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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Apr 03. 2023

애착하는 일을 서너 가지로 압축하기

열 개의 문단으로 전하는 짧은 생각 : 열문단 #.13

01. 

예전에 오은영 박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우리는 인간관계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 살지만 인생에서 정말 필요한 인간관계는 부모, 자식을 포함해서 3-4명이어도 많다. 우리가 흔히 '애착'을 지닌 대상이라고 부르는 관계는 4명 이하로만 관리하고, 그 외 가까운 사람들과는 그저 마음 편하게 그럭저럭 잘 지내면 그것이 행복이다." 


02. 

현대인이 삶의 무게로 받아들이는 대표적인 항목이 '역할 갈등'이라고 하니 오은영 박사님의 말씀이 정말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도 나이가 들면서는(?) 관계를 넓히기 보다 오히려 집중하는데 더 노력을 쏟게 되는 것 같거든요.  더불어 '인맥'이라는 단어만큼 허상에 지나는 단어도 드물다는 생각입니다. 차라리 회사는 각자의 역할과 책임이라도 규정되어 있지만, 그런 게 동작하지 않는 사회생활에서는 어디까지가 인맥이고 무엇이 황금인맥인지 정말 1도 모르겠거든요.  


03. 

하지만 제가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대인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요건 저도 아직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명쾌하게 글로 풀기가 어려워서요 �) 

다만 저는 오은영 박사님이 말한 '4명 이하의 애착 관계론'을 우리의 일에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게 무슨 얘기인가?' 하실 테지만 포인트를 딱 하나만 짚자면 '사람'이 들어갈 자리에 '일'을 대입해 보자는 말입니다. 


04. 

저는 우리가 '일이 아닌 것조차 일로 규정해, 일을 만들어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굳이 일로 대할 규모나 성격이 아닌 것들 마저도 일처럼 대하다가 지치거나 그르치는 경우를 정말 많이 보거든요.  물론 '회사에서 하는 일이 다 일이지, 일이 아닌 게 어디 있나'하는 반문이 있을 걸로 알지만 거기에 이런 질문 하나를 얹어보겠습니다. '그럼 그 모든 일에 모두 애착을 갖고 계신가요?'라고 말이죠.  


05. 

만 10년 정도 일하다 보니 가장 경계되는 말 중 하나는 '저는 뭐든 잘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입니다. 그 포부와 결의는 너무 멋지지만 인간관계에 대입해 본다면 이는 마치 '제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 원만히 잘 지내고 싶습니다'라는 것과 같거든요.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간관계에서도 판타지같이 느껴지는 이 목표가 나의 에너지를 온전히 다른 대상에게 쏟아야 하는 일에서는 말해 무엇할까요. 세상에 이런 비현실적인 목표도 없는 거죠. 


06. 

그래서 저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일 중에 정말 애착을 가지고 잘하고 싶어 하는 일을 3-4개 정도로 압축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의 우선순위나 중요도와는 또 다른 개념입니다. 업무적으로 '해내야만 하는' 일의 리스트를 적는 게 아니라, 나에게 성취감을 주고 앞으로도 정말 꾸준히 잘하고 싶은 그런 욕심나는 일들을 정리정돈해 보는 거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아 내가 이 업무들에만 애착을 가지고 살아도 충분히 나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07. 

그리고 저는 이 리스트를 고를 때 1-2개 정도는 지금 당장 티가 나지 않아도 앞으로 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분야에서 고르거나, 혹은 사이드잡이나 부캐에서 찾아도 좋다고 봅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우리가 애착을 가지는 대상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존재(부모님, 형제, 어릴 적 친구 등)뿐 아니라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중요한 방향이 되는 존재(자녀, 배우자, 애인, 단짝 친구 등)가 있듯이, 일에서도 그 개념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 같더라고요. 지금 나를 지탱해 주는 일이 있나 하면 앞으로 더 욕심나고, 미래의 나를 위해 투자해야 할 일도 있는 거니까요. 


08.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팔로워 중에 회사 사람들도 있으니... 제 업무 안에서 애착 가는 일들을 콕 찝어 언급하긴 어렵습니다만...) 저 역시 회사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 외에도 평생 제가 하고픈 일로 애착을 가지는 분야들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게 바로 '글쓰기'입니다. 물론 회사에서도 '일로써' 쓰는 글들이 많지만, 저는 제가 생각한 것들을 글을 통해 타인에게 전달하고 미미하게나마 좋은 영향을 주는 그 과정이 참 행복하더라고요. 그러니 다른 개인 업무들과 우선순위가 부딪힐 때도 쿨하게 인정할 수 있습니다.  


09. 

혹시 여러분에게도 이런 '애착관계'에 놓인 일들이 있을까요?  

'아뇨 하나도 없어요'라는 대답을 하고 싶다면 아무래도 당장 그 일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시는 게 좋을 테고, '너무 많아서 문제죠'라고 답하고 싶다면 그중에서 정말 찐으로 애정 할 수 있는 일들을 서너 가지 골라보는 게 현명한 태도일지 모르겠습니다.  '내 인생에서 이 서너 명 빼고 다 필요 없어!'라는 마인드로 살자는 게 아닌 것처럼, 애착관계에 들지 못한 나머지 일들과는 또 그럭저럭, 마음 편하게, 길게 내다보며 지낼 수 있는 거니까 말이죠.  


10. 

심리학에서 애착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attachment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에는 '믿음'과 '지지'라는 다른 뜻도 담겨있죠. 사람이든 일이든 '애착'관계에 놓을 무엇인가를 선택한다는 건 어쩌면 내가 믿고 지지할 대상을 고른다는 것, 동시에 나를 믿고 지지해 줄 대상을 고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여러분이 두 손 모아 담고 싶은 그 수많은 사람과 일들 가운데서 정말 의미 있는 대상들이 다시금 새롭게 보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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