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열문단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도영 Mar 05. 2023

성공 경험은 느슨한 법칙으로 기억하기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09

01. 

로빈 M.호가스와 엠레 소이야르가 쓴 ⟪경험의 함정⟫을 꽤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흔히 우리가 맹신하게 되는 '경험'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경험이 어떤 상황에서 우리에게 '걸림돌'로 작용하는지를 분석한 책이죠. 


02. 

책에는 흥미로운 대목들이 속속 등장합니다. 경험이 오히려 창의성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부터 다른 사람이 필터링해주는 경험이 우리를 어떤 진흙탕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지까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경험의 '함정'들을 잘 설명해 주고 있거든요. 


03. 

저는 그중에서도 인간은 경험을 취사선택하게 된다는 말에 참 깊은 공감을 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는 각자가 체득한 경험 중 인상 깊은 것만을 기억하며 그것도 왜곡하거나 미화하여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과관계가 전혀 없는 두 가지를 맘대로 꼬아 놓기도 하고 특정 결과에 이른 복합적인 원인들을 하나로 일반화해서 저장해두기도 하니까요. 이런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 본성이라 생각하면 남은 이야기가 더 편하게 다가올지 모르겠습니다. 


04. 

개인적으로는 실패 경험보다 성공 경험을 분석(?)할 때 이 취사선택의 오류가 더 심해진다고 봅니다. '왜 내가 실패했을까?'를 되새길 때는 그나마 복수의 요인을 고민하게 되는데, '아 이렇게 하니 먹히는구나, 이러니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에는 그 성공 법칙을 하나로 귀결시킬 확률이 커지거든요. 

우리가 흔히 회사에서 만나는 높은 분들께서 '이 방식으로 가야 한다'라고 했을 때 카리스마나 리더십보다는 불안함과 답답함을 먼저 느낀 것도 어쩌면 같은 이유일지 모릅니다. 


05. 

그러니 성공에 대한 경험은 아주 느슨한 법칙으로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성공을 운 덕분이었다고 말하는 것도 지나친 겸손이지만 우리가 이룬 성공 경험의 루트에서 인과관계가 허술하게 작용한 부분은 '모름'이라고, 있는 그대로 마주할 줄 알아야 하는 거죠. 


06. 

흔히 스포츠에는 징크스라는 게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필드에 들어설 때 오른발부터 딛어서 승리하면 축구선수는 그 징크스를 오래 간직하게 되고, 스윙 연습을 두 차례하고 타석에 들어서 홈런을 쳤다면 타자는 그다음에도 똑같이 그 과정을 반복할 겁니다. 


07. 

일반인이 보기에는 우스워 보이지만 우리에게도 이 징크스에 버금가는 성공 법칙을 만드는 사례를 아주 많이 보게 됩니다. 어쩌면 징크스라고 인정하지 않고 이를 이상한 법칙으로 기억하는 우리가 훨씬 더 우스꽝스러울지 모르는데 말이죠. 


08. 

따라서 어떤 성공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면 이를 잘 복기해놓되 과거의 선들이 모두 선명하게 이어져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지지 않는 게 좋습니다. 오히려 이 경험 속에서 정말 살릴 수 있는, 다시 한번 써먹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을 최소한으로 남기는 게 훨씬 현명할 겁니다. 그리고 그마저도 언제든 버릴 수 있다는 '느슨함'으로 손에 들고 있는 게 맞습니다. 그런 태도가 우릴 또 다음 성공으로 안내해 줄지 모르니 말이죠. 


09. 

건축가 유현준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 있습니다. "웬만하면 롤모델을 만들지 마라. 꼭 만들고 싶다면 한 명이 아닌 여러명을 만들어라." 아마도 '누구 한 명의 인생을 마치 법칙처럼 생각하고 그걸 나에게 끼워 맞춰 선 안된다'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원한다면 여러 명에게서 복수의 성공 요인을 받아들인 다음 언제든 나에게 적용할 수 있게, 또 쿨하게 버릴 수 있게 느슨하게 들고 있어라'라는 의미도 있겠죠. 


10. 

경험이라는 게 추앙되는 시대고, 제 직무 이름 중에도 무려 '경험'이 들어가 있습니다만... 좀 더 현명하고 솔직하게 이 경험들을 다룰 줄 알면 좋겠네요. '모르면 비워둬라, 이상한 답 써서 헷갈리게 하지 말고!'라는 어느 교수님의 말씀이 오늘은 왠지 뜨끔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례함'을 이해해보려고 하는 순간 수렁에 빠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