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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강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남자 둘이서 생활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다투는 일들이 종종 있곤 하였다. 특히 둘 다 일 때문에 예민해진 상태에서는 사소한 언행으로도 큰 싸움으로 번지곤 하였는데, 어쩌면 우리는 풀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이런 식으로 서로에게 방출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다투거나 싸움을 시작하면, 아이들은 언제나 눈에 띄지 구석에 들어가 조용히 몸을 웅크렸다. 싸우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그러다 몇 시간이 지나서 저녁에 시작된 싸움이 아침해를 맞을 무렵이 되면 언제나 보다 못한 보더콜리가 나서서 우리의 싸움을 중재했다. 나한테 한번 와서 애교 부리고 그에게 가서 한번 더 엉기고. 그러다 보면 포메도 슬슬 다가와서 그의 발치에서 한번, 또 내 발치에서 한번. 서로 돌아가면서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그렇게 우리에게 이성이 찾아오면 그제야 우리는 매끄러운 대화를 시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서로에게는 사생활이라는 게 존재하며 가장 가깝고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의논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생겨나곤 하는데, 그런 일들이 조금씩 쌓이고 밀집되어서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서로에게 벽을 만들었다. 대화를 하지 않는 시간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조금씩 질식하듯 질려가고 있었다. 예전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시진 않았지만 이따금씩 늦은 저녁에 혼자 술을 마셔도 더 이상 나를 다그치지 않았다. 나 또한 항상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않고 있던 그에게 지금보다 더 건강을 챙겨야 한다고 잔소리를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늦은 시간 야식을 먹는 걸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언제라도 무언가 요리를 만들어 달라고 이야기하면 군소리 없이 부엌에 들어갔고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드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또 배달을 시켜 먹는 경우에도 혼자 먹는 걸 싫어하는 그였기에 앞에 앉아서 조금씩 같이 먹어주곤 하였다. 그에게는 그렇게 늦은 시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티브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그 시간이 유일한 낙이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더 이상 나에게 무언가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야식을 같이 먹자는 이야기도 하지 않게 되었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들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산책을 나가도 각자 나갔고 차 한잔 마시는 시간도 사라지고 없었다. 어쩌다 시간이 맞으면 저녁 한 끼 정도는 함께 했지만 그마저도 특별한 대화 없이 각자 휴대폰을 보고, 할 일을 하며 식사를 마무리했다.


그의 말대로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서 위와 같은 상황에서도 조금 심심하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딱히 섭섭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숨이 막힌다거나 답답하지도 않았다. 그냥 각자에게 필요한 시간을 가지고 있는 중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누군가 나를 집밖으로 끄집어내지 않으면, 나는 일과 학교를 제외하곤 절대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나를 끄집어내는 건 언제나 그와 그녀였었다. 그리고 그 시기에는 너무너무 바쁘게 생활하고 있어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잘 몰랐기에 더 그를 돌아볼 수가 없었고 어쩌다 시간이 생기면 바쁜 그를 뒤로하고 그녀를 만나러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봤자 한 달에 한번 정도였지만.


일상생활에서 벽을 치고 생활하니 그 외에 모든 부분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서 여행하는 걸 선호했다. 그는 여행이 떠나고 싶으면 내가 아닌 다른 친구와 함께 했다. 무언가 밖에서 먹고 싶은 게 생겨도 더 이상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그 시간을 보냈다. 그가 계획하는 일정에 더 이상 나라는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기면, 어딘가 함께 가자고 제안하곤 했었는데 그런 그의 노력들이 나는 마냥 귀찮고 같잖게 느껴졌다. 그가 나에게 미안함을 가지는 그 자체가 나는 이해가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정작 신경도 쓰지 않고 있던 나를 뒤늦게 눈치 보고 있는 듯한 그의 모습이 어색했고 불편했다.


그와의 서먹하고 불편한 시간들이 사실 나에게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간혹 그가 나에게 무언가를 제안하고 제시하는 게 마냥 귀찮고 쓸모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물론 막상 나가면 엄청나게 좋아하긴 했지만 그때뿐이었고 그렇게 함께 외출했을 때 싸우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우리는 결과적으로 타인이었기에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모든 행동을 그저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었다. 절대 쉽지 않았고 끝내 모든 걸 포용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나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완벽하게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타인을 이해하기보단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게 더 쉽게 느껴졌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의 행동이 도저히 내가 받아들일 수가 없고 그 행동으로 인해서 내가 피곤하거나 혹은 감정적으로라도 피해를 보기 시작한다면 나는 거침없이 그 타인을 끊어냈다.


나는 타인의 삶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모든 선택은 스스로가 결정해서 한 것이기에, 내가 말린다고 듣지 않을 것이다. 혹은 내가 말려서 그 선택을 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그 부분에 대한 후회를 하지 않을 것이란 장담을 할 수 없었기에 나는 누군가의 인생에 관여하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게 잘못된 일이든 옳은 일이든. 물론 그는 모든 상황에서 예외였었다. 그렇지만 내 인생을 소중히 돌보고 있지 않은 그 순간 그의 인생을 소중히 돌보는 것 따위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주의 영역을 벗어났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나를 포함한 자신의 주변을 살뜰하게 챙겼고 그들이 언제나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왔으며 진심으로 그들을 위하고 아끼고 사랑했다. 또한 그들을 돕거나 위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계산을 하지 않았으며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때마다 나는 그에게 쓸데없는 위선이라고 말하곤 하였지만 그는 결코 나의 이야기를 단 한 번도 듣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가 그렇게 챙기던 많은 사람들 중 그의 옆에 도대체 몇 명이나 남아 있는지 아직도 조금 의문이지만 그게 그의 선택이었기에 단지 그를 존중했다.


우리는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었다.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삶을 대하는 태도도 결코 무엇하나 같은 게 없었다. 그는 우리가 뼛속까지 달라서 오히려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가 너무 달라서 그에게는 우리가 남처럼 지내는 모든 시간들이 조금 버거웠나 보다. 서먹한 날들이 이어지고 내가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가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지고 우리가 더 이상 예전만큼 대화를 하지 않고 함께 산책을 나가지 않고 무언가를 같이 하지 않는 그 시간이 나에게 미안함으로 다가왔나 보다. 그리고 그 미안함으로 비롯된 감정은 그의 숨통을 조여 오며 나에 대한 사랑을 조금씩 질식시키고 있었나 보다.


정말 당연하게도 나는 항상 그가 이런 보잘것없는 나를 돌봐주고 보살펴줘서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면에서 그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무척 노력했었지만 애석하게도 그 당시의 나의 노력은 말 그대로 보잘것없었다. 마찬가지로 그 또한 나에게 미안한 감정을 항상 가자기 있었지만 그거랑은 별개로 당시에 그가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감정들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봐도 당시에 그의 사과엔 사죄의 마음이 아닌 죄책감이 더 크다는 걸 알아서 그의 진심을 나는 영원히 끝내 알아주지 못했다.


그의 사과는 마치 나를 외롭게 만들어서, 불안함을 감싸주지 못해서, 우울함을 달래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나도 너를 외롭게 만들어서, 너의 아픔을 온전히 받아주고 이해해주지 못해서, 보잘것없는 나의 노력들이 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해서,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는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을 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을 주지 못해서. 내 삶에서 내가 가진 모든 것들 중 가장 찬란하고 아름답던 너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세상을 향해 나아가던 너의 옆에서 그저 썩어가고 있던 나는 어느 순간 너의 빛에 타들어가듯 먼지처럼 사라지고 있을 뿐이었어.


그런데 그가 나에게 이렇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버리면, 나는 어떻게 했어야 하는 걸까. 내가 더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런 그를 그냥 말없이 안아주고 다독여주고 괜찮다고 응원했어야 하는 걸까. 책임감에서 비롯된 그의 사과를 그저 막연하게 받아들였어야 하나.


그를 처음 만났던 이십 대 중반의 눈 내리던 겨울, 그곳에서 나는 더러운 삶을 비관하며 그저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애송이였다. 매일 술에 취해 어딘지 모르는 골목에 널브러져 그저 흐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당시의 내 머릿속에는 살아가는 게 버겁고 귀찮아서 그냥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타인에 대한 불신으로 누군가를 신뢰하지 못하고, 언제나 가슴 한구석에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었기에 어느 순간 내 인생에 불쑥 찾아온 그가 불청객처럼 느껴졌다. 내가 아무리 그를 밀어내고 도망가려고 해도, 변함없이 그저 나를 기다리고 때로는 이끌어주었다. 그가 나에게 보여준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처럼 탁하거나 더럽지 않았다.


해가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나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서울로 올라왔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나는 그가 내민 손을 외면할 수 없었고 그의 손을 잡았을 때 내 세상은 이전 보다 조금 더 아름다워지기 시작했다. 매 순간 나는 칼을 씹듯 그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는 매 순간 겸허히 받아들였다. 마치 자신이 한 선택에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처럼. 언제나 선택은 그의 몫이었기에 나는 상처를 주면서도 그가 나를 버리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불현듯 도망갈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그때 그 1년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무것도 가진 거 없이 그저 미래를 도모하며 앞으로 나아가던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다고. 물론 나도 그 시절이 참 행복했었다. 다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말하는 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가 가진 게 아무것도 아니라면 나는 정말 몸뚱이 말곤 그 무엇도 손에 잡고 있지 않았기에.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온 다정함에 불안했지만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는 그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고 숨 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나는 그 시절을 마냥 행복하기만 한 순간으로 추억할 수가 없다. 행복한 순간을 만들기 위한 이면에 자리 잡은 그의 노력들이 지금 생각하면 너무 슬프고 애틋하게 느껴져서.


이런 나를 어화둥둥 안고 그저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모습 앞에서, 나는 언젠가부터 그의 앞에서만큼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온전히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잠시 그가 자리를 비우는 순간들이 찾아와도 그동안 그가 나를 안아주며 나누어준 온기가 있었기에 한동안 버틸 수 있었다. 공허하지 않았고 외롭지 않았다. 현실이라는 벽은 조금도 얇아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언젠가 저 벽을 부실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용기가 생겼다.


하지만 그런 나의 의식과는 반대로 나의 정신건강은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듯 빠르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내가 이렇게 되리란 걸 예상이라도 한 듯, 다시 나의 삶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우리가 보다 나은 삶을 선택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는 나와의 삶이 자신의 삶을 갉아먹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의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당시에 그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불안했고 불행했다. 그리고 우리의 불행은 서로를 만나 합을 찾아가듯 더 큰 불행을 만들었다. 불행이 결국 불행을 낳았다. 그 속에서 행복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우리는 그 사실을 분명 알고 있었다. 순간의 행복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걸 알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다는 것도 분명 알았다. 그의 욕심인지 나의 욕심인지 분간도 할 수 없을 만큼 우리는 더럽게 엉키기 시작했다. 자신의 불행을 행복으로 속이는 그를 보는 나의 심정은 처참하고 비참했다.


그런 불행한 삶 속에 어느 날 강아지들이 들어왔다. 그 작은 아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 고요함 속에서 사랑이라는 헛된 감정만 가지고 우리를 기다리던 가녀린 강아지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었을까.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는 그 작은 강아지들을 통해서 숨을 쉬었고 순간의 안식을 찾았다. 때로는 짐처럼 느껴지고 어떤 날은 존재만으로 버거웠지만 매 순간 우리가 무너지고 있을 때 지탱해 주는 작은 보탬이 되어주었다.


인간의 작은 이기심으로 어느 날 삶 속에 들어온 강아지들을 우리는 마냥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없었다. 그러기에 지나치게 서로에게 지쳐있었다. 이 모든 것들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저 선택했고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 거지 같은 상황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없으면 결국 더 힘들고 외롭고 지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릇된 선택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버릴 수도 밀어낼 수도 없었다.


우리는 매 순간 서로를 감싸 안으면서 언제라도 서로를 버렸다. 가장 사랑하기에 버리기 가장 좋았고, 그렇기에 다시 주워 담기에도 편리했다. 이러한 관계는 절대 건강한 관계라고 정의할 수 없었다. 선로를 벗어난 열차처럼 우리가 향하는 곳은 목적지를 알 수 없는 황량한 황무지처럼 느껴지곤 했으니. 어느 날 큰 벽에 부딪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 오기까지, 우리가 선택한 모든 순간들이 나비효과처럼 크고 거대해져서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닿을 때까지.


우리가 이 순간 함께 있지 않아도.

언젠가 네가 너의 행복을 위해 먼바다를 홀로 떠나서

나를 잊고, 우리를 잊고, 우리가 함께한 모든 순간을 잃어도.


그러다 문득 삶이 지치고 힘들어져서 돌아오고 싶어 진다면,

어쩌면 그때는 우리의 옆을 지켜주던 아이들은 곁에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곳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게.


돌아오는 길을 잃어서, 돌아오고 싶지만 돌아올 수 없다면

그때는 내가 너를 찾으러 갈게.


네가 어렵게 찾은 너의 행복이

너의 삶을 보다 나은 곳으로 이끌어서

더 이상 네가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다면

먼발치에서 너를 생각하며, 그 행복이 끝나지 않기를 기도할게.


네가 찾은 너의 행복이 더 이상 우리를 원하지 않는다면

너의 삶에 방해물이 되지 않도록 영원히 네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내가 떠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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