 보였다.'인테리어 업체 선정, 견적, 이삿날, 대출 심사, 필요한 서류, 집 정리' 등등 다시 봐도 머리가 아픈 단어들이 줄줄이 늘어져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전날보다 조금 가벼워졌다. 부동산 사장님들 덕분인지 이 피곤한 문제들이 조금은 쉬워 보이기 시작했다.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있으니 시간이 촉박해도 하나씩 풀어가면 될 거 같았다. 집을 내놓은 다음날부터 정말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들이 우리 집을 찾아왔고 집을 내놓은 지 한 달 만에 집이 나갔다. 우리는 좋은 가격에 우리가 팔고 싶은 사람들에게 집을 팔 수 있었다. 이 가족분들이 집을 보러 왔을 때 부동산에서 고양이 얘기를 들었다며 부동산 사장님이 칭찬을 많이 해서 우리가 너무 궁금했다는 낯 뜨거워지는 얘기를 건네 왔다. 순간 얼굴이 붉어져 뭐라 말도 못 하고 아무 말 대잔치로 얼버무렸다. 

집도 마음에 든다며 바로 계약을 하자고 했다. 순식간에 계약이 진행됐고, 계약금이 들어왔다. 막상 집이 나가고 나니 서운함 감정도 들었다. 처음 이 집을 봤을 때 나 또한 그들처럼 한눈에 반했었다. 당시에도 밝고 깨끗했던 집이었다. 1층살이를 하다 10층에 올라와보니 그렇게 집이 환할 수가 없다며 행복했던 7년 전에 내 모습이 아른거렸다. 좋은 분들에게 잘 갔다며 그분들도 우리처럼 잘 보살펴 달라며 집에게 이별을 고할 준비를 했다.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우리는 본격적으로 속초로 떠날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지금 드는 기분은 후다닥 다 해치워버리고 새로운 집에서 부엉이와 맥주 한 잔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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