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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강

로마에 가고 싶었다. 그곳의 공기를 느끼고 싶었다. 그곳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고 싶었다. 분수에 동전을 던지고 다시 돌아오길 기원하고 싶었다. 사실 로마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그저 어느 순간 이탈리아의 따스한 햇살이 축축해진 내 삶과 영혼을 바삭하게 말려줄 것 같았다.


몇 번째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늘 그렇듯 사소한 영문을 알 수 없는 다툼으로 시작된 싸움은 너무나도 쉽게 관계를 끊어버렸다. 당장 오늘밤 혼자 들어가서 잠을 청해야 하는 침대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오니 여름의 더운 바람을 타고 역겨운 음식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파는 오래된 기름 냄새가 머리를 어지럽혔다. 속이 매스껍기 시작해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벗어났다. 골목을 돌고 돌아 10분 정도 걸으면 허름한 빌라가 나오는데, 그곳의 반지하가 나의 보금자리였다. 인기척조차 없는 어느 골목의 담벼락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귀를 찌르듯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윗집 아저씨가 또 와이프를 구타하는 모양이다. 몇 달 전 저러다 죽겠다 싶어 경찰에 신고했다. 온몸이 멍투성이로 나온 여자는 그저 계단에서 구른 거라고 남편을 두둔했다. 마지못해 경찰이 돌아간 그날 밤,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여자의 목소리는 아침까지 계속되었다. 아, 함부로 타인을 돕는 행위는 그저 기만이고 위선이구나.


이십 대 중반의 가을, 부정적인 생각과 세상을 비관하는 자세는 나를 지탱하는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나 자신이 너무 가여워서 그저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덕분에 나는, 인간관계를 거의 포기한 은둔형 외톨이 같은 인간이 되었다. 사회적으로 타인을 대하는 자체가 나에게는 극심한 감정 노동이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과호흡, 불면증, 알코올 의존등, 식이장애등 건강한 인간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나사 빠진 인간이 되어있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갈 수가 없었다. 영문도 모른 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수면제 없이는 단 한순간도 잠들 수 없었고 아니면 술이라도 마셔야만 했다. 혹시라도 근무 중 혹은 대학원 수업을 듣는 중 과호흡이 찾아올까 매 순간 불안했고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야만 겨우 그 순간을 버티고 지나갈 수 있었다.


이런 나에게도 친구가 있었다. 막연하게 혼자 살아가기에 세상은 너무 넓었다. 먼저 다가가는 성격은 되지 못했지만 누군가 나를 콕 집어서 인형 뽑기 하듯 뽑아 올리면 그저 그 감사함에 저항 없이 따라가는 수동적인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언제나 처참했다. 그들이 나를 포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내가 그들을 먼저 손절했다. 그들이 나에게 바라는 평범한 인간관계가 나에게는 너무나도 벅차고 어려웠다. 내가 그어놓은 일정한 선을 넘어오려고 한다면 나는 그 누구라도 미련 없이 보내주었다.


그 와중에 꾸준하게 선을 넘으며 나를 지탱하던 한 사람이 있었다. 몇 번이나 그에게 선을 넘어오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상처를 주었고 상처를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결코 굴하지 않았다. 그렇게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던 어느 날 그가 완전히 선을 넘어서 나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부산에 거주하던 그는 사랑하는 나의 새로운 연인이자 친구였으며 가족이었다. 그저 보통의 연애를 이어가던 어느 날, 불쑥 찾아온 집의 허름함에 놀랐고 위층에서 들리는 고성에 기함했다. 몇 달 뒤 그는 서울에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남산의 불빛이 보이던 용산의 고급 오피스텔은 내가 살아오던 세상을 부정하듯 깨끗하고 조용했으며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함께 살자고 물어보지 않았다. 마치 우리가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게 자연의 순리인 것 마냥 행동했다. 동정인지 사랑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품은 포근한 곰인형처럼 귀엽고 따뜻했다. 이탈리아의 강렬한 햇살이 아니더라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오는 그를, 나는 막을 수도 밀어낼 수도 없었다. 이기적이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따뜻했지만 불현듯 죽음이 찾아오길 기다리던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도움으로 나아질 수 없었다. 술, 담배, 커피에 절여지고 있는 몸만 큰 어린이였다. 공황장애가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지 혹은 불안함이 공황장애를 더 악화시키고 있는지 구분조차 할 수 없던 그해 가을 퇴근하고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기절했다.


나의 사랑하는 연인은 돈이 정말 많았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돈을 정말 잘 벌었다. 내가 사랑하는 게 그의 마음인지, 물질적인 부분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언제나 여유로웠다.

"그런 푼돈 벌자고 지하철에서 기절해? 그냥 일 그만두고 집에서 쉬면서 학교나 다녀. 네가 이렇게 갑자기 쓰러져서 내가 일하다 말고 달려오는 게 너 월급보다 더 큰 손해야."


당시의 무기력함은 온 세상이 나를 저주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어느 날은 무리 없이 음식을 소화시키다가도 또 어떤 날은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올라왔다. 어떤 상황에서 토하는지, 언제 괜찮은 건지 가늠할 수가 없어서 타인과의 식사가 무척 불편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누군가와 식사하는 게 불편해졌다. 사람들에게 ‘저는 식이장애가 있어서 같이 먹을 수 없어요.’라고 말할 수 없으니, ‘저는 혼자 먹는 게 편합니다.’와 같은 부족한 언어들로 가득 채워나갔다. 덕분에 그들이 생각하기에 나는 사회성이 부족하고 불편한 구석이 있는 다가가기 어려운 종류의 인간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적인 부분에서 크게 신경 쓰고 살지 않았다. 하지만 공적인 부분은 조금 달랐다. 사회생활이라는 현실의 테두리 안에 나라는 사람을 던져 놓고 매 순간 평가를 받아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늘 고개를 숙이고 최대한 숨는 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일만 잘하면 그만이지 싶다가도, 결국 무리생활에서 도태되는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추가적으로 나 혼자서만 피해를 보고 끝나는 상황이면 견디고 말겠지만 그 또한 쉽지 않았다. 결국 나라는 존재로 인해서 알게 모르게 피해를 보는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생겨난다는 사실이 보다 견디기 힘들었다.


17살 이후로 단 하루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 대학시절에는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을 위해서 밤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 카페에서 평일 주 5일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후 이동시간과 강의 중간 남는 시간에 쪽잠을 자면서 생활했었다. 주말에는 프리랜서로 상업 디자인 외주를 받거나, 일이 없는 시기에는 웨딩홀 같은 행사장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렇게 어렵게 졸업했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부러웠던 사람이 근심, 걱정 없이 학업에만 열중할 수 있던 학우들이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누적되어서 당시의 나를 망가트리고 있었다.

결국 나는 밀려오는 무기력감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잠시동안의 쉼을 선택했다. 그가 나를 말랑하게 만들었다는 적절한 핑계도 가지고 있었고 평생 단 한순간이라도 오롯이 학업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존재하지만 그중 가장 쉬운 건 공부라는 말이 퍽 와닿았다. 이렇게 공부에 목매고 있을 줄 알았더라면 학창 시절에 열심히 좀 하는 건데. 시간이 흐른 뒤 뒤늦게 깨달은 나 자신이 우스웠다.


꼭 학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소비하고 싶었다. 지금이 아니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순간의 나 자신을 위해서. 당시에 나는 직장과 프리랜서 생활을 겸하고 있었기에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더라도 모든 일을 멈출 수는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단지 퇴사를 한 것 만으로 갑자기 시간이라는 게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현듯 생긴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너무 어색했지만 집에서 눈을 돌리면 그가 있었다.


함께 저녁을 먹고 가끔 집 앞에 나와 산책을 하고, 늦은 시간 드라이브를 가고.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는 내가 집에서 혼자 술 마시는 걸 너무나도 싫어했었다. 그래서 학교를 마치고 앞에서 친한 동기누나와 가볍게 한잔하고 들어가곤 했었는데, 그 순간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또 같이 살던 그가 잠들면 부엌에서 혼자 쪼그리고 앉아서 몰래 마시던 와인 한잔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스릴도 있고. 어느 날은 아 죽기에 조금 아쉽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곤 했으니.


살아가면서 친구가 뭐 그리 필요하냐고 당당하게 말하던 나 자신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제야 그가 종종 이야기하던 ‘친구’의 중요성에 대해서 조금 실감하고 있었다. 어쩌면 당시의 나는 너무나도 살고 싶어서 발버둥 치고 있었나 보다. 마냥 죽어가기에는 너무 산만하고 정신도 없었다. 부산에서 올라온 그도 그렇고, 같이 어울려주던 그녀도 그렇고. 나는 그 누구에게도 추접한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억지로 웃으며 밝은 모습을 연기하는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그들과 있었을 때 나는 노력하지 않아도 웃을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불안정한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에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들은 나의 삶을 그렇게 구원하고 있었다.


나의 소중한 단짝친구인 그녀는 나보다 1살 많았는데 대학원 면접 대기실에서 처음 만났다. 우연히 내 옆자리에 앉았는데 베이지색 코트를 입고 본인보다 커다란 목화 나무를 들고 있었다. 다른 과와 같은 대기실을 공유했는데 어찌나 시끄럽고 정신이 산만하던지 시장바닥에 있던 기분이었다.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공황장애 약을 복용하고 왔지만 슬슬 한계에 다르고 면접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이 문 밖을 나가면 분명 그가 따뜻한 음료를 들고 나를 기다릴 것이고, 고생했다고 안아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속으로 이런 나를 욕할지도 모르겠다. 한심하다고.


‘아 나는 이런 상황조차 견디지 못하는 나약하고 비참한 인간이구나.’, ‘나 같은 게 무슨 대학원인가.’, ‘여기서 과호흡으로 실려가느니 자존심이라도 지켜야겠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감싸고 식은땀이 흐르던 순간이었다.

‘쾅’ 옆자리의 그녀가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책상을 내리쳤다.

“조용히 좀 해주세요.”

힘 있고 당찬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순간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저 작은 체구에서 어디서 저런 박력과 카리스마가 나오는지. 놀라서 토할 뻔했던 비루한 나 자신은 차지하고 그 순간부터 대기실은 적막하다 못해 고요했다. 옆자리에 앉은 그녀에게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뭐 하는 사람일까, 몇 살일까 뭐 그런 사소한 궁금증이 생겼고 어쩐지 막연하게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 순간이 살면서 처음으로 내가 먼저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면접은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고 다음 해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당연하게도 나는 입학식에 오자마자 그녀를 찾았는데, 애석하게도 발견할 수 없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알아보지 못했다.


당시에 나는 그녀가 아마도 다른 학교로 진학했다고 생각했다. 이후에는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다른 대학원 선생님들과 어울릴 시간이 별로 없었고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었다. 대학원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생각보다 더 많이. 물론 안 좋은 쪽으로. 약간 시간과 돈이 아깝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심각하게 자퇴할까를 고민했었다. 그렇다 보니 어지간한 술자리는 가급적 불참했다. 그러다 1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참여했던 술자리에서, 면접 때 그런 사람이 있었다, 친해지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우리 학교에는 안 온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바로 앞에서 똥그랗게 나를 처다 보며 말하더라.

“그거 난데?”


그 이후로 그녀와 친구가 되기 위해서 별에 별 노력을 다 했었다. 연애감정을 제외하면 살면서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싶어서 노력했던 적이 거의 처음이라 퍽 어려웠다. 혹시 내 행동을 오해하면 어떻게 하나, 집적거린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남자 사람 친구에 거부감이 있으면 어쩌나 등등. 더군다나 학기 말이라서 기회를 잡는 게 어려웠다. 가장 큰 문제는 그녀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술자리에 불참했으며 사람들에게 품을 주지 않았다.


자퇴를 할까 심각하게 고민했었지만 이대로 그녀를 놓치면 어쩐지 후회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다음학기를 등록하기로 마음먹었다. 방학이 끝나고 드디어 대망의 개강이 찾아왔을 때 의도적으로 시간표를 맞추고 대놓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마침 그녀와 함께 어울리던 선생님이 다른 대학원으로 옮겼다. 이건 마치 온 세상이 나를 그녀와 친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정말 다행히도 우리는 성향이 비슷했고 가치관이 잘 맞았다. 분명 어려웠지만 어렵지 않게 그렇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즐거운 시간, 행복한 시간은 언제나 빠르게 소비된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할수록 후에 찾아오는 고요함은 나를 더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었다. 이 순간들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까. 그도 그녀도 항상 내 옆에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언젠가 멀어저야 하는 순간들이 올 텐데. 그런 끝없는 부정적인 생각들. 구렁텅이에 나를 던져버리는 멍청한 의식들. 손에 잡을 수 없는 무형한 아름다움이 훗날 나에게 줄 상처들.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애당초 가지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소중한 기억들. 모든 생명은 결국 죽음으로 이어지기에 끝에는 놓쳐야 하는 모든 것들. 구제할 수 없는 부정적인 자신과 아무리 노력하며 살아도 변하지 않는 삶에 미련을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과 그저 행복해지고 싶은 희망과 함께.


“연말에 부산 해운대에 일출 보러 가자.”

12월의 마지막, 불현듯 찾아온 크리스마스에 술에 절여지고 있던 나에게 그가 말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일출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낭만적이게 새해를 맞는다는 게 나에게는 너무나도 멀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다. 그냥 나의 세계에 그런 감성적인 이벤트는 없었다.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기분일까. 어떤 광경일까. 아름다울까 혹은 한없이 눈부실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그냥 죽고 싶은 걸까 아니면 살고 싶어서 발버둥 치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그와 부산의 해운대로 떠났다.


살갗이 얼어붙는 추위와 수많은 인파 속에서 신경안정제에 취한 상태로 그의 품에 숨어서 지켜보는 일출은 그 무엇보다 무형했다. 그리고 숨 막히도록 아름다웠다.


"우리 같이 잘 살아보자. 함께 잘 견뎌내 보자. 삶에 미련이 없다면 나를 위해서라도 살아라. 그리고 미련을 만들어 보자. 그렇게라도 죽지 말고 살아보자.”


그는 의식 중이든 무의식 중이든 내가 막연하게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마치 알고 있다는 듯 이야기했다. 참 우습게도 당시에 그가 했던 이야기는 뼈저리게 다정하지만, 오히려 너무 다정해서 별 도움은 되지 못했다. 떠오르는 태양의 무형한 아름다움의 끝에 기다리는 건 결국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신년 목표는‘이 우울한 삶을 부디 하루라도 빨리 마감할 수 있기를.’이었다. 별다른 노력 없이 불현듯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길 바라고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결단력이나 용기가 없으니 세상이 나의 삶을 알아서 종식시켜 주길 기다렸다. 그래서 목표라기보단 하나의 희망에 가까웠다.


당시의 나는 이렇다 할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왜 사냐고 물어본다면 아무런 대답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상태였다. 쉼이라는 시간이 주는 안락함이 좋았지만 결과적으로 쉼은 내가 그토록 피하고 있던 무기력감을 안겨주었다.


이런 나에게 그는 간혹 당혹스러운 이야기를 종종 꺼냈다.

“너는 이기주의 개인주의 끝판왕이야.”.

"왜?"

"너의 미래에 나는 없어."

"어차피 인간은 모두 죽을 텐데, 우리의 모든 미래는 결국 죽음을 향하고 있는 거야."

"죽기 직전까지 나와 함께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순 없어?"

"지금 나 행복해"


해가 바뀌고 1월의 첫 주에 그는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나에게 통보했다. 가진 건 몸뚱이뿐이라서,

어차피 나에게 선택권한 같은 건 없으니 그저 그의 말을 따라서 짐을 정리했다. 빠르게 속전속결로 이사가 진행되었고 정신 차려보니 나는 새집에 들어와 있었다.


짐 정리도 마무리되지 않은 바로 다음날, 그는 나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했다. 모든 무형한 아름다움은 결국 먼 훗날 나를 아프게 할 테지만, 작은 심장들은 살아있는 매 순간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기다리고 나를 위해주고 나를 사랑해 주었다. 그리고 그 선물들은 나의 삶에 대한 미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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