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야기] 스토너를 읽고

진실한 삶에 대한 찬미

by Moonlight journal

오랜만에 책 하나를 완독했다. <스토너>. 일단은 생각나는대로 끄적여보려 한다.


* <그리스인 조르바>, <위대한 개츠비>처럼, "스토너"도 종국에는 어떤 인물의 전형이자 대명사로 자리 잡을 것 같다. 많은 이들이 그의 삶에 매료되는 것은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진중한 인간으로서의 양심과 무게 때문이라 생각된다. 물론 나 또한 그렇다. 그가 결국은 필부에 불과한 채로 삶을 마감할지라도 그가 살아낸 과정을 묵묵히 지켜본 한 사람으로서 그의 삶에 진심을 담은 찬사와 존경을 느끼게 된다.


* 이 극중에서 '악역'이라고 표현될 만한 몇몇 인물이 있는데, 그들을 단편적으로 그리지 않고 다채롭게 비추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것이 오래된 소설들의 매력이고 진가이지. 그리고 이러한 다채로운 조망은, 스토너가 아무리 끔찍하고 비열한 악의와 조롱에 시달리더라도 끝내 그 행위를 하는 존재(사람) 자체마저 부정하며 증오하지 않고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애정과 존중을 담아 그 대상들을 보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 그렇긴 하지만, 그 모든 순간과 장면을 참아내는 그가 답답하게 느껴지고, 보다가 어느 순간에는 매우 괴로워지기도 했다. 정말로 문자 그대로, 가슴이 묵직해지는 것을 느꼈는데, 가족 내에서 흔히 발생하는 역동이나 특정한 역할을 맡는 것도 아마 이러한 메커니즘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마 내가 스토너 가족의 일부였고 그레이스보다 좀 더 강력한 힘이나 비순응적인 캐릭터의 자녀였다면, 난리난리 쌩난리를 치면서 엄마와 대적하든 집안을 엉망으로 만드는 사고뭉치가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그레이스가 그런 망나니(!) 아이였다면 뭔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어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 이디스라는 인물은 참 흥미롭다. 처음에 이 책의 발간연도를 모르고 보면서 "굉장히 20세기 초반 사람 같이 히스테리를 부리네"하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발간연도가 1960년대이고, 극중 인물들은 1900년대 초반생으로 설정이 되어 있다. 이 시기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태동하고 꽃을 피우던 시기이고, 성적인 억압과 정신/성/신체/언어적 학대가 가족 내에서도 난무한 시기였던 만큼, 심리적 문제가 성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로 많이 나타났고, 정서적 문제가 표출되는 데 있어서도 현대인들처럼 좀 더 정갈하게 정리된 형태가 아닌, 더 유아적이고 미숙하며 히스테릭한 형태로 많이 나타났다고 알려져있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분석을 현대에 그대로 적용하려면 약간 시대착오적이거나 과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실제로 노이로제라든지 히스테리같은 것에 대한 연구나 관심도 많이 저하되기도 했고.. 하지만 이디스는 1900년도 초기 인물이라 그런지 정말정말 히스테릭하다. 히스테리의 교과서 같은 느낌의 수많은 언행들을 보여주는데 놀랍고 매력적이고 하지만 너무 싫고 ㅠㅠ 한 개인의 삶으로 보면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의 삶을 그렇게 파괴해버리는 것에 대해, -심지어 자신은 전혀 파괴했다고 인식하지 못하고 사랑했다고 굳게 믿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너무나 괴롭고 화가 나고 절망적이었다. 아. 다시 생각해도 너무 힘드네.


* 스토너는 결국 그의 은사와 유사한 형태로 삶의 궤적을 밟아가며 유사한 형태의 죽음을 맞이한다. 이것은 또 <백 년 동안의 고독>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나마 스토너는 가족을 꾸렸고 사랑도 해 봤고, 불의에 대항도 해 보았으니, 그의 은사보다는 조금은 더 나은 삶을 살았던걸까? 모르겠다. 다만, 나는 인류든, 어떤 개인이든 자신의 선대보다는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 간다고 믿는다. 상담자이니만큼 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비록 알코올 중독에 빠졌고 아이를 제대로 보진 못하지만(일시적일 거라 믿는다ㅠㅠ), 아버지와 조금 더 친밀하고 솔직하게 소통하고, 조금 더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인식하려 했던 그레이스가 이디스보다는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 그의 삶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고, 곧 눈물 주룩주룩이겠구나 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웬걸? 이러한 나의 예상과 달리, 그는 그가 살아온 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겸손하고 절제된 형태로, 그러나 그 단단하고 무미건조해보이는 외면 아래 숨겨져있던 풍요롭고 아름답고 호기심 넘치는 행복과 평온이 가득했던 내면 세계와 유사한 형태로 너무나 아름답고 평온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따라가다보니 이윽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그의 삶을 절대 후회하지 않겠구나 하는 것을 정확히 알았기에 슬프지 않았던 것 같다. 딱 필요한 만큼의 슬픔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그가 그토록 바라던 평온과 안식이 이곳 너머에서 존재하기를 바라보며..


* 누구도 그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는 내용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책장을 덮은 순간 어느 누구도 그를 별 것 아닌 대수롭지 않은 존재로 여기지 못할 것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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