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무섭도록 빠르게 현실에 적응했다. 강아지를 돌보는데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강아지들과 함께하기 전 후의 삶은, 분명 변화했지만 뿌리깊이 박혀있는 부정적인 생각과 우울함은 늘 그렇듯 언제라도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너무 빨리 지쳐버린지도 모르겠다. 사랑하게 되면 될수록 언제가 떠내 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당장 내일이 될지 혹은 몇 년 후가 될지 아무도 모르기에 불안감에서 시작된 감정이 뇌를 감싸고 정신을 지배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스스로가 지겹고 끔찍했으며 역겨웠다. 이래서 강아지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그저 현재를 충실히 살고 지금 이 순간 온 힘을 다해 사랑하면 해결되는 가장 쉬운 일을 나는 지레 겁을 먹고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그저 기질이 우울한 사람이 아닐까. 타고난 기질이 우울하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나의 이런 우울함이 어느 날 강아지들에게 침식되어서 안 좋은 결과를 초례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항상 건강하리란 법은 없는데 저 작은 생명체들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순간이 찾아와도 나는 멀쩡하게 다음 삶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강아지들이 집에 오고 해가 바뀌고 다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 이른 새벽까지 잠에 들지 못하는 날이 있었다. 전날 저녁까지 비가 와서 공기는 축축했고 기온이 낮아서 평소보다 조금 쌀쌀했다. 흐린 하늘 사이로 희미한 달빛이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이유 없이 아려오는 가슴에 산책이라도 하면 좀 나아질까 싶어 잠들어있는 그를 뒤로하고 보더콜리와 함께 아파트 단지나 조금 돌아볼까 싶어 리드줄을 잡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용산의 한 아파트는, 여름에는 분수가 나왔고 겨울에는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쉼 없이 반짝이는 곳이었다. 적당한 산책로가 있었기에 멀리 가지 않아도 충분히 걸을 수 있었고, 밤새 가로등이 켜져 있었기에 어둡거나 무섭지도 않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잠이 찾아오길 기다리며 집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는데 아파트 단지에 오토바이 한 데가 진입했다. 혹시라도 아이가 움직이는 물체에 반응하여 뛰쳐나가진 않을까 가만히 줄을 잡고 지나가길 기다리는데 전날 저녁에 생긴 웅덩이와 떨어진 낙엽 때문에 길이 미끄러웠는지 중심을 잃고 옆으로 기울기 시작하더니 바닥에 쇠가 스치는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며 그대로 쭉 미끄러지며 넘어졌다.
순간적으로 너무 놀란 탓인지, 그 순간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과호흡이 시작됐고 숨을 쉬기 어려웠다. 넘어진 운전자분을 도와드리긴커녕, 훌훌 털고 일어난 그분이 다리를 절며 나에게 다가와 괜찮냐고 물었다. 혹 본인이 넘어지며 나를 치고 간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다. 아니라고 설명해야 했으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젖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숨이 진정되길 기다렸다. 숨을 헐떡이는 나에게 헬멧을 쓴 거대한 남자가 다가오니, 보더콜리는 나를 지켜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를 들어내며 매섭게 사람을 향해 짖어대기 시작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는 게 그날이 처음이라 더 당황스러웠다.
나의 강아지들은 언제나 사람을 좋아했다. 모든 사람을 다 좋아했다. 특히 보더콜리가 유독 더 그러했다. 병원에 가면 수의사 선생님을 좋아했고, 테크니션 선생님들을 좋아했다. 카페에 가도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애교를 보였고 지나가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면 장소에 상관없이 배를 깔고 누워 자신을 이뻐하라고 살랑 거렸다. 포메도 사람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저 우리의 품에 안겨있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랬던 아이가 저리 사납게 이를 들어내며 경계심을 내뿜는 모습을 보니, 이대로 가다간 저 사랑스러운 아이의 정서적인 부분을 내가 망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숨을 진정시키고 정신을 차리니 오토바이 운전자는 엎어진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우고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참으로 심란한 하루였다. 밤을 꼬박 새도 도저히 잠들 수가 없는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날 저녁 그가 잠드는 걸 확인하고 부엌으로 들어가 아일랜드 식탁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와인 뚜껑의 코르크 마개를 열었다. 검은빛의 반투명한 글라스잔에 와인을 가득 채웠다. 이어폰을 꽂고 뉴에이지를 들으며 홀짝거리고 있으니 빠르게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슬슬 잠에 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 마신 걸 치우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해 보니 하루종일 이렇다 할 음식을 제대로 먹지 않았기에 기립성 저혈압이 찾아왔고 글라스잔을 그대로 놓쳐서 온 사방에 유리가 튀어 올랐다. 비싸게 주고 구입하진 않았지만 불투명한 컵에 통과되는 검은빛의 음료를 보는 게 좋아서 아끼던 컵이었다. 그저 그렇게 멍하니 깨진 유리를 바라보고 있으니 가장 처음 소파에서 자고 있던 보더콜리가 나에게 뛰어왔고 포메가 왔으며 그다음으로 잠에서 깬 그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부엌으로 들어왔다.
도대체 여기서 뭐 하고 있냐고 그가 언성을 높였다. 이어폰을 꽂고 있어서 그의 목소리가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지만 얼추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사실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깨진 유리 조각 사이로 보더콜리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피가 흐르는 손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얼빠진 사람처럼 그 모든 광경을 그냥 막연하게 구경하고 있었다. 그는 깨진 유리조각 사이의 포메를 안아 들고 보더코리를 데리고 방으로 옮겼다. 이후 다시 돌아와 나를 번쩍 들어 안아 홈바에 올려놓고 깨진 유리조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까지도 나의 귀에는 뉴에이지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가사 없는 멜로디는 구슬픈 사랑노래처럼 들렸고 이후 처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영혼 없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미웠을까. 아니면 걱정했을까. 스스로 찾아 들어온 지옥이 후회되고 원망스럽진 않았을까. 손바닥에 박힌 유리를 잡아 빼고 흐르는 피를 보며 어쩐지 허기가 찾아와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청소를 마친 그가 나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왜 이 늦은 시간까지 안 자고 혼자서 그렇게 술을 마셔.', '너는 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어.', '아무리 놀랐어도 애들이 깨진 유리조각 사이로 걸어오면 못 오게 막았어야지 그걸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쳐다보고 있으면 어떻게 해.'
모든 이야기를 듣는 그 순간에도 머리로는 그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저 멍하니 앉아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할 수 없었다. 잠시 뇌가 정지한 사람처럼, 영혼이 나간 사람처럼.
그는 이런 알 빠진 내 모습을 한두 번 보는 게 아니었다. 싱크대로 나를 데려가 흐르는 물에 내 손을 씻겨주었다. 방에 가둬진 보더콜리가 으르렁 거리는 소리에 가서 방문을 열어주라 말했다. 그는 겉옷을 챙겨 나오며 병원을 가자고 말했다.
"괜찮아, 그 정도는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시끄럽고 옷 입어."
"괜찮다고."
그가 나의 다친 손을 매섭게 잡아끌고 위로 들어 올리자 보더콜리가 살짝 뛰어올라 그의 손을 물었다. 상처가 생길 정도로 강하게 물진 않았지만, 선명한 이빨자국이 보였다. 나를 보호하려는 듯 내게 등을 보이고 서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분명 같이 살고 있었고 함께 키우고 있었다. 너의 강아지, 나의 강아지 할 것 없이 두 마리 모두 공평하게 대하려고 노력했고 어느 한쪽에 치우친 사랑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서로가 바쁘면 당연하게 같이 돌봤고 산책이든 놀이든 너, 나 할 것 없이 시간 되는 사람이 맡아서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어쩌면 무의식 중에 너의 강아지, 나의 강아지를 나누고 차별하고 있었나 보다. 포메는 언제나 그의 발치에 있었고 보더콜리는 언제나 나의 옆을 따라다녔다. 우리는 분명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가 눈앞에서 벌어졌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그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대답하긴 했지만 선명하게 그의 눈에 비치는 서운함은 숨길수가 없었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혼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혼내야 하는지 조차도 몰랐다. 그저 ‘안돼’라고 말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는 자리에 앉아 보더콜리에게 차분하게 타이르기 시작했다. 나를 지키려고 한건 아주 올바른 행동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인이나 타인을 깨무는 건 안된다고. 그리고 네가 아무리 자신보다 나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모두 너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나를 문 것은 아주 나쁜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아무리 보더콜리가 똑똑해도 저렇게 설명한다고 알아들으면 강아지가 아니라 사람 아닌가, 이런 나의 생각에 반증이라도 하는 듯 자신이 문 상처 부위를 핥아주며 귀를 축 내린 상태로 꼬리를 흔들며 그를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배를 깔고 누워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는 단호할 때는 냉정하리만큼 단호했다. 보더콜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을 끄고 나의 손을 살폈다. 이후 나는 그의 손에 이끌려 응급실로 향했고 6 바늘을 꿰맸다. 그가 잡아주는 손은 참으로 따뜻했다.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나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와 동시에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다. 점점 그의 사랑은 빛을 잃고 바래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