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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강

새로 이사한 동네는 강아지를 키우는 반려인구가 많은 곳이었다. 그 덕에 강아지와 관련된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 많았고 대부분의 개인 카페는 반려견의 출입을 허용하는 분위기였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은 없지만 공원에는 들개를 조심하라는 현수막이 붙어있었고, 곳곳에 길고양이들을 위한 쉼터와 사료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호수를 낀 큰 공원과 도시를 가로지르고 있는 수변 공원이 마련된 곳이라서, 자동차나 오토바이와 같이 산책 중 위험한 요소를 마주칠 일이 적었기 때문일까, 목줄을 풀어놓고 산책시키는 강아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중형견 크기의 보더콜리와 함께 산책을 나가면, 별의별 일을 다 겪을 수 있었다. 단지 강아지의 크기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시비를 거는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입마개를 하지 않았다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 등. 나의 강아지가 본인들에게 위협이라도 하고 있다는 듯한 태도와 언행은 보더콜리뿐 아니라 나에게도 극심한 스트레스 요소 중 하나였다. 물론 귀엽다고 칭찬하며 관심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타인과의 대화가 불편한 나에게는 그 또한 썩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목줄을 풀고 산책을 하는 작은 강아지들 중 대부분이 보더콜리를 보면 심하게 경계하거나 짖어대곤 하였는데, 그럴 때마다 보더콜리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아이가 지나가길 천천히 기다려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줄을 풀고 산책 중이던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사납게 이빨을 들이대며 보더콜리에게 돌진하듯 달려온 적이 있다. 보더콜리는 으르렁 거리기 시작했고 혹시라도 나는 나의 보더콜리가 그 강아지를 물진 않을까 염려되어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한 손으로 주둥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리드줄을 손에 감은채 몸을 감싸 안았다. 견주에게 강아지를 챙기라고 이야기하였는데, 휴대폰 보느라 정신이 팔려서 “우리 애는 안 물어요.”와 같은 팔자 좋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 작은 강아지는 코앞까지 다가와서 미친 듯이 짖어대기 시작했고 앞을 막고 서 있는 내 발치를 요란하게 뛰어다녔다. 더 이상 내버려 두면 누구 하나 물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희 강아지는 물어요. 물리면 즉사하겠죠.' 그제 서야 견주는 툴툴 거리며 강아지를 불렀다. 콜 훈련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모양인지, 그 순간 그 작은 강아지가 보더콜리에게 달려들었다.


쭈그려 앉은 상태에서 머즐을 잡고 있던 왼쪽 팔목으로 달려드는 강아지를 막았다. 작은 강아지의 이빨이 팔목에 박혔다. 순간적으로 보더콜리가 강아지를 물려고 하기에 몸통을 잡고 있던 오른쪽 팔목을 보더콜리의 주둥이 사이로 밀어 넣었다. 순간적으로 멈칫하며 힘을 주던 턱에 경직이 느껴졌다. 곧바로 물고 있던 턱을 빼내어 작은 강아지를 향해서 고함치듯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제야 견주가 뛰어와 강아지를 안아 들었고 죄송하다는 말도 없이 도망가듯 자리에서 사라졌다. 분명 내가 자신의 강아지에게 물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붙잡아서 한소리 하고 싶었지만 그 또한 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오늘 이런 일을 겪었으니 분명 다음부터는 더 주의할 것이라 생각했다.


스스로 나를 물었다는 자각을 하는 건지 얼음처럼 굳어있는 보더콜리를 보며 괜찮다고 등을 몇 번 쓰다듬어주고 남은 산책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산책하는 동안 뒤로 접힌 귀는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풀이 죽어 있는 녀석의 모습을 보면서 혼을 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잘했다고 칭찬을 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작은 녀석의 턱힘이 얼마나 강하던지 살이 움푹 파이고 한동안 팔뚝에 시퍼렇게 피멍이 든 상태로 생활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는 괜찮다는 나를 잡아끌고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를 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해서 그 견주를 잡아야겠다는 그를 설득하고 뜯어말리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역할 중 하나였다.


이런 식의 불필요한 사건들을 몇 번 겪고 난 후 산책 나가는 시간을 이른 새벽과 늦은 저녁으로 조절했다. 아침 6시쯤 일어나서 공원을 아주 천천히 크게 두 바퀴, 조금 피곤한 날은 한 바퀴 반 정도 돌면 대충 1시간에서 2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리고 저녁 11시 이후에 한번 더 나가는 방식으로 바꿨다. 간혹 여유가 있는 날은 오후에도 데리고 나갔다. 오후에는 가급적 공원이 아닌 옆으로 찻길이 있는 인도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혹시라도 마주칠 미연의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


포메는 주로 그가 데리고 다니면서 산책을 시켰는데, 줄을 풀고 산책하는 강아지들은 여럿 만났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근처에도 오지 않거나 주인 옆에 붙어있었다고 했다. 아주 가끔 짖으며 달려오는 아이들이 있으면 그냥 말없이 포메를 안고 그 옆을 빠르게 지나갔고, 정도가 너무 심하면 반려인을 붙잡고 한소리 하고 오는 경우도 아주 종종 있었다.


그는 180cm가 넘는 키에 운동으로 다져진 우람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넓은 등판이 꼭 푸른 하늘 같아서 그의 등은 언제나 나의 쉼터가 되어주었다. 내가 느끼는 그는 그저 따뜻하고 포근한 사람이었지만, 타인의 시선으로 보는 그는 약간의 위협감을 주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네가 그러면 상대방이 위협을 느낄 수 있으니 가급적 자제하라고 말리기도 했지만, 그전에 자신의 강아지가 먼저 위협을 받았고 본인이 욕을 하거나 폭력적인 언행을 한 것도 아닌데 상대방이 그렇게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었다. 듣고 보면 다 맞는 말이라서 한편으론 그의 그런 다부진 성격이 부러웠다.


오전으로 산책시간을 조절하니, 이번에는 대형견 친구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다들 나와 비슷한 이유로 이른 시간에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확실히 소형견 강아지들보다 크기가 조금 있는 강아지들끼리의 교류가 더 어렵지 않았다. 그렇기에 길에서 마주치면 강아지들끼리 인사를 하는 모든 과정이 훨씬 수월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반갑다며 인사를 하는 동안 나에게는 무척 힘들고 어려운 견주들 간의 짧은 대화가 이어지곤 하였는데, 다들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중 한 친구는 줄 없이 산책시키는 소형견에게 다리를 물려서 꽤 커다란 땜빵을 가지고 있었다.


하루종일 거센 비가 하늘이 뚫린 듯 쏟아져 오전에 산책을 나가지 못했던 어느 날, 대학원 강의를 마치고 들어오니 타이밍 좋게 비가 딱 그쳤기에 보더콜리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 시원한 밤공기에 기분이 좋아서 어딘가 들뜬 마음으로 산책을 하던 와중에 목줄을 하지 않은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를 마주했다. 멀리서부터 헬리콥터처럼 꼬리를 흔들며 돌진하던 황금빛 멍멍이는 무척 사랑스러웠지만 그거와는 별개로 내 앞으로 다가와 뒷다리로 지탱하고 일어서서 나의 어깨에 팔을 올렸는데 한 손에 리드 줄을 잡고 혹시라도 보더콜리가 달려들진 않을까 걱정하던 나는 그만 중심을 잃고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 순간 보더콜리가 리트리버의 목덜미 물었다. 축축해진 엉덩이를 뒤로하고 나는 한쪽 팔로 보더콜리의 머리를 감으며 벌려진 턱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른 팔로 낑낑거리던 리트리버를 감싼 상태에서 어딘가 있을 견주를 애타게 불렀다. 공원의 구조는 옆으로 인도가 있고 중간에 인공호수가 흐르고 있었으며 몇 미터 간격으로 가로지르는 다리가 놓여 있었다. 마치 청계천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리트리버의 견주는 무책임하게 목줄도 하지 않은 상태로 아이를 산책시키면서 무려 공원의 건너편에 서 있었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확 밀려와서 리트리버를 그냥 놓아버릴까 생각했지만, 만약 아이가 도망가면 찾으러 다닐 견주의 심정이 떠올랐고 이유를 막론하고 우리 아이가 리트리버의 목덜미를 물었으니 우선 견주를 기다렸다. 견주가 다리를 건너오는 동안 리트리버 아이는 얌전하게 내 옆에 앉아있었고 보더콜리는 머즐을 잡힌 채 리트리버를 향해 강한 적개심을 뿜어내고 있었다. 도착한 견주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다행히 리트리버에게 큰 상처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견주는 집에서 나올 때부터 목줄을 하고 나오지 않은 것인지 놀랍게도 양손에는 휴대폰만 들려 있었다. 이게 지금 내가 죄송하다고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이 맞는 것인가.


견주와 약간의 말다툼이 있었다. 더 이상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 적당히 자리를 마무리했다. 손가락엔 선명한 이빨자국이 남아있었고 중지에 피가 몰렸는지 새파랗게 멍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보더콜리는 이제 시바견을 포함해서 리트리버만 보면 으르렁거리고 짖어대기 시작했다. 이후 아이와 산책을 나가서 리트리버를 마주하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이를 잡고 빠르게 지나가거나 혹은 지나가길 기다려야만 했다.


어느 순간부터 보더콜리는 거의 대부분에 상황에 예민하는 반응하는 강아지가 되어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나를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주 작은 소리에도 잠에서 깨어났다. 예전에는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까 편안하게 잠들었다면, 내 발소리만 들려도 자다 말고 눈을 부릅뜨고 나를 향해 걸어왔다. 층간소음을 비롯한 외부의 작은 소음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강아지가 짖는 소리가 들리거나 아파트 벨이 울리고 현관에서 이웃집의 발소리가 조금이라도 들리면 그 방향을 향해 짖었다. 가장 가슴 아팠던 건 그 이후로 몇 년 동안은 내 품에서 잠들지 않게 되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강아지들이 이와 비슷한 행동을 한다고 한다. 주인에 대한 충성심을 바탕으로 보호견 역할을 수행하고자 이런 성향을 보인다고 하는데, 대부분은 유달리 공격성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고 특정 상황에서만 반응하는 거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누구보다 강아지를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던 아이가 갑자기 어느 날부터 변하기 시작했고 어느 날 심각한 상해를 입힐 정도로 사람이나 강아지를 물진 않을까 계속 걱정되었다.


더군다나 포메는 위에 말한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밖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짖지 않았고 외부의 소음을 비롯한 어떤 경우에도 특별히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더콜리가 시끄럽게 짖어대기 시작하면 그를 비난하듯 보더콜리를 향해 짖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의 품에서 잘 잠들었다.


나의 언행, 행동, 불안함, 우울함 등 내가 가진 부정적인 모든 것들이 세상을 아름답고 해맑게 사는 아이의 삶에 안 좋은 영향을 주고 그 결과물이 이런 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반려인을 잘 만나야 반려견의 삶도 행복할 텐데, 어쩐지 내가 주는 대부분의 것들이 아이에게는 안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게 아닌가 고민되었다.


보더콜리는 언제나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인 것처럼 보였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보더콜리의 이러한 문제 행동이 정확하게 어떤 상황에서 발현되는지 파악해야 했기에 우리는 여러 가지 상황들에 대한 실험을 해보았었다.


우선, 우리가 언성을 높이며 싸우면 대부분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아닌 다른 친구와 언성을 높이며 싸우면 배를 깔고 누워서 애교를 부리다가도 물거나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하지는 않았지만 나를 향해 등지고 서서 그 상대방을 향해서 작게 으르렁 거리거나 때로는 큰 소리로 짖어댔다.


또한 그가 나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듯 내 몸을 잡고 강하게 흔들거나, 액션을 크게 하며 폭력적으로 팔을 올리고 위협하려고 하면 달려들어서 그를 물었다. 아주 강하게 피가 나거나 이빨자국이 생길 정도로 물어뜯지는 않았지만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문제였다. 같이 사는 그도 물리는 마당에 아예 타인이 나를 폭력적으로 위협했을 때 보더콜리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안 봐도 눈에 선해 보였다.


훈련소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에게 이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주인에 대한 충성심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답변만 받을 수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위협적으로 구는 게 아닌 특정상황에 대한 반응과 행동이고 나름대로 정서적으로 매우 잘 발달되어 있어서 이러한 경우 교정이 어려울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러한 행동에 대한 근거로는 불리불안이 없다, 견주와 떨어져 있어도 견주를 찾지 않는다,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에게 호의적으로 다가간다, 사람을 포함한 강아지들 간의 사교성이 잘 발달되어 있다 등.


말 그대로 혼돈의 카오스였다. 문제가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웠으며 나한테 안 좋은 영향을 받고 그한테서 좋은 영향을 받아서 이게 지금 이렇게 짬뽕처럼 섞인 건가? 등 머리가 복잡했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주인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과 스트레스로 인하여 집에서도 편하게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언제나 경계태세로 생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이를 토대로 나와의 신뢰도가 올바르게 형성되지 못했다는 고민이 계속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백번 양보해서 도둑은 물더라도, 최소한 그에게만큼은 이빨을 드러내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서열의 문제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당시에 이를 빠르게 교정할만한 솔루션을 그 누구도 주지 못했기에 더 암담하게 느껴졌다.


대부분의 문제행동은 산책을 통해서 교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현재보다 더 많이 산책을 하려고 노력했다. 아침과 저녁에 산책을 나가고 가끔씩 오후에 한두 번 나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내 체력을 바닥을 찍고 있었다. 그가 시간을 내서 산책을 시켜주기도 하였지만 그는 너무너무 바빴고 더 챙기는 만큼 포메를 챙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기에 올바른 해답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책임질 수 없는 사랑만 가득한 무책임하고 보잘것없고 형편없으며 올바른 신뢰조차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모자란 반련인이고 주인이고 아빠였다.

결국 이러한 문제 행동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강아지에게 해답을 찾을게 아닌, 스스로에게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결과에 도달하였다. 내가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해야 했다. 매사에 인상을 쓰고 항시 부정적으로 불안해하며 약을 먹으며 무기력한 생활을 이어가면 절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나는 그 이전부터 해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나 스스로 변화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느꼈는지 모든 문제의 답을 그저 강아지의 문제라고 스스로 속단하고 행동하고 있었다.


인간은 매우 복잡한 생물이기에, 어느 날은 긍정적인 내가 되었다가 또 어느 날은 예전의 부정적인 나로 돌아가기 일 수였다. 마치 조울증처럼 중간을 찾기 어려웠고 그런 스스로를 컨트롤하는 것도 당시의 나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생각하지만 돌이켜보면 귀찮아서 노력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나는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그게 어떤 방향인지 확실하진 않았지만 분명한 건 과거보다는 긍정적인 삶이길 바랐다. 당장에 나의 정신상태가 하루아침에 뿅 하고 좋아질 수는 없으니 무엇이든 올바른 영향을 끼치는 무언가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조건들이 따라왔다. 우선 그 무엇도 절대 일과 관련되서는 안된다. 또한 이를 통해 어떤 이익과 수익도 발생시키지 않아야만 했다. 또한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내 삶의 방향을 개선시킬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했으며, 내가 그것을 알아가며 흥미를 느낄 수 있어야 했다. 추가적으로 활자중독인 나를 위해서 이러한 모든 것들을 뒷받침할 방대한 양의 자료와 관련 논문이 있어야 했다.


강아지들을 키우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러한 관심은 친환경으로 넘어갔다. 크루얼티 프리, 비건, 지속가능성등은 내가 관심을 가지고 삶의 초첨을 맞추기에 너무나도 건강한 주제였으며 또한 어떤 방식으로든 내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어줄 것 같았다.


어느 날 코스메틱 실험을 당하는 비글의 동영상을 보았다. 실험에 하필 비글이 선택되는 이유는 인간과 보다 친화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뜬 장에서 새끼를 낳는 강아지 농장에 관련된 동영상도 보았다. 버려진 유기견들이 협소한 공간에서 입양을 기다리고 또 죽어가는 과정도 보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부정정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서 대한민국에서 아무리 재활용을 열심히 하고 환경을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중국이나, 미국에서 재활용을 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환경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인 개념을 가지고 올바르게 재활용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행위가 맞고 나 역시 올바르게 재활용을 하려고 노력하고 실천은 하겠지만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환경에 큰 도움은 되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러한 인식에 대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소한 변화가 얼마나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고통받고 있는 동물들이 한순간만큼이라도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고 그걸 위해서라도 재활용이든 비건 화장품이든 뭐든 변화시킬 수 있는 건 변화시키고 실천할 수 있는 건 실천하고 싶었다.


동물복지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삶의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비롯된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인간은 동물의 희생을 밟고 살아가고 있었다. 가죽으로 된 제품, 특히 악어가죽 같은 특수피혁, 품질을 위해서 산채로 벗겨내는 모피, 무수히 많은 종류의 코스메틱 제품, 식탁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식료품 등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들은 결국 환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죽어가는 지구에서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이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속가능성을 비롯한 친환경이 자리 잡아야만 한다고, 당시에 좀 강박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 강박은 채식으로 이어졌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나는 참 무식했다. 채식에도 다양한 등급이 있는데, 당시에 나는 비건까진 무리고 플렉시테리언(경우에 따라서 육류 섭취)과 페스코테리언(붉은 육류, 가금류 및 조류 섭취 금지)의 어딘가를 향해서 도전하고 있었다. 영양을 생각하며 식단을 계획하고 슬기롭게 채식 생활을 이어나가야 했는데, 애석하게도 나는 그냥 무지성으로 육류를 제한했고 안 먹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다른 음식을 잘 챙겨 먹던 것도 아니라서 대부분의 식사를 샐러드와 간단한 파스타 정도로 마무리했다. 나는 건강이 절대 좋은 편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말라서 체지방도 단백질도 부족한 몸을 가지고 있고 면역력도 약해서 감기에도 잘 걸리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섭식장애가 와서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래서 위도 약하고 장도 약하다. 그런데 그런 내가 영양성분 따위 무시하고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니, 그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나에게 무수히 많은 태클을 걸었고, 나는 그때마다 죽어라 싸웠다. 싸움이 장기전으로 이어지면 체력적으로 나는 그를 절대 이길 수 없었기에 결국 매번 그에게 설득당해서 조금씩 고기를 먹었고 결국 채식은 빠르게 포기했다. 대신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동물복지 인증 마크가 있는 제품을 구매하는 걸로 스스로와 타협을 보았다. 채식과 동시에 지속가능성에 대한 집착을 시작했다. 모든 물건을 구입할 때, 크루얼티 프리, 비건 인증, 친환경을 확인하고 구매했다. 사실 가장 좋은 지속가능성은 새로운 물건을 구매하지 않고 기존의 물건을 오래도록 사용하는 것인데 눈이 돌아있던 나는 옷, 신발, 가방 등 지속가능성에 관련된 물품을 닥치는 대로 구매했다. 이러한 나의 멍청하기 짝이 없는 무식한 과소비를 바탕으로 대학원 논문 주제를‘지속가능성 제품이 소비자 구매의도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주제로 선정하기도 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의 지식이 짧음을 느꼈고 결국 이런 생활방식은 나의 가장 소중한 가족들에게 피로함만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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