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아팠을 때 나는 참 무기력했다. 만약 내 옆에 그가 없었다면 나는 견디질 못했을 것이다. 나의 불안이 아이들을 병들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드라마 대사처럼, 사랑한다면 책임저야 하는데 나는 책임은 회피하고 그저 사랑만 주려고 했었다.
끊었던 약을 다시 먹으며 무기력함에 빠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모든 생활을 정상의 범주로 돌려놓는 과정에서 늘 그렇듯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도저히 발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나의 둔탁한 삶이 지겨웠다. 매 순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몰려왔다. 과거에도 여러 번 경험했지만 모든 걸 내려놓고 쉬는 순간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불현듯 찾아오는 부정적인 감정과 우울함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래 나는 원래 부정적이고 우울한 사람이야.’ 스스로를 정의했다.
당시에 아무도 나에게 언질 해주지 않아서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때의 나는 매사에 짜증이 가득했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며 바쁘게 생활하려고 애썼지만 육체적으로 체력이 따라와 주질 못했다. 시간에 쫓기는 일이 늘어나고 노력에 비하여 결과가 따라오질 않으니 좌절하기 일 수였다. 매사에 스트레스를 받으니 먹으면 바로 토하는 지경은 아니었지만 속이 계속 더부룩해서 식사를 똑바로 하기도 어려웠다. 마냥 아이들을 사랑하고 바라보는 게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다.
언제 아플지 모르니, 후회 없이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려면 무조건 돈을 벌어야만 했다. 지금보다 훨씬 많이 벌어야 했다. 보더콜리는 포메에 비해서 덩치도 커서 병원비도 2,3배로 지불해야 했다. 여행이고 취미생활이고 다 나한테는 사치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고 느껴졌고 불안감에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에 연민을 느끼다가 이내 역겨워지기 시작했다.
만약 먼 훗날 아이들이 큰 병에 걸렸고, 내 옆에 그가 없다면. 그리고 내 밥벌이가 영 시원치 않아서 아이들의 병원비를 지불할 능력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생활을 내려놓는 순간 그리고 돈을 벌지 않는 순간 미래의 닥칠 불안감을 온몸으로 떠안아야 했다. 그리고 나는 불안감을 해소할 방법으로 돈을 선택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합리적이었으며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이미 과거에 아이들이 아프면 상당히 많은 병원비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우습게도 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구태여 따지면 그는 원래부터가 무척이나 현실적인 사람이었기에 어쩌면 나보다도 훨씬 더 오래전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나와는 다를 뿐이었다. 불현듯 찾아온 어둠은 지나간 자리에 불행을 남긴다. 그리고 그 흔적은 서로를 갉아먹었다.
눈만 마주치면 싸우기 시작했다. 나 혼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게 아니라 그 역시 마찬가지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우리는 서로의 아픔을 돌봐주고 보듬어줄 만한 여유가 없었다. 고르고 골라서 서로에게 가장 아픈 말들을 내뱉었다. 마음에 있는 말인지 없는 말인지 구분조차 하기 힘들었지만 분명한 건 우리는 그 순간 서로에게 가장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을 내뱉었다.
그전까지 우리는 아무리 심하게 싸워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때까지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아침해가 뜨고 다시 저녁이 찾아오더라도 분명 우리는 타협점을 찾았다. 도저히 상대방을 이해할 수가 없으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에 대한 납득할 수 있는 타당한 이유라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에 우리는 달랐다. 함께 같은 일을 하면서 감정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우리는 타협점을 찾기 어려웠다. 그리고 누구라고 할 것 없이 피곤함이 몰려오면 거기서 대화를 중단했다. 그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사무실에서 자는 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종종 나는 밖에서 시간을 보낸 뒤 거나하게 취해 해가 뜰 무렵에나 집에 들어갔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일들을 벌려놓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저 막연하게 내가 그의 일을 돕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연히 따지면 그건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가 함께 미래를 그려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이분법적인 사고로 너의 것, 나의 것이 아닌 함께 발전을 도모하고 성장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전공과도 상관없는 일을 맡아하면서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이 온전한 나의 것 이라고는 잘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애석하게도 결과가 늘 좋지는 못했다.
이토록 생각이 다르니, 우리가 싸우지 않는 것이 어찌 보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의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는 나에게 서운함, 배신감, 등 감히 내가 말할 수 없는 수만 가지 감정을 느끼며 지옥 같은 순간들을 버텨내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완만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눈만 마주치면 폭발하듯 서로에게 감정을 토해냈다. 집에서 쉬어도 쉬는 거 같지 않았다. 결국 그는 집을 구해서 이사를 나갔다. 몇 년 동안 지속된 우리의 동거는 거기서 끝났다. 사실 그래봤자 걸어서 5분 거리였고 딱히 본인의 짐을 다 챙겨서 나가지도 않았다. 옷가지 몇 개가 끝이었다.
완벽하게 나의 욕심이었지만 보더콜리와 포메를 분리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두 아이들과 떨어져서 생활하고 싶지도 않았다. 너의 강아지 나의 강아지 할 것 없이 모두 다 소중한 나의 아이들 이였다. 그가 새로 이사한 집 보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두 배는 더 넓었기에 당연하게도 강아지들은 나와 함께했다. 어차피 집도 가깝고 원하면 언제든지 와서 볼 수 있고 우리가 같이 살지 않는다고 해서 함께하지 않는 건 아니라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다 내가 데리고 있겠다고 말했다.
그가 떠난 집은 참으로 고요했다. 그리고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 번째로 나는 요리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태 내가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었던 건 단지 그가 먹어주기 때문이었다. 오롯이 나를 위해 불 앞에 서서 무언가를 만드는 걸 나는 참 끔찍이도 싫어했다.
두 번째는 어느 정도 의식은 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나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똥 멍청이였다. 전구하나 똑바로 갈지 못해서 매번 부셔먹었다. 그럴 때마다 그가 집에 와서 전구를 갈아주다가 나중에는 아예 전구를 갈 필요가 없는 등으로 다 바꿔주었다. 자동차가 매우 심각할 정도로 더러워지기 시작했다. 때가 되면 그가 알아서 세차 및 필요한 점검을 해주었기에 나는 그냥 타고 다니기만 하면 되어서, 타이어 공기압 같은 기본적인 것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결국 차에 경고등이 들어올 때마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매번 그가 바쁜 시간을 쪼개서 해결해 주었다.
세 번째로 뻑하면 물건을 부셔먹고 어딘가 부딪혀서 다치기 시작했다. 사실 이건 그와 살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때마다 알아서 치워주고 약 발라주고 병원도 데려가고 했으니 내가 의식을 못했던 건지 한동안 팔다리에 멍이 계속 들었다. 더 우스운 건 도대체 팔과 다리에 왜 멍이 들었는지 나는 알지도 못했다는 사실이다.
네 번째로 나는 모든 전자기기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몰랐다. 어느 날 티브이가 나오지 않으면 그대로 방치했다. 무선 청소기의 보조배터리 사용법을 몰랐으며, 로봇청소기가 작동하지 않자 그대로 창고에 박아 넣어 버렸다.
다섯 번째로 생각보다 내가 타인을 많이 배척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와 함께 생활하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집으로 찾아오는 누군가를 맞이한 적이 없었다. 배달음식은 물론이고 정수기 점검, 인터넷 점검 등과 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도 나는 똑바로 처리하는데 꽤 애를 먹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익숙해질 무렵 다시 조금씩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배달음식만 먹으면 속이 거북하고 그렇다고 매일 샐러드랑 식사대용 셰이크만 먹고살 순 없으니 결국 죽지 않으려면 요리를 하긴 해야겠더라. 여전히 자동차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세차는 업체에 맡기거나 주유소에서 함께 운영하는 자동세차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전구는 갈 일이 아예 없고 그나마 전자기기는 조금 사용할 줄 알게 되었다. 다만, 사람은 계속 배척했다. 그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나아지지 않는 부분이라고 못 박아 버렸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몇몇의 사람을 제외하고 내 집에 누군가 타인이 들어온다는 사실 그 자체가 너무나도 끔찍하게 싫었다. 그리고 이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아서 불편을 감수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생각보다 혼자서 지내는 시간은 나쁘지 않았다. 물론 갑자기 생겨난 빈자리에 외로웠고, 이유 없는 불안감이 찾아올 때 누군가 옆에 있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아이들이 언제나 내 옆에 지켜주었다.
그렇게 혼자라는 공간이 익숙해지던 어느 날, 심한 열감기가 찾아왔다. 병원 갈 힘조차 없어서 침대에 누워 마른눈으로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고 온몸이 젖어가던 새벽에 불현듯 숨을 쉬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가슴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듯한 통증이 느껴지고 화장실까지 기어갈 틈도 없이 모든 걸 구역질이 올라와 모든 걸 토해내기 시작했다. 세상이 빙빙 돌았고 이러다 죽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서 이렇게 죽으면 강아지들은 내 시체를 계속 지켜보고 있어야 하고, 그다음 싸늘한 변사체가 된 나를 그가 발견하게 될 텐데 죽을 때 죽더라도 그런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잠 한숨 못 자고 동틀 무렵까지 버텼다. 어느 정도 상태가 진정된 것 같아서 대충 옷을 챙겨 입고 응급실로 향했다. 운전해서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사고라도 나면 억울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칠 것 같아서 택시를 잡아탔다.
보호자 연락처를 적으라는 직원의 이야기에 누구의 연락처를 적어야 하는가 고민에 빠졌다. 세상에 보호자 없는 사람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머뭇거리며 아무것도 적지 못하는 나를 보고, 직원이 아무 연락처나 적으라고 일러주었다. 결국 그의 연락처를 적었다. 이렇다 할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피를 뽑고, 수액을 맞고 있었다. 몇 시간이 흐르고 상태가 좀 괜찮아진 것 같았다. 차가운 응급실 천장을 바라보다 결국 그에게 연락했다. 딱 봐도 여기서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불현듯 찾아오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던 나는 너무 나도 집에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곳에서 나를 꺼내서 집으로 데려다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그 말고는 없을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가 병원에 도착했고 능숙하게 나를 대신해서 외과 진료를 예약했다. 이후 그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주차장에서 나를 내려주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집에서 버티는 건데,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강아지들을 챙기고 새벽의 흔적을 정리했다.
이후 병원을 다니며 컨디션을 완벽하게 회복하고 어느 날 집으로 그녀를 초대했다. 과거에 서울에 거주할 때 몇 번 그녀가 집 근처에 와서 포메랑 보더콜리랑 잠깐 만난 적은 있지만, 집으로 초대한건 처음이었다. 그녀를 집으로 초대하기까지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누군가를 나의 공간에 들인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아주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강아지들이 보고 싶다고 말하던 그녀의 이야기를 여태 무시했다. 서운했을 텐데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고 그저 기다려준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마련하고 평소보다 신경 써서 청소를 마무리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사람을 알아보기라도 하는 건지 강아지들이 배를 깔고 애교를 부리는 모습이 퍽 귀여웠고, 거부감 없이 아이들을 안아주며 예뻐해 주는 모습이 참 고마웠다. 생각보다 보더콜리가 덩치가 좀 커서, 막상 옆에 끼고 놀아주려고 하면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었다.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가볍게 와인 한잔을 하면서, 뜬금없지만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었다. 영화 트와일라잇에 나오는 에드워드와 벨라의 사랑을 우리는 언제나 현실에서 절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그 불가능한 사랑을 바라고 찾아다녔고 기다렸다. 진취적으로 쟁취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가능하기만 하다면 무엇이든 못할까.
사랑은 변하고 인간도 변한다. 인간이 변하기 때문에 사랑이 변하는 건지 아니면 더 이상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호르몬이 나오지 않아서 변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면 그 뒤에 남는 건 본능적인 육체의 끌림이 아닌 보다 순결한 무언가가 기다린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그걸‘의리’ 혹은 ‘플라토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둘 다 비혼주의자인데, 언젠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버릴 것을 두려워하며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변해가는 상대방의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 아파하면서 허항 된 세월을 보내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결혼을 기피했다. 그리고 그녀는 너무 사랑하기에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와일라잇 같은 사랑을 찾아다녔고 나는 트와일라잇 같은 사랑을 바라면서도 그냥 포기해 버렸다. 무형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늘 나를 아프게 한다. 그게 사람이든 나의 아이들이든. 결국 언젠가 모든 생물은 죽어서 먼지로 돌아가기에 불멸의 사랑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환상 속에서 존재하는 무언가를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그에 대한 노력을 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게 느껴졌다. 물론 나에게는 그가 있었지만, 그는 언제라도 나를 떠날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아무런 노력도 않고 그저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행위 자체를 그녀는 혐오했다. 그보다는 그녀가 흑마를 탄 공주가 되기를 원했었다. 혹은 유니콘 이라던가, 그것도 아니면 핑크색의 윤기 나는 털을 가진 날개 달린 말도 괜찮았지. 그리고 반대로 나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모든 사랑을 기피하며 피하기 시작했다. 마치, 지금 내 옆에 없는 그가 남긴 공허함을 탓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매 순간 그와 멀어지고 있었다. 버림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의 사랑이 결국 내가 예상한 대로 나를 떠났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의 불행을 타인과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그게 정서적인 불행이라면 더욱더 싫었다. 누군가를 나의 감정쓰레기통으로 소모시키고 싶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몇 번 해봤는데 결국 모두가 상처받는 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건 교감이 아닌 일반적인 배출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잘것없는 삶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나누어야 한다는 게 너무 벅차게 느껴졌다.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 주는 아이들이 있었기에 나는 외롭지 않을 수 있었고 우울하지 않을 수 있었고 행복했으며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아이들이 있어도 나는 우울했고 불안했으며 불행했고 무기력했고 그 정도로 죽진 않겠지만 죽을 만큼 외로웠다.
사랑했기에 매 순간 불안했으며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옥죄듯이 조여왔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어요.’와 같은 해피 엔딩을 위해서라면 돈이 필요했다. 결국 다 돈으로 끝나는구나. 삶이란 이렇게도 부질없고 물질의 지배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구나. 보더콜리와 포메가 아파서 몇백만 원의 돈을 지속적으로 지불하는 동안 만약 내가 돈이 없고 그가 돈이 없었으면 과연 아이들이 지금 살아있을 수 있긴 할까. 에드워드와 벨라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가는데 지지리 궁상맞게 가난했어도 그토록 행복했을까.
어느 날 대학교 시절 은사님이 돈이 없으면 사랑이 창문밖으로 달아난다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결국 사랑을 지키기 어렵다고. 떠나가는 사랑을 바라보며 죽상이 된 현실에서 혼자 버티고 서 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적당히 현실과 타협에서 결혼이라는 제도로 상대방과의 관계를 묵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한국에서 그와 결혼할 수도 없었다.
누구라도 언젠가 아프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는 삶을 살고 있으니, 그 순간이 찾아올 때 돈이 없으면 얼마나 지옥 같을까. 대한민국의 의료보험으로 과연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있는 핑계가 나에게 이토록 많은데, 어떻게 내가 그를 온전히 온 마음을 다 바쳐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나를 누군가 사랑해 줄 수 있긴 할까. 설령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의심 없이 온전하게 그 사랑을 내가 받을 수 있을까. 그는 과연 나를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 그렇다면 나를 이렇게 외롭게 방치하지는 않았을 텐데.
이는 꼭 연인 간의 사랑의 문제가 아니었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삶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모든 인간관계를 정의하고 있는 우정 혹은 사랑은 그에 따른 책임이 따라온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우정과 사랑의 큰 차이점을 잘 모르겠다.
어떤 관계든 누군가는 그 관계가 상처받거나 깨지지 않게 부단히 도 노력하고 있다. 한번 깨진 관계를 다시 살려내는 건 마치 깨진 도자기를 붙였을 때 타인은 몰라도 당사자들은 그 도자기가 이미 한번 깨졌다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완벽해질 수 없다. 나는 그걸 현실이라고 불렀다.
우정에서 비롯된 사랑이든 혹은 사랑에서 비롯된 우정이든, 알이 먼저 인지 닭이 먼저인지 하는 모호한 모든 것은 잠시 치워두고, 인간과 인간이라는 관계만 놓고 봤을 때 서로를 생각하며 위해주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모두 사랑이었다. 내가 먼저 노력해서 다가가지 않았으면 친해지기 어려웠을 그녀처럼, 비록 당시에는 이런 불안전한 나를 그녀가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고 맞춰주며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언젠가 내가 구제불능한 인간쓰레기처럼 변모하면 그녀가 나를 손절하지 않을 수 있을까.
또한 나와 그는 우리는 언제나 서로를 최우선으로 생각했었다. 사실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와 언제까지, 영원히 함께 살아가며 아침에 함께 눈을 뜨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으리란 허황된 기대 따위는 한 적도 없었고 바라지도 않았다. 다만, 쏟아지는 결말이 준비도 되지 않은 나에게 너무 빨리 찾아와 당황스러웠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그와 싸우는 일상이 늘어갈수록 차라리 혼자 사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도 꽤 자주 했었다. 이럴 거면 도대체 뭐 하러 같이 사냐고 그에게 여러 번 이야기도 했었다.
그런데 막상 그가 떠난 빈자리는 너무나도 공허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그가 있었지만 고개를 돌리면 아무도 없었다. 때로는 그 공허함이 너무나도 좋았지만 이따금 사무치는 외로움을 막을 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나의 외로움을 채울 수 있는 존재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와 있을 때도 나는 언제나 외로웠다. 그녀와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하물며 아이들의 나의 곁을 맴돌 때도 늘 나는 그저 외로운 인간이었다. 언제나 나를 외롭게 만드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웃긴 건 이런 보잘것없는 나와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몇 명 있었다. 그 사람들이 나에게 본모습들은 모두 내가 의도적으로 보인 단면적인 모습들이라고 생각했기에,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모습을 보며 그저 우습게 느껴졌다. 그들의 사랑을 비하하며 평가절하 시키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그들의 인생이 너무 소중했기에 나는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재는 것 없이 온전하게 사랑을 전달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방법을 모른다. 강아지들이 나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을 주고 있어도 나는 그저 막연하게 넘치는 사랑을 받기만 할 뿐 주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언젠가 내가 온전하게 사랑을 주는 방법을 배우는 순간이 찾아오면 그때는 나의 외로움이 사라질까.
기본적으로 나는 친구 혹은 지인들에게 연락을 자주 하는 유형의 인간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간혹 안부를 물어오는 연락이 반가웠지만 시간을 내서 약속을 잡고 만나러 가는 행위 자체가 어딘가 부담스러웠다. 보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미친 듯이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건 그와 그녀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그는 아이들이나 일 때문에 좋든 싫든 계속 마주처야만 했으며 그녀 역시 학교에 가면 만날 수 있었기에 메신저든 뭐든 연락자체를 그리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그는 내가 답장을 하던 하지 않던 나에게 꾸준하게 안부를 물어왔다. 밥을 먹었는지 물었고 아이들의 컨디션을 확인했고 나의 건강을 주시했다. 그리고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졸업하면 자연스레 멀어질까 그러다 보면 결국 남이 되리란 나의 막연한 생각과는 다르게 언제나 나에게 안부를 묻고 일상을 공유해 주었다.
살아있기만 한다면 언젠가 만날 수 있으리란 착각. 어떻게든 살아있을 수 있다면. 인간은 그리고 모든 생명은 너무나도 쉽게 떠날 수 있었다. 내가 삶을 놓치고 있는 모든 순간 그들은 언제라도 나와 우리와 작별할 수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보다 오래 추억할 수 있기 위해서.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으면 나 또한 그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만 한다. 이는 비단 인간관계뿐 아니라 내가 손에 움켜쥐고 있는 모든 것들에 해당하고 있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내가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았다면 그날의 나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