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하는 시간은 매일매일이 전쟁터처럼 복잡하고 정신없었다. 인터넷으로 필요한 물품을 빠르게 구매하였고 병원에 데려가서 기본적인 검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정보에 대해서 미친 듯이 긁어모았다. 처음으로 한 일은 사료의 성분에 대해서 공부했다. 이후 여러 가지 훈련방법에 대해서도 공부했지만, 사실 특별히 이렇다 할 훈련을 시키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보더콜리가 너무 똑똑해서 대충 말하면 알아듣고 몇 번 반복하면 알아서 척척 다 해냈기에 특별히 손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포메는 너무 작고 귀여워서 훈련 따위 필요 없다는 듯 그저 이뻐하기에 바빴다.
병원의 수의사 선생님이 말하길
“포메는(포메가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털이 계속해서 빠질 거고 어쩌면 평생 털이 자라지 않을 수도 있어요.”
이 귀여운 아이가 포메든, 치와와든, 믹스든 사실 우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하얀 각질이 일어나고 몸이 가려운 듯 긁어대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고 신경 쓰여서 단지 그 부분을 해결하고 치료해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피부에 관련된 약과 처방사료를 받아왔지만, 한때 안 좋은 이슈가 있던 브랜드의 사료라서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았기에 다른 사료를 구입했고, 약용샴푸를 비롯해서 강아지 영양제 등 할 수 있던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온 정신을 쏟아부었다. 1월의 저물어가는 겨울을 보내고 있었기에 혹 집이 건조해서 더 안 좋아지진 않을까 걱정되어 가습기를 구매하여 항시 틀어놓고 포메가 자는 공간 주변에 젖은 수건을 걸어서 최대한 습도를 조절하려고 노력했다.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그냥 돈과 시간을 무식하게 처발랐다. 이런 우리의 노력을 알아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포메의 피부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두 견종 모두 슬개골과 관절 탈구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았고, 사전에 이를 조금이라도 방지하고자 매트를 시공해서 집안에 설치했다. 식물을 좋아해서 당시 집에 몇 개의 대형 화분이 있었는데 혹시 뜯어먹으면 건강에 해롭진 않을까 펜스를 둘렀다. 침대에 올라가서 잠을 청하려고 하면 강아지들의 낑낑거리는 소리에 거실에 매트를 깔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렇게 빠른 시간을 보내고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약은 꾸준하게 복용하고 있었지만 어느 날부터 수면제 없이 잠들 수 있는 날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불현듯 찾아오는 우울증의 가장 큰 문제는 온 세상이 나를 짓누르는 한 무기력함이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강아지들의 성장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시간이 흐르는지 조차 모르고 지나갔다. 저 작은 아이들이 가진 생명이 나에게 온기를 나누어주고 삶에 조금씩 활력을 불어주고 있었다.
보더콜리의 줄어들지 않는 엄청난 체력에 잠시라도 한눈을 팔거나 잠시 집을 비우기라도 하면 집안의 모든 가구를 다 부숴버리고 다녀서 한동안 이름 대신 파괴왕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좋은 걸 아는 건지 혹은 양가죽이 마음에 든 건지, 특정 브랜드의 가죽 제품만 골라서 전부 다 물어뜯기 시작했다. 어차피 버리는 거 개껌으로 만들어줄까 고민했지만 가공처리한 가죽이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지 염려되었다. 나중에 보면 추억이라 생각하고 상자에 넣어서 보관했다.
소파, 책상다리, 이불, 배게 등 보더콜리가 지나간 모든 자리에 흔적이 남았다. 장난감을 아무리 사다 받쳐도 이틀이면 해지고 뚫리거나 고장 나서 그때 잠시 뿐이었다. 물어뜯는 게 당연하지,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에 차마 혼내지 못하고 그저 묵묵하게 파괴왕이 지나간 흔적을 치웠다. 이 당시에 사람에게 입질을 하거나 포메를 괴롭혔으면 무언가 제지를 가했겠지만 불행인지 혹은 다행인지 그런 부분은 없었다. 시간이 더 흐르고 보니 유독 가죽을 물어뜯는 걸 선호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학원의 다음 학기를 등록했다. 분명 끝을 바라고 있던 나의 삶은 내가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매 순간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담고 흘러갔다. 나는 끝없는 바닷속으로 잠기지 않았고 떠오르려고 발버둥 치지 않았다. 단지 억척스럽게 짜내고 있던 몸의 힘을 풀어버렸다. 죽음을 의식하지 않았고 살아있는 순간을 원망하지 않았다.
두 마리의 강아지가 나에게 보여주는 현실이, 그저 내가 느끼고 볼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이었다. 그때의 아이들의 온기에서 비롯된 다정함은 흐린 하늘의 먹구름 같은 현실이 아닌 마치 휴대폰 밝기를 최대한으로 올린 것 같은 아주 쨍한 맑음이었다. 이러한 변화를 나는 눈치챌 수도, 느낄 수도 없었지만 분명 나의 삶은 그제보다 맑았고 어제보다 눈부셨다.
불현듯 집착하듯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는 생각이 이따금씩 머리를 맴돌았지만 당시에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비추는 햇살이 거실을 관통하고 들어와 나의 마음을,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보다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와 함께 하는 삶, 강아지와 함께 하는 삶은 좋은 핑계가 되어주었다.
마냥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었는지 내가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다면 그랬다면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마음속에 녹여냈을 텐데, 모든 게 어설프고 처음이었던 나는 장거리 마라톤을 전력질주 하듯 달려 빠르게 지쳐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