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고 몇 달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고 벚꽃이 질 무렵 포메가 뒷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분명 예전부터 이와 관련된 증상들이 있었을 거고 알게 모르게 나와 그에게 자신의 아픔을 꾸준하게 이야기했을 텐데 우리는 그걸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에 대학원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었다. 끊었던 약을 다시 복용하며 생활의 패턴을 찾아가고 있었다. 언제라도 불현듯 찾아올 공황장애를 약 없이 버텨야 한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나야만 했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아이들을 케어해야만 했다.
보더콜리도 포메도 모두 관절이나 슬개골에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은 아이들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집에는 강아지 매트가 설치되어 있고 비만이 되지 않게 위해서 노력했다. 관절 영양제도 어릴 때부터 꾸준히 챙겨주고 있었지만 결국 올 것이 와버렸다.
보더콜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고생했지만 그래도 포메는 최소한 분명한 원인이라도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조금도 위로가 돼주지 못했다. 그동안 너무 보더콜리만 신경 쓰느라 포메는 완전 뒷전으로 밀어 놓았다는 죄책감에 마음이 무거웠다.
검사를 진행하고 결과를 듣는데, 양쪽 뒷다리에 고관절탈구가 있으며 수술이 필요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연달아서 두 아이들을 모두 수술시켜야 하는 이 상황이 참 어이없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당시 포메는 5.2kg 정도였다. 병원에서는 2kg 정도를 감량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럼 정말 뼈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나의 편협된 기준에서 본다면 당시에 아주 마른 건 아니지만 건강한 체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보더콜리와 비교했을 때 갈비뼈의 깊이와 감촉이 확실히 포메 쪽이 더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단지 우리 아이는 다른 포메와 비교했을 때 골격이 조금 더 큰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5.2kg 정도의 무게가 스탠더드 체형은 아니지만 관절에 무리가 갈 만큼 비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포메는 참으로 얌전한 강아지였다. 생긴 것처럼 몽글몽글한 성격에 애교가 많았다. 우리가 집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얌전히 다가와 그저 말없이 우리를 기다려 주었다. 사람을 참 좋아했는데, 슬쩍 다가가 냄새를 맡고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기까지 얌전하게 기다릴 줄 알았다. 새로 만난 강아지 친구들과도 견종이나 크기에 상관없이 잘 어울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호기심이 충족되면 우리에게 뾰로록 달려왔다.
보더콜리와는 반대로 싫다는 표현을 거의 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어필하는 건, 애착 이불이었다. 다 뜯어지고 구멍이 나서 당장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낡은 이불이 있는데, 예전에 그가 사용하던 이불이다. 이불을 세탁하려고 잠시 치우면 앙칼지게 짖으며 노려보았고, 건조까지 마친 후 돌려주면 몇 시간은 몸을 파묻고 나오지 않았다.
양쪽 뒷다리를 모두 수술한 포메는 다리를 끌고 다녔다. 한동안 집 한구석에 푹신한 이불을 깔고 보더콜리가 근처에 가지 못하게 펜스를 두르고 집과 애착이불을 넣어줬다. 근육이 다 빠지게 전에 열심히 걸어 다녀야 하는데, 전혀 걸을 생각 따위 없어 보였다.
저 작은 아이가 양쪽 발에 커다란 수술자국을 두고 애처롭게 누워있는 모습은 볼 때마다 가슴을 후벼 팠다. 오히려 보더콜리가 아팠을 때 보다 아이가 작아서 그런지 더 많이 신경 쓰이고 가슴이 저려왔다.
막상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포메는 신경도 쓰지 않고 얌전하게 잘 생활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보더콜리가 난리법석을 부렸다. 툭하면 울타리를 넘어뜨렸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울타를 훌쩍 뛰어 넘어서 포메 옆에 정착했는데 아픈 아이를 건드리며 귀찮게 굴 거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그저 옆에서 가만히 앉아있었다.
과거에는 유모차를 타고 다니던 강아지들을 좀 생경하게 생각했었다. 아이들을 키운 이후에도 걷고 싶지 않을까? 냄새 맡고 싶을 것 같은데 불편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했었다. 하지만, 수술을 함과 동시에 유모차와 안에 넣을 푹신한 방석을 주문했다. 조금이라도 걷게 하기 위해서는 집보다는 밖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고 분명 엄청나게 답답할 테니 바람이라도 조금 쐬게 해주고 싶었다. 역시 인간은 모든지 일단 겪어봐야 이해할 수가 있다.
병원에서 무조건 다이어트를 시켜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잘 걷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에 금방 살이 찔 거라고. 안 그래도 아픈 애한테 제한적으로 사료를 먹이면서 배고픈 상태로 둬야 한다는 게 인간적으로 정말 몹쓸 짓을 하는 것 같았지만, 집이든 밖이든 절대 걸으려고 하지 않았기에 눈물을 머금고 조금씩 사료의 양을 조절하며 다이어트를 시켰다. 그는 미역국부터 시작해서 강아지 몸에 좋다는 다양한 영양식을 준비했는데 결과적으로 보더콜리만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말랑말랑 거리고 귀염 뽀짝 한 아이가 뒷다리를 늘어뜨리고 기어 다니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고 있는 건, 매 순간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었다. 거의 한 달이 다 되는 시간 동안 절대 걸으려고 하지 않았다. 엉덩이 쪽을 살짝 들어서 걷는 연습을 시키려고 하면 바로 낑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심지어 앞다리만 이용해서 기어 다니는 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사실 병원에서 이 정도면 그냥 엄살이라고, 독하게 마음먹어야 한다고 여러 번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독한 마음을 먹는 게 너무 어려웠다.
수술 때문에 밀어놓은 털 사이로 보이는 근육이 점점 사라지는 게 눈으로 보였다. 결국 계속 저렇게 생활하게 둘 순 없어서 인터넷으로 맞춤 휠체어를 제작하려고 찾아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혹시 수술이 잘못된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다른 병원에 데려가서 검사를 다시 받아봐야 하나 고민할 무렵이었다.
보더콜리가 머즐을 이용해서 포메의 엉덩이 쪽을 받치고 강제로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포메가 낑낑거리든가 말든가 신경도 쓰지 않고 주저앉을 때마다 계속 일으켰다. 신기한 건 차지하고 저게 과연 도움이 될까? 혹시 아픈 아이를 더 아프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하는데 포메가 주저앉으면 얼굴을 몸에 비비며 몇 번이고 다시 포메를 일으켜 세웠다.
정 도가 너무 지나치다 싶으면 말렸지만 대부분 그냥 두었는데 그러고 며칠이 지나자 뒷다리를 사용해서 슬슬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몇 주가 흐르니, 온전하게 뛰어다니지는 못해도 보다 편안하게 걸어 다니기 시작했고 보더콜리가 포메의 애착 이불을 물어 자신의 집으로 가져가 버리자, 폴짝 뛰고 앙칼지게 짖으며 이불을 다시 뺏어왔다.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서 내가 배운 건, 보호자는 절대 망설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포기하고 포메를 계속 유모차에 태워 다니고 휠체어를 맞춰줬으면 과연 회복할 수 있었을까? 아파하는 아이의 모습에 모든 걸 포기해 버린 나는 사랑한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우울증, 공황장애가 있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무기력증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세상은 거기에서 닫히고 만다. 반려인들이 보여주는 세상이 반려견들에겐 전부인데, 그러한 세상을 모종의 이유로 닫아버리면 평생 반려견들은 좁은 우리에 갇힌 것과 진배없는 삶을 살다가 떠나야 한다. 어쩌면 내가 정서적으로 더 안정된 상태였다면 포메는 조금 더 빠르게 회복하여 뒷다리를 이용하여 걸을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