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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juyeon Mar 23. 2021

매일 하나의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

브런치 작가가 되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100%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글 쓰는 것은 종종 두려운 일이다. 말은 날아가지만 글은 남는다. 말은 육체를 갖고 있지 않지만 글은 그 육체를 갖고 있는 까닭이다. 때로는 스스로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글은 자라서 미래의 내 눈에 도착하고, 공개 발행된 글은 타인에게 닿아 내 의도 너머로 도착하곤 한다. 내 손을 떠난 글의 생명력이 두렵다. 하지만 쓰는 글의 대부분은 독자가 나 한 명인데, 그러니까 나는 나라는 한 명의 독자부터가 두렵다. 그러고 보니 글을 쓸 때에는 내가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편리할 것 같다. 그러니까 하나의 캐릭터를 상정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있나. 나는 목적을 가진 대화를 좋아하고, 그래서 스스로를 종종 회의성애자라고 부른다. 나는 독립적인 사람이고, 지난 40년 정도의 시간을 혼자가 아니기 위해 애써왔다. 그런데 나는 독립적인 사람이고, 지금부터는 굉장히 홀로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의존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가 나에게 의존하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에 가깝고, 그 결과 내게 여러모로 의존하는 두 사람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누군가를 지배하고 싶은 막연한 탐욕은 아니었고, 목적 자체는 상호의존이었다. 살가운 감정을 나누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나에게 그의 필요가 닿는 부분이 있으면 연결이 유지된다고 오랫동안 믿었던 것 같다. 그 의존에 따라, 그 요구에 따라, 나는 몇 번이고 변신하고, 그렇게 나는 자라고 확장되었다. 어디에서나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확장된 나 자신의 여러 가지 버전에 꽤나 만족했다. 그 여러 버전을 다스릴 만큼 충분히 젊고 강인했던 것도 같다. 사람들의 마음을 구하기 위해 어떤 때엔 강한 사람이고 다른 때엔 약한 사람이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왔다갔다 하는 동안 꽤나 소모가 있었던 것도 같다. 계속 어미가 '같다'로 끝나는 이유는 이게 무척 오래전 일인 것 같아서. 마치 내 인생에 있었던 일 같지 않아서다. 지금은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의존이 버겁기만 하다. 아주 작은 감정적인 지지를 하는 것에도 가끔은 기운이 달린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 분화는 한계를 맞이했다.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최고 난이도의 역할이 있었고, 나는 여기에 도착하고 나서야 이 일의 진짜 난이도를 알게 되었다. 사람을 기르는 일 - 갓난아기가 성인이 될 때까지. 한 사람의 시민으로 건강하게 자라나기까지 돌보고 교육하는 일. 내가 스스로 자랐다고 착각했던 것만큼이나 나는 이 일의 난이도를 잘 알지 못했다. 나는 이제 예전에 즐겼던 다양한 역할들을 꾹꾹 철회하고, 나에게 다가오는 다른 감정적, 물리적 연결과 요청, 뻗어나가고 싶은 내 욕구를 억누를 수밖에 없는 삶에 놓여있다. 그리고 나는 그게 매우 불쾌하고 불만족스럽다. 다시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다시 모든 걸 거두어, 나의 분인을 모두 다 끌어와 담아서 온전히 하나의 내가 되어야만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강한 요구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 건 어쩌면 서두에서 말한 그 가장 무서운 독자인 나를 마주하는 것 같은 일이다. 생각을 모아 하나의 완성된 글을 쓰는 과정은 날아다니는 흩어진 자아를 모으고 아교로 이어 붙여 단단한 부분을 늘려가야 하는 자아의 요구와 닮았고, 아마 글을 하나 쓰는 것만큼의 참을성을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대충 말발로 속일 수가 없다. 뿌리가 충분히 단단해지고 나서야 다시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매일 하나의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최근에 읽은 2021 현대문학상 수상작 '우리 여기 마주'  최은미 작가는 글이 풀리지 않을 때엔 일지를 쓴다는 말을 수상소감에 붙여  글쓰기를, 일지 쓰기를 자극했다. '쓰는 사람' 오랫동안 갖고 싶어했던 정체성이고, 전에 아이즈에 투고했던 글들은 자존감이 떨어질  다시 읽어보면  만족감을 준다. 시간이 지나서 읽으니 단단한 글이다. 어느 것도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 적당한 태도가 믿을  있는 필자라는 인상을 준다. 써야 한다. 공부하지 않고서는 글을   없다. 공부하지 않고서도 말은 종종   있다. 공식적인 발표나 강의는 반드시 글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온전하게 말로만  언어라고   없고 어쨌든 그것은 공부를 요구하는 말이다. 무슨 말이냐면, 내게는   확신에  아이디어들이 필요하다는 뜻이고, 그것을 단단하게 땅에 심는 방법은 글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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