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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 journal Apr 22. 2023

마음의 대기질, 아주 나쁨

혼잡한 부유물로 가득 찬 마음이 느껴질 때는 시간을 두자

이 글의 초반과 후반은 다른 시점에 적혀졌다. 쓰다가 만 글들이 꽤 많지만, 사실은 비슷한 기분과 마음상태가 반복되므로, 이어서 쓰다 보면 마무리지을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꺼내 본다.



요 며칠간은, 오랫동안 기다리던 반가운 봄기운과 이윽고 터지기 시작한 꽃망울을 시기하듯 희뿌연 하늘로 시야가 확보되질 않았다. 나의 마음도 이와 유사하게 부유물이 잔뜩 낀 물처럼 희뿌옇고, 자잘한 먼지들이 가득하여 덕지덕지 찌꺼기들이 달라붙은 듯 하였다.


뚜렷한 이유가 없이, 특별한 연유도 모른 채 이렇게 짜증스럽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날들이 종종 찾아온다. 그럴 때일수록 마음은 한층 더 괴롭다. 연유를 찾자고 한다면 몇 가지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떠오른 원가족 내 갈등에 대한 직면, 계획하던 일들이 순차적으로 잘 진행되지 않는 데 대한 불편감, 새로운 변화를 앞두고 또다시 불편한 상황을 직면해야 하지만 도망가고 싶은 마음, 나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대상과 상황에 충분히 집중하고 따뜻함과 애정을 보이지 못한 채 못되고 짜증스러운 마음으로 대하는 것들이 내 스스로의 눈에 빤히 보이면서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커진 것 등등...




3월 중순에 이만큼을 쓰다가 말았던 글인데, 사실 요 며칠도 비슷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어서, 이어서 기록할 수 있을 것 같다.


봄이 되고 날이 따뜻해지면서 쾌청한 하늘과 상승하는 온도에 설렌 것도 잠시, 잊고 있던 그러나 늘 익숙하게 여겨졌던 미세먼지와 황사가 몰아쳤다. 대기질을 확인하는 것이 아침 루틴이 되어 버려 늘상 확인하는데, 대부분은 '나쁨', '아주 나쁨'이고, 최근에 며칠은 '최악'이라는 경고가 뜨기도 했다. 마치 재난이라도 일어난 듯 진동이 3번이나 연달아 울리면서.. 까만 방독면을 쓴 이모티콘이 위협적인(이라지만 사실 좀 귀엽게 생겼다) 표정을 지으면서!


하여튼 요즘 대기질을 늘 확인하듯이, 오롯이 혼자일 수 있는 오전이나 밤시간이 되면 내 마음의 대기질을 살펴보곤 하는데, 이 또한 '아주 나쁨'이다. 마음 속에 부유물이 가득한 느낌이다. 위에 기록한 것과 아주 유사한 느낌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비슷한 포인트에서 비슷한 느낌과 분위기와 마음상태에 직면하게 된다.


최근에도 나름대로 찾아보면 이유가 있다.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거절하는 일'을 기어코 해낸 데 대한 뿌듯함과 시원함도 잠시, 어쨌든 아직도 당분간은 기존 직장에 계속 다니며 이러저러한 일들을 마무리해야 하고, 새로 옮긴 직장은 케이스가 아직 많지 않아 출근하는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많아 커리어와 수입에 대한 고민이 증가하고, 자녀, 부모, 배우자, 친구, 지인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도 하나 둘씩 얹다 보면 어느새 마음에 크고 작은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시간은 많아지고 수입은 줄어들고 선택지는 많은데 지금 당장 할 무언가가 있진 않으니, 이런 시기야말로 잡생각과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딱 좋은 조건이긴 하지.



불면이라고 진단하기엔 애매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쉽게 잠들지 못하고 늦게 자며 필요한 잠의 양이 많지 않은 편이다. 그나마 요즘은 체력이 딸려서 11시쯤 잠든 김에 내리 쭉 자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왕왕 생기지만, 평균적으로는 그렇다. 하물며 와인 한 잔, 맥주 한 캔 마신 날에도 2-3시에 자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 마시면 더 잘 잘 수도? 있겠지만, 다음날 숙취의 공포를 상기시키며 늘 나름대로의 적정 수준을 유지한다. 적정 수준을 유지한다는 점에서는 자기절제력이 높은 것 같지만, 결국 주 2-3회씩 꼭 한 잔씩 하는 선택을 한다는 걸 보면 물질-중독적인 것 같기도 하고?)


어제도 자려고 누운 것은 12:30 정도였지만 실제로 잠든 건 2:00였고, 1:20쯤 겨우(드디어!!) 휴대폰을 내려놓은 채 잠을 청하려 시도하다가, 요즘의 내 마음상태와 생각에 대해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할 일이 없어서인지 생각을 이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 참고로, 여기에는 불면쟁이들이 보이는 안 좋은 습관들이 3개나 적혀있다: 

           시간을 반복해서 확인한다, 

           잠자리에 휴대폰을 들고 들어간다, 

           자려고 누워서 안 자고 뻘생각(=다른 활동)을 한다.


그러면서 꽤 많은 생각들이 정리되었다. 

사실 밤중에 한 생각이라 자고 일어나니 많이 잊어버리고도 했고, 너무나 구구절절 솔직한 마음들이라 자세히 적기는 어렵지만... 


아. 예를 들면 그런 것도 있었다. 

이제는 나의 아이가 엄연한 어린이에 속하는 나이가 되다보니, 미술, 운동 등 여러 활동들을 체험해보도록 하는 중인데, 여태까지는 늘 아이가 알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그룹을 지어 함께 해 주도록 했다. 그러다가 어제 아이가 어떤 활동을 하고 싶다고 하여, 처음으로 혼자 해 보도록 하는 날이었다.


어린이라지만 아직도 내 눈에는 아기이고낯도 많이 가리고 소극적인 성향이라 새로운 환경과 사람과 활동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데다가, 최근에 함께 수업을 듣는 친구가 늦어 혼자 기다린 적이 있었는데,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못하고 쭈뼛대며 서 있는 장면을 보고 너무 짠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인지... 혼자 하는 활동에 대한 걱정이 앞섰었다. 


한편으로는 꽤 의젓하고 선생님들과 애착을 잘 맺는 강점이 있는 아이이니 은근 잘 해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되고, 행여 실패하거나 좌절하거나 실망하거나 재미가 없더라도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는 경험 자체는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신념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괜히 전전긍긍, 싱숭생숭, 불안초조한 마음이 들었던 모양인지, 기다리는 50분 내내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과를 먼저 말하자면, 아이는 예상 외로 활동에 만족했고, 같이 활동하는 언니들과 이야기를 조금 나누었는데 그 기억이 좋았는지 "여기 마음에 들어, 다음주에도 또 오고 싶어."라는 말로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항상 아이들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다) 결론적으론 다행이었지만, 어쨌든 그 일련의 과정에서 들었던 수많은 복잡한 심경, 앞으로 아이와 함께 해야 할 수많은 일과 활동과 결정과정들에 대한 생각들이 떠오르며 복합적인 마음 상태가 되었던 것 같다.


앞서 언급한 적 있는 현 직장에 대해서도, 의식적으로는 주로 '잘했다, 시원하다, 신난다(!), 해방이다(!!!)' 같은 감정과 생각들이 주로 떠오르지만, 마음 속 한켠으로는 '이게 최선일까?', '은근 좋은 점도 많았는데', '내가 너무 부화뇌동한 건 아닐까?' 같은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너 진짜 제대로 선택한 거 맞아?"라는 마음의 소리가 미묘하게 울려퍼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밤잠을 채 이루지 못하며 이런 모든 생각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다가 가장 뚜렷하게 인식된 마음의 목소리가 있었는데,


"이러니 요즘 들어 마음이 복잡할만 했네. 정말 그랬겠네."

하는 목소리였다.


가장 뚜렷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목소리가 

이런 자기 수용의 목소리라는 것에,

괜히 찡하고 짠하고 스스로 대견하기까지 하였다.






상담을 하다 보면 간혹 듣는 말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한 번도 힘든 일을 겪어보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마 이런 얘기를 하면 잘 이해 못할 것 같아요" 이다. 대답부터 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고요.


자신의 마음을 통제하는 데서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심리학에 끌릴 리가 있을까? 나는 아마 없으리라 확신한다. (아닌 누군가가 있다면 죄송합니다^^;) 심리학이 아니라면, 하다 못해 종교학, 철학, 인문학, 과학 중 하나에는 끌리지 않을까? 


진리와 의미와 정신적인 무언가에 끌리는 인간치고, 내면에 슬픔과 어둠을 갖지 않은 자가 있을까..?


하여튼 나는 태생적으로 그리고 자라나면서 여러 조건들의 조합으로 인해, 잡생각이 많고, 그 모든 생각과 이야기와 목소리들을 내 작은 몸뚱아리 속에 꽉 움켜쥔채 내보내질 않으려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나의 전공과 직업과 활동들은, 결국은 나를 살아내게 하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만약 나의 이 글,

그러니까 특별히 더 재미있지도,

특별히 더 매력적이지도,

특별히 더 유익하지도 않을 지 모르는

나의 이 글을 끝까지 공들여 읽는 누군가가 있다면,

아마 그 누군가의 마음도 나와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누군가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드리고 싶다.


마치 나의 마음이 작은 식물인 것처럼 충분히 들여다보고, 흠뻑 물을 뿌려주세요.
내가 공들이고 관심을 갖는 딱 그만큼, 내 마음은 더욱 튼튼하게 자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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