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사람보다 동물을 더 좋아했었다. 언젠가 먼 훗날 내가 지금 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그래서 무언가를 책임질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을 꿈꾸곤 했었다.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간절했지만 욕심내지는 않았다. 나는 준비가 안된 사람이었고 불행한 내 삶에 강아지가 찾아온다면 그건 행복을 더 하는 일이 아닌, 그저 함께 더 불행하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사를 앞두고 며칠 전, 그가 나에게 물었다.
“강아지 키울래?”
“키우고 싶은데 나는 자신 없어.”
그 대화는 분명 거기서 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에게 두 마리의 강아지가 삶에 들어와 버렸다. 작고 하얗고 보드랍고 귀여웠다. 씩씩하고 생명이 넘쳤으며 그를 증명하듯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갑자기 들이닥친 새로운 환경이 분명 어색하고 불안할 법도 한데, 처음 온 그 순간부터 온 집안을 해 집고 다녔다.
그가 데려온 강아지들은 검은 털과 흰색털이 대칭을 이루듯 섞여있는 말랐지만 그래도 건강해 보이는 보더콜리와 갈색털과 흰색털이 삐쭉거리며 피죽도 못 얻어먹은 것 마냥 삐쩍 말라서 바람 불면 날아갈 것처럼 생긴 성인 남자 주먹만 한 크기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강이지였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두 마리를 데려올 생각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고 한다. 평소에 내가 보더콜리 관련 동영상이나 이미지를 찾아보는 것을 기억하고 있던 그는, 그저 나를 위해 보더콜리 한 마리만 잘 키워보자 했는데, 구석에 박혀서 바들바들 떨며 털이 다 뽑히고 없는지 핑크빛 살을 내비치고 있던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눈에 밟혀 도저히 그냥 두고 올 수가 없었다고 한다. '강아지들도 분명 외로울 테니 한 마리만 덩그러니 키우는 것보다 두 마리를 같이 키우는 게 정신건강에도 더 좋지 않을까?' 뭐 그런 자기 합리화를 끝마칠 때 즘 그 정체 모를 아이를 이미 품에 안고 있었다.
견종이 무어냐 물어보니 ‘포메라니안’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알던 포메와는 전혀 다른 생김새를 가진 그 작은 아이는 한쪽 눈의 색이 아주 조금 특이했고, 털 빠진 치와와처럼 보였다. 그리고 정말 너무나도 심각하게 말라서 보더콜리가 툭 치면 뼈가 훅 하고 부서질 것처럼 보였다. 자세히 보니 피부에는 각질이 일어나고 있었고 마른 등을 쓸어내면 안 그래도 없는 털이 우수수하고 뽑혔다.
그는 분명 이걸 위해서 큰 집으로 이사하자고 했을 것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두 마리의 강아지를 보며 그에게 화를 내야하나 아니면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강아지들보다 내가 먼저 죽을 거 같은데, 그렇게 되면 그가 알아서 책임지려나. 우습지만 본인이 데려왔으니 알아서 책임지겠지. 두 마리 모두 작고 귀엽고 부드럽고 소중했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분명 자신 없다고 말했는데. 내 의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인가. 머릿속이 복잡했다. 손끝에 닿는 감촉이 너무 부드러워서 차마 화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최소한 데려오기 전에 나와 충분한 상의를 마친 다음에 선택해도 늦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냥 해맑게 뛰어다니던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마치 이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듯 맑은 눈을 반짝이고 헬리콥터처럼 빠르게 꼬리를 회전시키며 보더콜리가 나에게 다가왔다. 앞발로 툭 나의 발등을 치고 두 다리로 번쩍 일어나서 나의 다리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한없이 맑은 눈으로 계속해서 나와 눈을 맞췄다.
도대체 언제부터 강아지가 이족보행을 할 수 있는 생물인가 를 고민하기도 잠시, 두 다리로 서는 행위가 아이의 관절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서 품에 안고 손끝으로 등을 슬슬 쓰다듬었더니 5분도 지나지 않아서 나의 품에서 스르륵 눈을 감고 곤히 잠들어버렸다. 혹여나 품 안의 작은 강아지가 잠에서 깨버리진 않을까 안절부절못하며 팔이 저리고 쥐가 날 때까지 그저 마냥 안고 있었다.
사실 그가 강아지들을 내 눈앞에 데리고 온 그 순간부터 나를 그 아이들을 돌려보낼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건 마치 삶이 나에게 준 선물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가장 필요한 무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 미래에 나는 이별의 아픔을 감당해야 하지만 어쩐지 그날 그 순간만큼은 모든 걸 감당할 수 있을 거란 착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그와 아무리 의견을 나누고 오래 대화를 했어도 나는 결코 강아지를 키우겠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나라는 인간은 책임감도 없었으며 혼자 먹고살기 바빠서 모든 걸 등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 순간 그에게 강아지가 키우고 싶다는 무언의 압박을 계속 가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데려올 순 없으니 네가 알아서 데려오라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분명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모든 책임을 그에게 미루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 정도로 나는 수동적이고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몹시 나약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단지 연인이라는 이유로 이런 부족한 나를 감싸주던 그를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가 나를 위해 한 모든 행동은 언젠가 내가 원한적이 있던 일들이 대부분이었으며 단지 그는 눈치 빠르게 모든 것을 알아채고 나를 대신해서 행동했을 뿐이었다.
내가 강아지에 관심이 없고, 키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면 그는 절대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타인으로 인해서 삶의 중요한 부분을 결정해야만 하는 나약하고 비루한 나를 위해서, 총대를 메고 그저 나를 위한 선택을 한 그를, 나는 미워할 수 없었다.
아주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당시의 나는 '강아지, 강아지' 아주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고 한다.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강아지들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고 티브이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내 모든 관심사가 반려견으로 몰려있었다고 했다. 무리해서 빠르게 이사를 진행한 것도 '지금 집은 좁아서 강아지를 키울 수 없겠지?'라고 내가 은연중에 물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게 사랑일까, 그가 나한테 보여주는 희생이 과연 사랑일까. 그렇다면 그를 위해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은 나는 그를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