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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강

평화로운 시간은 언제나 위기의 전조로 찾아온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아침을 맞이하는 그 순간 나는 불쑥 찾아온 절망이라는 불청객과 인사를 나눠야만 했다. 당시를 회상해 보자면 온 집안이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보더콜리의 머즐, 팔, 다리가 모두 붉게 물들어 있었고 집안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사방에 흩뿌려진 붉은 피가 말라가고 있었다. 아이는 기운이 없는지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뇌 속의 산소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고,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 찾아온 공황장애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과호흡에 주저앉아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보더콜리는 아픈 몸을 이끌고 나에게 다가와 비릿한 피냄새를 풍기며 그저 내 옆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그저 아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멍 때리고 있다는 표현이 옳은 건지 모르겠지만 온몸을 휩쓸고 있는 무기력감은 나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머릿속이 텅 비어서 뇌가 하얗게 타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고.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가 일어났다. 망연자실하고 그저 자리에 앉아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대답조차 하지 않는 나를 보며 그는 얼마나 답답하고 화가 났을까. 그가 집안에 뿌려진 피를 청소하고 아이를 데려가서 여기저기 살펴보는 동안에도 나는 그저 숨만 쉬며 나에게 찾아온 불행에 대해서 생각했다.


병원을 가야 하니 옷을 챙겨 입으라는 그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인터넷을 뒤져 그나마 평이 괜찮은 병원으로 병원으로 그를 안내했다. 병원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외과적인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었으며 수의사의 실력은 병원의 규모와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고민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병원에 도착한 그는 아이의 상태에 대해서 설명했다. 당장 가능한 모든 검사를 진행했다. 소변 및 종합 검사, 엑스레이, 혈액(혈청, 혈구, CBC, 기타, 응고계/AP, TT, PT, D-dimer), 초음파(복부), 혈액 도말, 혈액형, PCR, 바베시아, DAT test(쿰즈) 등


심각한 빈혈수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나는 아이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등신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수의사 선생님과 그가 무슨 대화를 어떻게 나눴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는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IMHA소견이 보인다는 이야기와 함께 바베시아(기생충), 양파, 마늘 등과 같은 것을 잘못 먹어서 생긴 독성 반응에 의한 빈혈일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병원의 환경이 생각보다 열악했기에 우리는 사실 좀 더 큰 병원으로 옮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의사 선생님이 말하길, 자신은 개원 전 타 병원에서 IMHA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으며 치료해 본 경험도 있다. 그러니 걱정 말고 자신에게 아이를 맡겨달라고 이야기했다. 추가로 약 값을 포함한 기타 다른 검사들에 대한 비용이 만만치 않음을 고지했다.


그는 비용이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으니 아이를 치료해 달라고 이야기했다. 가능한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진행하고 아이에게 가장 좋은 약을 선별해서 사용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수의사 선생님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같은 성분의 복제약이 있으니 그것을 사용하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어떤 게 더 좋은 거지 당장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비용적인 부분을 고려해서 복제품을 권한 것이지만 일단 그는 거절했다. 카피 말고 정품을 사용해 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뒤에도 계속 우리에게 복제약을 권했다.


수액을 맞춰야 하는데, 아이는 회복실에 들어가길 꺼려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우 몸을 구겨 넣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아주 작은 크기였다. 결국 나는 아이를 안은 상태로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몇 시간이고 수액을 맞췄다. 수액 역시 수의사 선생님과 약간의 마찰이 있었다. 기존에 사용하던(이미 개봉된) 수액을 아이에게 맞추는 모습을 그가 발견하고 왜 새것을 사용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면역력 관련 질환이면 조심해서 나쁠 게 없지 않냐고 말했다. 선생님은 일반적으로 모든 병원에서 이렇게 사용하며 이미 개봉된 수액이라고 할지라도 오염된 것이 아니기에 상관없다고 이야기했다. 개봉된 수액을 사용하던, 미개봉된 수액을 사용하던 같은 금액이라면 미개봉한 수액을 놓아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한 추가적인 비용이 필요하다면 지불하겠다는 의사도 분명하게 밝혔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몇 번이나 이미 개봉된 수액을 사용했고 그럴 때마다 약간의 다툼이 오갔다.


1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최소 4시간에서 최대 6시간까지 매일매일 병원에 아이를 데리고 가서 안은 상태로 수액을 맞혔다. 고요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수액을 보며 아이가 하루라도 더 내 품에서 살아있기를 기도 했다. 당시의 그는 매우 바빠서,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다. 외부 미팅이 계속 잡혀 있어서 그의 사무실에 포메를 데려가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포메만 혼자 집에 두고 오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병원에 갈 때마다 한쪽 품에는 포메를 안고 함께 다녔다. 긴 시간 동안 분명 지루할 텐데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를 제외하고 그저 가만히 내 품에서 나와 함께 있어주었다. 지속적으로 피검사를 통해 빈혈수치와 도말을 확인했다. 유의미한 수치 변화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다행히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건강한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언제까지 무기력한 모습으로 마냥 아이의 생사를 기다릴 순 없었다. 어떻게든 몸 안의 무기력함을 밀어내고 사랑하는 나의 보더콜리를 위해서 정신을 차리고 똑 부러지게 행동해야만 했다. 각성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뭔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분명 이 병원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일단 무조건 사람을 의심하고 보는 안 좋은 성격 탓에 생긴 해프닝이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러기엔 아이의 상태변화도 그렇고 어딘가 이상했다. 물론 아이가 급속도로 빠르게 건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찝찝한 마음을 감추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IMHA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논문을 확인했고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수의사 지인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몇 가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빈혈수치가 심각하게 안 좋다는 이야기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수혈을 하지 않았다는 점, 스테로이드 약을 지속적으로 처방하고 있음에도 눈에 띄는 수치의 변화가 없었다는 점, 혈액도말 사진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으며 다른 IMHA를 가지고 있는 강아지들의 사진과 약간의 차이가 보이고 있는 점 등등


인터넷에서 찾아본 정보만 가지고 의사 혹은 수의사에게 공격적인 질문을 하는 자체가 굉장히 무례하며 불합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한번 생긴 의구심은 도저히 해결되지가 않았기에 나는 매일매일 질문 세례를 퍼부었고 납득할만한 대답이 나올 때까지 물고 늘어졌다. 이런 내가 얼마나 진상처럼 느껴졌을까. 당시에도 죄송한 마음은 늘 가지고 있었지만, 그러한 마음을 충분히 뛰어넘을 만큼 나는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평소처럼 수액을 맞추고 있던 어느 저녁, 아침까지만 해도 건강하던 아이가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는 게 좋겠다는 권유에 알겠다고 대답하였는데, 당시 병원에 직원이 없어서 내가 직접 방사능 복을 입고 방으로 들어가서 아이의 몸을 여기저기 돌려가며 엑스레이를 찍었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예전에도 한번 엑스레이 검사가 필요한 시점에서 당시에도 병원에 직원이 없었기에 그가 방사능 복을 입고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래서 별 거부감 없이 수의사 선생님을 도왔다.


그런데 아이의 엑스레이 사진에서 놀라운 게 발견되었다. 약 10cm 정도 크기의 뼈로 추정되는 하얀 물체가 아이의 장기를 관통하고 있었다. 예전의 엑스레이 사진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부분이었기에 수의사 선생님은 당장 아이의 응급수술이 필요하며, 현재 병원에서는 수술을 진행할 수가 없기에 자신이 일했던 2차 병원이나 대학병원으로 아이를 이송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당히 똑똑한 보더콜리가 저 만한 크기의 뼈를 무식하게 씹지도 않고 삼킬 수가 없었다. 그 리고 우리는 치킨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 누구도 집에서 치킨을 시켜 먹지 않았으며 그 이외에 닭 요리도 먹은 적이 없었다. 아이가 아픈 이후로 매사에 예민하게 신경을 쓰고 있기에 잘못된 음식을 집어삼킬 상황이 발생할 수도 없었다. 혹시 산책을 하는 도중 뼈를 발견하여 삼켰다고 생각하기에도, 아이가 아픈 이후로 집 – 병원 무한 반복하고 있었기에 그 또한 불가능했다. 그리고 순간 조금 축 처지긴 했지만, 아이의 컨디션이 무식한 뼈다귀가 장기를 관통하고 있다고 생각될 만큼 안 좋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아이의 바이탈이 매우 몹시 불안정하고, 이대로 가다간 출혈로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될 수 도 있다 있으며 보이는 것과 다르게 현재 매우 위험한 상태이기 때문에 어서 빨리 신속하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의 다정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무너졌다. 어렵게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그대로 놓아버렸다. 제대로 설명도 하지 못했다. 눈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공황장애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대로 길거리에 주저앉았다. 전화기 너머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저 ‘우리 애 죽는데’ 뿐이었다.


얼마 후 그가 도착했고 우리는 서울에 위치한 2차 병원으로 이동했다. 기존의 병원에서 모든 연락을 다 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가서 바로 수술에 들어가면 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약 40분가량을 운전해서 도착한 병원에는 아이를 수술해 줄 수의사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


마냥 울고만 있는 내가 걱정된 건지 그는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나의 친누나를 호출했다. 누나가 병원에 도착하자 보더콜리는 오랜만에 만난 누나가 그저 반가웠는지 꼬리를 풍차처럼 흔들며 배를 까고 누워서 애교를 부렸다. 그리고 누나가 말하길 전혀 아파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방 도착한다던 수의사 선생님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그동안 아이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 당직을 서고 있던 다른 수의사분께 잠시 진찰을 봤는데 진료는커녕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반말은 기본이고 말투는 시비조로 강아지가 너무 위축되어 보인다, 산책을 잘 시키지 않고 있냐 등등


당연한 거 아닌가. 아이가 아파서 며칠을 계속 집-병원을 반복하고 있고 언제 상황이 안 좋아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예전처럼 무리하게 산책을 시킬 수 도 없는 노릇이고 당장 바이탈이 안 좋아서 응급수술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 그래서 여기까지 차로 달려왔는데 한다는 소리가, 성의가 없는 건지 개념이 없는 건지 일순간 화가 끓어올랐다.


병원에 도착해서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마냥 울다가, 멍 때리기를 반복하던 나는 이대로 무기력하게 아이를 떠나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막상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상한 점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그때까지도 담당수의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응급상항이라서 바로 수술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으면서 아이를 위한 그 어떠한 조치도 취해주지 않았다.


만약에 아이가 정말 바이탈이 떨어지고 죽어가는 상황이라면 수액이라도 맞추던가 최소한 장기에 박혀있는 뼈가 이동하지 못하게 회복실이라도 넣어놓고 상황을 살펴보기라도 해야 맞는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상황에서도 보더콜리는 꼬리를 흔들며 병원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신나게 냄새를 맡으며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운 누나와 즐겁게 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누나가 병원의 리뷰를 찾아보았는데 안 좋은 쪽으로 참 가관이었다. 물론 리뷰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지만 당시에 나는 아주 작은 사소한 모든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다 지친 그는 당직을 서고 있는 수의사 선생님과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담담 선생님이 지금 오고 계시니 기다리라는 이야기 말고는 그 어떤 대답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때 이미 우리는 약간의 해탈감을 느끼며 무언가 일이 단단히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건, 담당 수의사 선생님의 의견을 일단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약 한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아이를 수술시켜 줄 담당 수의사 선생님이 도착했다. 우선 입원을 시키고 내일 오전에 상황을 지켜보고 수술을 들어가자고 이야기했다. 병원에 도착하고 약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런 조치도 없이 방치된 상태에서, 도착한 담당 수의사 선생님의 설명도 앞전에 당직을 서고 있던 수의사 선생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일 어이가 없었던 건 아이의 자료를 살펴보지도 않고, 늦은 시간 나와서 귀찮다는 듯한 말투였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서 좀 쉬려고 하는데 갑자기 응급으로 병원에 다시 출근하려면 번거로운 게 당연하다. 추가적으로 우리한테, 보호자한테 친절하게 대해 달라는 것 도 절대 아니었다. 최소한 일단 병원에 나왔으면 본인 환자한테는 관심을 가지고 살펴봐야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어차피 아침에 수술이 가능한 거라면, 우리가 처음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지금은 수술을 진행할 수가 없으니 우선 회복실에 넣어두고 오전에 진행하겠다고 설명이라도 똑바로 했으면 당장 수술이 가능한 다른 병원을 찾아가던 타협점을 찾든 했을 텐데 이제 와서 지금 당장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책임한 태도에 슬슬 화를 참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너무 열이 받은 그가 참지 못하고 한소리 하려고 하던 그 타이밍에 보더콜리가 뒷다리를 들고 일어서서 그에게 폴싹 안겼다. 그리고 나에게도 다가와서 안기기 시작했다. 똘망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본인은 여기서 죽지 않는다고 집으로 가자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에게 말해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서 나왔다. 나는 이곳에서 수술시키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상하게 절대 죽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왔다.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아이가 떠난다면 그때는 뭐 같이 따라가면 되지 않을까.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그제야 수의사들이 쫓아 나와서 아이를 회복실에 입원시키라고 말했다. 그대로 데리고 가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우리에게 이야기했다. 지금의 나로서는 당시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지만 어딘가 협박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무시하기로 마음먹었고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서 밤새 아이의 상태를 살폈는데, 이상한 점은 단 한 군데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내일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니 우선 밥을 주지 않은 상태에서 외과 수술이 가능하고 리뷰가 좋으면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병원의 리스트를 뽑아 놓고 아침해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는 내팽개치고 온 일을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하고 있는 그를 보며 저녁이라도 챙겨줬어야 하는 게 응당 올바른 행동이었을 텐데, 내 머릿속에는 온통 아이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결국 내가 아닌 그가 간단한 배달음식을 주문했다. 당연하게도 둘 다 거의 먹지 못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마침내 아침이 찾아와서 리스트의 가장 첫 번째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아이의 상태를 설명하고 수술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였는데, 전화를 받은 테크니션 선생님이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네. 수술 가능하니까 우선 아이 데리고 병원에 오세요.”


실력 있는 수의사 선생님을 둔 병원의 테크니션 선생님이 가질 수 있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을까. 정체를 알 수 없는 무한한 신뢰도를 바탕으로 이 병원을 가면 아이를 살릴 수 있을 거라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생각이 들었고 리스트의 다른 병원에는 문의조차 하지 않고 일단 그 병원을 찾아갔다.


기존의 다니던 병원에 진료기록을 바탕으로 아이를 진찰하였다. 가장 처음 엑스레이 사진을 본 수의사 선생님은 동물의 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칼슘이 뭉친 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후 다른 자료를 천천히 확인하며 복강 내 가스가 가득 차 있고 위궤양에 의한 위 천공이 의심되며 개복하여 위 상태를 확인하고 천공이 맞다면 봉합해서 나와야 한다고 설명해 주셨다.


IMHA도 여러 가지 검사 기록지를 바탕으로 확인해 봤을 때 모든 키트의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서 병명을 확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스테로이드 약물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의견차이가 발생한다고 굉장희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같은 업종의 타 병원의 진료기록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설명하기에는 도의적인 부분에서 발생할 문제를 염두하지 않을 수 없었고 또한 당시의 우리는 상당히 악에 받친 상태라서 은연중 공격적으로 수의사 선생님을 대했기에 설명해 주시기가 더욱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수술을 위한 검사를 마치고 복부를 절개하는 수술을 받았다. 동물의 뼈를 비롯한 그 어떠한 것도 위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처음에 설명한 대로 천공 부위를 봉합했고 이후 종합적인 검사를 통해서 아이의 컨디션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IMHA치료를 지속해야 하냐는 질문에 검사결과 상 어떠한 소견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럴 필요 없다는 대답을 받았다.


처음부터 IMHA가 맞긴 했던 걸까? 단지 위천공으로 인한 출혈 때문에 발생한 빈혈증상을 오진으로 인해서 여태 독한 스테로이드 약을 먹으며 오히려 건강만 해치고 있던 건 아닐까 등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지나갔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일단 아이가 살아났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며 서로를 위로하고 넘어가는 걸로 마무리했다.


병원에서 퇴원 후 아이의 컨디션은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그런데 그 와중에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복부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다시 병원을 찾아갔다. 필요한 검사를 진행했지만 원인을 발견하는 게 쉽지 않았다. 보더콜리는 다시 한번 더 수술대 위에 올라갔다. 보더콜리의 양쪽 복부에 구멍을 내서 가스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호스를 삽입했다. 원인은 모른다고 했다. 살에 구멍이 뚫려있었기에 아이가 건드려서 호스가 빠지지 않도록 매일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감아야 주어야 했다. 넥카라를 쓴 상태로 생활해야만 했는데 아무래도 불편했는지, 똑똑한 놈 아니랄까 봐 벽과 문의 모서리에 넥카라를 비벼서 어떻게든 벗어냈다.


맨 처음 시작부터 한 달이 넘어가는 시간 동안 나는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대부분의 생활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그리고 마음 좀 놓으려고 하면 또 다른 문제가 다시 발생했다. 당연히 온 신경을 보더콜리에게 집중하고 있어서 예전만큼 포메를 신경 써줄 수가 없었다. 보더콜리가 처음 아픈 그 순간부터 나는 식이장애를 겪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온 나의 안 좋은 습관 중 하나인데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정도가 점점 심해지면 음식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려서 위액을 쏟아냈다. 이 기간 동안 총 6kg 정도 몸무게가 감소했다. 이 와중에 일도 해야 했고 대학원도 신경 써야만 했지만 어떠한 일을 해도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웠고 미칠 듯이 예민해져서 작은 소리에도 날카롭게 반응했다. 수면제도 그 외 어떤 약도 복용하지 않았다. 술도 마시지 않았다.


약을 먹지 않으니 제대로 잠을 잘 수 도 없고 음식도 똑바로 먹지 못하니 사람이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온몸에 기운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산책도 매우 짧게 나갔다. 병원에서 가벼운 산책은 괜찮다고 말했고 오히려 아예 나가지 않으면 견종 특성상 스트레스를 받아서 더 안 좋을 수 있다고 하였지만 추운 겨울 영하의 날씨에 양쪽배에 구멍이 뚫려서 호스를 꽂은 상태로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혹시 저 작은 구멍으로 벌레라도 들어가면 어쩌나, 상처가 감염되면 어쩌나 등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생각하면 나는 보더콜리만 챙기면 되지만, 나와 함께 생활하는 그는 나를 챙기면서 아픈 보더콜리를 챙기고 그 와 동시에 내가 신경 쓰지 못하고 있는 포메도 챙겨야만 했다. 어느 날 그가 사 온 단호박죽을 조금 먹고, 변기통을 부여잡고 영혼까지 토해내고 있었다. 초록빛의 액이 입속에서 흐르며 날카롭게 귀를 찌르는 이명과 깨질 것 같은 머리통을 부여잡고 화장실에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다. 당시의 나는 언제라도 보더콜리가 내 옆을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보더콜리도 포메도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그들을 맞이한 그 순간이, 원망스럽고 후회되었다. 애당초 가지지 못했던 행복이라면, 이렇게 내 생활을 파괴해 가면서 고통스럽지 않았을 텐데. 함께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앞으로도 이런 불안감이나 고통 따위 모르고 살았을 텐데.


며칠 뒤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호스를 제거하는 시술을 받았다. 다행히 시술은 금방 끝났지만 아직까지도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불안한 마음은 제거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 찝찝하게 내 마음에 맴돌았다. 당시에 할 수 있던 대부분의 검사는 다 진행한 상태였고 유일하게 MRI하나만 확인하지 않은 상태였다.


병원에서도 그다지 추천하진 않았지만 결국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MRI촬영을 진행했다. 애석하게도 병원에 MRI장비가 없어서 타 병원과 연계하여 검사를 진행했다. 눈 내리던 겨울,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그 순간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놀랍게도 MRI상에서 어떠한 부정적인 결과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단지 아이는 건강했고 완전히 회복했으며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지만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 잡은 불안함은 그 무엇으로도 해소할 수 없었다.


웃기는 예기지만 당시의 나는 나름대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좌절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우울했지만 무력감과 어느 정도 싸워서 이겨냈다고 생각했다. 생활은 완전히 망가졌고 툭하면 울었으며 거의 폐인처럼 생활했지만 보더콜리가 건강을 회복하고 모든 게 끝나고 난 다음 나는 내가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현실의 나는 내 모든 주변에 쓰레기를 흩날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버린 무수히 많은 쓰레기들을 내 주변사람들이 조용히 내색하지 않고 치워주고 있었다. 그와 그녀 그리고 나의 누나가 말없이 그저 조용히 나를 받치고 있었다. 그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나의 건강을 염려하여 죽을 사 오는 등 현실적인 부분의 내가 망가지지 않도록 나를 챙기고 있었다. 그녀는 나의 감정쓰레기통이 되어서 내가 뱉어내는 모든 부정적인 말들을 겸허히 받아주고 감싸주었다. 나의 누나는 사실 우리는 평소에 연락도 잘하지 않고 일 년에 얼굴 한두 번 보는 게 전부이지만, 나와 강아지의 안부를 물어주고 집에 찾아와서 나 대신 보더콜리를 보살펴주고 포메와 놀아주고 위로를 전해주었다.


결국 나는 혼자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멍청이였다.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만 겨우 숨 쉴 수 있는 무책임한 인간이었다. 제 잘난 맛에 산다고 떵떵거리고 성질만 부리는 몸만 큰 어린애였다. 언젠가 다가올 이별에 미리 겁을 먹고 온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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